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50화 (50/258)

50. 9번의 저주 (1)

첼시는 20-21시즌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변화의 중심에 섰다.

팀의 레전드인 프랭크 램파드(Frank Lampard)가 지휘봉을 잡았지만, 19-20시즌 무관에 머물렀다.

심지어 리그 최종 순위는 6위.

간신히 유로파 티켓을 얻었다.

일각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적시장 영입금지 제재.

에당 아자르(Eden Hazard)의 이적 공백.

유소년 선수들을 활용한 리빌딩까지.

더비 카운티만을 이끌어 본 램파드가 이겨 내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래도 리그 6위와 무관의 성적은 런던의 빅클럽이라고 자부하는 첼시로서 치욕적인 결과임은 분명했다.

로만 구단주는 램파드에게 2년간 무조건 신임하겠단 보장을 했지만,

무관이라는 치욕적인 결과에 램파드는 책임을 통감했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사퇴하게 됐고, 새로운 감독이 부임하게 됐다.

라르스 필마르크(Lars Pilmark) 감독이 첼시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19-20시즌.

FC코펜하겐을 이끌며 깜짝 유로파 준우승이란 업적을 이룬 필마르크 감독은 현재 유럽에서 가장 핫한 새로운 감독이었다.

몇몇 유수의 명문 클럽이 필마르크를 노렸지만, 필마르크는 첼시를 선택했다.

그가 첼시를 선택하면서 요구한 조건이 있었다.

“스트라이커가 필요합니다.”

“음!”

“이 팀은 스트라이커라고 부를 수 있는 선수가 없습니다.”

“현재 우리 팀의 영입 명단에 오른 스트라이커가 있습니다. 미국 선수죠. 제퍼슨 리입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필마르크 감독은 1년 동안 누적된 영상과 스카우트 데이터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며칠 후, 직접 미국에 날아가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경기를 관전했다.

그리고 외쳤다.

“Denne spiller!(이 선수다!)”

필마르크는 그 즉시 요청했다.

“무조건 제퍼슨 리를 영입해 주십시오. 그는 제가 원하는 팀의 핵심이 될 선수입니다.”

“하지만······ 그 선수는 이제 18세, 19세가 되는 선수입니다. MLS는 유럽보다 수준이 낮아요. 우리에겐 월드클래스의 스트라이커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최근 경쟁이 심해져서 그의 이적료가 너무 높아요. 도박일 수 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지금까지 첼시에서 영입한 스트라이커는 모두 이름값 있지 않았습니까? 하지면 결과는요? 페르난도 토레스, 라다멜 팔카오, 알바로 모라타, 곤살로 이과인. 모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이 선수라면 그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쟁자가 많습니다.”

“첼시가 언제부터 영입 경쟁에서 앓는 소리를 하는 팀이었죠?”

그리고, 필마르크 감독의 염원은 끝내 이뤄졌다.

[OFFICIAL]

제퍼슨 리, 5,180만 파운드(764억 원)에 첼시 FC 이적 확정!

[제퍼슨 리, 주급 9만 유로(약 1억 1,000만 원)로 첼시행!]

[미국의 슈퍼스타, 제퍼슨 리. 역대 미국인 이적료 2위!]

[크리스티안 풀리시치에 이어 제퍼슨 리를 품은 첼시. 미국 시장 겨냥하나?]

[제퍼슨 리 “첼시와 같은 빅클럽에 가게 되어 무척 기쁘다. 필마르크 감독과 개인적으로 통화를 마쳤다. 블루스의 일원이 된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필마르크 감독 “내가 바라던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온다!”]

[토론토 FC 서포터즈 “우리는 영원히 그를 잊지 않고,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추억을 소중히 간직할 것” 성명 발표]

[그랜드 감독 “내가 지휘해 본 선수 중에 가장 최고의 선수가 떠난다. 슬프지만, 우리는 토론토다. 계속해서 역사를 만들 것이다.”]

***

내가 첼시를 선택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마지막 후보군에 오른 AT 마드리드는 공격수 사관 학교로 불리는 팀이다.

나에게 좋은 선택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선수비 후 역습. 두 줄 수비로 대표되는 전술은 나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스페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점도 걸렸다.

첫 해외 이적이다.

언어의 중요성은 상당하다.

새로운 선수들과의 소통, 감독과의 소통, 필드에서의 소통.

그래서 AT 마드리드는 후 순위로 밀렸다.

그다음 AC 밀란은 괜찮은 팀이었지만, 역시 언어와 세리에A 특유의 인종 차별 때문에 거절했다.

‘인종 차별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해.’

벨기에 리그에서 뛸 때 온갖 인종 차별을 겪어 봤다. 그리고 같이 뛰던 팀의 흑인 동료한테 세리에A도 벨기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얘기도 들었다.

인종차별이 무서운 건 아니다.

축구장에선 의외로 자주, 그리고 흔한 일이다.

하지만 팬들의 귀에까지 인종 차별 얘기가 들린다면 그것만큼 고통스러울 건 없겠지.

내 최종선택은 첼시다.

스트라이커가 필요한 팀.

언어 소통이 자유로운 팀.

충분한 몸값과 주급을 제시할 수 있고, 이번 시즌은 흔들렸지만, 언제든 최정상을 노릴 수 있는 빅클럽이었다.

거기에 라르스 필마르크 감독.

미래에 필마르크 감독을 부르는 말이 있다.

‘스트라이커 성애자’

그러니까, 그가 만드는 팀의 핵심은 언제나 스트라이커였다.

회귀 전에도 20-21시즌에 필마르크 감독은 첼시에 부임한다.

코펜하겐에서 유로파 준우승, 덴마크 리그 우승, 덴마크 FA컵 우승이란 업적을 세운 그는 야심차게 첼시에서 첫 시즌을 시작했다가, 실패를 겪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과, 훗날 본인이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딱 하나의 원인이 문제였다.

바로 스트라이커의 부재.

확실한 스트라이커가 없던 첼시.

그의 말처럼 필마르크 감독은 훗날 바이에른 뮌헨에서 레반도프스키를 활용하면서 비상한다.

‘그때 레반도프스키가 한 시즌에 45골을 넣었었나.’

메시의 시대에 슬슬 최정상에서 내려오던 레반도프스키의 화려한 비상.

물론 거기에는 율리아겐이란 능력자의 도움도 있겠지만,

필마르크 감독은 제대로 된 스트라이커만 있다면 이를 활용할 줄 아는 대단한 감독이었다.

본래 역사의 첼시 첫 시즌은 실패하지만, 이젠 다를 거다.

지금 첼시의 스트라이커인, 유망주 타미 아브라함(Tamaraebi Abraham)이 월드클래스급은 아니지 않나.

그러나 이번엔 다를 거다.

내가 첼시로 가게 됐으니까.

‘기대되네.’

***

[제-퍼슨 리! 리그 33호 골을 성사시킵니다!]

이적시장 막바지.

나는 이적 전, 고별 경기에 투입됐다.

[토론토 팬들이 외치네요.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고. 아, 정말 감동적입니다. 제퍼슨 리. 이제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지만, 여전히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 줍니다!]

원래 그랜드 감독님도 곧 이적을 위한 체력 안배 때문에 날 쉬게 해 주실 생각이셨지만.

애석하게도 팀에 선수가 별로 없었다.

도쿄 올림픽 때문이었다.

물론 나에게도 올림픽 대표 제안이 왔었고, 나는 거절했다.

‘체력적으로 무리입니다.’

트레이닝 팀의 권고.

아직 여름임에도 40경기 가까이 넘게 치르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여기서 올림픽까지 뛴다면 내 체력은 남아나지 않을 터.

그리고 이미 성인대표팀을 뛰게 된 상황이라 올림픽이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부모님은 은근히 아쉬워했지만.

대신 산티아고와 알렉산더 바카, 그리고 제임스 로드릭이 엔트리에 포함됐다.

***

“이대로라면 2~3라운드면 우승 확정이겠네.”

이젠 마음 놓고 이적해도 될 것 같았다.

올림픽은 끝나고 있었고, 미국 대표팀은 3위를 기록해서 동메달을 받았다.

산티아고와 바카, 로드릭까지 돌아온다면 토론토는 문제없이 플레이오프에서도 우승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팀인 DC와 갤럭시의 루니, 즐라탄의 노쇠화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으니까.

‘득점왕, 받을 수 있으려나.’

아직 절반이 남았지만.

거의 득점왕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MLS 득점 순위]

1. 제퍼슨 리(토론토 FC) 33골

2.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LA 갤럭시) 18골

3. 웨인루니(DC 유나이티드) 17골

4. 카를로스 벨라(LA FC) 14골

5. 산티아고 차베즈(토론토 FC) 11골

특별히 문제가 없는 한, 내가 팀을 떠나도 득점왕을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가, 제—프!”

내 마지막 경기.

고별전에서 나는 결승골을 집어넣으며 팬들에게 이별인사를 했다.

“널 그리워할 거야! 제-프!”

“다시 돌아오기를 바랄게!”

“너의 인생에 행운이 함께해!”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고!”

고작 1년이다.

내가 이 팀에서 뛴 건.

그러나 팬들이 보여 주는 애정만큼은 정말 감격스러웠다.

내 이름이 새겨진 플래카드와 머플러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Oh my team, Oh my Toronto, Oh my LEE, Oh my Jefferson.”

내 이름을 넣어서 응원가를 불러 주고.

솔직히 말해 나도 겨울까지 뛰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했다.

더는 여기서 내 성장을 바랄 수는 없었다.

“제프, 1년 동안 즐거웠다.”

“조슈아!”

“내 딸이 엉엉 울더라고. 널 그리워할 거라고. 가기 전에 우리 집에 들러 줘.”

“물론이죠, 조슈아.”

조슈아는 씩 웃더니 잠시 망설이는 기색으로 말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네 덕택이 아니었다면, 우승컵을 얻지 못했을 거야. 플레이오프, 챔피언스리그, 캐네디언 챔피언십까지. 아마 이번 시즌 리그하고 플레이오프도 우승을 차지한다면, 그건 네 공이다.”

“아니죠. 조슈아. 다 각자의 공이에요. 우리는 팀이었으니까요.”

“이런, 제-프! 우리한테는 인사 안 할 거야?”

캡틴 브래들리가 다가왔다.

난 머쓱하게 웃었다.

“그저께 쫑파티까지 했는데.”

“그건 그거고. 아쉽네. 나도 한두 시즌만 뛰고 은퇴할 생각이었는데. 그때가 되면 이 완장을 물려주려고 했구먼.”

“이런. 더 오래 뛰실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체력이 장난 아니신데.”

“하하하. 그래, 캡틴 완장은 나중에 국가대표팀에서 물려주마.”

“그건 좀 부담스러운데······.”

“캡틴 아메리카잖아?”

브래들리는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웃었다.

1년 동안, 이 팀에 정이 많이 들었다.

선수들하고도.

로드릭이나 산티아고는 지금 도쿄에 있어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지 못해 아쉬웠다.

‘근데 로드릭은 몰라도, 산티는 곧 유럽 갈 거 같은데.’

금방 만날 것 같단 생각이 든단 말이야.

“제----프!”

“우리의 왕!”

“제-----프!”

“Oh my king!”

“Oh my team!”

토론토 팬들의 마지막 응원을 뒤로 한 채.

나는 토론토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마무리했다.

***

2019시즌 MLS 올해의 신인왕

2019시즌 MLS 올스타.

2020시즌 MLS 올스타.

리그 26경기 35골 13어시스트

캐네디언 챔피언십 8골 2어시스트

CONCACAF 챔피언스리그 10골 3어시스트.

“미쳤군.”

“아직 안 끝났어요.”

런던 풀럼에 위치한 펍(Pub).

파란 첼시의 유니폼을 입은 젊은 남자가 나이 든 가게 사장한테 휴대폰 화면을 보여 줬다.

캐네디언 챔피언십 MVP

캐네디언 챔피언십 득점왕

캐네디언 챔피언십 올해의 팀

“음. 이게 FA컵 같은 건가?”

“맞아요. 잠깐만요, 여기 북중미 챔피언스리그도 있어요.”

CONCACAF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CONCACAF 챔피언스리그 베스트 일레븐

CONCACAF 챔피언스리그 MVP.

“오 세상에. 도대체 개인 수상이 몇 개야?”

“놀라운 건 18살, 이제 몇 개월 후면 19살이란 거죠.”

“근데 여기 수준이 EPL보다 낮지 않아?”

“그렇긴 하죠. 하지만 19살짜리가 이 미친 기록들을 갈아 치우고 오는 선수인데, 기대할 만하지 않아요?”

“하긴. 그렇지.”

“드디어 우리 팀에도 제대로 된 스트라이커가 오는 걸까요.”

“그 엿 같은 9번의 저주도 깰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고.”

첼시팬들은 모두 똑같은 마음이었다.

[첼시 스트라이커 타미 아브라함 부상! 4개월 아웃!]

[스트라이커 잔혹사에 부상까지. 첼시, 리그 개막하기도 전에 스트라이커 부재 상황!]

[새로운 대형 스트라이커 영입을 요구하는 첼시 서포터즈]

[필마르크 “우리에겐 새로운 9번이 온다. 반드시 첼시의 영광을 되찾을 것”]

[북중미 최고의 선수, 제퍼슨 리. 위기의 첼시를 구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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