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40화 (40/258)

40. 플레이오프 (3)

플레이오프 (3)

부상이라면 지긋지긋했다.

남들은 큰 문제가 없을 태클이나 파울에도 픽픽 넘어지고, 부상에 신음하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서포터즈들이 나를 종이 인형이라고 불렀겠나. 그만큼 반칙에 취약했다.

‘참. 어느 리그나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내가 겪은 리그는 제법 많다.

분데스리가를 시작으로, 유럽의 변방이었던 벨기에. 그리고 케이리그와 일본의 J리그까지.

그 모든 리그에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공통점이 하나가 있었다.

‘또라이 보존의 법칙.’

신기하게도 어느 리그에나 또라이가 한 명 이상은 꼭 있었다.

가령 뉴욕 시티의 루카스 그레이엄같은.

어떤 또라이냐고?

‘반칙을 축구 기술 중 하나라고 여기는 놈.’

물론 반칙도 축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방법의 하나긴 하다. 파울로 위험 상황을 무마하는 경우는 월드 클래스 수비도 종종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보통 ‘영리한 파울’이라고 부르지, 비열한 반칙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레이엄 같은 경우는 전혀 다르다.

수비를 위한 반칙이 아니라, 순전히 상대 선수를 약화시키기 위해 비열한 짓거리를 벌인다.

저번 경기에서 보지 않았던가.

산티아고에게 했던 태클, 조슈아에게 하던 조롱과 비아냥.

그 모든 건 순전히 필드 위의 상대를 무시하고, 짓밟고, 무너뜨리기 위한 비열한 짓이었다.

‘실수야. 그때 완전히 밟아 줘야했어.’

내 실수다.

물론 그는 나에게 깊은 수모를 당했다.

평점 3점대.

개인 커리어 최악의 평점.

거기에 퇴장에 PK까지. 일부러 강슛을 얼굴에 맞춰 코피까지 터뜨리긴 했는데······.

‘인성 개조엔 부족했나.’

뉴욕 시티와 몬트리올이 붙은 플레이오프 경기를 비디오로 돌려 봤다.

역시나 이놈, 변함이 없었다.

교묘하고 비열한 태클로 상대 선수를 들것에 실려 가게 했다.

그리고는 아무런 문제없다는 듯 천연덕스러운 표정.

그래 놓고 뭐, 인터뷰로 입을 털어?

‘축구로 이기겠다고?’

이놈, 분명히 우리와 경기에서도 이 짓거리를 할 게 분명했다.

이런 축구는 사라져야 한다.

더구나 MLS는 발전하고 있다. 빠르게 늘고 있는 관중, 경기장을 차지하는 가족 중심의 팬, 좋은 경기력과 페어플레이를 위해선 악의로 가득 찬 반칙 플레이는 사라져야 옳다.

필드 위에서 서로 싸우지만,

결국, 축구공을 차고 돈을 받는 프로선수다.

스포츠가 더 스포츠다워지려면,

적어도 남자답게 싸워야하지 않을까.

비열한 반칙이 아닌, 실력과 승부로.

나는 이학현으로 살 때 늘 패스의 중심이 되는 2선 미드필더였다. 자연히 많은 반칙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또라이들을 만나는 건 부지기수였고.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고 하긴 했지만······.’

부딪치면 약해 빠진 내 몸만 축날 뿐이었다. 보복은커녕, 피하는 데에만 중점을 뒀다. 그래서 반칙과 몸싸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압박 능력을 미친 듯이 길렀다.

거기에 어떤 선수가 어떤 식으로 반칙을 하는지, 어떤 식으로 심판의 눈을 속이는지.

비디오를 모두 돌려 보고, 연구하고 또 분석했다.

그게 내가 살아남았던 방법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웬만한 선수보다 반칙을 잘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다만 나 역시 반칙 때문에 툭하면 다쳐 힘들었으니 그런 반칙에 있어서 부정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수비를 위한 플레이가 아닌, 엄연히 악의를 가진 반칙이다. 더는 지켜봐 줄 생각이 없었다.

반칙 기술을 못 쓰는 게 아니라, 안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에게 확실히 가르쳐 주기 위해 이 경기만큼은 악역을 자처하겠다.

그가 해온 방식대로.

쓰레기는, 쓰레기처럼 다뤄 줘야 했다.

***

[동부 플레이오프 2차전, 무패의 토론토가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뉴욕 시티와 맞붙습니다.]

[최근에 두 팀이 만났던 경기는 그야말로 치열했죠.]

[네. 파울 수가 양 팀 총합 43개가 나온 경기였죠. 퇴장 한 명에 경고만 9명이 받은, 그야말로 난투극에 가까운 경기였습니다.]

[오늘 경기가 기대되네요. 양 팀이 서로에게 어느 정도 감정이 상해 있을 텐데, 과연 누가 이길지, 토론토의 선축으로 경기 시작됩니다!]

삑.

4-2-3-1의 포메이션의 토론토.

중원에 조슈아와 마이클 브래들리.

2선에 조나단, 바스케스, 산티아고.

원톱에 제퍼슨.

그에 반해 뉴욕은 다소 변형된 4-3-3, 거의 4-3-1-2에 가까운 전술이었다.

[아, 중원에서부터 경기 치열합니다.]

[본래는 좀 더 중원에서 힘이 더 강한 뉴욕이었습니다만, 조슈아의 영입 이후 토론토의 중원도 만만치 않네요.]

[조슈아의 차단과 브래들리의 활발한 공수양면의 움직임, 그리고 바스케스의 번뜩이는 창의력은 이제 리그 최고라고 말해도 되겠네요.]

뉴욕 시티는 단단히 준비해 왔다.

상당히 영리한 움직임으로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면서 중원에서부터 압박을 더 강하게 시도했다.

다소 처진 입장에서 수비만 하던 홀딩 미드필더, 루카스 그레이엄도 엄청나게 뛰어다녔다.

그레이엄은 이를 악물고 자신이 막아야 할 선수를 바라봤다.

‘제퍼슨 리.’

저번 정규리그 경기의 치욕을 잊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어찌 잊겠는가.

평점 3점대는 난생처음이었다.

경기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당했었다.

심지어 팬들에게도 온갖 욕을 먹고, 감독도 라커룸에서 물건을 집어 던졌다.

‘빌어먹을. 그건 할리우드였다고.’

마지막 내준 PK.

물론 태클은 아예 박살을 낼 생각으로 시도한 것이긴 했다. 자신을 농락하는 플레이가 훤히 보이길래, 그냥 담가 버리자는 생각으로 태클을 했다.

하지만 얻은 건 없었다.

태클은 실패했고, PK만 내주고 퇴장당했다. 차라리 태클이라도 성공했으면 덜 억울하겠다만.

‘이번엔 작살 낸다.’

그레이엄은 순수하지 않다.

정당한 몸싸움으로 저 괴물을 막아 낸다고?

웃기는 소리.

‘A매치에서도 날뛰던 놈이고, 시셀도도 박살을 내버린 애야.’

그런 놈을 어찌 막겠나.

다행히 오늘 심판은 휘슬은 자주 불지만, 카드는 좀처럼 꺼내지 않는 유형이다.

‘제퍼슨. 뭐 캡틴 아메리카? 그 단단한 몸이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고.’

때마침 제퍼슨이 그가 있는 방향으로 공을 몰고 거칠게 돌파해 왔다.

과연 엄청난 기술이었다.

대각선으로 빠지는 고스트 스텝에 미드필더들이 농락당했다.

‘은근슬쩍 가슴을 찌르는 거야.’

어떻게 혼쭐을 내줄지 마음먹는 순간.

제퍼슨이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그레이엄도 작정하고 몸을 부딪쳤다. 심판이 보지 못하게 슬쩍 어깨를 돌리면서 손을 쑤욱!

[아! 그레이엄! 제퍼슨과 부딪칩니다!]

[그레이엄 무너지네요. 제퍼슨의 강력한 몸싸움에 나가떨어집니다!]

[터프한 그레이엄이 `인형처럼 나가떨어지네요. 도대체 제퍼슨 선수의 피지컬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컥!”

그러나 두 눈을 크게 뜨면서 바닥에 나동그라진 건 그레이엄이었다.

그레이엄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숨이 턱 막혔다.

쓰러진 그를 뒤로하고 제퍼슨은 유유히 공을 몰고 지나갔다.

심판은 흘깃 바라보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경기를 속행했다.

“저 자식······!”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팔꿈치.

가슴 한복판을 정확히 얻어맞았다. 그 두꺼운 팔뚝에 말이다.

그때 그레이엄은 직감할 수 있었다.

오늘, 뭔가 잘못됐다고.

***

흥. 아주 박살 내주마.

나도 일부러 선수에게 반칙 쓰는 거 싫어한다.

근데 그건 같은 축구 선수에게나 통하는 말이지.

그레이엄 저 자식 아까부터 은근슬쩍 꼬집고, 산티의 허벅지를 걷어차고······. 아주 가관이었다.

저대로 놔두면 우리 팀 누구 하나는 실려 갈 판이었으니.

나도 이번만큼은 봐줄 생각이 없었다.

“제-프! 받아!”

반대편 조나단이 긴 패스를 보냈다.

공을 발바닥으로 가볍게 안착시키자, 수비수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은 충분.

그때 그레이엄의 얼굴이 보였다.

‘마침 방향도 딱 알맞고.’

난 거리낌 없이 슈팅을 그대로 때려 버렸다.

퍼억!

그리고 우.연.히도 슈팅이 그레이엄의 얼굴에 적중했다.

“으으으!”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진 그레이엄.

하지만 심판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그레이엄은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고, 내 슈팅 박자가 더 빨랐다는 판단이다. 그러니까 내가 슈팅을 때리는 데 와서 맞았다는 거지.

그럴 수밖에.

그것까지 계산하고 때린 타이밍이거든.

“괜찮아? 그레이엄?”

“너 이 자식!”

눈이 벌게지고 코피를 철철 흘리는 모습이었다. 난 그를 보면서 은근슬쩍 미소를 지어 줬다.

“좋은 수비였어. 회심의 슈팅이었는데 그걸 막네.”

“······너!”

“저번처럼 평점 3점은 안 받겠다는 거군. 오늘 좋은 플레이야.”

평점 4점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레이엄이 화가 난 채 씩씩거리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몸을 돌렸다.

어디서 내로남불이야.

자, 이제 시작이다. 이 자식아.

***

[아! 그레이엄! 또 쓰러집니다!]

[오늘 제퍼슨의 터프한 공격에 그레이엄이 맥을 못 추네요.]

[이러다가 부상이라도 당하겠는데요?]

[하지만 심판, 정당한 몸싸움이란 판정입니다. 제퍼슨이 먼저 어깨를 집어넣고 싸웠다는 거죠.]

[그레이엄, 또다시 저번 맞대결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윽!”

그레이엄은 온몸이 저렸다.

차라리 정당한 몸싸움에서 밀린 거면 괜찮다.

그러나 가슴과 배, 허벅지까지.

놀랍게도, 제퍼슨은 자신보다 교묘하게 반칙을 잘했다.

심판이 못 보게 손가락을 놀려서 찌르거나 꼬집는 건 아주 예사였고, 경합과정에서 넘어지는 척 무릎으로 허벅지를 찍는 건 기본이었으며, 슈팅으로 몸을 맞추는 건 양념이었다.

“으아아! 제기랄!”

그렇게라도 제퍼슨을 막았으면 모르겠다.

[제-퍼슨! 골입니다. 골골골골!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으면서 뉴욕을 무너뜨립니다!]

[그레이엄을 무너뜨리고 타이밍을 빼앗으며 때린 강력한 중거리 슈팅!]

[빨랫줄 같은 슈팅이 골네트에 꽂힙니다!]

제퍼슨의 패스를 이어받은 산티아고가 선제골.

그리고 방금, 은근슬쩍 허벅지를 꼬집고 자신을 무너뜨린 뒤 때린 중거리 슈팅에 제퍼슨이 득점을 기록했다.

애석하게도 그 두 골 모두가, 자신이 제퍼슨을 놓친 탓에 벌어진 결과였다.

“이 개자식! 당장 나와!”

벤치에서 교체 판넬이 들어 올려졌다.

[헤일스 맨디 IN 루카스 그레이엄 OUT]

전반 시작한 지 34분만의 교체아웃.

그레이엄은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야유와 욕설을 쏟아붓는 홈 관중.

그리고 시뻘건 얼굴의 감독까지.

“그레이엄! 오늘 끔찍한 플레이였어! 빌어먹을! 다음 재계약? 어림도 없다! 이 개자식아!”

선수 재계약에 꽤 입김이 있는 감독의 독설이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그레이엄은 그제야 일이 단단히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좆됐다.’

***

“Woooooooooo-!”

엄청난 야유가 경기장에 쏟아졌다.

제퍼슨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공을 잡은 것이다.

뉴욕 시티 팬들은 반사적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괴물 같은 9번이 공을 잡으면 수비진은 언제나 무너졌다.

노이로제에 걸릴 것만 같았다.

제퍼슨 리가 공만 잡으면 ‘또?’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으니까.

“제발 막아라!”

“뉴욕! 뉴욕! 제발 막으라고!”

“애송이 하나 못 막으면서 연봉 타가는 거냐! 이 개자식들아!”

관중들의 흥분된 목소리를 뒤로하고,

제퍼슨은 침착하게 공을 잡고, 앞을 막는 슬라이딩 태클을 살짝 뛰어올라 피한 다음에 골문 구석을 향해 인스텝 슈팅을 밀어 넣었다.

정확히 구석 지점. 골포스트를 살짝 스치면서 들어가는 깔끔한 골.

“제------퍼슨!”

“오 우리의 왕! 빌어먹을, 제퍼슨!”

소수의 원정팬이 벌떡 일어나고,

제퍼슨은 야유를 퍼붓는 뉴욕의 관중을 향해 손가락을 입술에 올렸다.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

“저 개자식!”

“죽여 버릴 거야!”

“캐나다에 가기 전에 샷건을 갈겨 주마!”

온갖 폭력적인 언어가 쏟아졌지만, 제퍼슨은 여유롭게 세레머니를 마쳤다.

3대 0.

플레이오프 2차전, 제퍼슨의 2골 1도움의 활약에 힘입어 토론토가 승리를 거뒀다.

***

플레이오프 결승까지 딱 한 경기가 남았다.

결승전은 서부팀의 플레이오프를 거친 팀과 겨룬다.

[웨인 루니! 뉴잉글랜드의 철조망을 연장 혈투 끝에 무너뜨립니다!]

[118분에 터진 극적인 결승골! 웨인 루니가 뉴잉글랜드를 침몰시키고, 플레이오프 3차전의 티켓을 손에 쥡니다!]

DC와 뉴잉글랜드의 경기.

시셀도가 잘 버텼지만, 연장 혈투 끝에 루니가 결승골을 넣었다.

그리고 그 옆의 TV에선 서부지구 플레이오프의 경기가 나오고 있었다.

[즐라탄! 즐-라탄! 오, 세상에! 즐라탄! 해트트릭을 기록합니다! LA FC를 무너뜨립니다!]

[카를로스 벨라가 두 골을 넣었지만, 즐라탄 혼자 세 골을 넣으며 플레이오프에서 승리를 거두네요!]

LA 갤럭시가 이겼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루니의 DC를 잡으면 즐라탄의 갤럭시를 만날 확률이 높다는 거지?’

이학현일 때는, 그저 우러러봤던 스타플레이어들.

그들과의 맞대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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