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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60화 (60/258)

< 60. Real Blues (2) >

툭!

"쫌! 제발!"

후벤 네베스(Rúben Neves)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눈앞에 있던 신형이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한 번 코앞에서 이뤄지는 방향 전환.

어떻게든 따라붙고, 미리 위치를 잡아 막아 보지만.

제퍼슨은 고작 1m 앞에서도 완벽한 방향 전환을 이뤄 내는 선수였다.

왼쪽, 오른쪽, 대각선. 모든 방향 상관없는 움직임.

저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급격하며 완벽한 방향 전환에 네베스는 어떻게 막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혼자선 못 막아!'

혼자서 저 방향 전환을 예측하고 수비하기엔 어렵다.

그렇다면 답은 협력 수비다.

문제는 제퍼슨이 협력 수비로 위치를 잡기도 전에, 얄미울 정도로 잘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탈압박 귀신이라고 불렀던 과거 이학현의 재능과 움직임, 거기에 러닝백 특유의 급격한 방향 전환이 합쳐지자 괴물 같은 플레이가 만들어졌다.

"그냥 죽여 버려!"

누군가 소리쳤다.

삐익! 삑!

그리고 강한 태클이 들어오고, 제퍼슨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쓰러졌다.

"우우우우우우우---!"

첼시의 원정팬들은 거친 태클에 야유를.

울브스의 홈팬들은 쓰러진 제퍼슨에게 야유를 보냈다. 양팀의 야유가 울브스의 홈구장, 몰리뉴 스타디움에 울렸다.

벨기에 출신에 파르티크 르니에르는 옐로카드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니, 공만 빼낸 거라고요!"

"시끄러워. 반칙이야. 레드카드 아닌 걸 다행인 줄 알아."

근엄한 표정의 심판은 단호했다.

르니에르는 묘한 얼굴로 바닥을 내려 봤다.

고통스러운 얼굴로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제퍼슨 리.

그러나 그 순간 르니에르는 똑바로 봤다.

실눈을 살짝 뜨고 이쪽을 보고 있는 리의 얼굴을.

"저 자식! 할리우드라고요!"

"시끄러워. 한 번만 더 그러면 무조건 퇴장이야. 알겠어?"

"하."

르니에르가 거친 태클을 시도하긴 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제퍼슨은 분명 엄청난 방향 전환으로 태클을 피했다. 접촉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피했다. 그러나 저렇게 고통스러워할 건 아니었다. 할리우드 액션이 분명했다.

르니에르는 쓰러진 제퍼슨의 귓가에 속삭였다.

"개자식. 미국에서 왔다고 할리우드 연기 하는 거야? 한 번만 더 그러면 진짜 발목을 박살 내주마."

그러자 고통스럽게 뒹굴던 제퍼슨이 씩 웃었다.

"그 전에 네가 퇴장당할 거 같은데? 친구."

***

때로는 심판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축구는 원래 거친 스포츠다.

특히 EPL은 더 심한 편이다.

그런데 모든 심판이 그런 거친 플레이에 관대하지는 않다.

심판이 별것도 아닌 접촉에 파울을 부는 성향인 걸 파악했을 때.

내 플레이 스타일은 정해졌다.

'반칙 유도.'

팀에 경고를 받은 선수가 많아지면, 당연히 조심스럽게 플레이할 수밖에 없다. 소극적으로 변모한다.

그러면 좀 더 우리가 확실하게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일부러 반칙을 많이 유도했다.

좀 더 화려한 개인기를 이용해 선수들의 신경을 긁기도 했고.

또, 이학현일 때, 반칙에 대해 자주 연구하다 보니 어느 시점에 어떻게 반칙이 들어올 것인지도 눈에 보였다. 먼저 반칙을 피하면서 쓰러지면 만사 OK.

페널티 박스 안이 아니면 VAR을 보지 않을 확률이 높으니까.

어느새 상대팀에는 센터백 두 명과 레프트백이 경고를 받았다.

미드필더 한 명과 왼쪽 윙도 받았다.

벌써 경고자가 다섯 명이다.

그런데 꼭 그것이 경기의 주도권을 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방심은 늘 경기에 존재한다.

누가 봐도 루즈할 정도로, 우리가 경기를 일방적으로 잘 풀어가고 있으면.

한순간의 방심이 상대에게 기회를 준다.

그리고 상대가 그 기회를 완벽하게 살리는 경우가 있다.

"Gooooooaaaaall!"

[오버래핑으로 박스 앞까지 달려온 레프트백 파르티크 르니에르가 엄청난 중거리 슛을 성공시킵니다!]

[한때 물의를 일으켰던 선수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대단하네요! 악마의 재능입니다! 골문 구석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완벽한 골! 울브스! 동점을 만듭니다!]

오버래핑으로 박스 왼쪽까지 치고 올라온 르니에르는 미드필더와 2대 1패스를 주고받더니, 기습적인 중거리 슛을 때렸다. 그 슛이 각도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휘어지면서 골문을 갈랐다.

"Fuck Blues! Fuuuuck! 여긴 몰리뉴라고! 꺼져 버려! 늑대들의 밥이 되기 싫으면! 파랭이 새끼들아!"

그런데 굳이 저렇게 도발적인 세레모니를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이내 그 얼굴을 보니 과거 누군가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긴가민가했는데, 저 도발적인 모습을 보니 확신이 섰다.

"르니에르. 그 르니에르인가? 브뤼헤에서 뛰었던?"

"뭐야? 쟤 알아?"

"어. 아니."

정확히는, 회귀 전에 알았던 선수다.

내가 벨기에 리그에서 뛰었을 때.

아마, 그때 EPL에서 뛰다가 사고를 쳐서 팀에서 방출당했다고 했던가.

그래도 실력은 대단한 선수라 벨기에 리그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 줬었지.

실력뿐만 아니라······.

"저 자식 개차반이야. 성격 더럽다고."

"그래 보이네."

"얼마 전에는 경기장에 온 여자 팬하고 놀아나다가 파파라치에게 걸리기도 했고. 뭐 그런 거야 사생활이라 쳐도, 필드에서도 하는 짓거리가 영······. 트래시 토크를 더럽게 하거든."

난 쓰게 웃었다.

알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와 많이 부딪쳐 봤으니까.

"알 만하네."

"괜히 부딪쳐 봤자 기분 나쁜 놈이야. 어휴."

르니에르의 세레모니는 확실히 불쾌한 것이었다.

대놓고 첼시 벤치와 원정석을 향해 욕을 한 것이니까.

그러니까.

우리 팀 주장이자, 모범생 느낌 팍팍 나던 캡틴도 빡쳤고, 그 착한 캉테도 화난 얼굴이었다.

우리팀과 팬들을 자극하는 세레모니.

어린 선수인 메이슨 마운트가 순간적으로 화난 표정으로 사고를 친 이유기도 했다.

삐빅!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르니에르를 거칠게 팔꿈치로 찍어 버린 마운트.

"우우우우우우우----!"

"Fuck! 꺼져 버려! 빌어먹을 마운트!"

"죽여 버려!"

결국, 심판이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나, 마운트는 기죽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르니에르를 노려보며 무언가 거친 말을 마구 쏟아 내고 터널로 나갔다.

나는 봤다.

마운트가 팔꿈치로 찍기 전에, 르니에르가 더러운 트래시 토크를 던지던걸.

하.

저 자식. 진짜 골치 아픈 놈이네.

***

필마르크 감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전광판의 시계를 바라봤다.

'남은 시간은 30분.'

하지만 한 명의 퇴장으로 수적 열세.

울브스는 중위권팀이지만, 팀의 퀄리티는 절대 낮지 않다.

'엿 같은 EPL.'

필마르크는 쓰게 웃었다.

덴마크 리그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중위권팀의 선수진 퀄리티도 대단했다.

어느 한 팀이라도 만만하게 보고 싸울 상대가 없었다.

이런 팀을 상대로 한 명이 퇴장당한다면, 밀릴 수밖에 없다.

'오히려 무승부로만 만족하고 수비하다가 골 먹히는 경우가 많지.'

축구란 그런 거다.

대놓고 막기만 하다간 오히려 실점을 내주는 경우가 많다.

"일단 이대로 유지해."

퇴장당한 마운트는 미드필더였다.

현재 중앙에는 로스 바클리와 캉테가 있다.

캉테의 활동량과 커팅 능력이면, 한 명이 부족해도 중원 싸움에서 쉬이 밀리지 않으리라.

"4-4-1. 제퍼슨의 공격력을 믿어야지."

혼자 고립된 원톱.

결국엔 그가 해 줘야 한다.

"그러면, 윌리안 빼고 오도이를 넣어. 페드로도 지쳤으니까, 풀리시치와 교체해주고."

확실한 크로스와 직선 돌파에 능한 오도이의 투입.

활발한 활동량과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풀리시치.

오도이는 경기에 투입되자마자 활발한 움직임으로 오른쪽 측면을 누볐다.

흑인 특유의 유연성과 단단한 피지컬. 그리고 정확한 킥으로 박스로 배달되는 크로스.

첼시의 위협적인 공격루트였다.

"The Blues!"

그러자 울브스는 무작정 올라갈 수 없었다.

한 명이 더 많아도, 수비로서는 제퍼슨이 너무 위협적이었다.

"막아!"

"쫌!"

그러니 오도이의 위협적인 얼리 크로스는,

제퍼슨이라는 강력한 한 방을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만들었다.

[오-도이! 얼리 크로스! 제퍼슨! 수비진 사이로 침투해 갑니다!]

중앙선 바로 위에서부터 올라오는 얼리 크로스.

수비진 뒤로 휘어지면서 파고드는 크로스는.

제퍼슨이 순간적으로 라인 침투를 시도하면서 순식간에 완벽한 득점기회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의 발끝에 걸리는 공.

완벽한 통제의 증거.

제퍼슨은 양쪽 어깨를 붙잡고 거칠게 막아 오는 수비를 버텨 내면서.

그대로 발등으로 공을 강력하게 때렸다.

태앵!

골포스트 상단을 때리는 슈팅.

골대가 진동할 정도로 강력한 슈팅은 골포스트를 맞고, 바닥을 때리면서 굴절되어 밖으로 튕겨 나왔다.

[아! 골대 맞고 튕겨 나오네요!]

[잠시만요. 지금 골라인 판독을 하려는 거 같은데요?]

첼시 선수들은 모두 골라인을 넘었다고 주장했고, 울브스 선수들은 반대라고 주장했다.

모두가 긴장한 채 심판의 사인을 기다리는 상황.

그리고 심판이.

삐익!

[골! 골입니다!]

[와! 아슬아슬하게 골라인을 넘겼네요! 골입니다! 골!]

2 대 1

제퍼슨 리의 4경기 연속 골이었다.

***

내가 다시 역전골을 넣자, 울브스는 다급한 움직임이었다.

그들이 한 명 많은데도 진다는 건 치욕이었으니까.

더구나 여기는 몰리뉴 스타디움, 늑대들의 소굴이 아닌가?

하지만 저들이 높이 올라올수록 나에겐 기회가 생겼다.

공간은 넓어졌고, 침투할 타이밍은 많아졌다.

"오도이!"

캉테의 활동량과 커팅 능력은 완벽하다.

내가 직접 본 선수 중의 최고였다.

그는 다시 한번 공을 커트해 내고 오른쪽의 오도이에게 패스.

오도이는 거침없이 질주했다.

그 순간, 레프트백 르니에르가 오도이를 막아섰다.

그리고 오도이는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쉽게 공을 뺏겼다.

어라?

뭐라 중얼거리는 게 보이는데.

그의 말을 듣고 오도이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는다.

"오도이, 저 자식이 뭐라 했어?"

"······아무것도 아냐. 그냥, 불쾌한 농담이었어."

오도이는 좋은 선수지만, 단점이 딱 하나 있었다.

어리고, 멘탈이 약하다는 것.

저번 웨스트햄에서도 관중들의 야유와 욕설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지금 르니에르의 더러운 트래시 토크에 다시 한번 멘탈이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음.

이러면 안 되지.

"오도이, 스위칭 좀 하자."

"어?"

"중앙에서도 뛸 수 있지?"

"조금은."

"잠깐만 서로 왔다 갔다 하자고. 할 게 있으니까."

때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격언이 가장 좋을 때가 있다.

오도이는 알 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오도이와 활발하게 스위칭을 시작하자, 자연히 레프트백, 르니에르와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상대 심리를 긁는 방법을 알았다.

수비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넛 메그(알까기)라거나.

툭!

"미친!"

스텝 오버(헛다리 짚기)나.

"제기랄!"

공을 머리 위로 넘기는 플레이나.

"진짜 쫌!"

그리고 가끔 어깨를 밀치는 파울 같은.

삐빅!

골을 넣고 우리가 이기고 있으니까.

나는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집요하게 르니에르를 물고 늘어졌다.

르니에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위협해 왔다.

"이 개자식. 빌어먹을 양키 새끼. 진짜 죽고 싶어?"

"그럴 리가."

"엿 같은 놈. 미국에서 뭘 주워 먹겠다고 여기까지 기어들어 오셨나?"

슬슬 이제 시작하네. 트래시 토크.

나는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먼저 선수를 쳤다.

"아직 안 들켰지?"

"뭐?"

"가족끼리는 친하게 지내야지. 그렇다고 동생 와이프하고 친하게 지내는 건 아니지 않나?"

"······너?"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가 사고를 일으키고 팀에서 방출당해 벨기에 리그로 가는 이유.

회귀 전에 온갖 스포츠 언론에서 떠들썩했던 스캔들이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동생 와이프하고 바람이 났었지.

'참, 긱스도 아니고 말이야.'

물론 그 양반보단 덜하지만.

어쨌거나 내가 이 시점에선 아무도 모르는 얘기를 꺼내자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나 같으면 당장 그만두겠어. 그게 사람이 할 짓이야?"

"이 개자식이! 너 그걸 어떻게 알아?"

그는 더는 참지 못하고 내 멱살을 잡았다.

당장이라도 죽일 기세로.

자, 그러면.

삐빅! 삑!

누가 봐도 언쟁 끝에 멱살을 붙잡는 모습.

심판은 다급하게 달려왔다.

별것도 아닌 몸싸움에 파울을 부는 심판 성격상 이걸 가만히 넘길 리가 없다.

"당장 그만둬!"

나에게 경고, 그리고 멱살을 잡은 르니에르에게도 경고.

그러니까, 경고 누적.

퇴장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

관중들의 야유가 쏟아지고, 선수들이 모여 우리 둘을 떼어 놓았다. 르니에르는 발광하며 나에게 뭐라 욕설을 지껄이지만, 난 귀를 막았다.

"뭐라고 했길래 쟤가 저렇게 흥분해?"

"글쎄. 사람답게 공 좀 차라고 했더니 저러네."

"겨우 그걸로?"

"그러게."

오도이의 질문에 난 어깨를 으쓱였다.

이로써 울브스도 한 명이 퇴장당했다.

한 명이 열세여도 우리는 앞서갔었고, 같은 숫자가 된 이상 더 두려울 건 없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해 왔듯이, 공격을 쏟아부었고.

끝내 골을 터뜨렸다.

"풀리시치! 골!"

이번엔 내 어시스트로.

풀리시치가 추가골을 넣고 3대 1로 승리를 거뒀다.

***

-울브스의 레프트백, 파르티크 르니에르가 당신과 언쟁 후에 퇴장당했는데, 어떤 상황이었는가?

"모르겠다. 그냥 축구장에서 늘 일어날 법한 일이었다. 그가 과민 반응한 게 나도 이상하다."

-울브스는 EPL의 강팀들을 곤욕스럽게 하는 도깨비팀인데, 승리를 거뒀다. 기분이 어떤가?

"늑대들의 소굴이라길래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즐거웠다. 펫 카페에 와서 강아지들이랑 재밌게 논 기분이다."

< 60. Real Blues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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