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Go Toronto, Go LEE! (6)
[강성 서포터즈로 유명한 DC 유나이티드는 원래부터 팬들이 많죠. 역사가 오래됐으니까요. 그리고 오늘 이곳 BMO 필드까지 날아온 팬들도 상당해 보입니다.]
원정팀에게 배당된 좌석을 가득 메울 정도로, DC 유나이티드의 팬들은 열정적이었다.
[오늘 동부 컨퍼런스 1위 팀, DC 유나이티드는 현재까지 6연승을 달리며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성적에는 당연히 슈퍼스타가 있죠.]
[영국에서 온 웨인 루니가 주인공입니다.]
[현재 22득점으로 득점왕에 가장 가까운 스트라이커.]
[그에 맞서는 토론토에도 근래 최고로 핫한 루키가 등장했습니다!]
[두 경기 만에 4골 1어시스트를 기록한 어마어마한 루키죠.]
[제퍼슨 리입니다.]
Ohhhh, Ohhhh.
Oh my team, oh my toronto.
Go Reds! Go Lee!
관중들은 뜨거운 응원가를 불렀다.
경기장에는 아직도 관중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현 리그 1위 팀하고 붙는 빅경기인 만큼, 경기를 위한 방송사 중계차도 상당히 많이 모였다.
이 경기를 얼마나 기대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관심사는 양 팀의 스트라이커, 제퍼슨 리와 웨인 루니에 향해 있었다.
[두 선수 모두 연속 득점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과연 오늘도 득점을 기록할 수 있을까요?]
[루니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제퍼슨 리가 DC 유나이티드의 강력한 벽을 뚫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군요.]
[자, 이제 DC 유나이티드의 선축으로 경기 시작됩니다!]
“달려가!”
그랜드 감독은 리그 1위 팀을 맞이해 기죽지 않았다.
내려앉지도 않았다.
늘 그랬듯이 전진을 외쳤다.
선축과 동시에 강하게 전방 압박을 시도하는 토론토.
평소 움직임을 제한하며 적은 활동량을 가져가는 제퍼슨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감독의 주문이었다.
“기회를 노려! 파고들어!”
어차피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게임이다.
그랜드 감독은 공격 축구를 신봉했고, 선수들도 그 성향을 잘 알았다.
그 순간 캡틴 브래들리가 공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브래들리는 몇 번 공을 툭툭 차며 전진하다가 플레이메이커 바스케스에게 패스했다.
바스케스는 윙어 조나단에게 스루 패스.
조나단이 돌파를 시도했다.
“Go! Reds!”
“가서 짓밟아 버려!”
조나단의 빠른 돌파.
그리고 박스 안으로 침투해 가는 제퍼슨.
조나단의 러닝 크로스가 올라왔다.
제퍼슨은 수비수 번바움을 떨쳐 내고 헤딩에 성공했다.
그러나 골문과는 다소 먼 거리.
그의 헤더는 골문이 아니라, 뒤에서 달려오는 바스케스의 발끝에 떨어졌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계산되어 떨어지는 공.
바스케스는 달려오는 속도 그대로 슈팅을 때렸다.
“오!”
“왓 더!”
하지만 힘이 너무 들어간 슈팅은 골문을 벗어났다.
DC의 원정팬들은 경기 시작하자마자 실점할 뻔한 상황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토론토의 첫 번째 슈팅.
이번 라운드 빅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기점이었다.
***
DC 유나이티드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뭐, 리그 1위 팀이니까 당연한 거겠지.
수비는 튼튼했고, 중원도 강했다. 무엇보다 공격진이 정말 막강했다.
이전에 만났던 신시내티, 뉴욕 레드불스하고는 비교하는 게 실례로 느껴질 만큼.
핵심 선수 웨인 루니는 말할 것도 없는 대단한 스트라이커다.
그리고 그 뒤를 바치는 10번 쉐도우 스트라이커 루치아노 아코스타.
왼쪽 윙에서 인사이드로 치고 들어오는 움직임이 기가 막힌 폴 아리올라까지.
이 셋은 호흡도 완벽했다.
특히나 미래에 PSG로 이적하는 루치아노의 날카로운 패스는 경계 대상 1호였다.
문제는 경계한다고 해서 막기 쉽지는 않다는 거지.
“너무 기죽지 마.”
결국, 루치아노의 날카로운 패스와 루니의 라인브레이킹으로 실점을 당했다.
특히 루니 마킹을 실패한 알렉산더는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데뷔전 상대가 웨인루니라니.
얘도 불쌍하네.
“두 골 넣어서 이기면 되지.”
뭐, 아직은 DC의 페이스긴 했다.
4-3-3의 쓰리톱 전술.
웨인 루니를 축으로 좌측 아리올라, 우측에선 거의 프리롤에 가까운 아코스타.
이 셋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것처럼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우리 수비를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제대로 봐! 공간을 점유해! 미리 생각하고 움직여!”
그랜드 감독은 미친 듯이 소리쳤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당장 총을 꺼내서 적들을 무자비하게 밟아 버리는 다이하드의 주인공을 연상케 했다.
바카는 다행히도 정신을 차렸다.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보면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 그러자 비교적 DC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수비가 진정이 되면, 해결해야 할 건 바로 공격진이다.
“리! 리!”
단단한 수비를 부수기 위해서는 더욱 활발한 움직임이 필요했다.
나는 전방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더 밑으로 내려오며 공을 받아 주고 내 주기를 반복했다.
자연히 DC의 수비수는 조금씩 라인이 높아지면서 딸려 올라왔다.
짧은 패스를 주고받다가 기회를 엿봤다.
그리고 오른쪽의 닉 대런에게 패스.
닉 대런은 조나단과 달리 박스로 파고드는 유형이다.
그는 선수 한명을 젖히고, 다시 나에게 리턴 패스.
그 순간 상대의 압박이 들어왔지만, 공을 발끝으로 툭 치며 가볍게 컨트롤해서 압박에서 벗어난 뒤.
왼쪽 사이드라인을 질주하는 조나단에게 그대로 스루 패스를 찔러줬다.
박스 밖에서 미리 경로를 파악하던 DC의 수비수가 황급하게 패스를 차단하기 위해 슬라이딩을 시도했지만, 패스는 빠르고 강했다. 정확한 방향으로 필드를 가르며 공간을 파고든 패스.
“달려! 조나단! 뛰어!”
자. 연계 플레이는 너희만 하는 게 아니라니까.
***
[엄청납니다! 제퍼슨. 닉 대런과 완벽한 패스 플레이 후에 좌측에 파고드는 조나단에게 날카로운 패스!]
[기가 막힌 연계 플레이입니다!]
[옆에도 눈이 달렸나요? 대단합니다.]
DC의 쓰리톱에는 분명 밀리지만, 제퍼슨을 축으로 하는 토론토 공격진의 연계 플레이도 환상적이었다.
맹렬하게 달려가 스루 패스를 받아 낸 조나단은 뒤에서 미친 듯이 달려오는 브래들리에게 컷백을 시도했다.
브래들리는 그대로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날렸다.
태앵!
골포스트를 맞고 튕겨 나오는 공.
그 공을 제퍼슨이 달려가 키핑하는 데 성공했다.
[제퍼슨 세컨볼을 따냅니다. 번바움이 제퍼슨에게 달라붙습니다. 어깨를 들이밀고 싸우는데요!]
스티브 번바움.
차세대 미국의 수비수라고 불리지만, 그는 월드컵도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중국 리그로 갔다.
제퍼슨은 이학현일 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그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플레이 성향을 잘 알았다.
‘비열한 자식이지.’
반칙은 기본이고 성질도 더러운 놈이었다.
다른 선수들이 으레 그렇듯, 중국으로 건너간 후 변한 전형적인 유형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원래 그런 스타일이었고 월드컵까지 갈 만한 재능이었음에도 결국 더 성장하지 못했다.
그가 뒤로 바짝 붙어 제퍼슨의 허벅지를 무릎으로 올려 차려는 순간. 제퍼슨이 휙 돌면서 어깨를 밀어 넣었다.
심판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심판!”
하지만 스티브는 가슴을 붙잡고 넘어졌다. 몸을 돌리며 어깨를 밀어 넣는 척하면서 가슴을 크게 밀쳐 버린 것.
그러나 심판은 이 정도는 반칙이 아니라며 손을 휘휘 저으며 뛰어갔다.
[심판이 고개를 젓습니다. 정당한 몸싸움이라는 거죠!]
[리! 그대로 공을 키핑하고 달립니다! 수비가 막아섭니다!]
제퍼슨은 무리하게 돌파하지 않았다.
뒤를 따라오는 조력자를 바라봤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공간을 찾아가는 바스케스.
제퍼슨이 툭 공을 밀어 넣었다.
단숨에 수비가 와르르 무너졌다. 공간을 찾아들어 간 패스는 바스케스의 발끝에 걸렸고, 그는 유려한 움직임으로 선수 하나를 제치고 가벼운 슈팅 모션을 취했다.
깔끔한 슈팅 페인트.
무너진 수비들 사이로 제퍼슨이 벼락같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깔끔한 낮은 크로스.
[바스케스! 유려한 움직임으로 공을 줄 공간을 봅니다! 제퍼슨! 공간을 봤어요! 달려갑니다! 세상에. 아무도 막지를 못합니다. DC 유나이티드, 토론토의 환상적인 연계에 무너집니다!]
제퍼슨이 공을 발바닥으로 잡은 사이, 넘어졌던 수비수가 급하게 달려들었다.
발을 들어 올리는 위험한 태클.
제퍼슨은 여기서 순간적으로 고민에 빠졌다.
반칙을 따낼까?
아니다.
지금은 기회다.
[제-퍼슨! 공을 발 안쪽으로 툭 치며 돌려놓습니다. 위험한 태클을 피해내는 우아한 움직임입니다!]
페널티 박스 안. 좁은 공간, 찰나의 순간에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
수비들이 몸을 날리며 각도를 막아서는 순간.
이미 제퍼슨의 발등에 정확히 맞은 슈팅은 공간을 갈랐다.
뻐엉!
[Oh, Wonderful! 믿기지 않는 골입니다. 좁은 공간을 노리며 정확하게 쏘아지는 강력한 슈팅에, 골키퍼 손도 못 쓰고 당합니다! 1대 1입니다. 동점입니다. 토론토!]
[토론토의 환상적인 연계 플레이. 이후 제퍼슨의 단독 퍼포먼스로 엄청난 골을 만들어 냅니다!]
Ohhhhh!
Go Toronto! Go Lee!
BMO 필드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미친 듯이 흔들렸다.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 소리에 경기를 지켜보던 해설자들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환상적인 연계와 완벽한 슈팅으로 동점골을 만들어 낸 제퍼슨은 관중석을 향해 달려갔다.
잔디를 가르는 무릎 슬라이딩.
제퍼슨은 양팔을 벌리고 거칠게 포효했다.
“Gooooooooaaaal!”
“제퍼슨! 제퍼슨!”
“빌어먹을, 사랑한다고 제퍼슨!”
“이 자식. 넌 멋진 놈이야!”
***
“미쳤군.”
DC의 감독 벤 올슨은 이마를 쓸어 올렸다.
동점골.
그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플레이로 당했다.
제대로······.
“연계를 한다고?”
연계 플레이는 DC의 장점이다.
웨인 루니를 축으로 하고, 조율을 기가 막히게 해내는 루치아노가 있기에 가능한 플레이였다.
그런데 토론토도 똑같은 연계 플레이로 공격을 성공시켰다.
“우리가 몰랐던 면모가 또 있었다고?”
제퍼슨의 등장.
처음 그의 등장에 많은 구단은 피지컬에 주목했다.
엄청난 피지컬은 단순히 힘 대 힘의 싸움에서 수비진을 붕괴시키는 위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거기에 이어서 제퍼슨의 드리블 돌파와 발재간, 개인기 같은 기교에 주목했다.
좋은 신체 조건과 기술이 합쳐진 점은 위력적이었다.
때문에 벤 올슨은 단단히 준비했다.
수비와 미드필더에게 협력 수비를 지시하고, 집중을 요구했다. 절대 속지 말고, 함부로 싸우지 말 것을 요구했다.
잘 통하는 것 같았다.
한데 제퍼슨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저 연계 플레이. 토론토의 플레이가 아니다.’
조금 전 공격 상황에서 패스를 주고받은 선수만 무려 다섯 명이다. 다섯 명이 환상적인 연계로 수비를 무너뜨렸다.
이건 플레이메이커인 바스케스의 공이 아니다.
‘제퍼슨 혼자 경기를 조율했어. 공을 받고, 주고, 동료 선수들이 자기도 모르게 완벽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게 정확한 위치, 정확한 공간으로 패스를 줬지.’
그러니까.
스트라이커가 경기를 조율했단 얘기다.
“그게 말이 돼?”
그럴 수가.
올슨은 허탈하게 웃었다.
“저 친구, 유스 리그서 쓰려고 했다면서?”
영입을 시도했다가 물을 먹은 건, 유스로 쓰려고 했던 DC 유나이티드의 단장이었다.
“예. 나이가 어리니까 유스에서 차근차근 키워서···.”
“자네는 쟤가 유스에서나 뛸 법한 선수로 보이나?”
“······.”
“그러면 우리 유스팀이 미국 최강이겠군.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