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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68화 (68/258)

< 68. 스트라이커 중의 스트라이커 (5) >

내가 만일 회귀 전에 스토크 시티를 만났으면 어땠을까?

'지옥이었겠지.'

숨도 못 쉬었겠지.

이놈들은 공을 잡으면 태클하고 어깨부터 들어오는 축구를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동안 감독도 여러 번 바뀌었고, 코칭스태프도 바뀌었다. 그러면 축구 성향도 바뀌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이번 시즌 승격한 그들은 아직도 챔피언십의 거친 플레이를 유지했다.

퍽!

"윽!"

저-기 풀리시치가 우리 미국의 제프 캐머런(Geoff Cameron)에 날아가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축구가 참 피도 눈물도 없는 스포츠라는 걸 느낀다.

미국 국가대표팀에서 분명히 웃으면서 경기 같이 뛰던 선수인데······.

저게 진정한 프로선수의 모습이라는 걸 다시 한번 상기했다.

"이 개자식들! 엿 같아!"

"빌어먹을. 차라리 맨시티하고 붙는 게 낫겠어."

음.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스토크 시티는 강팀을 잘 잡는 고춧가루 성향이 짙은 팀이다.

특히 스토크 원정 경기는 영국에서 가장 데시벨이 높다는 거친 팬들의 야유를 버텨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팀원들이 쉬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유기도 했고.

그렇지만.

퍽!

"헉!"

나에게 달려오면서 몸통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수비수 에릭 피터스(Erik Pieters)가 헛숨을 들이켰다.

내가 반박자 먼저 그의 가슴에 팔꿈치를 작렬시켰다.

물론 심판은 못 봤다. 몸을 돌리면서 어깨를 들이미는 척, 팔꿈치를 넣는 건 가장 기본적인 파울 아닌가?

VAR을 보지도 않는 페널티 박스 바깥의 반칙.

에릭 피터스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날 노려보지만,

뭐 어쩔 건데.

"축구3은 네놈들만 할 줄 아냐."

이것들이,

누구한테 축구3을 시전해?

***

스토크 시티의 팬들, 포터스들은 묘한 기분이었다.

"저런 애가 작년에 우리 팀에 왔을 뻔했다고?"

"미친."

"내 기억엔 쟤 안 온다고 했을 때 더 좋아했던 거 같은데."

"맞아. 그땐 아무것도 없는, 축구 시작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애송이였으니까."

"지금 그 애송이가 우리를 혼내 주고 있군."

"박살 내고 있지."

"우리뿐이야?"

"득점 랭킹 1위야 지금."

"해리 케인, 제수스, 아구에로 다 밀어내고 말이지."

"5천만 파운드?"

"우리가 쟤를 작년에 데리고 왔으면 챔피언십은 플레이오프가 아니라 완벽하게 우승해서 승격했을 테고, 쟤는 더 비싼 가격에 팔았겠지."

"그러면 우리는 팀 스쿼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제길."

축구에는 만약이란 게 없다.

그러나 포터스들은 필드에서 날뛰고 있는 제퍼슨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수비진을 마구잡이로 헤집고,

거칠고 터프한 스토크의 선수들을 거의 때려눕히다시피 무너뜨리는 저 괴물을 보라.

"빌어먹을!"

"작년에 저 녀석 영입한다고 했을 때 거품 물던 자식들은 다 죽어야 해!"

"아까워. 정말로."

저 선수가 바로 스토크의 선수가 될 수도 있던 것이다.

5천만 파운드짜리를 공짜로 말이다.

한데 포터스들은 그때 그를 영입하지 못한 사실에 오히려 안도했었다.

그런 사실이 지금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반칙입니다!]

[스토크 시티, 여전히 거친 축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첼시의 양쪽 측면이 괴롭네요. 풀리시치와 윌리안이 스토크의 풀백들을 거친 수비를 뚫지 못하고 있습니다.]

첼시는 다이렉트한 플레이가 특징이다.

캉테의 활동량과 커팅 능력.

조르지뉴의 로빙 패스.

그리고 양쪽 측면의 돌파와 컷백 또는 크로스에 이은 제퍼슨의 마무리.

이것이 장점인 팀이다.

그 능력이 토트넘전에서 절정을 보여 줬다.

하지만 스토크 시티는 작정하고 나왔다.

수비라인을 깊게 내려 앉히고, 측면을 공략하는 풀리시치와 윌리안을 철저하게 틀어막았다.

더구나 스토크도 강력한 피지컬로 찍어 누르고, 선 굵은 롱볼 축구를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비슷한 성향.

그리고 스토크가 좀 더 거친 플레이에 거리낌 없다는 점.

전반 30분이 지난 시간대지만, 스토크 시티는 무려 16개의 파울을 범했고, 4명이 경고를 받았다.

그쯤 하면 경기가 소극적으로 변할 법도 하건만,

경고를 받은 선수들은 여전히 거친 플레이를 망설임 없이 사용했다.

"이 자식들은 태클하다가 퇴장당하면 수당이라도 받는 거야?"

그렇게 생각이 들 정도.

그러나 거친 플레이가 계속된다고 해서 완벽한 수비가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풀리식! 윌리안! 무리한 돌파는 하지 마! 적당히 흔들고 중앙으로 공을 보내!"

필마르크 감독이 주문을 거듭했다.

그는 비록 전략가에 가까운 타입은 아니지만, 다른 부분의 장점이 확실한 감독이었다.

바로 스트라이커의 플레이를 극대화하는 데에 도가 텄다.

즉.

스트라이커에게 공이 가게 만드는 방법을 알았다.

스트라이커가 해결을 짓지 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답답한 축구가 되겠지만, 필마르크 감독은 걱정하지 않았다.

'제프가 있잖아?'

필마르크 감독은 제퍼슨의 마무리 능력을 믿고, 그에게 많은 기회가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필드에 지시를 내렸다.

그 결과.

뻐엉!

오른쪽에서 슬그머니 치고 올라오던 아스필리쿠에타가 윌리안과 2대 1 패스 후 얼리 크로스를 올렸다.

[아스필리쿠에타의 멋진 크로스! 제퍼슨이 먼저 자리를 잡습니다! 환상적인 가슴 트래핑으로 공을 멈춥니다!]

[이야, 크로스도 대단하지만 그걸 받아 내는 트래핑도 대단하네요. 반동도 없이 부드럽게 발끝에 떨어지는군요.]

크게 휘어지는 궤적.

제퍼슨이 가볍게 가슴으로 트래핑한 후, 발바닥으로 공을 긁었다.

왼쪽에서 살벌한 기세로 다가오는 에릭 피터스의 거친 차징을 가볍게 흘려보내면서.

퍽!

"윽!"

심판이 못 보는 사이 은근슬쩍 옆구리를 쿡 찌른다.

[제-퍼슨! 에릭 피터스와의 몸싸움에서 승리합니다!]

[에릭 피터스, 바닥에 나뒹굽니다만, 심판 그대로 진행합니다. 지금까지 스토크의 거친 몸싸움에 피해를 봤던 건 첼시였지만, 이번만큼은 심판이 첼시의 손을 들어줍니다!]

[하하! 정말 제퍼슨은 괴물이네요. 제가 본 선수 중에 이만큼 몸싸움을 잘하는 선수를 본 적이 없습니다!]

[거친 스토크의 수비들도 제퍼슨을 만나면 고통스러워하는군요!]

피터스가 짧은 숨을 들이켜며 흔들리자, 그 틈에 공간이 벌어졌다.

"제-프!"

공간이 있다?

그러면 제퍼슨은 누구보다 파괴력 있는 스트라이커로 둔갑한다.

"Wuuuuuuuuaaaa!"

툭.

가볍게 공을 차는 움직임.

그러나 상체는 전혀 가볍지 않고 살벌했다.

왼쪽에서 달려드는 미드필더 하나를 거칠게 밀어냈다.

그 모습은 흡사 탱크나 다름없었다.

달려드는 보병들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모습.

제퍼슨의 단단한 몸뚱이에 여지없이 튕겨 나가는 스토크의 선수들. 그 장면에 스토크의 관중들이 경악했다.

"죽여!"

"목을 꺾어 버려!"

스토크 시티의 포터스(The Potters)들은 흡사 UFC에서나 연호할 살벌한 말을 쏟아 냈다.

그러나 그런 거친 분위기 속에서도 제퍼슨은 공간을 질주했다.

[제퍼슨! 달립니다! 제퍼슨 무아지경으로 달립니다!]

[아! 캐머런, 거친 슬라이딩 태클! 제퍼슨이 가볍게 점프하며 공을 피하네요!]

[대단합니다! 제퍼슨!]

미국 대표팀의 동료기도 한 캐머런이 발을 들어 올리는 거친 태클을 시도.

제퍼슨은 가볍게 몸을 띄우며 태클을 피하고,

중앙에서 덮쳐 오는 라이언 쇼크로스와 부딪쳤다.

퍽!

"미친!"

"쇼크로스가 넘어졌어!"

"헤이! 반칙이잖아!"

포터스들은 일순 당황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단단함을 넘어 거의 '거인' 취급을 받던 쇼크로스가 부딪치자마자 뒤로 넘어졌다.

하지만 심판은 손을 쭉 뻗으며 어드밴티지를 선언했다.

"우우우우우우-!"

[제-퍼슨! 달립니다! 수비진을 허물고 거침없이 달립니다!]

제퍼슨은 망설임 없이 골문을 향해 공을 차고 들어갔다.

슛을 때리려다가 한 번 접고,

현란한 스텝 오버를 펼치면서 무아지경으로 페널티 박스 안으로 파고든 제퍼슨은, 흘깃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풀리시치를 바라본 뒤에 패스를 보냈다.

툭!

"······!"

한데 패스는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향했다.

[세상에, 아름다운 패스입니다!]

모든 시선이 왼쪽과 제퍼슨에게 쏠린 순간.

오른쪽의 윌리안이 튀어나와 공을 잡았다.

"노룩(No-Look)패스?"

[제퍼슨! 노룩패스입니다. 대단하네요. 순간적인 센스가 빛났습니다! 스토크의 수비들이 모두 속았어요!]

[윌리안이 공을 잡습니다!]

[스토크 수비들이 역동작에 걸렸습니다. 윌리안, 제퍼슨의 재치 있는 플레이에 화답합니다!]

골문 앞, 다급한 혼전 상황에서 저런 여유라니?

스토크의 수비들과 팬들 포터스가 입을 쩍 벌리는 순간.

윌리안이 몇 번 접으면서 돌파하다가, 골대 바로 앞으로 낮고 빠른 땅볼 크로스.

"······!"

"막-아!"

혼란스런 골문 앞.

수많은 수비가 뒤엉키며 낮게 찔러 오는 크로스를 향해 몸을 날린다.

그러나 그 중에 가장 빠르고, 먼저 움직였던 건 제퍼슨이었다.

양쪽 어깨에서 치고 들어오는 수비들을 크게 떨쳐 내면서, 앞으로 미끄러지듯이 깔려 들어오는 공을 그대로 발끝으로 밀어 넣었다.

툭!

[들어갑니다! 제-퍼슨! 제퍼슨이 골을 터뜨립니다.]

[제퍼슨의 선제골이 터집니다!]

[제퍼슨은 정말 대단하네요. 스토크의 거친 수비도 그를 막지 못하네요.]

[정말 첼시 경기를 중계할 때마다 감탄이 드네요. 스트라이커의 전형입니다. 스트라이커 중의 스트라이커입니다.]

[그런 스트라이커를 5천만 파운드에 사 온다고 했을 때, 많은 비난이 있었죠.]

[하하하! 그때 비난을 했던 수많은 전문가는 모두 이불 안으로 숨고 싶은 기분일 거예요!]

[19살의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될 만한 자질, 그리고 이미 EPL을 폭격하고 있는 미국인 스타가 고작 5천만 파운드라뇨?]

"Yeeeeeaaaa!"

"제-프! 제-프! 제-프!"

제퍼슨은 스토크 시티 팬들을 향해 주먹을 쥐면서 가볍게 원투 잽을 날리는 세레모니를 선보였다.

그리고 팔을 양쪽으로 벌리면서 어깨를 으쓱이는 제스처.

그 모습에 포터스들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쟤 지금 도발하는 거지?"

"응."

"Fuck!"

마치 여기가 격투경기장이라고 묻는 듯한, 도발적인 제퍼슨의 세레모니는 당연히 중계 화면을 타고 그대로 방송됐다.

[우하하하! 제퍼슨. 재미있는 세레모닙니다.]

[스토크 시티의 팀 컬러가 때로는 도가 지나칠 때가 있죠. 단순히 거친 남자의 축구라고 웃으며 넘길 수 없도록, 스토크 시티의 팀 컬러를 현장에서 도발하는 제퍼슨의 멋진 세레모니입니다!]

[EPL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지닌 포터스 앞에서 저런 세레모니를 하는 선수가 누가 있을까요.]

[엄청난 배짱입니다. 멋지네요.]

[제퍼슨 리! 오늘 리그 14호 골을 터뜨립니다!]

***

"우우우우우우-!"

살벌하다, 살벌해.

스토크의 팬들은 내가 공만 잡으면 야유를 쏟아 낸다.

저번에 듣기로는 여기 경기장의 데시벨이 EPL에서 가장 높다던가?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만큼이나 팬들의 반응도 살벌하기 짝이 없다.

"너 끝나고 집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윌리안이 툭 이런 농담을 던질 정도.

난 사실 이런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거친 플레이도 축구 일부다.

EPL에서 살아남은 스토크 시티 특유의 팀 컬러지만 개인적인 호불호가 갈릴 수야 있지 않은가.

그래서 박살 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 내 몸은 피지컬 괴물이니까.

퍽!

중앙의 미드필더 하나를 몸으로 날려 보내고, 다시 전진 드리블을 펼치자 야유가 쏟아진다.

"우우우우우-!"

망설임 없이 공을 윌리안에게 패스.

"윌리안! 얘들 신경 좀 긁어!"

"뭐?"

"너 잘하는 거 하라고!"

그 말에 윌리안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다가, 수비수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쏙 빼냈다.

"개자식!"

오, 살벌해.

수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후로도 윌리안은 화려한 개인기를 마음껏 뽐냈다.

스텝 오버는 기본이고, 그 자리에서 공을 발등으로 여러 번 트래핑하다가 머리 위로 넘기는 거 하며.

절정은 사포 플레이였다.

에릭 피터스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골 넣을 생각은 안 하고 대놓고 개인기만 펼치니까, 수비로서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퍽!

"억!"

삐빅!

에릭 피터스가 윌리안의 가슴을 크게 쳐 버리고, 그가 넘어지고, 피터스가 퇴장당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윌리안은 가슴을 맞아 순간적으로 숨이 막힌 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쓰러져 있었다.

"괜찮아?"

"으음. 음. 죽을 거 같지는 않아."

"잘했어. 너의 희생으로 상대팀은 한명이 사라졌어."

"······이걸 노린 거야?"

"알면서 왜 그래?"

내가 천연덕스럽게 웃자 윌리안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렀다.

뭐.

그러니까 경고받는 거 감수하면서 반칙을 하던 스토크 잘못이지.

결국, 에릭 피터스는 경고 누적으로 필드를 떠났다.

11대 10의 플레이.

이후로 윌리안의 드리블 돌파 후 골과 캉테의 중거리 슛이 터지면서 3대 0의 승리를 거뒀다.

모든 강팀이 껄끄럽게 여기는 스토크 원정에서의 3대 0 승리.

우리의 기세를 잃지 않고 전진하는 순간이었다.

***

-스토크 시티의 거친 플레이에 고전할 거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었는데, 첼시는 대승을 거뒀다. 승리의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스토크는 생각보다 거칠지 않았다."

-스토크가 범한 파울이 많다.

"파울 플레이하고 거친 플레이는 다르다. 전혀 터프하지 않은 축구였다. 나에게 부딪쳐 넘어진 선수가 몇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중학생들과 축구하는 기분이었다."

***

[스토크 시티가 터프하다고? 제프 앞에서 그런 말은 해? #제퍼슨 리 #터프가이 #첼시 VS 스토크]

[스토크 수비들이 제퍼슨만 만나면 겁에 질린 강아지처럼 끙끙대던걸? #제퍼슨 리]

[솔직히 제퍼슨은 격투기 해도 탑이었을 듯. #UFC #제퍼슨 리 #첼시]

[세레모니 멋졌다고!]

[제퍼슨을 몸을 던져서 막는다고? 몸이 두 개가 아니면 추천하지 않는데.]

[차라리 트럭에 몸을 던지는 게 나을지도 몰라.]

< 68. 스트라이커 중의 스트라이커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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