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66화 (66/258)

< 66. 스트라이커 중의 스트라이커 (3) >

"제기랄."

다비손 산체스(Davinson Sánchez)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자리 지켜! 지키라고!"

뒤에서 골키퍼 요리스가 미친 듯이 소리쳤다.

산체스는 그 외침을 들으면서도 몸이 움찔거리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또 온다!"

중앙에서 들소처럼 우직하게 돌파해 오는 상대팀의 9번.

산체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도 피지컬 싸움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럽다.

더구나 상대는 고작 10대의 애송이가 아닌가.

10대에 활약하는 선수 중 대부분은 번뜩이는 재능만으로 활약할 수 있었지, 피지컬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일반적인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몬스터!"

산체스는 이를 으득 씹으며 중얼거렸다.

몇 번이나 부딪쳤던가.

퍽!

"읍!"

숨이 턱 막혔다.

단단함이 피부를 뚫고 뼈끝까지 전해질 정도다.

그는 경악 어린 눈빛으로 경합을 벌이는 9번을 바라봤다.

'대체······!'

산체스는 입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몸으로 부딪치는 피지컬도 문제지만,

그 순간에서도 제퍼슨의 발밑은 현란했다.

몸으로 밀치는 동시에 화려한 발재간.

순식간에 틈으로 빠져나가는 날카로운 패스.

이것이 제퍼슨이 무서운 점이었다.

피지컬로도 리그 탑급이라 할 수 있는 산체스를 박살 낼뿐더러, 공간을 보고 찔러주는 패스는 그야말로 축구 도사 같은 느낌을 물씬 풍겼다.

그리고 패스가 닿는 방향.

"윌리안!"

첼시 홈팬들이 연호했다.

경기 초반만 해도 쏟아졌던 윌리안에 대한 야유는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졌다.

윌리안은 한 차례 공을 접었다.

그리고 현란한 발재간으로 공간을 휘젓고, 다시 중앙으로 컷백.

"제기랄!"

"또 9번이야! 저 자식 막아!"

골키퍼 요리스가 수비진에게 소리치고,

산체스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파트너 베르통언도 같이 움직였다.

'산체스 혼자서는 무리야.'

팀의 주장인 얀 베트통언(Jan Vertonghen)은 베테랑이다.

산체스가 대단한 수비수긴 하지만, 경험적으로 미숙한 면모를 보인다.

저 괴물 같은 제퍼슨을 혼자 막는 건 불가능이다.

베르통언과 산체스.

두 명이 힘껏 저돌적으로 부딪치며 제퍼슨과 함께 뒤엉켰다.

산체스가 어깨를 들이밀고, 베르통언이 동시에 발을 쭉 뻗는 협력 수비.

격렬한 부딪침이 이어졌으나 제퍼슨은 그 사이에서 꼿꼿하게 중심을 잡았다.

[오, 제퍼슨! 믿기지 않네요. 대체 제가 뭘 보고 있는 거죠?]

[괴물 같습니다! 아니, 탱크 같아요! 마치 최전성기의 야야 투레를 보는 것 같네요. 토트넘의 수비들을 모조리 이겨냅니다!]

[럭비, 아니죠. 미식축구 출신의 제퍼슨의 신체는 괴물 그 자체입니다! 대단합니다!]

제퍼슨은 굳건했다.

몸으로 부딪쳐도 도저히 답이 없는 걸 깨달은 베르통언이 노련하게 공만 어떻게든 빼내려고 했지만.

제퍼슨은 10대의 나이라고 볼 수 없게 현명했고 능숙했으며 노련했다.

아슬아슬하게 공을 지키고, 왼팔로 산체스를 떨쳐 낸다. 그리고 현란한 발재간으로 베르통언의 태클을 피하면서 순식간에 압박을 벗겨냈다.

"······!"

순간 공간이 열렸다.

"오, 세상에!"

"미친!"

산체스와 베르통언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뻥 뚫린 공간.

그 앞에는 오로지 골키퍼 요리스 한 명만이 존재했다.

그 순간 베르통언은 느꼈다.

'요리스가 막아야 해!'

설마 이렇게 간단하게 수비에 실패할 줄은 몰랐다.

토트넘의 수비 두 명을 이겨 낸 제퍼슨은, 망설임 없이 골문 구석을 향해 정확히 슛을 때렸다.

뻐-엉!

요리스는 반사 신경만큼은 대단한 선수다.

그는 제퍼슨이 수비들을 이겨 내는 순간부터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퍼슨이 슈팅을 때리는 순간.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골의 궤적이든 뭐든, 본능적으로 몸이 이끄는 대로 저절로 움직였다.

'왼쪽 위 구석!'

마치 하얀색 빛줄기가 쭉 이어지는 것처럼.

그의 시야에는 공의 궤적이 보였다.

요리스의 입가에 새하얀 미소가 떠올랐다.

'이건 막았다!'

골키퍼의 감이 있다.

이건 막았다.

대단한 슈팅이긴 하지만, 그의 동체시력에 분명히 잡혔다. 궤적을 읽은 이상, 그의 순발력과 반사 신경으로 공을 막는 건 일도 아니다.

타앗!

슈팅이 향하는 방향으로 손을 쭉 뻗으며 뛰어오른 요리스.

그 순간에 요리스는 불현듯 뒷골이 서늘해졌다.

'공이······ 휘어진다?'

왼쪽 위로 빨려 들어오던 슈팅이, 요리스의 손끝에 닿는 순간 더 바깥쪽으로 미묘하게 휘었다.

"······A Putain(썅!)"

요리스는 눈을 감았다.

손끝을 스치며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는, 첼시의 세 번째 골.

제퍼슨이 만들어 낸 엄청난 골이었다.

"Goooooal!"

[제퍼슨! 쐐기골을 터뜨립니다!]

[세상에 엄청난 슈팅입니다. 공에 임팩트 되는 순간 엄청난 회전이 들어갔네요. 마지막 순간에 마치 UFO가 날아가는 것처럼 크게 휘어 들어갑니다!]

[요리스, 허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립니다!]

제퍼슨은 팬들을 향해 달려가며 가슴팍의 엠블럼을 찢어지라 움켜쥐며 포효했다.

"제기랄! 오, 내가 본 스트라이커 중에 최고라고!"

"우리 첼시에 진짜 스트라이커라니."

"스트라이커 중의 스트라이커지."

"이거구나! 토트넘 자식. 해리케인 하나 믿고 뻐겨 대더니. 우리 LEE를 보라고! 이게 스트라이커야!"

***

3대 1의 스코어.

갑자기 경기가 잘 풀린다.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잘하면서 지금까지 왜 그랬대?"

내 시선이 향하는 곳엔 윌리안이 있었다.

'패스할 줄 아는' 윌리안은 진짜로 무서웠다.

그가 지금까지 부진했던 이유는 마지막 슈팅 실패가 조급함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

수비진을 현란한 개인기로 휘젓는 그의 크랙 같은 움직임에 모든 수비가 집중하기 마련이다.

슈팅각이 열려도 결국 막히기 마련이고, 어찌 뚫어 낸다 해도 힘이 너무 들어가 정확도가 빗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윌리안은 이타적인 플레이에 집중했고, 그중 수비진을 휘저으며 틈 사이로 찔러 넣는 패스는 환상적이었다.

"어그로 대단하네."

윌리안이 마음먹고 발재간을 펼치면, 적어도 수비 두 명이 달라붙어야 한다.

한 명 정도는 능숙하게 제치니까.

덕택에 나는 한결 자유로워졌다.

윌리안이 측면을 부수면서 어그로를 끌어 주고,

자유로워진 나에게 패스.

나는 슈팅각도가 열리면 망설임 없이 때렸고, 여의치 않으면 침투하는 풀리시치에게 찔러줬다.

"풀리식!"

풀리시치를 상대하는 토트넘의 라이트백은 라이언 세세뇽이었다. 좋은 풀백이었지만, 풀리시치를 상대하기에는 노련함이 부족했다.

그래도 내가 나타나기 전까진 미국 대표팀의 최고 스타가 아니었던가.

툭, 툭.

내가 찔러준 패스를 발 안쪽으로 받고, 한 번 접으면서 세세뇽을 무너뜨린 뒤에.

요리스의 손을 넘기는 인사이드 슈팅.

파포스트를 노리고 감아 들어가는 완벽한 골이었다.

"The Blues!!"

"오, 오늘 완벽한데?"

"패스 좋았어. 제—프!"

분위기가 좋았다.

3경기 무승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우리 팀은 화력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벌써 4대 1이다.

이쯤 되면 상대 수비는 멘탈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프로라고해도 세 골 차는 크니까. 심지어 비슷한 수준이라고 여겼던 팀한테 말이다.

음.

이 정도면 이긴 것 같은데.

내 마음대로 욕심 좀 내도 되려나?

"해트트릭한 지 좀 오래된 것 같은데······."

***

경기를 지켜보는 첼시팬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와, 미쳤다."

"LEE가 이렇게 잘했다고?"

"아니, 잘하는 건 알았는데. 오늘 너무한데?"

"스퍼스 애들 울겠다."

팀의 확실한 에이스이자 주포.

이 정도의 활약이라면 다른 빅클럽에서 탐내는 건 자명한 일.

첼시가 돈 싸움에서 밀리지는 않는다지만, 유럽에는 선수가 혹할 만한 빅클럽이 어디 한둘이던가.

첼시팬들은 아자르를 떠올렸다.

"이러다가 LEE도 아자르처럼 떠나는 건 아니겠지?"

"제기랄. 당장 재계약을 해야 해."

"이적한 지 한 달 지났는데 벌써?"

"지금 활약을 보라고! 혼자서 스퍼스를 박살 내고 있단 말이야!"

적당한 활약도 아닌, 너무 대단한 활약에 첼시 팬들은 오히려 LEE가 조금만이라도 부진하기를 빌어야 하는 웃픈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런 팬들의 바람이 무색하게.

제퍼슨은 필드에서 날뛰었다.

툭! 탁!

"집중해! 집중!"

"아직 경기 안 끝났어!"

"저 녀석만 제대로 막으면 돼!"

제퍼슨의 활약에 토트넘 수비진이 거칠게 반응했다.

마치 팔색조 같았다.

조금 전까지 묵직한 돌파로 수비진을 헤집더니, 이번에는 간결한 원투패스로 풀리시치와 윌리안과 위협적인 팀플레이를 선보였다.

'마치 패스의 중심인 거 같군. 미드필더도 아니면서.'

신기했다.

그리고 경악스러웠다.

베르통언은 이 상황에 이가 절로 갈렸다.

중앙에서 몸으로 수비들을 버텨 내면서, 간결하게 원터치 패스를 양 사이드로 뿌리는 장면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중간에 패스를 끊고 싶었지만,

제퍼슨은 흔들리지 않았다. 가벼운 원터치 패스. 빠른 판단과 반박자 빠른 패스에 수비진이 속수무책이었다.

발에 닿자마자 이뤄지는 원터치 패스는 달려드는 수비가 닿기도 전에 완벽하게 빠져나갔다.

그러자니 새롭게 생긴 공간에 윌리안과 풀리시치가 위협적으로 날뛰었다.

그러다 보니 수비진이 이러지리 흔들렸다.

'스퍼스의 수비진이 고작 한 명한테?'

그랬다.

한 명의 플레이 때문에 수비진이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그 한 명이, 라이벌 팀의 어린 스트라이커란 사실에 머리가 아파졌다.

눈앞이 깜깜한 기분이었다.

완벽한 피지컬에 정교한 테크닉.

이 두 가지를 갖춘 선수가 10대라니.

우스운 일 아닌가.

세계적인 재능이어도 10대에 피지컬까지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거늘······.

"괴물이 나타났군."

베르통언은 허탈하게 웃었다.

***

"윌리안!"

이번에도 윌리안이었다.

오른쪽 측면을 말 그대로 찢어 버린 윌리안은 무리한 돌파를 시도하지 않고 패스를 줬다.

발바닥에 착 감기는 적당한 세기의 좋은 패스.

그의 패스가 도달하자마자

수비형 미드필더, 빅토르 완야마(Victor Wanyama)가 거칠게 달려들었다.

사실 190이 넘는 장신이 최고속도로 달려오면 부담감이 크다.

압박감도 상상초월이고.

심지어 발까지 잘 쓰면 허둥지둥하다가 공을 뺏기거나 뒤로 백패스하기 일쑤다.

그래서 축구에서 탈압박 능력이 중요한 법이다.

내가 회귀 전에 종이 인형이란 피지컬로도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탈압박이었다.

발바닥으로 공을 긁고,

가볍게 등지면서 완야마를 밀쳐 낸 뒤에,

그 가랑이 사이로 공을 빼낸다.

그러나 그 순간에 전진했던 시소코와 센터백 산체스까지.

두 명이 연이어 달려온다.

압박 속도가 빠르고 정확하다.

토트넘은 더는 굴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듯이, 작정하고 날 에워쌌다.

"제-프! 여기!"

등 뒤에서 캉테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도 내가 이 압박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사실 그럴만하다.

날 둘러싸는 선수가 실력이 부족한 2부리그 선수도 아니지 않나.

무사 시소코, 빅토르 완야마, 다비손 산체스.

하나 같이 토트넘의 주축인 선수들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일수록 묘한 흥분에 휩싸인다.

'어차피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는데, 욕심 좀 내도 되잖아?'

난 스트라이커잖아.

그런 생각이 들자 몸이 가벼워졌다. 온몸의 감각이 극한까지 예민해지며 발끝의 모든 감각이 뇌리에 전해진다.

좋다.

컨디션 최고다.

툭!

왼쪽의 시소코를 팔로 막고,

앞에서 발을 쭉 뻗으며 공을 빼내려는 산체스를 노려본 뒤에.

다음 행동을 개시했다.

툭, 툭!

공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상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크게 반동을 주면서.

산체스의 태클을 피하고,

시소코의 압박을 벗겨 내면서, 뒤늦게 달려온 완야마의 머리 위로 공을 넘겼다.

"Woooooooaaaaa!"

"미친!"

"오, 제----프!"

때로는 마음에 부담감이 없으면, 최상의 플레이가 나오기도 한다.

급박한 상황에서 여유로운 개인기.

내가 이리 침착했나 싶을 정도.

단숨에 수비 셋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 뒤에 나는 거리낌 없이 전진했다.

이게 탈압박의 중요성이다.

세 명의 거친 압박은 공을 뺏기거나 막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압박을 뚫어낸다면?

"뛰-어!"

"달려! 죽여 버려!"

완벽한 공간이 펼쳐진다.

드리블할 공간, 슈팅 때릴 각도, 그 모든 게 열린다.

그 공간을 향해 뛰었다.

허벅지에서 불같은 폭발력이 튀어나오면서.

타탓!

"The Bluuuuuuess!"

"제----프!"

"제프! 제프! 제프!"

열광적인 열기가 쏟아졌다.

가벼운 원터치 패스, 무지막지한 돌파, 수비를 벗겨 내는 완벽한 탈압박.

그야말로 오늘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다 보여 줬다.

자, 스트라이커로서 선보일 마지막 플레이가 남았지.

그리고 정점을 찍었다.

철렁!

"제----퍼슨!"

"오, Fucking lovely goal!"

"빌어먹을! 해트트릭이야!"

"대단한 자식!"

인프론트에 정확히 감긴 슈팅은 요리스가 분명히 방향을 읽었다.

문제는 공의 속도.

정확하고 강력한 임팩트로 때린 공은 빨랫줄처럼 빨려 들어갔다.

요리스가 허망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스트라이커는 골키퍼하고 친할 수 없으니까.

"해트트릭!"

"제-프! 너무한 거 아니야?"

동료들이 다가와 소리치고,

나는 천천히 관중석을 향해 달려가 양팔을 벌렸다.

좀 지친 감도 있어서 멋진 세레모니는 기억 안 나네.

그런데 그때.

왼쪽과 오른쪽에서 풀리시치와 윌리안이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뭐야?"

"오늘 주인공이니까."

내 양쪽 다리를 잡고 들어 올리자.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열광의 도가니로 변해버리는 스탬포드 브릿지.

그리고 그 순간에.

토론토의 BMO필드에서 울려 퍼졌던 응원가가 비슷하게 펼쳐졌다.

"런던의 왕이시다!"

"Oh my LEE!"

"런던의 주인!"

"Oh my Jeeff!"

미국의 왕이, 한때 식민지의 본국이었던 영국의 중심에서 대관식을 치르는 순간이었다.

< 66. 스트라이커 중의 스트라이커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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