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39화 (39/258)

39. 플레이오프 (2)

애틀랜타 유나이티드의 관중들은 열정적이지만 훌리건처럼 폭력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플레이오프는 그들을 오늘만큼은 훌리건으로 바꿔 버렸다.

리그 7위도 단판 승부를 통해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으니 관중석의 분위기도 공격적이었다.

“Fucking! 캐나다 촌놈들, 박살을 내라고!”

“애틀랜타, 이 자식들은 광탈하고 집에 가서 코카콜라나 마시면서 TV로 보라고 해!”

코카콜라 본사가 있는 애틀랜타를 꼬집으며 양 팀의 팬들은 서로 공격적으로 구호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애틀랜타 팬들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 들어갔다.

“F······ uck!”

“9번, 저거 진짜 미친 거 아니야?”

“국대에서도 날아다니더만. 제기랄!”

치열하고도 격렬한 분위기 속에서.

제퍼슨의 움직임에 애틀랜타 팬들의 얼굴은 점점 울상으로 변했다.

“Wooooooohhhhh-!"

제퍼슨이 수비들을 끌고 다니면서 매섭게 드리블을 했다.

“빌어먹을! 자리 지켜! 이 얼간이들아!”

“피리 부는 사나이냐! 왜 쟤만 쫓아다녀!”

애틀랜타 팬들은 직감했다.

제퍼슨에게 몰린 수비 때문에 벌어진 뒷공간. 그리고 그 틈을 노린 산티아고의 눈이 번뜩였다.

제퍼슨의 파트너로 출격한 산티아고는 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만큼은 리그 최고였다.

공간을 침투하는 산티아고의 매섭고 빠른 움직임.

표범을 보는 듯한 날카로운 움직임에 아름다운 패스가 도착했다.

“홀리 쉣!”

“Fuck!”

그리고 그 패스를 이어받아 깔끔하게 골대 구석으로 밀어 넣는 슛.

슈팅은 마지막 패스라는 격언을 그대로 떠올릴 듯한 깔끔한 마무리였다.

“Goooooaaaaall!”

후반전이 시작한 지 10분 만에 2 대 0.

전반전을 잘 버틴 애틀랜타가 빠르게 침몰하고 있었다.

***

거친 야유와 응원이 동시에 쏟아진다.

산티는 야유를 펼치는 관중들을 바라보면서 크게 반원을 그리며 뛰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귓가에 대는 셀레브레이션.

“저 자식을 죽여 버려!”

“Fucking, 멕시칸 자식!”

“꺼져 버려!”

저 녀석.

이제 슬슬 본색을 드러내네.

당연히 애틀랜타 팬들이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야유와 욕설이 쏟아졌지만, 산티아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산책 세레머니를 완벽하게 마쳤다.

그리고 태연한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패스 좋았어, 제프!”

“너 내가 A매치 갔다 온 사이 성격이 좀 변한 거 같다?”

“안 그래도 경기 시작 전부터 멕시칸이라고 욕하더라고.”

산티는 뭐가 문제냐는 듯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음, 그렇지.

욕먹고 가만히 있으면 그건 멍청한 놈이지.

“Fucking, 제퍼슨! Fuck! Fuuuuuck!"

음······.

애틀랜타 팬들이 많이 격분했나 보다.

나한테도 욕을 하네.

“가만히 있을 거야?”

“아니.”

난 씩 웃었다.

욕먹고 가만히 있을 리가.

***

[제퍼슨! 오늘 경기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뜁니다!]

[맙소사. 또 한 번 선수를 제치고 골문 앞에서 슈팅을 때립니다!]

[빨랫줄 같은 슈팅! 아! 골키퍼의 선방입니다!]

[오늘 제퍼슨은, 역시 제퍼슨이란 말이 절로 나오네요! A매치를 경험하고 온 이후로 더 발전된 모습 같은데요?]

[국가대표에서 캡틴 아메리카란 별명이 붙었죠. 그 별명처럼 늠름하게 경기를 지배하면서 공격진의 가장 최전방에서 싸워 줍니다!]

애틀랜타는 양쪽 측면이 약했다.

토론토는 제퍼슨을 중심으로 한 쓰리톱.

조나단 오소리오와 오른쪽의 산티아고의 움직임이 어우러져 폭발적인 공격력이 터져 나왔다.

양쪽 측면을 무자비하게 파고들고 조나단은 끊임없이 크로스를 올렸다.

그리고 산티아고는 반대로 박스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위협적인 슈팅을 때렸다.

마치 매크로처럼 이뤄지는 플레이.

특히 조나단의 크로스는 리그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일품이었다.

아무리 수비가 잘 걷어 내도, 계속되는 크로스는 수비진 자체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줬다.

고도의 집중력을 끊임없이 요구하니까.

심지어 막아야 할 스트라이커가 바로 고공폭격기, 제퍼슨이지 않은가?

집중력은 점점 떨어지고, 제퍼슨의 압도적인 피지컬에 처참하게 밀려나는 몸싸움.

터엉!

[아! 제퍼슨! 골대입니다. 제퍼슨의 헤더가 골포스트를 맞습니다!]

[조나단의 높은 크로스. 제퍼슨이 엄청난 헤더를 보였지만 아쉽게 빗나갑니다!]

“Fuck! Fuck!”

애틀랜타의 수비수는 계속되는 원 패턴 공격에 치가 떨렸다.

제퍼슨과 부딪칠 때마다 온몸이 저릴 정도였다. 그런데도 싸울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완벽한 헤더골을 넣을 선수였으니······.

다행히 아직 크로스로 인한 실점은 나오지 않았지만, 수비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시간문제다.’

알면서도 당하는 패턴.

진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누가 봐도 뻔한 패턴이다. 크로스를 올리고, 뛰어올라서 헤더.

이 패턴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면 크로스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면 되지 않을까.

애틀란타 수비수도 엄연한 프로선수. 당연히 시도해 봤다.

크로스를 막기 위해 풀백과 미드필더가 옆으로 빠졌다.

성공적이었다. 크로스가 올라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빈 공간.

순간적으로 선수가 빠져나간 빈틈을 제퍼슨이 날렵한 움직임으로 파고들더니 슈팅을 때리는 게 아닌가.

‘타겟터를 하던지! 포쳐를 하던지! 하나만 하란 말이야!’

도대체 이런 유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발 빠르고 발기술도 좋다. 심지어 타점도 높고 몸싸움도 미친 수준이다. 대체 이 스트라이커는 어느 유형이란 말인가?

수비수는 이를 으득으득 씹었다.

그래도 막아야 했다.

두 골을 내주며 끌려가는 모양새.

한 골을 더 내주면 게임은 끝이다.

그때 중원에서 볼을 잡은 토론토가 오른쪽 산티아고에게 스루패스를 찔러줬다.

‘저 자식도 만만치 않아.’

두 번째 골을 넣은 표범 같은 산티아고.

‘또 한 명 제치고, 파고들어서 슈팅이겠지?’

이미 익힌 패턴.

수비수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그때, 선수를 제치고 파고든 산티아고가 오른발을 길게 뺐다. 다리의 중심과 각도. 골문을 향하지 않았다.

심지어 시선마저.

그 순간 수비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크로스!’

[산티아고 차베즈의 크로스!]

[제̀―퍼슨! 제퍼슨! 엄청난 헤더입니다! 골입니다! 골! 골골골! 제퍼슨! 쐐기골을 애틀랜타의 심장에 박아 넣습니다!]

“미친!”

수비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패턴에 익숙해졌다.

반복되는 패턴에 선수의 움직임을 끝까지 주시하지 않았고, 예측 후 움직였다.

그것이 실수였다.

단 한 번의 실책.

기습적으로 크로스를 올린 산티아고의 어시스트.

그리고 제퍼슨의 완벽한 헤더가 골네트를 찢어 버릴 듯이 꽂혔다.

***

“쟤 왜 저래?”

조슈아가 브래들리에게 물었다.

브래들리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저 세레머니가 갑자기 유행인거야?”

“젊은 애들한테 유행인가.”

제퍼슨은 산티아고가 했던 세레머니를 똑같이 선보였다.

원정석을 빤히 쳐다보면서 산책하듯이 뛰고, 오른쪽 귀에 손을 갖다 대는 제스처. 브래들리는 혀를 내둘렀다.

“미쳤군. 저러다가 또 해트트릭하려나?”

“······대체 언제부터 해트트릭이 이렇게 쉽게 나올 말이었지?”

“······저 사랑스러운 자식이 우리 팀에 왔을 때부터.”

“음······.”

조슈아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왠지 그럴듯했다. 브래들리가 조슈아의 단단한 어깨를 툭 쳤다.

“어쨌거나, 경기 재밌지 않아?”

“재밌지.”

“난 플레이오프도 여러 번이고, 우승을 목전에 둔 경기도 많았지만, 이번만큼 순수하게 축구가 재밌던 적은 오랜만인 거 같아.”

슬슬 선수 생활 황혼기에 접어드는 두 노장은 서로를 마주 보면서 피식 웃었다.

브래들리의 말대로 매 경기가 흥미진진했다.

조슈아는 프로 데뷔 초기의 설렘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우승이 가까워져서일까.

두 노장은 시간이 흐르며 잊고 있었다. 제퍼슨과 함께 플레이오프를 치르며 프로 경기를 뛰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흥분을 다시금 기억해 냈다.

두 명의 시선이 최전방을 향했다.

최전방에서 거칠게 움직이며, 또 우아하게 볼을 다루고, 그리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동료들을 이끌어 가는 제퍼슨.

‘빌어먹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자식.’

토론토로 온 게 행운이란 생각이 든 건, 바로 다 저 녀석 때문이었다.

“경기는 재밌는데, 3대 0은 좀 아쉽지?”

“그렇지.”

“제퍼슨에게 공을 보내주자고. 그럼 알아서 할 거야.”

조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제프! 뛰어!”

브래들리가 조슈아로부터 공을 받고 전방을 향해 소리쳤다.

강하게 공을 차올리는 킥.

다이렉트 패스가 수비의 머리를 넘겨 제퍼슨을 향했다.

순식간에 수비진을 파고드는 라인브레이킹.

제퍼슨은 발끝으로 공을 가볍게 세우는 데 성공했지만, 발 빠른 수비 하나가 앞장서서 붙었다.

탁, 탁!

그 순간 제퍼슨이 발을 놀려 팬텀드리블로 가볍게 빠져나갔다.

[제-퍼슨! 팬텀드리블입니다!]

[마치 이니에스타를 보는 것 같네요. 침착하게 팬텀드리블로 수비수를 벗겨냅니다!]

브래들리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씩 웃었다.

흔히 제퍼슨을 보고 전형적인 타겟터, 또는 중앙공격수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피지컬과 강력한 슈팅. 선수를 달고도 쓰러지지 않는 무게중심.

그야말로 묵직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반시즌 동안 제퍼슨과 경기를 치른 캡틴은 제퍼슨이 어떤 플레이에 더 특화되어 있는지 알았다.

‘스피드와 기술.’

마치 중원의 화려한 미드필더를 보는 것 같은 엄청난 탈압박 능력.

그리고 공간이 생기면 파고드는 무지막지한 스피드.

거기에 수비진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라인브레이킹까지.

‘퍼펙트한 스트라이커지.’

어떤 역할을 맡아도 모두 소화해 내는 것을 넘어 완벽하게 플레이하는.

그야말로 컴플리트 포워드.

“Ohhhhhhhhh-!”

“제퍼슨! 달려! 달려!”

튀어나오는 골키퍼를 보고 골문 구석을 향해 때려 버리는 강력한 슈팅.

골문을 갈라 버리는 완벽한 득점.

제퍼슨은 그대로 달려오는 동료선수들과 포옹했다.

“빌어먹을 자식! 또 해트트릭이냐?”

“적당히 좀 해! 상대 선수들 다 울겠어!”

“집에 가서 질질 짤지도 몰라!”

브래들리도 선수들에게 둘러싸인 제퍼슨의 얼굴을 붙잡고 소리쳤다.

“캡틴 아메리카!”

“아니, 캡틴······.”

“공 잘 차는 놈이 캡틴이지, 이 자식아!”

선수들이 모두 왁자지껄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 한 명 소외될 것 없이.

토론토 FC는 이제 원팀이 되었다.

***

[제퍼슨 밤(Jefferson BOMB)! 애틀랜타 폭격!]

[토론토 5 : 0 애틀랜타 유나이티드]

득점자: LEE(49) Santiago(55) LEE(67) LEE(71) Michael(88)

[플레이오프 1차전, 토론토 애틀랜타를 박살 내며 결승으로 전진!]

[미국의 캡틴 아메리카. 캐나다의 영웅이 될까.]

[나이는 선입견에 불과함을 몸소 증명하는 17세의 원-더보이 ‘LEE’]

[3골 1어시스트 대활약. 제퍼슨 리. 플레이오프 우승을 향해 정조준!]

[토론토 감독 ‘우리 팀은 원맨팀이 아니다. 원팀이다. 그리고 그 원팀의 중심에 제퍼슨이 있다.’]

[애틀랜타 감독 ‘막을 수 없었고, 무력감을 느꼈다. 제퍼슨은 우리에게 너무 큰 고통을 줬다. 팬들에게 죄송하다.’]

***

플레이오프 첫 경기는 성공적이었다.

“부라보! 이 자식들아! 하지만 축포를 터뜨리기엔 이르다! 결승 끝나면 내가 토론토에 있는 모든 술집에서 지갑을 털 테니까. 그때까지만 참고 경기에만 집중하자!”

“예쓰!”

음······.

얼굴이 잔뜩 붉어진 게 오히려 지금 한잔하시고 온 것 같은데.

첫 경기를 대승으로 끝냈기 때문에 팀 분위기는 환상적이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지금 선수들끼리 아주 잘 맞았고, 서로 질시나 질투는 조금도 없었다.

오로지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있는 상황.

‘한마디로 잘 되는 팀이라 이거지.’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다음 상대가 누구래?”

“3위가 뉴욕 시티였고, 6위가 몬트리올이었으니까.”

“제길. 누가 올라와도 상대하기 껄끄럽네.”

“그렇지.”

뉴욕 시티는 거칠다. 파울 전문 팀이고.

몬트리올은 더비전이다.

아무래도 이런 토너먼트에서 더비전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경기 상대가 결정됐다.

“Fuck. 엿 같군.”

감독님은 미간을 좁혔다.

“안 다치게 애들 주의시켜야겠어.”

바로 뉴욕 시티가 다음 상대로 결정됐다.

뉴욕 시티는 몬트리올을 2대 0으로 이겼는데, 이 경기에서 몬트리올 선수 중에 한 명이 부상으로 실려 갔고, 한 명은 경기 끝나고 고통을 호소했다.

거친 팀컬러가 그대로 나타났다.

실력?

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감독님이 예상하는 것처럼 부상이었다.

설령 이기더라도 주전 선수들이 다치면 다음 경기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니까.

“제프. 이거 인터뷰 봤어?”

산티아고가 핸드폰을 불쑥 건넸다.

인터뷰?

[루카스 그레이엄, 다시 만난 토론토를 향해 선전포고! ‘저번 맞대결에서 제가 졌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제가 내준 마지막 PK는 틀림없이 할리우드 액션이었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진짜 축구가 뭔지 경기로 증명하겠습니다.’]

루카스 그레이엄?

아 그 자식?

허.

이 자식 봐라. 어디서 입을 털어?

“어떡할 거야?”

산티아고가 묻는다.

어떡하긴.

“박살 내줘야지.”

진짜로.

멘탈뿐만 아니라.

지 몸만 믿고 입을 터는 두꺼운 몸까지.

아주 박살을 내줄 거다.

‘누군 반칙 못 해서 안 하는 줄 아나?’

다음 경기에 실려 갈 건 너다.

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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