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45화 (45/258)

45. Jefferson BOMB (2)

Jefferson BOMB (2)

데뷔 시즌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인 신인선수가 다음 시즌에서 죽 쑤는 건 꽤 흔한 일이다.

“반짝 스타가 어디 한둘이었어?”

데뷔 직후의 선수는 수비수에게 낯설다.

특징도, 습관도, 플레이 스타일도 잘 모른다.

경기 수가 적어 분석할 데이터가 충분치 않아 대처 방법이 확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 시즌의 상대팀들은 충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준비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전 시즌 같은 충격은 주지 못한다.

“제퍼슨? 그 애송이가 두 번째 시즌에도 통할 거 같아?”

“반시즌 반짝인 거지. 그리고 이젠 몇 경기를 뛰어야 하는데?”

“고작 15경기를 뛰었어. 이젠 60경기를 뛰어야 한다고.”

“흥. 보라지. 잘하는 선수인 건 인정해. 그래도 작년처럼은 못할걸? 우리 팀 수비도 만만치 않다고!”

그런데 그들의 의견이 얼마나 허무맹랑했었는지 깨닫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골! 골골골골! 제-퍼슨! 미국의 왕이 뉴욕에 깃발을 꽂습니다!]

[제-퍼슨! 두 골을 기록하며 개막전 승리를 이끕니다!]

개막전, 뉴욕 레드불스전 2득점.

2대 0 승리.

[오, 세상에!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제퍼슨, 애틀랜타를 상대로 이번 시즌 첫 해트트릭을 기록합니다!]

2R, 애틀랜타 유나이티드전, 해트트릭 .

4대 2 승리.

[도대체 누가 막죠? 시셀도가 없는 뉴잉글랜드의 수비는 이제는 제퍼슨을 막지 못합니다! 제퍼슨 턴에 이은 완벽한 득점! 저번 시즌부터 지금까지 18경기 연속골 기록을 경신합니다!]

3R, 뉴잉글랜드전 1득점 2대 1 승리

[제-퍼슨! 제----퍼슨! 코스타리카의 LD 알라후엘렌세를 상대로 1차전 한 골, 2차전 두 골을 기록하며 무너뜨립니다! 토론토가 이겼습니다! 스코어 총합 6:2로 CONCACAF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합니다!]

CONCACAF 챔피언스리그 16강

LD 알라후엘렌세 1, 2차전 3득점.

[무너지는 토론토를, 교체된 제퍼슨이 DC의 수비를 부수고 두 골을 넣어 동점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제퍼슨이 패배의 수렁으로부터 팀을 구합니다!]

4R, DC유나이티드전 2득점

2대 2 무승부.

[오, 맙소사! 엄청납니다! 엄청난 골입니다! 빨랫줄 같은 중거리 슛으로 시카고를 박살을 내 버립니다! 제-퍼슨! 폭탄을 터뜨립니다!]

5R, 시카고전 1득점

1대 0 승리.

[제퍼슨! 5라운드 동안 9골을 집어넣으면서 리그에 폭탄을 터뜨립니다!]

[제퍼슨 밤(Jefferson BOMB)!]

[리그에 폭탄을 터뜨리는 제퍼슨! 차원이 다른 클래스!]

[루니도, 즐라탄도, 카를로스 벨라도 따라잡지 못하는 득점 선두!]

3개월 동안 개인 트레이닝팀과의 착실한 훈련.

그 시간 동안 제퍼슨은 괴물이 되었다.

***

“도대체 너희들은 뭐냐?”

별안간 라커룸에 들어온 그랜드 감독님이 소리쳤다.

감독님의 라커룸 대화 스타일은 사실 종잡기 힘들다.

웃다가, 소리 지르다가, 화를 내거나,

감정 기복이 심하신 편이다.

그래도 은근히 선수들을 잘 챙겨서 의외로 덕장 스타일이다.

그런데 지금 발언은 나도 잘 모르겠다.

“도대체 너희들은 뭔데 이렇게 축구를 잘하는 거지?”

“오, 감독님!”

“하하하!”

“아냐. 진짜. 내가 맡은 팀 중에 너희만큼 잘하는 팀은 없다고. 내가 이끄는 팀이 레알 마드리드인가?”

아, 농담도 너무 가셨다.

선수들이 우우! 거리면서 장난스럽게 야유하자 그랜드 감독은 씩 웃었다.

이게 감독님이 라커룸에서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 주는 방법이었다. 뭐, 이번 경기는 긴장할 만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해야지!”

CONCACAF 챔피언스리그는 일정이 특이한 편이다.

2월에서 4월까지, 3개월 동안 16개의 팀이 토너먼트를 치른다.

우리는 16강에서 코스타리카의 LS 알라후엘렌세를 총합 스코어 6:2로 잡았고,

8강에선 US 오픈컵(FA컵) 우승팀인 캔자스 시티를 3:0으로.

4강에선 멕시코의 리가MX 13회 우승에 빛나는 클루브 아메리카를 꺾었다.

특히 클루브 아메리카는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팀이었다.

우리 팀은 모든 언론의 예상을 깨고 6:0 대승을 거뒀다.

그동안 내가 3경기에서 터뜨린 골이 무려 8골이다.

그리고 이번에 우리가 만나는 결승전 상대.

멕시코의 신흥강호이자, 작년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CF 몬테레이였다.

“이건 우리들의 자존심이다!”

그랜드 감독이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CONCACAF 챔피언스리그는 멕시코 클럽이 우승 36회, 준우승 20회를 차지했다.

오죽하면 북중미 챔피언스리그가 아니라, 멕시코 컵대회라는 별명이 붙었겠나.

그에 반해 북중미 축구의 강호라고 불리는 미국은 우승기록이 딱 2번 있다.

DC가 90년대 후반, 그리고 LA 갤럭시가 2000년에 한 번씩 우승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이건 미국 축구팬의 자존심인 셈이다.

뭐, 정확히는 MLS 축구팬들의 자존심이지. 명확히 말해선 우리 팀은 캐나다팀이니까.

사실 이런 건 상관없다.

토론토는 결승전까지 왔고,

이제 우승을 차지해야만 한다.

“알렉산더 바카! 제임스 로드릭!”

아, 그러고 보니 오늘 로드릭이 선발이다.

점차 기회를 얻는 로드릭은 많이 발전했다. 바카의 파트너였던 노쇠한 센터백을 제치고 서서히 눈도장을 찍더니, 선발자리마저 빼앗았다.

“오늘 너희는 수비하지 마라.”

“네?”

“너흰 오늘 미드필더다!”

“그게 무슨······?”

“무조건 올라가! 골? 먹혀도 돼! 올라가서 공 뺏고 앞으로 뿌리고!”

“그건······.”

“다 올라가란 말이다! 조슈아!”

“네.”

“수비수들이 조금이라도 박스 앞에 있으면 네가 가서 멱살 잡고 끌고 와 버려!”

조슈아가 피식 웃었다.

“안 따라오면 때려도 됩니까?”

“물론. 얼굴은 피하고.”

“감독님!”

바카와 로드릭이 울상을 지었다.

두 어린 선수에게 카리스마 넘치는 조슈아는 무서운 선배님 같았으니까.

조슈아는 이번 시즌도 팀의 중심을 잘 잡아 주고 있었다.

이 양반도 참으로 독했다. 플레이오프 결승 때 부상은 심각했다. 하지만 재활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고, 이를 돕기 위해 내 트레이닝팀까지 동원했다.

‘한 시즌만 더 뛰고. 모든 우승컵을 들고 은퇴할 거다.’

우승의 맛을 한번 느꼈으니까.

그도 이번에 더 우승을 차지하고 싶은 거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CONCACAF 챔피언스리그.

별들의 무대, 북중미에서는 가장 치열하고 권위 있으며 명성이 높은 대회다.

“제-프!”

“네, 감독님.”

“최소한 두 골 넣기 전까지 라커룸에 들어올 생각 따윈 쓰레기통에 갖다 버려!!”

“음. 하프타임때 들어와야 하니, 그전에 끝내죠.”

“미친놈!”

라커룸에서 ‘와’하고 웃음이 터졌다.

***

멕시코 클럽 소속인 만큼,

MLS에 속한 클럽과(비록 캐나다 팀이지만)의 경기는 치열할 수밖에 없다.

53,500명을 수용하는 에스타디오 BBVA 반코메르(Estadio BBVA Bancomer)는 축구에 열광하는 멕시코 축구팬들이 가득 찼다.

“Monterrey! Monterrey! Vamos, golgolgol!(몬테레이, 몬테레이, 어서 골을 넣어라!)”

미국과 멕시코는 북중미의 축구 라이벌이었고, 비록 캐나다 클럽이지만 멕시코 팬들은 토론토를 미국팀이나 다름없다고 인식했다.

필드에 올라선 토론토의 선수들이 주눅이 들 정도로 응원은 열정적이었고, 폭력적이었다.

그러나 제퍼슨은 기죽지 않고 공을 잡은 후 천천히 올라갔다.

4-2-3-1의 포메이션을 유지하는 몬테레이는 밸런스를 중요시하면서도 공격적인 색채를 가진 팀이다.

선수들 대부분은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출신으로, 화려한 테크닉과 득점력을 가지고 있어서 폭발적인 공격력을 자랑한다.

그런데도 밸런스를 맞추는 건, 수비에서 호세 마리아 바산타(José María Basanta)의 능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센터백으로, 2014 월드컵까지 다녀온 바산타는 경험과 노련함을 갖춘 클래스 있는 선수였다.

몬테레이에서 주급도 2억씩이나 받아가는 핵심 선수.

그는 눈을 빛내며 전진해 오는 제퍼슨을 노려봤다.

‘그래 봤자 미국의 애송이다.’

미국의 신성이라는 제퍼슨 리.

실력이 뛰어난 건 인정한다.

그러나 바산타는 전성기에 월드컵에서 대단한 공격수를 상대했던 경험이 있다. 비록 지금은 그때보다 피지컬적으로 부족해지고, 발도 느려졌지만, 경험만큼은 깊어졌다.

‘몸으로 싸우면 솔직히 이길 자신 없다.’

그는 빠르게 판단했다.

화려한 테크닉, 폭발적인 속도, 탱크 같은 묵직한 힘.

바산타는 자신의 피지컬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인정했다.

‘길을 막고 흐름을 막는다.’

공을 뺏을 필요는 없다.

멀리 걷어 내거나, 라인 바깥으로 보내거나.

흐름만 끊으면, 몬테레이의 위력적인 공격수들이 해결해 주리라.

그러나 바산타가 착각한 게 있다.

수비수가 공격수를 미리 분석하고 대비하는 것처럼,

공격수도 마찬가지란 점을 말이다.

툭.

공을 차고 들어오는 제퍼슨.

바산타가 거리를 유지하면서 쉽게 태클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는 노련했다. 상대 선수의 발재간을 분석했고, 그에 맞는 태클을 준비했다. 이제 제퍼슨이 개인기를 시도하면 공만 툭 건들면 된다.

“······!”

그러나 그 순간, 제퍼슨의 선택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퍽!

“컥!”

팬텀 드리블도, 상체 페인트도, 고스트 스텝도, 제퍼슨 턴도 아닌.

그저 묵직한 돌파.

정면만 바라보고 순간적으로 속도를 올리며 공을 툭 차고, 바산타를 몸으로 밀어붙여서 쓰러뜨리는 움직임.

“미친!”

바산타는 숨이 막힌 기분으로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 틈.

바산타가 제퍼슨을 막아 주리라 믿었던 백업 수비수가 급하게 태클을 시도했다.

그때서야 제퍼슨의 화려한 개인기가 펼쳐졌다.

왼발, 오른발을 오가면서 가볍게 제치는 움직임.

팬텀 드리블이었다.

“Wooooooohhhhh!”

캐나다에서 날아온 토론토 원정팬의 환호.

순식간에 피지컬, 그리고 기술로 수비 둘을 벗겨 내 버린 제퍼슨의 플레이에 몬테레이 관중들은 일제히 말을 잃었다.

“미친!”

“지랄 맞아!”

“저 자식 누구야!”

“바산타가 저렇게 약했나?”

제퍼슨은 바산타를 미리 분석했다.

전성기의 바산타라면 피지컬도 만만치 않을 터. 하나, 이제는 35살. 황혼기에 접어드는 선수인 만큼 피지컬보단 노련한 플레이가 특기인 선수였다.

그런 선수를 상대로 굳이 개인기로 승부를 볼 이유가 하등 없었다.

제퍼슨은 자신의 장점을 마음껏 발휘했다.

엄청난 피지컬로 그냥 찍어 누른 것이다.

백업 센터백을 팬텀 드리블로 제쳤으며,

뒤늦게 달려오던 멕시코 국가대표 풀백, 미겔 라윤(Miguel Layún)을 봤다.

미겔 라윤 역시 심심찮게 빅클럽과 링크가 나는 대단한 풀백.

하지만 제퍼슨은 긴장한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옅은 미소를 띄웠다.

그 미소에 미겔 라윤이 멈칫하는 순간.

‘뭐?’

아웃사이드로 오른쪽으로 툭 빠져나가는 패스.

“······!”

미겔 라윤이 중앙으로 오면서, 빈 우측 공간.

그 공간에 산티아고가 날쌘 움직임으로 파고들었다.

제퍼슨의 돌파와 간결한 패스, 그리고 공간을 보고 파고드는 산티아고의 침투는 조나단의 크로스와 제퍼슨의 헤더에 이은 토론토의 또 다른 득점 루트였다.

MLS의 수많은 팀들이 고배를 마신 그 득점 루트에.

몬테레이도 무너졌다.

“Gooooooooal!”

골문 구석을 향해 정확히 빨려 들어가는 산티아고의 골.

멕시코 최고 수비를 자랑하던 수비진들의 얼굴에 아연해졌다.

***

“미쳤군. 바산타면 월드컵까지 갔다 온 노련한 놈이고, 파트너인 세사르 몬테스는 맨시티가 노리는 친구잖아?”

“심지어 금방 속여 넘긴 미겔 라윤도 우리가 영입할 만할 정도로 클래스 있는 선수야.”

“그런 수비진을 18살짜리가 농락했다고?”

“당장 오늘 경기 끝나고 스카우트 보고서 만들어서 올려 보내. 이건 놓쳐선 안 돼!”

그리고 경기장 어느 한편.

유럽에서 온 일단의 남자들이 흥분된 얼굴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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