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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49화 (49/258)

49. 이적시장 개봉박두! (3)

이적시장 개봉박두! (3)

“허허.”

이성학은 흐뭇하게 웃었다.

“에이전시가 있는데도 나한테 접근을 하다니. 이 양반들이 급하긴 했던 모양이네.”

그의 책상에 놓여 있는 수많은 명함.

하나같이 유럽 빅클럽의 엠블럼이 새겨진 명함이었다.

그런 클럽들이 자기 아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 아버지인 자신한테까지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지 않았는가.

이건 다 아들의 엄청난 실력. 그리고 에이전시 덕택이다.

선수 영입에 도가 튼 빅클럽들도, 에이전시의 협상력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어느 조건을 겨우 만족시키면, 다른 조항을 추가해서 또 은근히 급료를 올리는 건 아주 예사였다.

[빌어먹을! 미국인들하고 돈 갖고 협상하면 안 된다니까!]

에이전시를 한 번씩 상대한 빅클럽 영입 담당자들의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날 수 없었다.

[그래요? 그럼 다음 고객분? 아, 이번엔 바르셀로나에서 오셨군요!]

[끙. 다시 한번 얘기합시다.]

갑과 을의 관계는 명확했다.

에이전시는 아스날과 첼시의 접촉 이슈를 이용하여 언론을 부추겼다. 그 결과 협상테이블에서 갑의 위치를 확실하게 다졌다.

그렇다고 에이전시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 아니었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와? 이런 사기꾼들이 다 있냐?’라는 소리가 나올법한.

그래서 에이전시와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 아버지인 이성학을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성학은 절대 아들의 이적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본인의 선택이지.”

이미 장성한 아들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철없던 아이였지만.

미국 국가대표가 되더니, 토론토의 영웅이 되어서 유럽 진출을 앞두고 있었다.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언제 저리 커서 아빠 차도 바꿔 주고.”

이성학은 실없이 웃었다.

그의 차고 안에는 고급 세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아까워서 타고 다닐 수나 있을지 몰라.”

징, 징, 징.

흐뭇하게 웃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스포츠코리아 김진학 기자]

“어휴. 이 양반들도 어지간하구먼.”

이성학은 미간을 좁혔다.

한국 스포츠계에도 다져 놓은 인맥과 명성이 있는 이성학이었다.

예전에도 친한 기자들과 자주 연락했었다.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곤욕스러웠다.

아들이 한국계임이 밝혀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었고, 심지어 대형 클럽으로의 이적이 코앞이니까.

하지만 이성학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여 자신의 인터뷰로 인해 아들 앞길에 초를 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걸 원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아들이 어딜 선택하려나.”

애석하게도, 아버지인 이성학도 몰랐다.

***

[제퍼슨! MLS 22라운드 리그 29호골 폭발!]

[득점기계 ‘LEE’ 경기를 보러온 유럽 스카우터들에게 화려한 쇼케이스!]

[경기장을 방문한 맨체스터 시티 스카우터 ‘볼수록 탐이 나는 선수. 그를 데리고 가고 싶다,’]

[첼시 스카우터 ‘우리 9번 자리는 비워 놓은 상태.’]

[AT마드리드 ‘시메오네가 그를 원한다.’]

[아스날 스카우터 ‘킹 앙리의 후계자가 될 만한 자질이 보인다.’]

[발렌시아 ‘스페인어 교사를 준비해 놨다.’]

[제퍼슨 리, 이적설에 대한 입장 발표 ‘더 큰 무대가 나를 부른다.’]

[토론토 팬들, 팀의 스타에게 떠나지 말라고 외치다.]

***

캐네디언 챔피언십은 캐나다팀들의 FA컵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우리 팀은 아주 당연하게도 결승전에 진출했다.

캐나다 팀이라고 해 봤자, MLS에 속해 있는 프로팀은 토론토, 몬트리올, 밴쿠버였으니까.

그리고 결승전에서 우리는 서부의 캐나다팀, 밴쿠버를 만났다.

“제---프!”

바스케스의 패스는 언제 봐도 대단하다.

느리고, 60분만 뛰어도 헉헉거렸지만, 이 패스 하나만큼은 진짜였다.

그의 패스는 내가 원하는 지점으로, 가장 알맞은 강도로 도착한다.

툭!

부드럽게 공을 수비의 가랑이 사이로 밀어 넣으면서 달렸다.

터치와 동시에 드리블.

공을 받고 움직이면 늦다.

받기 전에 내가 파고들 공간을 미리 파악하고, 공을 터치와 동시에 달려가야 한다.

그래야 수비를 제치기 수월하다.

“오, 제기랄!”

“함부로 덤비지 마! 자리 지켜!”

압박 없이 자리만 지켜 준다면 고맙지.

사실 무작정 달려드는 수비가 아니더라도, 길목과 파고들 공간을 미리 점유한 수비는 공격수로서 부담스럽다.

묘한 압박감이 느껴지거든.

그러나 오히려 나는 이런 수비 방법이 상대하기 더 편했다.

강한 압박은 화려한 개인기와 상대 수비의 심리, 플레이 스타일까지 생각해야 하지만.

이런 수비는 오히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뚫어낼 수 있다.

상대 수비들이 세계적인 수비수들이 아니니까, 철저한 지역방어도 분명한 틈이 많았다.

그러면 가장 간결하고, 단순한 방식으로.

심플 이즈 베스트.

음.

축구장에서 쓰기엔 좀 아닌가?

난 그저 거침없이 공을 몰고 묵직하게 밀고 들어갔다.

퍽!

“컥!”

단말마의 신음.

수비가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공간을 향해 순간적으로 속도를 올리며 치고 달려갔다.

“Wooooohhh!”

“제----퍼슨!”

“제프! 제프!”

상체의 힘과 하체의 폭발력.

슬슬 몸의 밸런스가 완벽해지고 있단 생각이 든다.

리그 초반만 해도 사실 이전처럼 속도가 잘 안 나와서 걱정했거든.

근데 이제는 문제없다.

오히려 작년보다 더 속도가 나오고,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발목 힘도 더 세졌고.

뻐엉!

“큽!”

아쉽다.

마음먹고 제대로 때린 슈팅인데 골키퍼의 펀칭에 막혔다.

하지만 골키퍼는 경악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펀칭한 손을 부여잡은 채.

몸을 숙이면서 신음을 흘리던 골키퍼는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뭔 슈팅이 이렇게 쎄?”

그러게.

나도 내 피지컬이 신기하단 말이야.

***

MLS는 거칠다.

미국 특유의 마초 문화가 접목되어 있었고, 심판들도 관대한 편이다.

그 때문에 필드에서 부딪치는 웬만한 몸싸움은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고, 그럴수록 관중들은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오늘 밴쿠버 팬들은 그러지 못했다.

“빌어먹을! 제발 파울 좀 불어 줘!”

“우리 수비가 다 나가떨어지잖아!”

“심판 이 자식아! 카드 꺼내라고!”

우수수수 무너지는 수비수.

단순 표현이 아니라 제퍼슨이 수비진에서 휘저을 때마다, 마치 탱크가 보병들을 짓밟는 것처럼 무너졌다.

밴쿠퍼 관중들이 파울을 외쳤지만, 사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근데 솔직히 정당한 몸싸움이잖아.”

그랬다.

제퍼슨은 반칙이라고 의심받을 손동작은 전혀 쓰지 않았다. 위험한 태클도 없었다.

오로지 저 거친 수비를 단단하게 몸으로 견뎌 내면서 밀고 가는 것이다.

“아니야! 저 피지컬이 반칙이지!”

결승전.

밴쿠버 팬들은 모두 질린 눈빛으로 9번을 바라봤다.

캐나다에서 뛰면서 미국의 왕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저 스트라이커.

토론토는 사실상 제퍼슨의 팀이라고 불린다.

이번 시즌 제퍼슨의 체력을 위해 로테이션을 돌리면서, 그가 벤치를 지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토론토는 제퍼슨의 공백을 절실하게 느꼈다. 반대로 그 말은 제퍼슨이 경기에 뛰고 있으면 경기 자체를 지배한다는 거다.

제퍼슨은 등진 채 공을 지켜 주고, 왼쪽으로 달려가는 조나단에게 아름다운 스루패스를 찔러줬다.

“Wooooooohhhhh!”

“Go! Toronto!”

발 빠른 조나단이 가볍게 제퍼슨의 패스를 받았다. 완벽한 볼 터치.

“저 자식이 저렇게 공을 잘 잡았어?”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조나단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어떻게 이 자식 패스는 딱 세기가 알맞지?’

발에 착 달라붙는 느낌.

그야말로 패스의 세기와 거리까지 계산한 완벽한 패스.

‘이 자식은 스트라이커가 아닌, 2선 플레이메이커도 충분히 잘할 거야.’

조나단은 감탄을 터뜨리며 왼쪽 측면을 파괴하면서 달렸다.

그리고 수비가 앞을 막아서자 흘깃 중앙을 보면서 살짝 휘어가는 크로스.

“LEE----!”

낮은 크로스가 제퍼슨의 발끝에 걸린다.

마치 묘기를 부리듯 공을 돌려 세워 놓는 아름다운 퍼스트 터치, 그가 공을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증거였다.

툭, 툭!

발등으로 공을 받음과 동시에 위로 띄우는 플레이.

달려오던 수비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제퍼슨은 망설임 없이 수비를 어깨로 밀치면서 파고들었다.

탁!

그리고 다시 발등으로 공을 받고.

“산-티!”

반원으로 크게 돌아 오프사이드 트랩을 부수는 산티아고에게 패스.

산티아고는 공을 받고 박스 구석까지 드리블을 치다가, 중앙으로 들어가는 제퍼슨에게 컷백을 시도했다.

“아!”

다소 뒤로 빠지는 컷백.

이미 제퍼슨의 몸이 앞서가고 있어서 관성을 받고 있는 상황.

그 순간 제퍼슨이 몸을 틀었다.

달려가는 스피드를 급하게 줄이면서 터닝.

수비를 등지고 돌아서는 제퍼슨의 발끝에 걸린 공.

그 공을 발바닥으로 긁으면서 완전히 품안으로 끌어들인 제퍼슨은,

그대로 수비를 등으로 밀치면서 틈 사이, 뒤꿈치로 강하게 힐 킥.

간결하고도 정확한, 그리고 공간을 완전히 꿰뚫어 버리는 힐킥은, 시야가 가려진 골키퍼가 반응조차 못하는 사이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Goooooooal!”

“제-----퍼슨!”

“제퍼슨! 제퍼슨!”

힐킥으로 골키퍼를 농락하며 집어넣은 골이었다.

“빌어먹을! 등 뒤에 눈이 달렸냐!”

제퍼슨을 막았던 수비가 화를 냈다. 제퍼슨이 씩 웃었다.

“어떻게 알았어? 너 멍 때리는 거 뒤로도 다 보이더라.”

“······.”

캐네디언 챔피언십 결승전.

제퍼슨의 환상적인 힐킥으로, 토론토 FC 우승.

벌써 두 개의 트로피였다.

***

엑스포트 스포츠 에이전시의 제크 팀장과 만났다.

당당한 얼굴의 제크 팀장은 40대 중년의 백인 남성이었다.

깔끔하며 호감이 가는 인상.

하지만 나는 다 들었다.

제크 팀장을 상대한 유럽 구단들이 모두 저 첫인상은 사기였다고. 협상하다가 치를 떨었다지?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여름 이적시장이 끝나가는 타이밍.

난 슬쩍 리그 순위를 확인해 봤다.

2위와 승점 차이가 크게 벌어진 상황.

여기서 우리 팀이 남은 경기를 모두 죽 쓰지 않는 한 우승은 거의 확실시된다.

이쯤이면, 어느 정도 안심하고 떠나도 될 것 같았다.

“우선, 주전 보장에 난색을 보인 구단은 제외했습니다.”

제크 팀장은 그렇게 말하며 몇 개의 명함을 옆으로 뺐다.

“맨체스터 시티,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파리 생제르망은 선발 보장을 장담할 수 없다 했으니 제외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확실한 주전 스트라이커가 있는 팀들.

또한, 나에 대한 생각을 ‘몇 년 훈련하면 대성할 유망주’ 정도로 생각하는 구단은 제외다.

물론 이들 구단에서 좋은 선수들에게 플레이를 배우며 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최근 목표가 생겼다.

2022 카타르 월드컵.

회귀 전, 미국은 월드컵에서 좋은 팀워크를 보여 줬지만, 공격수의 부재로 16강에서 떨어졌었다.

난 이번 월드컵에 대한 욕심이 무럭무럭 생겨났다.

그런 월드컵에서 활약하려면, 주전으로 뛰면서 감각을 유지하고 성장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꼈다.

“두 번째, 원하시는 팀의 전술 성향, 감독의 성향, 플레이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구단 역시 제외했습니다.”

이건 내가 원하는 조건이었다.

가령 너무 수비적인 전술, 또는 축구 팬들이 ‘변태 전술’이라고 불릴 정도로 독특한 스타일은 제외했다.

하지만 이건 약간 선택의 여지가 있다. 여차하면 내가 맞춰 주면 되니까. 그러나 나한테 잘 맞는 팀이 있다면, 굳이 갈 필요는 없다.

“그리고 합당한 이적료와 주급을 제시하는 구단까지 선별하니,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내놓은 세 개의 구단.

AT 마드리드.

첼시.

AC 밀란.

“자,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음.

내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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