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63화 (63/258)

< 63. Real Blues (5) >

[제퍼슨 리의 놀라운 헤더골! 동점을 만듭니다!]

[오, 맙소사. 대단합니다. 지금 대체 몇 골째죠? 무려 5경기입니다. 5경기 연속골! 제퍼슨-리! 도대체 누가 이 선수를 18살이라고 볼까요?]

[1년 후에는 5천만 파운드가 아주 저렴했단 소리가 나올 거라는 필마르크 감독의 예언이 벌써 실현되고 있습니다!]

[5경기 8골이면 5천만 파운드가 싼 거 맞죠.]

[하하하! 그렇죠! 그 다섯 팀에 아스날하고 맨시티, 웨스트햄이 있으니까요!]

[미국에서 온 원-더보이, 신대륙에서 구대륙의 중심에 온 캡틴 아메리카가 깃발을 꽂습니다!]

[하하하하하! 재밌는 말이네요.]

[아, 물론 농담입니다.]

***

내 동점골은 확실히 충격적이었나 보다.

과르디올라가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뛰쳐 나와 소리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교체 신호.

어디 보자.

나하고 부딪쳐서 몸이 다소 불편해진 스톤스가 나가고, 수비형 미드필더 로드리(Rodrigo)가 들어오네.

라힘 스털링이 나가고 가브리에우 제수스(Gabriel Jesus)가.

마지막 교체 카드까지 썼다.

레프트백 진첸코가 나가고 벤자민 멘디(Benjamin Mendy)가 들어왔다.

음.

무슨 교체 투입되는 선수들의 이름값이 하나같이 살벌하냐.

어쨌거나 교체 카드의 의미는 명백했다.

'골을 넣겠다 이거지.'

아스필리쿠에타의 싸움에서 점차 막히는 스털링을 대신한 제수스의 투입.

레프트백 진첸코 대신 멘디의 투입.

멘디는 이게 수비수인가 싶을 정도로 공격력이 특출나다. 무시무시한 드리블 돌파에 단단한 피지컬, 다리도 길쭉하고 스피드도 장난이 아니다.

낮고 빠른 크로스 실력도 상당히 좋다.

윙어와의 2대 1플레이를 잘 풀어내면 최적의 공격 옵션이다.

지친 아스필리쿠에타를 공략하려는 제수스와 멘디의 교체 투입.

그리고 로드리는 저번 시즌 AT마드리드에서 맨시티로 이적한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페르난지뉴의 완벽한 대체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실력도 그렇고.

그러면······.

"이거 골치 아프네."

스톤스는 내가 그나마 상대하기 편했다.

몸 상태도 안 좋아 보였으니까.

하지만 베테랑인 페르난지뉴가 센터백으로, 로드리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페르난지뉴와 라포르테의 두 센터백.

로드리라는 걸출한 수비형 미드필더.

이 삼각 편대에 나는 갇힌 셈이다.

아.

빡빡이 진짜.

***

과르디올라의 교체 카드는 효과적이었다.

비교적 스털링을 잘 막아 내던 아스필리쿠에타가 흔들렸다.

[벤자민 멘디! 무시무시한 직선 돌파입니다! 황소처럼 우직하게 밀고 들어가네요!]

[중앙으로 들어가는 제수스와 2대 1 패스 플레이! 아스필리쿠에타가 벗겨집니다!]

"City! We are City!"

제수스와 멘디의 2대 1 패스 플레이.

아스필리쿠에타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뒤늦게 주마가 협력 수비를 위해 뛰쳐나오지만,

그게 문제였다.

체력이 쌩쌩한 제수스는 날카로운 움직임으로 주마의 빈공간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낮게 들어오는 멘디의 크로스.

탁!

"제기랄!"

아스필리쿠에타의 얼굴이 구겨졌다.

급히 발을 뻗지만 아슬아슬하게 스쳐 가는 빠른 크로스.

그리고 공간을 파고든 제수스의 발끝에 볼이 도착했다.

"City! Oh City!"

관중석의 맨시티 팬들이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 질렀다.

제수스는 거칠게 부딪쳐 오는 뤼디거를 상체 페인트로 한 번 무너뜨린 다음, 골문을 바라봤다.

골키퍼 케파가 적당히 거리를 좁혀오며 멈춰섰다.

애매한 거리.

슈팅을 차기엔 긴 팔에 걸릴 것 같고, 그렇다고 패스하자니 발끝에 걸릴 것 같은 위치 선정.

그러나 맨시티에는 제수스만 있는 게 아니다.

"아구에로!"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박스에 파고든 아구에로.

그리고 그에게 제수스의 패스가 도착한다.

레프트백 팔미에리가 급히 어깨를 들이밀지만, 아구에로는 베테랑이었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먼저 어깨를 넣고 버텼다. 그리고 발끝에 닿자마자 그대로 골문을 향해 때렸다.

뻐엉!

"아!"

케파가 급히 몸을 날리지만,

역동작에 제대로 걸린 상황.

아구에로의 슈팅이 골문을 갈랐다.

"Ohhhhh, City!"

"아구에로! 아구에로!"

"제-수스!"

후반 69분 2대 1이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 Fuck!"

"제기랄!"

"하. 졌어. 어쩔 수 없어."

후반 76분.

아구에로가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를 보여 주더니, 쐐기골을 꽂아 넣었다.

맨시티팬들이 벌떡 일어나 환호하는 가운데, 원정 섹터의 팬들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3대 1의 스코어.

시간대나, 경기 분위기나.

모든 게 암울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필마르크 감독은 교체 카드로 경기의 흐름을 바꾸려고 했다.

메이슨 마운트가 나가고 올리비에 지루가 들어왔다.

조르지뉴 대신 다니엘 드링크워터가.

4-4-2의 포메이션이지만, 풀리시치와 오도이는 조금 더 위로 올라간, 4-2-4에 가까운 형태였다.

한마디로 공격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문제는 과르디올라의 역량이 필마르크보다 대단하다는 것이다.

필마르크도 코펜하겐을 이끌고 유로파 준우승을 차지할 만큼 능력을 갖춘 인물이지만, 이미 수많은 빅클럽에서 빅이어와 각종 트로피를 따낸 과르디올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괴물 같은 감독이었다.

그의 전술 변화는 샅샅이 읽혔다. 과르디올라는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선수 개인에게 지시를 내리며 빠르게 대응을 유도했다.

"제기랄."

필마르크 감독은 입술을 깨물었다.

필드의 흐름이란 게 있다.

감독은 그 흐름을 관조하고, 경우에 맞게 흔들어서 원하는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예상했다는 듯이 완벽한 모범 답안이 나오는군."

세계적인 감독과 세계적인 선수들의 조합.

감독의 지시를 선수들이 완벽하게 이행하자 첼시의 공격력은 힘을 살리지 못했다.

"대단한 감독이야."

저 세계적인 선수들이.

감독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움직이는 플레이라니.

필마르크는 혀를 내둘렀다.

벤치의 필마르크 감독조차 패배를 예감하고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사이.

어느새 시간은 후반전 86분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때로는.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관여할 수도 없는 당연한 흐름을, 선수 한 명이 거스르는 경우가 있다.

수많은 월드컵, 챔피언스리그 등.

여러 경기에서 언제나 영웅은 나타났으며, '극장 경기'라는 단어는 존재했다.

그러니까 지금,

경기장을 가득 메운 55,000명의 시선이 선수 한 명에게 일제히 집중된 상황. 반전은 이때 일어난다.

"달려! 달리라고!"

제퍼슨 리.

그가 센터 서클까지 내려와 공을 잡았다.

그 순간에 양 팀의 팬들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음!"

맨시티팬들은 두 점 차로 앞서나가는 상황에서도 불안함을,

"LEE다! LEE! 한번 보여주라고!"

두 점 차로 뒤지고 있는 첼시팬들은 기대감을.

***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답답하면 네가 뛰던가.

음.

이 상황에서 어울릴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꼭 틀린 말은 아니다.

맨시티가 전방 압박을 멈추지 않고 라인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리며 공격을 거듭하자, 우리는 전진하지 못하고 저절로 내려앉았다.

그런 상황에서 최전방에 공이 올 수는 없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 답답한 흐름.

내가 뛰겠다고.

그게 이유였다.

퍽!

중원에서 공을 잡고 여유를 부리는 다비드 실바를 몸으로 밀쳐 버리고, 심판을 바라봤다.

"······!"

눈을 번뜩이는 심판. 다행히 휘슬을 불지 않는다.

나도 부딪쳐 놓고 아차 싶을 정도로 파울성이 짙었는데,

오늘은 운까지 따르는 날인가 보다.

"Ruuuuunnnnn!"

"Leeeeeee!"

공을 잡자 원정석의 팬들이 목에 핏대를 세운다.

자, 침착하게.

그리고 빠르게.

타탓!

후반 86분.

의외로 나에게 체력이 남아있었다.

수비 삼각 편대에 묶여 있을 때, 일부러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고 체력을 비축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막아!"

페르난지뉴의 완벽한 대체자, 로드리가 빠르게 거리를 좁혀온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와 순식간에 치고 나갈 길목과 공간을 점유한다.

드리블칠 공간과 패스 길목을 막아서느 대단한 위치선정.

그를 보면 공격수가 멈칫하며 속도를 줄이기 마련이다. 그걸 생각해서 로드리도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미 터져 나오기 시작한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빠르게 스텝을 밟아갔다.

"······!"

로드리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빠르게 부딪쳐 오며, 발을 갖다 댄다.

역시, 대단해. 이 정도 개인기는 막는다 이거지?

그런데 아직 한 발 남았다 이거야.

휘릭!

오른쪽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면서 거칠게 돌았다. 관성을 무시하는 듯한 격렬한 터닝 동작.

"미친!"

로드리의 발끝이 허공을 가르고, 무게 중심을 잃은 채 그대로 넘어진다.

고스트 스텝과 제퍼슨 턴을 단 한 번만 보고 막기란 어렵다. 하지만 로드리는 제 몫을 충분히 했다. 어느새 페르난지뉴와 라포르테가 자리 잡았다. 그것만으로도 역할을 다했다.

"안 뚫린다!"

페르난지뉴의 외침이 귀에 꽂히고, 나는 거침없이 그의 앞을 향해 공을 치고 달렸다.

그리고 그가 순식간에 2m 거리에 도달하는 순간.

투욱!

거짓말처럼 속도를 줄이고 뒤로 백스텝을 밟으면서 발바닥으로 공을 잡아끌었다.

"미친!"

"Fuuuck!"

저들로선 황당할 거다.

최고점을 찍은 가속도로 전속력으로 달려오다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고 관성을 모두 무시한 채 뒤로 백스텝을 밟다니.

수비하던 페르난지뉴의 중심이 무너졌다.

툭!

무너진 사이로 공을 한 번 더 차고 빠져나갔다.

"Gooooo-!"

"Blues! Blues!"

러닝백의 기술 중엔 덮쳐 오는 디펜스맨들을 피하려고 순간적으로 뒤로 백스텝을 밟는 기술이 있다.

혹자가 보면 경악할 수밖에 없다.

모든 가속력을 무시하고 뒤로 순간적으로 빠지는 모습은.

정말 관성을 무시하는 듯한 장면이니까.

그러니까 관중석에서 어처구니 없는 기색으로 날 쳐다보는 시티팬들의 표정이 그런 이유였다.

빌어먹을,

도대체 풋볼 선수들은 왜 이리 다 괴물 같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꿈에서나 할 수 있던 플레이가, 이 괴물 같은 운동신경과 피지컬을 만나 저절로 펼쳐진다.

"막으라고!"

"City! City! 막아!"

최종 수비수 라포르테가 자리를 잡고 침착하게 노려본다.

그런데.

아무리 대단한 수비수여도 가끔 시야가 좁아질 때가 있다.

경기 종료 5분 전.

수비수들이 가장 위험한 시간대.

"어이, 주위를 좀 보라고."

"뭐?"

툭.

라포르테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오른쪽 아웃사이드로 툭.

"오---도이!"

튀어나오는 골키퍼 에데르송이 미처 반응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발리 슈팅은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도이의 따라가는 추격골.

"The Blues!"

"Goooaaaaaal!"

"가자고! 첼시! 블루스!"

시간은 아직 충분했다.

"오도이! 세레모니는 나중에 하자고! 공 잡고 뛰어!"

"어? 어!"

세레모니는 사치다.

적어도 동점은 만들어야지. 좀 더 욕심내서 역전까지 하고.

***

대니 드링크워터는 마른침을 삼켰다.

"미친."

바로 조금 전.

그와 마주쳤던 다비드 실바가 종이 인형처럼 무너졌다.

어느새 센터 서클까지 내려온 제퍼슨이 몸통 박치기로 그를 날려 버린 것이다.

누가 봐도 파울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오심도 경기 일부였고, 그것이 운이기도 했다. 심판은 넘어갔고, 제퍼슨은 거짓말 같은 돌파로 수비진을 헤집고 오도이에게 완벽한 어시스트를 선사했다.

"미친놈."

드링크워터의 입에선 계속해서 욕이 흘러나왔다.

감탄? 선망?

모르겠다.

"저거 미친놈이야."

드링크워터는 생각했다.

"피지컬, 스피드, 기술. 도대체······!"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분위기는 바뀌었고 흐름조차 바뀌었다.

맨시티 선수들의 얼굴엔 당혹스러움이 묻어났고, 첼시 선수들의 얼굴엔 묘한 흥분이 떠올랐다.

그건 관중석도 마찬가지다.

다비드 실바가 심판을 붙잡고 반칙이었다고 호소하지만, 그거야 뭐 중요한 건 아니고.

"될까?"

드링크워터는 불현듯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레스터시티에서 이뤘던 아름다운 동화.

드링크워터는 그 동화의 주인공 중 하나였다.

하지만 첼시에서 그는 '주급 도둑'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작년에는 1군 스쿼드에 들지도 못하고 번리로 임대를 갔었다.

돌아온 이번 시즌에는 방출 1순위였다. 그러나 새로운 감독은 그에게 기회를 줬다. 선발과 교체를 몇 번 오갔다.

그는 이 기회를 잡아야 했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왜 그걸 지금까지 못 했을까?

바로 첼시의 스트라이커들 때문이다.

그들이 제이미 바디는 아니지 않나.

하지만 드링크워터는 지금 왠지 그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바로 지금.

맨시티가 아직 라인을 내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

추격골이 들어가 흐름이 묘하게 변한 상황.

4명의 수비진 사이에 서 있는 제퍼슨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축구선수의 본능이 속삭였다.

"지금이다."

거짓말처럼, 캉테의 패스가 그에게 도착했다.

그리고 드링크워터는, 망설임 없이 공을 길게 차올랐다.

수비의 머리를 넘기는 긴 로빙패스.

제이미 바디가 자주 보여 줬던 것처럼.

엄청난 스피드로 수비라인을 부숴 버리는 브레이킹, 그리고 완벽한 위치 선정에 이은 아름다운 볼터치.

그것이 가능한 선수가 이 첼시에 새로 왔다.

"제----퍼슨! 뛰----어!"

수많은 EPL의 강팀을 무너뜨렸던, 드링크워터의 롱패스와 제이미 바디의 마무리.

그 장면이, 첼시에서 벌어졌다.

다만 공격수가 제퍼슨 리로 바뀌었다는 점만 다를 뿐.

제퍼슨은 뛰었다.

크게 한 바퀴 돌아 뛰면서, 단숨에 라인을 부수고.

지친 페르난지뉴를 상대로 마지막 남은 체력을 모두 불태우는 스피드를 이용해 떨어뜨리고,

라포르테의 강한 압박을 버텨 내면서, 발끝으로 공을 잡았다.

그리고 성큼성큼 뛰었다.

"The Blueeeeees!"

후반 91분.

뻐-엉!

제퍼슨의 강력한 슈팅이 에데르송의 옆을 지나 골네트를 찢을 듯이 꽂혔다.

"Gooooooooal!!!!"

"Fuuuuuuck!"

"Fucking Lovely! Oh!"

"제-퍼슨! 제-퍼슨!"

"Woooooaaaa!"

그러니까 그런 경우 있지 않나.

혼자서 경기 흐름을 바꿔 버리는,

영웅이 나타나는 경기.

제퍼슨이 원정석의 팬들을 향해 뛰어가 과격하게 소리쳤다.

"이게 진짜 파란색이라고! Real Blues!"

< 63. Real Blues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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