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38화 (38/258)

38. 플레이오프 (1)

플레이오프 (1)

“미국의 스타가 될 친구입니다.”

“아직 17세인데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

“글쎄요. 보세요. 브래들리가 주장 완장을 건네주고, A매치 두 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어요. 리그에서는 15경기 30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습니다.”

“음!”

“이건 투자입니다. 저 친구는 미국의 스타가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돈다발을 들고 구걸이라도 하면서 스폰서를 자청해야 할 겁니다.”

“알겠네. 자네 뜻대로 진행해 보게.”

“수준은 스포츠 선수 중에 A급 이상으로 하겠습니다.”

“그 정도씩이나?”

“벌써 몇 개 기업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Oh, Fuck! 빨리 진행해.”

축구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회사 사무실의 현재 상황. 비슷한 움직임이 이곳 말고도 몇 군데에서 더 벌어지고 있었다.

***

미국은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다.

내가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냐면.

“이거 다 받아야 해요?”

“음.”

내가 늘 조언을 구하는 부모님도 다소 당황한 기색이었다.

국가대표 소집이 해제되고 토론토로 가는 공항에서 받은 명함이 무려 여섯 개였다.

“폭스바겐, TD 뱅크, 볼워치, 통신사 로져스(Rogers)······.”

북미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는 기업들이 개인 스폰서십 제안을 해 온 것이다.

미국은 철저한 자본사회에, 거대한 스포츠 시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스포츠 스타에게 붙는 스폰서십이 장난 아니었다.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미식축구까지.

4대 스포츠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은 모두 스폰서를 하나 이상은 꼭 끼고 있을 정도였다.

스폰서가 붙는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다.

이는 선수 개인의 실력뿐 아니라 ‘스타성’도 중요했다. 그러니까 이 선수가 실력은 기본으로 하고, 대중들에게 먹힐 스타성을 가지고 있냐가 핵심이다. 즉, 난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사업가들한테 말이다.

지금은 유명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더라도, 기업들이 판단하기엔 이 친구가 미래에 엄청난 스타가 될 거란 확신이 있을 것이다.

테니스의 로저 페더러는 유소년 때부터 나이키가 후원했다지?

하지만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도 있다.

스폰서십을 받는다는 건 기업의 홍보 대사나 다름없다.

가령 로져스 통신사에게 후원을 받으면, 지금 내 휴대폰부터 일단 그쪽으로 개통을 해야겠지.

아, 이학현으로 살 때 이런 경험이 없으니까 좀 당황스럽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스폰서를 꽤 받으셨던 분이지만, 이렇게 명함을 우수수 받자 쉬이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이젠 슬슬 고용해야지.

“아버지.”

“응?”

“저번에 스포츠 에이전시 물색하신다고 하셨죠?”

“아. 그래. 이제 에이전시를 계약할 생각인거니?”

“네. 이런 스폰서십 계약은 아무래도 에이전시를 통하면 좀 더 좋을 것 같네요.”

“알겠다. 네 엄마하고 몇 군데 알아봤는데, 선택은 직접 하렴.”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맥.

아시아 쪽 스포츠는 아버지가.

미국과 영국을 기반으로 한 유럽은 어머니가.

‘운동을 위한 집안이군.’

나는 부모님이 뽑아 놓은 에이전시 목록을 쭉 살폈다.

그러다 목록 중 하나에 시선이 멈췄고 씩 웃음이 나왔다.

아메리카 엑스포트 스포츠 그룹.

역시.

이 에이전시가 있을 줄 알았다.

내가 미국에 있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에이전시였다.

그러니까, 미래에는 이들을 뭐라고 불렀더라?

‘희대의 협상가들.’

미국의 자본사회에서 철저하게 협상력만 기른 비즈니스맨들이 주축이 된 에이전시다.

특히 선수가 원하는 조건에 최대한의 수익과 결과를 내는 데 도가 튼 에이전시였다.

미래에 세계 최고의 클래스를 지닌 축구 선수들이 이 에이전시에 몰리지만, 지금은 축구 쪽에선 아직 입지가 좁다.

‘미국의 미식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선수들만으로도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기록 중이니까.’

한마디로 유럽에선 모르는, 북미의 잠자는 공룡이었다.

이 에이전시가 축구계에 진출하면서 유럽 무대의 판을 흔들 때, 메시, 호날두의 뒤를 이을 차세대 축구선수들을 블랙홀처럼 고객으로 끌어모은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란 거지.

이제 슬슬 유럽에도 진출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에이전시니까.

아마 내 가능성을 지켜봤다면, 저 에이전시도 나를 탐내고 후한 대우를 해 줄 것이다.

“여기로 연락해 주세요.”

***

아메리카 엑스포트 스포츠의 특이점이라면, 한 명의 에이전트가 고객을 담당하는 게 아니다.

고객 한 명에 수많은 에이전트가 팀을 이루고 스폰서, 구단 계약, 광고, 각종 행사 등을 각자 파트별로 담당하게 된다.

마치 나를 중심으로 팀이 꾸려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에이전시는 상당히 좋은 조건으로 나와 계약했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Mr. Lee에게 접근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요?’

‘축구는 미국에서 비인기 종목이지만, 그래도 월드컵은 다릅니다. 브라질 월드컵에 투자된 미국의 중계권료는 천문학적이었고, 당시 경기 시청률은 슈퍼볼 시청률을 넘을 정도였죠. 향후 미국이 진출할 월드컵에서 스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은 바로 제퍼슨, 당신이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A매치 데뷔 이후 나를 주목하는 에이전시가 엄청나게 많았다.

아직은 축구계로 진출 계획만 세우고 있던 아메리카 엑스포트도 마찬가지였다.

‘캡틴 아메리카라며 팬들이 소리칠 때, Mr. Lee는 성조기를 몸에 두르고 있었죠. 그 순간 우리는 당신이 스타가 될 거라 확신했습니다.’

각종 언론매체로 보도된 캡틴 아메리카라는 별명.

성조기를 어깨에 둘러메고 포효하는 내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특히 땀에 젖어 체격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는 유니폼 때문에 마초적인 느낌도 물씬 풍겼다.

‘더구나 제퍼슨 씨는 유럽 진출이 목표 아닙니까?’

‘맞습니다.’

‘우리가 그 길을 함께하겠습니다.’

축구계로 저변을 넓힌다는 건,

곧 유럽 무대의 진출을 의미했다.

서로의 목적이 일치되는 상황.

win-win이었다.

에이전시는 내가 제시한 조건을 바탕으로 스폰서십을 선별했다.

첫째, 축구에 아무런 방해가 안 되어야 한다는 점.

둘째, 추후 축구선수로서 이미지에 다소 부정적일 수 있는 스폰서십은 최대한 피할 것.

셋째, 금액이 충분할 것.

그동안 스폰서 제안이 세 군데나 더 왔다.

전 세계적인 기업은 폭스바겐 자동차 하나였다. 그 외는 적어도 북미에서는 한 번쯤 들어본 메이저 회사들이었다.

에이전시는 최대한 협상력을 발휘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결국, 후원을 받게 된 스폰서십은 네 곳이었다.

폭스바겐 자동차.

시계회사 볼워치.

토론토의 대표은행인 TD 뱅크.

패션 브랜드 코치(Coach).

에이전시는 일부러 계약 기간을 짧게 1년 또는 2년으로 체결했다.

‘플레이오프가 끝나고, 한 시즌만 더 치러도 제퍼슨 씨의 몸값은 더 올라갈 겁니다. 그땐 이들뿐만 아니라 진짜 거대 공룡들이 스폰서십을 제안하겠죠.’

에이전시를 통하니 일이 술술 풀렸다.

폭스바겐에선 자동차를 제공했고,

상당한 가격의 고급시계를 비롯해 여러 제품을 협찬으로 받았다.

이제 이것들을 자주 사용하는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게끔 하는 게 내가 해 줘야 할 일이다.

이렇게 해서 내가 1년 동안 얻게 되는 돈은 600만 달러, 한화로 70억쯤이었다.

‘연봉보다 더 쎄군.’

미국의 스포츠 스타가 돈을 억 소리 나게 쓸어 담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이 돈으로 내가 다음 행한 건 바로······.

“이 장비가 있으면, 그 위험한 기술을 사용해도 관절에 무리가 없는 몸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부탁해요, 제프. 그 장비만 있으면 돼요!”

율리아겐과 디 파코의 간절한 목소리.

바로 천문학적인 금액을 가진 스포츠 재활 장비의 구매였다.

특히 율리아겐은 얼마 전 시셀도를 상대로 사용했던 제퍼슨 턴을 본 뒤, 장비 구입을 더 격하게 요청했다.

“우리가 아무리 힘을 써도, 그런 움직임은 관절에 엄청난 과부하를 줍니다.”

처음에는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나도 쉬이 포기할 수 없었다.

제퍼슨 턴이라고 붙여진 스핀 러닝 동작은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좋은 스킬이다.

나 역시 자주 사용하면 몸에 무리가 간다는 걸 직감하고 있지만, 아예 사용을 금지하는 건 부정적이었다.

어찌 됐건 트레이닝 팀은 나에게 고용된 사람들.

그들은 내가 사용 빈도를 줄여서라도 제퍼슨 턴을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트레이닝 팀이 요구한 것이 첨단 재활 장비들의 도입이었다.

솔직히 이런 장비는 개인이 구매한다는 건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스폰서로 인해 평범한 사람이라면 만지기조차 힘든 돈이 들어오자, 할 만하다고 여겼다.

그래, 아까울 게 뭐가 있나.

전부 다 내 몸 위해서 투자하는 건데.

까짓것, 통 크게 지르자!

“좋아요. 원하는 거 다 말해요! 다 사줄게요!”

“부라보!”

트레이닝 팀은 제퍼슨 턴을 사용하더라도 최대한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고, 빠른 재활치료를 통해 원래 몸 상태로 회복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리고 식단까지 완벽하게 통제했다.

“차라리 요리사를 고용하는 게 좋겠습니다. 좋은 실력의 영양사도요.”

“그거 좋네요.”

“의사도 고용하죠.”

“재활 전문이 필요합니다.”

“관절 전문 의사도 필요해요.”

“그래요. 까짓것 다 고용합시다!”

“부라보!”

음.

율리아겐으로 시작했던 내 개인 트레이닝팀이······.

뭔가, 점점 거대해지고 있는데?

***

“우리 목표는 플레이오프 우승이다!”

감독님이 거칠게 라커룸 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플레이오프.

진짜 미국 챔피언을 가리는 승부.

라커룸에 묘한 열기가 감돌았다.

챔피언까지 네 경기만 남았다.

리그 1위 팀인 DC 유나이티드만 한 경기를 덜 치르고, 나머지 2위부터 7위까지는 결승까지 4경기를 치른다.

2위와 7위, 3위와 6위, 4위와 5위가 1차전에서 붙는다.

즉, 우리가 처음 맞붙을 상대는.

동부 7위 팀, 애틀랜타였다.

“가자! 박살을 내러!”

짧은 휴식기.

나도 A매치를 다녀오느라 피곤했지만, 트레이닝 팀의 효과적인 재활 운동으로 피로도를 싹 거둬 낸 상황이다.

컨디션을 따지면 한 89%?

이 정도면 뭐.

컨디션은 최고였다. 우승까지 4경기.

플레이오프를 준비하는 내 마음은 생각보다 편안했다. 적당한 기대감과 설렘. 딱 그 정도였다.

적당한 긴장은 근육의 윤활제 역할을 해 주기 마련이다.

자칫 더 들떴다간 오히려 제 실력을 못 보여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경험은 1~2년이 아니다. 20년을 필드에서 뛰었다.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하는 것쯤이야.

그에 반해 라커룸의 분위기는 다소 들뜬 느낌이었다.

상기된 얼굴.

라커룸 밖에서 계속해서 퍼지는 토론토 팬들의 응원가.

“모두 침착해. 우리가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우리의 플레이를 보여 주면 돼!”

캡틴 브래들리가 침착한 어조로 선수들의 긴장을 가라앉혔다. 과연 노련한 모습이었다.

적당한 긴장감이 감돌며 필드로 나가는 선수들.

플레이오프 1차전이 시작됐다.

***

애틀랜타 유나이티드는 사실 만만한 팀이 아니다.

작년 리그 2위에 플레이오프도 2위였으니까.

이번 시즌엔 죽 쒀서 7위지만, 그래도 한 방이 있는 팀이다.

4-3-1-2의 다이아몬드 전술.

강력한 미드필드가 있는 팀답게, 중원에서 힘을 주는 팀이다.

“쉽지 않네.”

중원 싸움에서 밀리다 보니 나에게 오는 기회도 많지 않았다.

그렇게 전반전이 마무리되자, 감독님은 후반전 들어서서 전술적 변화를 꾀했다.

오른쪽 닉 대런을 빼고 산티아고를 투입 4-3-3의 전환이었다.

상대적으로 약한 측면을 공략하겠다는 의도.

“산티! 오른쪽을 찢어 버려!”

감독님이 고래고래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말과 동시에 우리에게 역습 찬스가 찾아왔다.

중앙에서 공을 잡은 바스케스가 목이 찢어질 듯이 괴성을 내질렀다.

“달려 이 자식들아!”

***

“Goooooo Reeeeeds!”

홈 관중들의 열정적인 응원 아래,

토론토는 수비 상황에서 조슈아가 차단한 볼로 곧바로 역습을 시도했다.

양 팀 다 플레이오프 단판 경기에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 주고 있는 상황.

그러나 홈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는 토론토가 비교적 정신력에서 유리했고, 중앙에서 엄청난 활동량을 가져갔던 애틀랜타가 후반전 들어서서 급속도로 지쳐갔다.

조슈아가 바스케스에게, 바스케스가 한 번 전방을 본 뒤에 오른쪽의 산티아고에게 스루패스.

“우와아아아아!”

“가서 밟아 버려!”

순식간에 전환되는 빠른 역습.

오른쪽에서 공을 잡은 뒤 크게 치고 나가는 산티아고가 말 그대로 오른쪽 풀백을 찢어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중앙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제퍼슨의 움직임은 기가 막혔다.

수비로 이뤄진 벽의 틈을 뚫고 들어가는 완벽한 오프 더 볼!

“제―프!”

산티가 제퍼슨의 이름을 비명처럼 내지르며 아름다운 패스를 보냈다.

순식간에 수비들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꿰뚫고 라인 브레이킹에 성공한 제퍼슨은 공을 받는 순간 페널티 박스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수비수의 거친 태클.

탁, 탁!

제퍼슨은 침착하게 오른발로 공을 뒤로 빼냄과 동시에 왼발을 축으로 가볍게 돌면서 태클을 피했다.

그리고 열린 슈팅 각도.

빠앙!

제퍼슨의 정확한 임팩트가 골키퍼의 손끝을 스치면서 완벽한 득점.

“Leeeeeee! 제퍼슨―리!”

“Fucking America king!”

그대로 코너 라인 쪽으로 크게 돌면서 엠블럼을 부여잡으며 포효하는 거친 셀레브레이션.

플레이오프의 시작을 알리는 제퍼슨의 득점포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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