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31화 (31/258)

31. 물리학의 반역자 (2)

제퍼슨의 몬트리올전 해트트릭은 각종 언론을 통해 널리 퍼졌다.

MLS 홈페이지 메인을 장식한 것은 물론이고, 미국의 유수의 방송사 스포츠 뉴스에 경기 내용과 결과가 보도된 건 당연했다.

[왼발, 오른발, 머리, 퍼펙트 해트트릭을 터뜨린 신성, 제퍼슨 리는 누구인가?]

[제퍼슨 리, 몬트리올 전 MOM 선정]

[8경기 동안 MOM만 6회, 경기를 지배하는 사나이.]

[더비전까지 박살 내며 전진하는 토론토 FC!]

[토론토 FC의 실수, 전반기에 제퍼슨을 영입하지 않았다는 점.]

연일 스포츠 뉴스와 스포츠 일간지에 제퍼슨의 이름이 올랐다.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북미의 축구팬들에게 제퍼슨의 이름이 명확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특히 일부러 퍼펙트 해트트릭을 위해 최종 수비를 제치는 장면에서 팬들은 감탄을 참지 못했다.

-와. 저기서 저런 배짱이라고?

-미쳤어. 진짜 이거 난 놈이야.

-지랄. 운이 좋은 거지. 저거 못 넣었어 봐. 해트트릭은 물 건너간 거야.

-운이 좋아? 와. 세상에. 저기서 침착하게 발 바꿔서 슈팅 때리는 거 안보임?

-수비수 다 속이고, 골키퍼까지 넋 놓게 만드는 플레이인데.

-몬트리올 팬인 듯.

처음엔 초심자의 운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이제 점점 확신을 굳혀 갔다.

아무리 선수 파악이 되지 않은 신인이라고 해도, 8경기 동안 15골 3어시스트라는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리가 없잖은가?

제퍼슨의 활약에 힘입어 토론토 역시 맹렬한 기세로 순위가 상승했다.

-그런데 토론토 최근 실점 많이 줄어든 거 같은데?

-맞음. 401 더비도 무실점임

-전반기에 경기당 2실점씩 당했던 거 생각해 보면, 지금 경기당 1실점임

-그랜드 감독이 수비 코치를 영입했었나?

-아이고. 이것들아. 생각해 봐. 훈련 때마다 수비수들이 상대하는 공격수가 누구겠어?

-무슨 소리임? 제퍼슨하고 알티도어겠지.

-리그 최고 공격수, 제퍼슨을 훈련할 때마다 수비하는데, 다른 팀의 공격수들 막는 게 어렵겠어?

***

‘쉽잖아?’

올 시즌 후반기에 1군에 데뷔한 알렉산더 바카는 몬트리올전이 끝나고 그런 생각을 했다.

‘훈련하고 비교하면 식은 죽 먹기인데?’

훈련과 실전을 비교할 수는 없다.

압박의 강도, 경기 속도, 그리고 선수들의 치열한 심리전까지.

한데 바카는 최근 오히려 훈련 때 수비하는 게 더 어렵다고 느꼈다.

퍽!

“윽!”

바카는 제퍼슨과 부딪치면서 표정을 구겼다. 어떻게든 제퍼슨의 돌파를 막고 싶어서 싸우지만, 도저히 저 무지막지한 피지컬을 이용한 몸싸움을 이겨 낼 방도가 없었다.

또래 중에 최고의 피지컬과 수비력을 자랑하는 바카는 1군에 올라오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있었지만, 실제로 상대해본 제퍼슨은 괴물이었다.

“왜? 실전처럼 제대로 해 주라면서? 그래야 실력이 는다고?”

“맞아. 제대로 해 줘.”

“바라던 바야. 너도 이를 악물고 막아봐.”

제퍼슨이 씩 웃었다.

알렉산더 바카를 필두로 토론토의 수비들의 실력이 갑자기 향상되고, 실점이 적어진 이유.

바로 제퍼슨에게 있었다.

‘팀이 잘 되는 신호인가.’

제퍼슨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 바카를 바라봤다.

알렉산더 바카, 토론토의 유스에서 부터 엄청난 기대를 받아 1군까지 올라왔다. 이 선수는 빛나는 재능과 함께 이후에 미국 대표선수로 성장하는 만큼, 멘탈도 훌륭했다.

얼마 전에 바카가 다가와 정중하게 요청했다. 훈련 때, 진짜 실전에서처럼 강하게 플레이해 달라고. 있는 힘껏 해 달라고.

수비 실력을 기르고 싶다면서 말이다.

긍정적인 신호였다. 잘 되는 팀에게서 볼 수 있는 시그널. 더 발전하기 위해 선수들끼리 좋은 방안을 연구하고 노력한다.

‘뭐, 나도 일대일 실력 늘고 좋지.’

제퍼슨으로서도 나쁠 건 없었다.

바카가 이를 악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비를 다 했다. 이에 제퍼슨도 자연히 일대일 상황에서 수비수를 상대하는 실력이 쑥쑥 늘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야말로 Win-Win이었다.

툭!

“̀······!”

순간 제퍼슨이 공을 몰고 오다가 왼발로 페이크 동작을 시도했다. 바카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발을 뻗었다. 그 순간 다시 한번 제퍼슨의 발이 마법을 부렸다.

뒤로 빠져 있던 오른발이 오른쪽으로 빠지려던 공을 다시 중앙으로 돌려놓으며, 바카의 중심을 무너뜨리고 돌파를 시도했다.

‘무서운 자식!’

이게 바로 제퍼슨이 무서운 이유였다.

‘다른 유형이야.’

방금까지는 강력한 피지컬로 찍어 누르는 파괴력 있는 스트라이커였다면,

지금은 개인기와 발재간, 그리고 수비와 일대일 심리 싸움에서 이기는 유형이었다.

바카는 이를 악물고 손을 뻗어 옷깃이라도 잡아끌면서 속도를 늦추려 했지만, 이미 허벅지에서 힘을 불처럼 뿜어내는 제퍼슨을 막을 수 없었다.

“제기랄!”

그런 바카에게 제퍼슨이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왜 파울로라도 막지 않는 거야?”

“뭐?”

“넌 날 완전히 놓쳤어. 피지컬로도 졌고, 그런 움직임을 이용해 너를 속이는 페이크에도 넘어갔어. 그렇다고 나를 보내 줘? 이를 악물고 덤벼야지. 몸을 던지고, 위험한 태클을 해서라도, 내가 뛸 수 없게, 좋은 위치, 좋은 각도에서 슈팅할 수 없게 방해해야지.”

“······!”

“깔끔한 수비? 완벽한 수비? 그게 어디까지 통할 거 같아? 진짜 대단한 스트라이커를 만나면 그런 건 불가능이야. 더러운 수비여도, 수비야. 상대 공격수가 슈팅하는 데 방해만 한다면, 더러운 수비가 완벽한 수비라고.”

바카는 순간 제퍼슨의 기백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평소 동료들하고도 실없이 농담하고, 유쾌한 면모도 있는 제퍼슨이었지만 ‘축구’에 있어선 만큼은 사람이 완전히 달랐다.

마치 인생의 가치가 축구 하나인 사람처럼 진지했다.

제퍼슨의 강한 어조에 바카는 신음을 삼켰다.

그의 말이 맞았다.

늘 깔끔한 태클로 공만 빼내려고 했다. 유스리그에서는 그 정도로 충분했다.

하지만 프로는 아니었다. 특히 제퍼슨 같은 대형 스트라이커를 상대로는.

날카로운 눈빛의 제퍼슨과 시선을 마주하고 바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보다 2살 어린 선수였지만, 이미 팀의 노련한 베테랑을 보는 기분이었다.

‘확실히 차원이 다른 선수구나.’

프로에 올라와서 처음으로 느끼는 벽.

언론 보도는 미국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될 거라는 얘기를 슬그머니 꺼내고 있었지만,

‘얘가 고작 미국 최고라고?’

세계가 아니라?

그러면 세계 최고의 선수는 어느 정도지?

그런 선수들을 막으려면, 지금 자신의 방식으론 가능할까? 제퍼슨의 말처럼 말이다.

바카는 진지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부탁해도 될까?”

“물론이지. 바카.”

바카는 다시 공을 가지고 왔다. 바카는 진지하게 낮은 자세로 배움을 청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카의 실력도 늘었다.

매번 뚫리던 그의 수비는, 좀 더 거칠어지고 집요해지면서 설령 뚫리더라도 제퍼슨의 스피드를 죽이고, 슈팅을 때리기 힘들게 만들었다.

“좋아. 이래야 재밌지.”

제퍼슨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카의 실력이 늘면 늘수록, 제퍼슨의 실력도 늘고 있었다. 바카가 집요하게 슈팅 각도를 막고, 편하게 슈팅하지 못하게 몸을 날리는 상황이 나오면서, 제퍼슨은 그 찰나의 시간 동안에 공간을 만들고 슈팅을 만들기 위해 부단하게 움직임을 가져가는 능력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 아쉬운데.’

하지만 뭔가 다소 아쉽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경기장에서 수비수 한 명만 상대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때마침, 둘의 훈련을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조슈아가 다가왔다.

“나도 같이해도 될까? 제프. 한 수 배우고 싶은데.”

팀의 베테랑이자, 오랜 경험을 지닌 노련한 조슈아.

묵직한 중저음에 제퍼슨이 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퍼슨으로서는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것이었다.

“제가 배워야죠. 잘 부탁합니다.”

조슈아는 터프한 수비의 대명사였다.

34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피지컬적으로도 완벽했다. 피지컬을 이용한 영리한 플레이에도 능했다. 반칙 같지만, 반칙은 아닌, 딱 그 선을 지키는 절묘한 수비 실력도 있었다.

바카와 조슈아의 2대 1 수비.

바카는 은근히 기대했다. 둘이서 같이 수비한다면, 홀로 압박을 벗어나서 뚫어야 하는 건데, 그럼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실전의 2대1과 지금 상황에서 2대 1은 다르지.’

실전에서는 2대 1의 협력 수비여도, 공격수는 혼자가 아니다. 주위에 다른 동료들이 있다. 필드의 다른 상황을 신경을 써서 압박의 강도는 약해지고, 오로지 눈앞의 공격수만 집중해서 막기는 힘들다. 동료 공격수와 패스 플레이를 통해 압박을 벗어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진짜 말 그대로 2대 1 상황.

바카와 조슈아, 모두 집중력을 한곳에 모을 수 있었다. 제아무리 제퍼슨이어도 쉬이 뚫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2대 1이 되자 제퍼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이곳에 쏟아부었다.

퍽!

“큭!”

조슈아가 신음을 삼키며 나동그라질 정도로 강력한 몸싸움부터.

“발만 보지 말라고! 눈을 마주치고, 상체의 움직임도 봐야 해!”

“제기랄!”

눈이 팽팽 돌아갈 정도로 현란한 개인기까지.

조슈아는 계속해서 제퍼슨을 놓치자 체면을 버려두고 거친 수비까지 시도했다.

그러나 제퍼슨은 오히려 그런 거친 수비를 이용했다.

거칠게 몸싸움을 하는 척, 절묘하게 상체를 비틀어 힘의 역학관계를 바꿔놓고 조슈아를 무너뜨렸다.

그의 발 사이에서 현란하게 노니는 공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카와 조슈아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Fuck! 이걸 어떻게 막으라고!’

‘미친 자식. MLS가 시작될 때부터 리그를 뛰었지만, 이만 한 놈은 없었어.

그들은 아연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제퍼슨은 날선 어조로 두 명의 수비 약점을 지적하고 비판했다.

“바카. 정신 차려! 발만 뻗는다고 수비가 되진 않아. 공격수 전체를 봐. 네가 공만 보는 순간, 난 대놓고 상체를 비틀어서 내가 움직일 방향까지 알려 줬어. 그런데 넌 못 본 거야.”

“······명심할게.”

“조슈아. 방금 협력이 잘되지 않았어요. 바카가 저를 막는 동안 제가 뛰어들 공간을 미리 선점해야죠. 그것도 아니면 발이라도 뻗어서 슈팅 각도를 막아야죠. 제가 한 번의 스텝오버로 바카를 제치고 그 자리에서 슈팅을 때릴 수도 있었어요.”

“······네 말이 맞아. 제프.”

조슈아는 그야말로 가슴이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정확하고 망설임 없는 어조의 팩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나이의 신인 선수지만, 필드에서 만큼의 플레이는 이미 나이를 벗어난 괴물이라고.

“좋아요. 몇 번만 더 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죠.”

언제 날선 어조로 비판했냐는 등, 제퍼슨이 미소를 띄웠다.

***

몬트리올와의 더비 이후, 토론토는 말 그대로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달렸다.

[필라델피아, 제퍼슨의 고공폭격에 패배. 헤딩으로만 2골!]

[신시내티의 치욕. 토론토에게 5:0 대패]

[부상복귀 알티도어 2골, 산티아고 1골, 닉 대런 1골, 제퍼슨 1골! 토론토 화력폭발!]

차례대로 필라델피아와 다시 만난 신시내티를 꺾었다. 엄청난 득점력과 두 경기 동안 한 골만 내주는 짠물 수비까지. 토론토의 기세는 무서웠다.

11경기 무패행진.

MLS 통틀어 엄청난 기록이었지만, 이 시점에 DC도 만만치 않았다. 토론토와의 패배 이후 절치부심한 DC는 파죽의 7승 2무를 달리면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었다.

“자력 우승은 불가능이네.”

“그래도 이게 어디야? 후반기 시작하기 전에 우리 11등이었다고!”

“제퍼슨이 아니었으면 플레이오프는 꿈도 못 꿨겠지.”

“좋아. 정규리그는 DC보고 가지라고 해. 플레이오프로 우리가 우승한다!”

토론토의 기세만 보면 정규리그 우승까지 노려볼 법했지만, DC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전반기 때 벌어진 승점 차이로 인해 정규리그 우승은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플레이오프가 남았다.

사실 정규리그 우승보단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는 게 확실한 우승으로 받아들여 지는 게 MLS였다.

동, 서부를 아우르는 챔피언이니까.

토론토팬들은 정규리그 우승을 아쉬운 마음으로 접었지만, 플레이오프 우승을 향한 욕망을 드러냈다.

[2019시즌 MLS 득점 순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LA 갤럭시) 35골

웨인 루니(DC 유나이티드) 31골

조세프 마르티네즈(애틀랜타) 23골

제퍼슨 리(토론토 FC) 18골

“11경기 18골이라니. 다음 시즌 득점왕은 우리 왕이지!”

“그가 34경기를 뛰었으면 50골은 득점했을 거야!”

정규 경기가 4경기 남은 시점.

득점왕의 윤곽도 가려졌다.

이번 시즌 전성기의 폼을 보여주는 것처럼 완벽해진 즐라탄이 35골을 때려 박으며 리그의 지배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웨인 루니가 2위, 베네수엘라의 주포 마르티네즈가 3위, 제퍼슨이 4위였다.

대부분 토론토 팬들은 다음 시즌 제퍼슨이 득점왕을 차지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11경기 연속골.

MLS의 역사가 매 경기 새로 쓰이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경기가······. 젠장, 수비만 하는 놈들인데?”

“뉴잉글랜드!”

“망할!”

뉴잉글랜드.

리그 최강의 방패. 30라운드까지 진행된 시점에서 고작 14실점밖에 내주지 않은 역대 최고의 수비 전술을 보여주며 리그 5위에 올라선 팀이었다.

화끈한 공격 축구를 신봉하는 토론토로서는 가장 골치 아픈 상대였다.

단순한 수비 축구가 아니라, ‘늪 축구’로 유명한 팀이었으니까.

뉴잉글랜드의 늪 축구는 MLS에서 과연 화제였다.

심지어 여름, 프리시즌을 맞이해 전지훈련 온 유수의 유럽 빅클럽들이 뉴잉글랜드와 친선전을 치르고 혀를 내둘렀다.

‘뉴잉글랜드의 수비 전술만큼은 유럽 빅클럽 수준이다!’

그 정도로 인정받는 게 뉴잉글랜드였다.

하지만 팬들은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과연 미국의 왕이,

뉴잉글랜드를 정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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