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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71화 (71/258)

< 71. 올드 트래포드의 괴물 (3) >

"좋아. 잘하고 있어."

전반전이 2대 0으로 끝나자, 필마르크 감독의 얼굴엔 웃음기가 어렸다.

"지루, 후방까지 내려와 주는 플레이 아주 좋았다. 최고야."

필마르크는 칭찬에 인색한 감독이 아니었다.

지루가 후방까지 내려와 중원에 힘을 실어 주자, 제프에게 공이 배급되는 상황이 많아졌다.

자연히 슈팅할 기회가 많이 생겼다.

공만 간다면야 어떻게든 기회를 창출해 내는 스트라이커인 제퍼슨이었으니까.

"윌리안, 풀리식. 괜찮나? 많이 얻어맞은 것 같은데?"

"문제없습니다."

"좋아."

전체적으로 사이드를 이용한 공략법이 잘 통했다.

윌리안과 풀리시치는 사이드를 주구장창 공략했다.

사이드 체인지. 수비들을 사이드에 몰리게 만들고, 순식간에 측면을 전환해서 공략하는 방법.

윌리안과 풀리시치는 상대의 윙백들에게 넘어지고, 무너지더라도 끊임없이 공략을 멈추지 않았으며, 끝내 그것이 득점에 연결됐다.

하지만 그간 여러 경기를 뛰며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 더구나 오늘 경기는 미친 듯이 달릴 일이 많았으니, 벌써 체력 저하가 나타났다.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버텨! 이대로만 하면 된다. 조금은 안정적으로, 현재의 스코어를 유지하면서!"

필마르크는 사실 속으로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EPL!'

유로파에 리그에, 리그컵까지.

좀 있으면 FA컵도 시작된다.

이 말도 안 되는 격한 일정에 몇몇 주전 선수들은 벌써 체력적으로 퍼질 위험에 처해 있었다.

EPL을 처음 경험하는 필마르크의 실수였다. 프리시즌 때 충분한 체력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더 많은 선수를 영입했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 제퍼슨의 컨디션이 최고라는 것.

그리고 유로파에서 출전을 거의 하지 않아 체력도 쌩쌩하다는 점.

"제프. 잘했다. 멋진 골이었어."

필마르크의 말에 선수들이 손뼉을 쳤다.

그도 살짝 소름이 돋았다.

혼자서 미드필더의 압박을 벗겨 내고, 쓰리백을 분쇄할 때.

그리고 튕겨 나온 공을, 침착하게 골키퍼 데헤아마저 제치면서 밀어 넣는 가벼운 슈팅은.

과연 자신이 지휘하는 이 어린 선수가 이제 19살인가 싶을 정도였다.

"이대로 가서 맨유를 부숴 버려! 올드 트래포드를 눈물바다로 만들라고!"

"Go! The Blues!"

의욕 넘치는 첼시의 라커룸과는 달리, 맨유의 라커룸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그 침묵을 깬 건 솔샤르의 나직한 목소리였다.

"린델뢰프는 빠진다."

"······네."

솔샤르는 제퍼슨의 격한 방향 전환을 쫓아가느라 마지막에 햄스트링이 올라온 린델뢰프를 교체했다.

"올리버 음투쿠지(Oliver Mtukudzi)가 들어가고, 포메이션은 4-3-2-1의 다이아몬드로 한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포메이션으로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축구로, 반드시 이긴다. 알겠어?"

솔샤르는 언성을 높이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마치 로봇처럼 어조를 유지했고, 표정도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점이 선수들에게 더 무섭게 느껴졌다.

맨유의 전설적인 선수였으니, 그의 업적을 떠올리면 선수들은 감히 반박할 수 없었다. 또한, 그 옆에는 오랫동안 맨유를 지켜온 마이클 펠란 코치도 같이 있지 않은가.

선수들이 모두 솔샤르의 말을 경청하며 의지를 다지는 가운데.

조금은 편한 자세로 벽에 느슨하게 기대듯이 앉아 있는 한 선수에게 솔샤르의 시선이 향했다.

"음투쿠지. 너는 오늘 첼시의 9번을 막는다. 경고를 받는 건 무서워하지 마. 네가 올림픽에서 보여 준 모습을 마음껏 펼쳐 봐라."

한차례 통역이 지나고, 197cm의 신장의 검은 레게 머리 흑인 선수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Yes."

***

"Glory! glory, Man United!"

필드로 나가자 귀가 멍멍할 정도로 경기장이 울렸다.

맨유 홈팬들은 여기가 올드 트래포드라는 걸 증명하듯이 미친 듯이 응원가를 불렀다.

경기는 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더 크게 소리 질렀다.

"You!"

각 진영으로 선수들이 흩어지기 전, 맨유의 선수중 하나가 나를 불렀다.

어라.

이 녀석?

"음투쿠지?"

그러자 레게 머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You, ME, Know?"

단어만 나열하는 짧은 영어.

난 그를 그저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올리버 음투쿠지.

내가 회귀 전에 존재했던 선수 중에 아프리카 역대 최고의 선수라고 불릴 선수다.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

압도적인 피지컬이 장점인 괴물 같은 선수.

별명이 아프리카의 코끼리였나.

원래는 코뿔소였다가, 그와 부딪쳐본 선수들이 '저건 코끼리야. 코끼리.'라고 혀를 내둘러서 붙여진 별명이다.

메시와 호날두의 시대가 끝나고 다음 세대 최고의 축구선수가 누구인지는 확연하게 갈리지 않았다.

음바페, 그리즈만, 네이마르 같은 기존의 스타부터.

지금 눈앞에 있는 음투쿠지와 산티아고 같은 신성도 갑자기 등장했었다.

그것도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으로 말이다.

그만큼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보여 줬었지.

197cm, 97kg의 피지컬.

그렇지만 느리지도 않았다. 선수를 끝까지 쫓아가서 무너뜨려 버리는,

"맨유의 철벽."

"What? I, English Sorry"

음.

아직 말이 통하긴 힘든 편이네.

음투쿠지는 살벌한 얼굴과는 다르게 새하얀 건치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해맑은 미소였다.

"You, defence, My."

음, 나를 막는다고?

이거야 원.

회귀 전, 그 대단했던 음투쿠지가 나를 막기 위해 출전한다니.

그러나 크게 걱정은 들지 않았다.

지금 음투쿠지는 도쿄 올림픽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 줘, 막 빅클럽으로 이적한 상황.

회귀 전, '발롱도르'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창 난리 날 때의 전성기는 아니란 얘기다.

지금쯤, 이 녀석은······.

'아직은 좀 멍청하던가.'

지능적인 플레이가 다소 부족했다.

피지컬로 찍어 누르다 보니 경고를 많이 받아, 카드 캡터라는 별명도 있었다.

물론 나중에 실력이 완숙해지면서, 지능적인 플레이도 늘어나 세계 최고 중 하나가 되지만.

어쨌거나, 지금 내겐 껄끄러운 상대다.

피지컬로 내가 지금 밀릴 거라 생각되진 않지만, 적어도 전반전에 날 쫓아다니다가 햄스트링이 올라온 린될레프보단 훨씬 귀찮으니까.

음.

생각해 보니, 쟤가 있으면 한 골 더 넣기 힘들 거 같다.

쟤 아직 카드 캡터겠지?

"풀리식."

"응?"

"쟤 퇴장 좀 시켜 줘."

"뭐?"

내 말에 풀리식의 시선이 음투쿠지에게 닿았다.

"······진심이야?"

"도발 좀 해서, 퇴장으로 만들어 봐."

"······그랬다간 내가 맞아 죽을 거 같은데?"

"너의 희생은 잊지 않을게."

"······."

***

[괴물 같네요! 올리비에 지루, 무너집니다!]

[지루가 이렇게 쉽게 중심이 무너질 선수가 아닌데요. 맨유의 새로운 선수, 세네갈의 음투쿠지가 엄청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지루를 밀어뜨려 버립니다.]

[대단하네요. 마치 거인이 경기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발도 느리지 않군요. 마치 키크고 강력한 캉테를 보는 것 같네요.]

후반전이 시작되자 맨유는 공격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러자 첼시는 맨유의 뒷공간을 공략하려고 시도했다.

첼시의 특징인 긴 로빙 패스.

그러나 그것이 중간에 막혔다.

포백 앞에서 버텨 주는 음투쿠지의 활약 덕분이다.

지루와의 볼경합에서 승리한 음투쿠지는 그대로 앞으로 전진했다.

"코뿔소 같아."

그걸 본 제퍼슨이 중얼거렸다.

무지막지한 돌파력.

"음. 제프의 흑인 버전을 보는 것 같군."

풀리식의 말에 제퍼슨이 피식 웃었다.

확실히 대단하다.

얼마 후 맨유의 철벽이자 올드 트래포드의 괴물이라고 불릴 선수다웠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했다.

'저기선 패스해야지.'

바로 시야와 판단력.

그는 마치 본인이 야야 투레인 것처럼 전진하지만, 이미 캉테는 길목을 막아섰다. 진작에 양 측면으로 패스했으면 맨유는 좋은 기회를 맞이했을 터.

'역시, 아직은 부족해.'

캉테가 길목을 막아서며 미드필더의 압박이 가해지자, 음투쿠지는 망설이다가 돌파를 시도했다.

그러나 발기술은 아직 능숙하지 못했던 터.

캉테가 영리한 태클로 공을 빼앗고, 곧바로 측면의 윌리안에게 패스.

풀리시치가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수비들의 시선을 끈 사이.

윌리안이 넓은 공간에 서 있었다.

윌리안이 공을 잡자 수비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린다.

"자리 지켜!"

"박스 안쪽에 파고들게 하지 마!"

윌리안은 늘 그렇듯이 돌파를 시도할 터.

선수들은 거리를 유지하며 그가 파고들 틈을 막았다.

그러나 윌리안은 시즌 초반의 윌리안이 아니었다.

뻐엉!

"······!"

압박의 강도가 약해지자, 크로스를 올릴 공간이 생겼다. 윌리안은 중앙으로 파고드는 제퍼슨을 보고 인프론트로 완벽한 크로스를 올렸다.

"제기랄! 막아!"

맨유 수비들의 비명 같은 외침.

그리고,

쿵쿵쿵!

저 멀리서부터 엄청난 속도로 박스로 복귀하는 음투쿠지.

뒤에서 엄습하는 엄청난 위압감에 제퍼슨은 오히려 미소를 머금었다.

'올드 트래포드의 괴물이라.'

훗날 맨유 팬들이 그에게 그런 별명을 붙여준다.

괴물 같은 플레이로 올드 트래포드를 요새처럼 만드는 대단한 선수.

음투쿠지는 높은 공을 보고 눈을 빛냈다.

'저건 막는다!'

제퍼슨은 자신보다 10cm는 더 작다. 그리고 점프력이라면, 한때 NBA를 갈까 생각했던 아프리카의 어린 소년이었던 음투쿠지도 밀리지 않는다.

더구나 자신은 달리면서 도움닫기 후에 뛰어오르지 않는가.

그는 자신 있었다.

저 공은 자신이 따낸다고.

심지어 그 중앙에서 제퍼슨은 다른 수비수와 몸싸움을 벌이면서 뛰어오르지 않는가. 이미 공중볼 경합에서 방해를 받고 있는 선수.

못 막을 이유가 하등 없었다.

'내가, 막는다.'

감독의 지시처럼, 자신이 9번을 막는다.

그리고 힘껏 뛰어오른 순간.

"어?"

음투쿠지는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햇빛을 가리는 거대한 그림자에 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무슨?"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림자가 다름 아닌 제퍼슨의 몸뚱이라는 걸 깨달았을 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왼팔로는 중앙의 맥과이어를 밀치면서 뛰어오른 제퍼슨은, 놀랍게도 음투쿠지보다 더 높이 뛰어올랐다.

그래도 맥과이어와 음투쿠지의 경합은 정확한 임팩트를 주기 힘들었다.

공중볼은 조금의 방해만으로도 방향을 정확히 맞추는 걸 힘들게 하니까.

하지만, 제퍼슨은 그 또한 예측했다.

"풀리식!"

공을 맞혀 정확히 떨어뜨리는 방향.

풀리식의 왼발이 툭 튀어나왔고,

거짓말처럼 공은 그 발을 맞고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Woooooooaaaaaaa!"

"The Blueeeeessss!"

"제------프!"

"풀리식! 풀리식! 풀리식!"

데헤아가 긴 팔을 쭉 뻗어 보지만, 풀리식의 발등은 정확했고, 빠르게 떨어진 공은 이미 골문을 가른 뒤였다.

"미쳤군! 발만 뻗었는데 공이 왔어! 제—프!"

"어때?"

"빌어먹을 자식! 공을 완전하게 통제하는군. 난 마치 네가 짜놓은 판에서 움직이는 체스 말 같았다고."

"그럴 리가. 네가 거기서 파고들어서 가능한 거야."

제퍼슨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제퍼슨은 골을 노렸다.

하지만 중앙에서는 맥과이어가 방해하고, 뒤에서는 음투쿠지가 거칠게 달려드는데, 골을 노렸다간 빗나갈 확률이 높았다. 때문에 좀 더 확실한 득점을 할 수 있던 위치의 풀리식을 봤고, 그의 전진방향에 정확히 공을 떨어뜨려 줬다.

[오, 대단합니다! 풀리시치의 쐐기골이 들어갑니다!]

[그 전에 제퍼슨의 헤더 패스를 주목해야 합니다. 리플레이 영상 보시죠. 맨유의 센터백, 그 대단한 맥과이어를 이겨내고, 심지어 뒤에서 다가오는 음투쿠지의 거대한 피지컬도 버텼습니다.]

[무섭네요. 괴물 같습니다!]

[심지어 두 명과 경합을 벌이는 그 짧은 사이, 공간을 파고드는 풀리시치를 보고 정확히 공을 그 방향으로 떨어뜨려 준 것이죠!]

[이게 말이 되나요?]

[믿기지 않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습니다. 센세이셔널한 플레이입니다. 제퍼슨이 넣은 골은 아니지만, 지금 이 골은, 제퍼슨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해설진들의 격양된 어조가 중계화면을 타고 쏟아지는 사이.

제퍼슨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짓는 음투쿠지를 바라봤다.

"올드 트래포드의 괴물이라."

그러나 그건 앞으로 음투쿠지가 더 발전해서 붙여질 별명.

제퍼슨이 씩 웃었다.

"지금 여기의 괴물은 나라고."

< 71. 올드 트래포드의 괴물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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