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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29화 (29/258)

29. 트레이너 드림팀

트레이너 드림팀

7경기 12골 3도움.

공격 포인트 총합 15개.

“······.”

토론토 FC의 구단주, 알리 커티스는 이 기록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리는 얼굴이었다.

“코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숫자가 틀린 게 아니죠? 7경기가 아니라 17경기 아닌가요?”

“음. 구단주께서 눈이 나쁘신 게 아니시라면, 보는 그대로가 사실입니다.”

“왓 더······.”

그랜드 감독은 커티스의 반응에 실없이 웃었다.

제퍼슨의 계약 조건 중 하나가 충족됐다.

한 시즌 공격 포인트 15개 이상 기록 시, 그 즉시 지정 선수로 전환된다.

사실 이 조건이 이번 시즌에 충족되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계약을 진행한 수뇌부도, 구단주 커티스도, 심지어 제퍼슨의 영입을 강력 주장한 그랜드 감독까지 말이다.

그런데 아직 리그 경기는 9경기가 남은 상황.

제퍼슨은 7경기 만에 12골 3도움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계약한 지 고작 두 달.

사실상 재계약을 하게 된 셈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웃어야 할지. 영입 대박을 터뜨리긴 했는데, 뭔가 아쉽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기준을 더 높이 잡을 걸 그랬나 봅니다.”

“지금 제퍼슨의 기세라면, 기준이 더 높아도 시간 문제였을 것 같습니다. 구단주님.”

“하, 하하. 코치. 당신은 정말 대단한 보석을 갖고 왔군요. 좋아요. 바로 지정 선수로 전환합시다. 그러면 연봉이 얼마죠?”

“150만 달러(17억)입니다.”

“17살 선수가 받는 연봉치고는 아주 대단하네요.”

“그런데, 여기에 수당을 더 줘야할 것 같습니다만.”

“수당이요?”

“경기장에 LA 갤럭시, DC 유나이티드 스카우터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영국 쪽에서도 계속 왔었어요.”

“······.”

“수당으로 제퍼슨의 마음을 잡아야 합니다.”

“오, 세상에.”

커티스는 이마를 쓸어 올렸다.

돈이 더 나가게 생겼지만, 그래도 그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어쨌거나, 제퍼슨은 그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잠깐 생각에 잠기던 커티스는 이내 결정한 듯 탁자를 소리 나게 내리쳤다.

“통 크게 지르죠. 득점 수당과 출장 수당을 1만 달러(1170만원) 미출전 수당 4천500달러(530만원). 이렇게 가죠.”

수당도 현재와 비교하면 두 배에 이르는 금액이었다.

그랜드 감독도 살짝 놀란 얼굴이었다.

“······제퍼슨의 득점 페이스면 득점 수당으로 빠져나가는 게 심할 거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까짓것 100골 넣어서 50만 달러 더 가져가라고 하세요.”

“전 특별할 일 없으면 매 경기 출장시킬 생각입니다만.”

“코치. 걱정 마세요. 돈은 제가 댑니다. 빌어먹을 샐러리캡만 아니었으면, 우리 팀은 유럽팀 못지않은 자본력으로 MLS을 제패했을 겁니다.”

뛰어난 사업가이기도 한 커티스의 호언장담에 그랜드는 씩 웃었다.

“좋습니다. 저는 제퍼슨을 데리고, 플레이오프 우승으로 화답해 드리죠.”

“역시, 코치. 화끈해서 좋아요.”

***

“연봉 17억이라······.”

내 인생 최고의 연봉이군.

이학현으로 살 때, 케이리그에선 연봉 9억이 내 최대치였다.

유럽에 진출했었지만, 그때 내가 뛰었던 팀은 다 하위 구단으로 돈이 별로 없기도 했었고. 팀 핵심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17살에 벌써 연봉이 17억이 되었다.

주급으로 따지면 한 3천300만원 정도 되겠군.

일단 연봉 인상 기념, 어머니에게 멋진 옷 하나 선물해 드렸다.

“아들, 엄마한테 처음 선물해 주는 거 알아?”

“어, 그러네요.”

“고마워, 아들! 옷 잘 입을게!”

음······.

제퍼슨, 이 자식.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고 잘 나갔으면서, 선물 하나 안 챙겨 드렸냐.

난 멋쩍게 웃었다.

‘아버지는 차 한 대 뽑아 드릴까.’

좋은 집에 비해 아버지는 오래된 연식의 차를 타고 다니셨다. 내가 어릴 때 전시장에서 직접 고른 자동차라고, 계속 타고 다니신다나.

음. 득점 수당하고 출전 수당만 모아도 좋은 거 한 대 뽑겠는데.

여하튼 나는 연봉 상승으로 수입이 오르자 결정을 내렸다.

바로 내 개인 트레이닝 팀을 꾸리는 것이다.

물론 율리아겐은 혼자서도 현재 내 개인 트레이닝을 완벽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7경기를 다 출전하면서도, 체력을 유지하고 바디 밸런스를 맞출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공헌이 컸다. 심지어 그 와중에 키가 더 자라 185가 되었지만, 밸런스는 오히려 더 좋아진 느낌이었다.

살도 빠졌다.

93Kg까지 올랐던 체중은 91kg까지 떨어졌다. 그렇다고 몸이 약해진 건 아니었다. 외려 낮은 무게 중심을 유지할 수 있는 허벅지의 근육량이 늘고, 미식축구와 비교해 축구에서는 활용도가 높지 않은 부분의 근육은 서서히 빠졌다.

‘사람의 몸으로 무슨 마법을 부리나.’

율리아겐은 진짜 미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빅클럽에 갈지도 몰라.’

그가 연구원, 분석가 기질이 강하지만.

막말로 고향인 뮌헨의 바이에른 같은 팀에서 테이블 위에 턱! 돈을 올려놓고 부르면, 사람 마음이 모르는 거지.

그래서 그의 노하우를 알게 모르게 전수받을 팀이 필요했다.

‘미국은 스포츠 선진국이야.’

축구만 다소 떨어질 뿐이지. 종목별로 트레이닝 방법이 엄청나게 발달됐고, 과학기술을 접목한 각종 트레이닝 방법이 존재했다.

당연히 뛰어난 트레이너들도 많았다.

NFL, 메이저리그, NHL, NBA.

거기에 수많은 대학팀 코치까지.

나도 알지 못하는 내로라하는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게 북미였다.

“좋습니다. 저 역시 미국의 트레이너들하고 같이 일하고 싶군요.”

율리아겐은 의외로 흔쾌히 수락했다.

그도 미국의 발달한 스포츠 트레이닝 방법을 공유하며 연구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듯했다.

“오케이, 아들. 엄마가 인맥 좀 동원해 볼게.”

미국의 트레이너를 찾는 방법은 아주 편했다.

미국 체육계에 인맥이 탄탄한 어머니는 수차례 전화로 명단을 뽑아 왔다.

현재 근무지에서 높은 실력에 비해 다소 부족한 대우를 받거나, 또는 모종의 이유로 쉬고 있는 트레이너 명단. 그리고 어머니의 후배들.

난 그들의 이름을 쭉 훑다가 한 명의 이름에서 멈칫했다.

“레오날드 디 파코?”

설마 내가 아는 그 레오날드 디 파코인가?

슬쩍 그에 관한 이력서를 들쳐 봤다.

- 현(現),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개인 피지컬 트레이너.

헐.

심봤다.

***

레오날드 디 파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유명한 트레이너다.

즐라탄이 맨유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미국에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디 파코에 있었다.

즐라탄의 나이에서 시즌을 날리는 부상이라면, 더 선수 생활이 힘들 정도로 심각할 수밖에 없다.

한데 디 파코는 그런 즐라탄을 부활시켰고, 수준이 영국보다 부족한 MLS라곤 하지만, 현재 서부리그를 32골로 초토화하는 즐라탄으로 만들어 냈다.

그가 더 유명한 이유는 추후에 호날두의 개인 트레이너로 고용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실력을 갖춘 인물.

이 사람이 왜 명단에 있지?

아직 즐라탄 개인 트레이너인데?

“이 사람도 고용할 수 있어요? 즐라탄 트레이너인데?”

“아? 파코? 엄마하고 친한 동생이야.”

“네?”

“엄마 올림픽 나갈 때, 같이 일했거든.”

“아······.”

“내가 연락 좀 해 보니까. 어차피 즐라탄하고 계약도 끝나가고 있고, 새로운 일자리 찾아서 유럽으로 갈 생각이었다네. 근데 엄마가 연락하니까 흔쾌히 오케이 하더라고.”

세상에.

감사합니다, 어머니.

호날두에게 갈 인재를 저에게 선물해 주시네요.

“이 사람. 바로 계약하고 싶어요, 엄마.”

***

디 파코는 즐라탄과의 계약이 끝나자마자 토론토로 왔다.

그를 필두로 미식축구 명문대 출신과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계약이 막 끝난 트레이너를 어머님이 데리고 왔다.

그리고 율리아겐과 디 파코의 조합.

생각보다 괜찮았다. 매사에 진지하고 과묵한 율리아겐과 달리 디 파코는 느끼한 농담을 잘 던지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오, 세상에. Ziozia, 제퍼슨. 완벽한 몸이군. 즐라탄보다 미스테리한 몸이 있다니.”

“미스터 파코, 이 데이터를 한번 보시겠습니까?”

“Ziozia, 율리아겐. 멋진 분석이군요. 대단하네요.”

잘 맞을까 싶긴 했는데, 내 몸을 여기저기 뜯어보면서 서로 열렬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니······.

환상의 호흡이었다.

어찌 됐건 그 이후로 트레이닝 방법도 조금씩 바뀌었다.

-현재의 파괴력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수많은 경기를 치를 수 있게 지구력을 기르자!

이것이 바로 두 명의 괴물 같은 트레이너, 율리아겐과 디 파코가 세운 목표였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레반도프스키를 39살까지 뛰게 한 율리아겐.

십자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 부상을 당한 즐라탄을 미국에서 완벽하게 부활시키고, 호날두의 피지컬을 계속 유지시켜준 디 파코.

거기에 대학 미식축구의 괴물들과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관리했던 트레이너 두 명.

‘트레이너 드림팀이네.’

든든하다 든든해.

***

“어이, 제프(Jeff)!”

요즘 날 저렇게 부르는 사람은 단 한명이었다.

조슈아.

험상궂은 얼굴의 조슈아는 라커룸에서도 별로 말이 없는 선수였는데, 유난히 나하고 산티에게 자주 말을 걸어왔다.

뉴욕전 이후로 조금 친근해진 느낌이다.

“오늘 경기 끝나고, 우리 집에서 식사나 같이하지.”

“식사요?”

동료 선수가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하는 건 의미가 있는 일이다. 일단 서로 친해지자는 의미였으니까.

“음. 나중에 하면 안 될까요?”

경기가 끝나면 늘 어머니하고 로드릭, 산티랑 같이 먹어서 말이다.

그러자 조슈아는 살짝 당황한 기색으로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부탁한다.”

“네?”

“내 딸이 너의 엄청난 팬이거든.”

“······.”

“널 데리고 오지 않으면, 그 아이가 울음으로 날 죽일지도 몰라.”

과묵한 얼굴의 갱같이 터프한 사내, 조슈아.

그러나 그가 애절한 눈빛으로 딸 얘기를 하는 건 꽤 유쾌한 장면이었다.

“좋아요. 산티하고 같이 갈게요.”

“알겠다.”

조슈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산티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난 왜? 저 아저씨 무섭단 말야.”

“잘 보면 든든해. 너 저번 경기서 쓰러졌을 때 얼마나 든든했는데.”

“그건 그렇지만······.”

“좀 친해져 봐. 든든한 형이라고 생각해.”

“음.”

산티는 울상을 지었다.

***

[미국 축구의 시선이 캐나다로 향합니다.]

[토론토와 몬트리올의 401더비가 몬트리올 홈에서 펼쳐집니다. 서로의 도시를 잇는 401번 도로에서 따온 401더비는, 두 팀이 만들어지고부터 현재까지 그야말로 치열하죠.]

[누가 캐나다 최고의 팀인지 가리는 중요한 더비죠.]

[현재 몬트리올은 동부리그 3위입니다. 토론토는 5위구요. 오늘 경기에서 몬트리올이 이기면 순위 유지, 토론토가 이기면 4위까지 오를 수도 있습니다.]

[현재 폼으로 보면 두 팀 다 만만치 않습니다. 파죽지세의 7경기 무패 토론토. 4연승을 달리는 몬트리올.]

[기대되네요.]

[저는 제퍼슨이 과연 8경기 연속골이란 신기록을 세울지 더 기대됩니다.]

[제퍼슨 리. 당연히 선발진에 있습니다.]

삑!

휘슬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몬트리올의 감독 레미 가르드(Remi Garde)는 진지한 얼굴로 필드를 바라봤다.

아스톤 빌라를 지휘하다가 강등당한 후, 그는 떨어진 명성을 되찾기 위해 미국으로 왔다.

지금까지는 꽤 성공적이었다.

작년에는 리그 4위였고, 올해도 리그 3위로 순항중이다. DC의 기세가 워낙 대단해 정규리그 우승은 다소 힘들어 보이지만, 이대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우승을 노려볼 만했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높은 순위를 유지해야 했고,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했다.

특히나 더비전인 토론토전은 홈에서 무조건 잡아야 한다.

4-2-3-1로, 양 날개를 넓게 쓰는 공격적인 포메이션.

‘어차피 제퍼슨을 막지는 못한다.’

그간 경기 비디오를 돌려 봤다.

뭘 하더라도 제퍼슨을 완전히 막아 내는 건 불가능이다.

‘차라리 난타전을 가더라도 골을 넣고 이긴다. 먼저 넣고, 더 넣고, 또 넣는다.’

어차피 토론토의 수비력이 약한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에 반해 몬트리올은 득점 리그 4위의 준수한 공격력을 자랑했다.

실점을 내주더라도, 다득점으로 이긴다. 그것이 레미 가르드의 복안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분위기를 타야 했고, 선제골이 중요했다.

삑!

“음?”

[아, 토론토가 코너킥을 얻어 냅니다.]

[제퍼슨이 힘껏 때린 슈팅이 골키퍼의 선방에 맞고 나가는군요.]

[초반부터 토론토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레미 가르드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다행히도 몬트리올은 세트피스에서 쉬이 실점을 내주지 않는 팀이었다.

194cm의 신장을 지닌 핵심 수비수, 자카리아 다닐로는 공중전에서 엄청난 강점을 보여 주는 선수다.

제아무리 제퍼슨이 공을 잘 따낸다고 하더라도, 공중에서 방해만 잘하면 충분히 막아 내리라.

토론토의 키커 바스케스가 코너 라인으로 걸음을 옮겼다.

킥과 좋은 시야로 인정받는 바스케스는 박스를 바라봤다.

‘몬트리올 수비들의 키가 다 큰데.’

미드필더부터 수비까지.

심지어 골키퍼도 팔 리치가 길기로 유명한 선수였다.

코너킥으로 득점을 올리기 쉽지 않아 보이는 상황.

‘그래도 제프를 믿어 볼까.’

현재 유일한 대안은 제퍼슨.

바스케스는 선수들 사이로 빠르게 스며드는 제퍼슨과 눈이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깔끔하게 킥.

‘됐다!’

느낌이 좋았다. 발에 감기는 감각. 박스로 향하는 예술적인 궤적. 잘 맞은 킥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의 표정이 암울하게 변했다.

박스 안은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고, 먼저 위치를 선점한 몬트리올의 센터백이 반박자 빠르게 뛰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실패군.’

이번 코너킥은 실패다.

······라고 직감하는 순간.

바스케스는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제퍼슨 리.

수비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키의 그가,

오히려 수비수보다 한 뼘 높게 뛰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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