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46화 (46/258)

46. Jefferson BOMB (3)

Jefferson BOMB (3)

“도대체 저 9번은 뭐야?”

“저 한 놈한테 수비들이 농락당하고 있어!”

“바산타가 오늘 영 아닌데?”

“아니야. 9번이 너무 잘하는 거야.”

몬테레이 관중들 사이에서 욕설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경기 흐름은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몬테레이는 멕시코에서 상당한 자본을 바탕으로 클래스 있는 선수진을 구성한 것으로 유명한 팀이다.

당장 바산타만 해도 월드컵을 경험한 아르헨티나 대표 센터백이었고, 파트너 세사르 몬테스(César Montes)는 유럽 빅클럽들과 링크가 나는 대형 유망주였다.

멕시코 국가대표인 미겔 라윤 역시 마찬가지다.

한데 그런 수비진이 이리저리 휘둘리다 못해, 벌써 슈팅만 9개를 내줬다.

만일 골키퍼 마르셀로 바로베로(Marcelo Barovero)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스코어는 더 벌어졌을 것이다.

“미쳤군.”

몬테레이 감독, 디에고 알론소(Diego Alonso)는 얼굴을 쓸어 올렸다.

그는 손가락 사이로 수비진을 찢어 버리는 상대팀의 9번을 바라봤다.

“미국에 저런 놈이 있다고?”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타났을까.

‘쟤가 이제 18살이라고?’

그럴 리가.

디에고 감독은 확신했다. 저 자식은 나이를 속인 거라고.

성인 선수들을 말 그대로 날려 버리는 강력한 피지컬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디에고 감독이 진짜 놀란 점은 9번이 경기를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바산타는 피지컬로 찍어 누르고, 경험이 부족한 몬테스는 기술로 농락해 버렸어. 미리 분석해서 상대별 대응 방법을 준비한 거야. 심지어 그걸 경기장에서 그대로 써먹는 거지.’

상대 수비에 맞게 플레이 스타일을 이리저리 바꾼다는 점.

그 사실에 감독은 소름이 돋았다.

피지컬과 기술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도 믿기 어려운데, 경기 흐름에 맞게 플레이 스타일을 바꾼다고?

경기를 보는 시야와 흐름을 읽는 감각.

이건 경험이 필요하다.

한데 18살짜리가 저런다는 건.

‘타고난 거지.’

하지만 이대로 끌려갈 수는 없다. 다행히 토론토는 센터서클까지 수비라인을 올린 상태.

몬테레이는 그 뒷공간을 노릴 힘이 있었다.

“메자! 뒷공간을 노려! 뒷공간!”

인터밀란의 오퍼를 거절한 막시밀리아노 메자는 1,500만 달러(169억 원 가량)로 몬테레이가 영입한 미드필더였다.

양쪽 날개에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이 좋은 선수다.

2018년 월드컵에선 아르헨티나 대표로 출전했을 정도로 실력도 출중했다.

디에고 감독의 주문 이후, 메자는 눈을 빛내며 뒷공간을 노렸다.

라인을 올렸던 토론토의 수비진은 메자의 날카로운 움직임에 실점을 내줬다.

“그렇지! 이거야!”

“몬테레이! 몬테레이! 몬테레이!”

“golgolgolgol!”

“Monterrey! Ohhhh!”

동점골을 내준 상황.

그랜드 감독은 눈썹도 꿈쩍하지 않고 현재의 진용을 유지했다.

“필요 없어! 골만 더 넣으면 돼!”

원정 다득점의 원칙이 적용되니까 화끈한 공격을 계속 요구했다.

[제-퍼슨! 제퍼슨 슈팅!]

[아! 골키퍼 펀칭에 막힙니다!]

[막실리아노 메자! 메자, 박스로 파고들고 바로 때린 슈팅! 골대 옆을 스쳐 지나가네요!]

관중들이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공이 빠르게 서로 진영을 오갔고, 슈팅과 슈팅이 이어졌다.

1대 1의 팽팽한 흐름.

그 흐름을 끊은 건 제퍼슨이었다.

[아! 제-퍼슨! 미국의 왕이 다시 한번 몬테레이의 견제를 이겨 냅니다!]

186cm의 장신.

90kg에 이르는 단단한 근육질의 몸.

거기서 나오는 폭발적인 힘과 무지막지한 스피드.

수비수들이 집중견제를 했지만, 제퍼슨은 그 상황에서도 허공으로 날아오는 패스를 침착하게 발끝으로 툭 치면서 달렸다.

아름다운 퍼스트 터치.

그리고 앞을 막는 세사르 몬테스.

‘멕시코 국대였나?’

어린 나이에 멕시코 국가대표.

그리고 제퍼슨이 아는 미래라면 맨체스터 시티에 이적할 대형 유망주.

그러나 지금은 애송이였다.

뭐, 18살인 제퍼슨이 21살의 몬테스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제퍼슨은 스피드를 죽이지 않고 공을 치고 달렸다.

그리고 몬테스가 조금은 황급하게 달려드는 순간.

그의 움직임이 왼쪽 대각선으로 기민하게 빠지더니, 이내 거칠게 회전했다.

[아아! 제퍼슨 턴! 제퍼슨 턴이 나옵니다!]

[제퍼슨의 트레이드 마크! 허리케인처럼 몬테레이의 수비진을 파괴해 버립니다!]

“미친!”

몬테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스텝뿐만 아니라, 공을 발끝에 달고 휙 돌아버리는 터닝 동작에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넋 놓고 있을 시간은 없다.

막아야 한다.

[제-퍼슨! 그대로 때립니다!]

[오, 세상에! 거리가 있는데 중거리 슛으로 득점에 성공합니다!]

[골골골골골!]

하지만 뒤돌아서는 순간 이미 결과는 나타났다.

제퍼슨은 공간이 생기자마자 중거리 슛을 때렸다.

그 먼 거리에서 강력한 슈팅.

골키퍼가 반응했지만 벌써 골네트에 꽂혀 버리는 속도.

그 가공할 파괴력에 세사르 몬테스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자식은 왜 아직도 미국에 있는 거지?’

***

1차전은 후반전에 제퍼슨이 한 골을 더 추가하면서 3대 1로 끝났다.

그렇다고 2차전을 낙관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골을 넣으려고 몬테레이는 안간힘을 쓸 테니까.

그래서 그랜드 감독은 리그 경기에 로테이션을 돌렸다.

성적은 3경기 1승 1무 1패.

그랜드 감독에겐 당장 눈앞의 2차전이 중요했다.

그건 몬테레이도 마찬가지였다.

홈에서 3골을 내줬기 때문에, 무조건 이번 경기에서 3골을 넣어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지!’

토론토의 수비는 분명 공격보다 약한 편이다.

그러나 압도적인 공격력에 비교해 약하다는 거지, 아예 허술하지는 않았다. 홈에서 고작 한 골 넣은 게 다였으니까.

“우리는 무조건 득점을 해야 해! 수비가 다소 헐거워지더라도, 공세를 펼쳐!”

2차전의 역전극은 최소한 3골이 필요하다.

애매한 숫자다.

스코어가 더 벌어졌으면 의욕조차 생기지 않겠지만, 3골은 분위기만 타면 가능했다.

“상대의 중앙 수비수, 바카와 로드릭. 여기서 로드릭을 노린다.”

디에고 감독은 1차전을 복기했다.

의외로 탄탄한 수비진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대단한 실력을 지닌 알렉산더 바카와, 포백을 보호하는 조슈아에게 있었다.

1차전에서 골을 넣었던 이유는 둘 중 상대적으로 큰 경기 경험이 부족한 로드릭의 틈을 노렸던 것.

디에고 감독은 상대의 골문을 공략하려면 로드릭을 노려야 한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실점은 안 돼. 바산타, 몬테스. 제퍼슨을 막아라.”

“네.”

“라윤. 산티아고를 조심해.”

비장한 표정을 짓는 수비진.

그 모습을 보며 디에고 감독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실점을 더 내주면 가망이 없어.’

1차전에서 제퍼슨은 말 그대로 폭탄이었다.

오바하기 좋아하는 미국 언론이 ‘B21 폭격기’니, ‘제퍼슨 밤’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진짜로 수비진을 찢어 버렸으니까.

노련한 바산타의 경험.

그리고 패기와 단단한 체격의 몬테스.

좌우 풀백을 다 수행하는 국가대표 미겔 라윤.

멕시코에서 적수가 없는 수비진이었지만.

‘불안하군.’

제퍼슨을 막기에는,

불안했다.

디에고 감독은 불안함을 애써 감췄다. 끝까지 선수들을 믿고 힘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상대팀의 뒷공간을 노려! 조슈아는 느리고, 로드릭은 부족하고, 바카는 다소 성급한 면모가 있다! 우리의 공격력이라면, 북중미 최강이야! 까짓것 유럽 애들하고 붙어도 문제가 없단 말이지!

“Si(네)!"

“여기까지 원정 온 팬들을 위해 싸우자!”

디에고 감독은 필드로 나갔다.

붉은 물결이 가득한 BMO 필드.

그들 중에 감독의 시선을 끄는 큰 플래카드가 있었다.

아니, 플래카드라고 부르기에는 뭐한.

사람의 입간판이었다.

“캡틴 아메리카?”

유명 영화로 잘 알려진 히어로.

성조기가 그려진 파란색 코스프레에 9번, 제퍼슨 리의 얼굴이 합성된 입간판.

거기까지는 이해했다.

제퍼슨이 미국에서 어떤 별명으로 불리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왜 캡틴 아메리카가 손에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있어?”

***

경기 시작하고 6분이 지났을 때.

디에고는 왜 캡틴 아메리카가 손에 폭탄을 들고 있는지 깨달았다.

[아아-! 제퍼슨! 조나단의 크로스를 그대로 골문 안으로 때려 박아 버립니다!]

[골! 골골골골골! 제퍼슨의 선제 헤더골! 경기 시작하자마자 BMO필드가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타점까지 뛰어올라, 바닥을 향해 찍어 버리는 헤더.

그 강력한 헤더는 허공에서 뚝, 골문을 갈랐다.

마치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제퍼슨 밤(Jefferson BOMB)! 몬테레이를 폭발시킵니다!]

***

우승컵을 드는 건 늘 기쁜 일이다.

4월. 우리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다.

“보통 챔피언스리그는 정규리그가 끝날 때쯤에 결승전을 하는데, 여긴 색다르네.”

“좋잖아. 이제 리그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산티아고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동안 리그 경기,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캐나다 팀들의 FA컵인 캐네디언 챔피언십까지.

3개월 만에 무려 25경기를 뛰었다.

솔직히 말해 나도 지치는 느낌이 있었다.

아무리 내 트레이닝 팀이 각고의 노력을 했어도, 내 신체는 아직도 성장 중이었고 지구력이 한참 부족한 미식축구의 신체였으니까.

그래도 25경기.

풀타임 경기는 많지 않지만, 25경기 동안 34골을 때려 박았으니.

난 내 역할을 다했다.

아직 리그 경기는 많이 남았다.

2위 DC와 승점차가 크다. DC는 루니의 노쇠화가 뚜렷해지고, 루치아노 아코스타가 PSG로 이적하면서 공격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

우리 팀은 단독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었다.

덕분에 팀에 여유가 있었고, 감독님은 내 출전 시간을 조절해 주면서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많이 주셨다.

“산티, 제프! 오늘은 우리 클럽에 갈까?”

챔피언스리그 우승.

그리고 리그 일정 변경으로 인해 일주일의 여유가 생겨서 휴가가 주어졌다.

한데 로드릭은 바로 클럽부터 생각하다니.

이러다가 큰일 날라.

“안 돼. 우린 할 게 있어.”

“뭐?”

“체력 훈련.”

“······!”

“제-프.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괜찮아. 조금 약하게 피로 회복에만 중점을 둘 거니까.”

내 말에 로드릭과 산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질린다.”

“축구에 미친놈.”

“미식축구만 하던 놈이 왜 축구에 이렇게 미친 거야.”

“그러니까.”

“하긴, 저렇게 축구만 생각하니 말도 안 되는 성적을 내지.”

“맞아.”

저 둘이 뒷말을 계속해도, 체력 훈련은 계획대로 할 거다.

사실 나도 놀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율리아겐과 디 파코가 새로운 루틴을 준비했다니 별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두 명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클럽하우스를 나오던 도중.

웬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앞에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제퍼슨 리.”

“······누구세요?”

영국식 억양의 영어.

미국인이 아니었다. 세련된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는 겉보기엔 비즈니스맨처럼 보이지만, 꽉 쪼인 옷맵시를 보건대 탄탄한 근육질의 몸이었다. 마치 선수 출신처럼. 남자는 씩 웃으면서 명함을 건넸다.

명함을 본 나는 미간을 좁혔다.

허.

이렇게 접근을 하네.

“······음. 런던에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드디어 본격적으로 접촉을 해 오는구나.

런던의 붉은 유니폼.

“우리 구너스의 일원이 되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마음에,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제퍼슨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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