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Go Toronto, Go LEE! (5)
[토론토의 새로운 비밀병기(Secret weapon) 제퍼슨 리.]
토론토의 최대 일간지 ‘토론토 스타’에 아들의 심층 분석 기사가 실렸다.
이성학은 흐뭇한 눈길로 신문을 쭉 내려다 봤다.
와이프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고 토론토에서 우편으로 보낸 신문이었다.
‘한국의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인 아버지와 미국 육상 100m 은메달, 400m 계주 동메달에 빛나는 앨런 여사의 슬하에서 자란 제퍼슨 리는 그야말로 운동 천재라는 말이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캬!”
고작 두 경기 만에 토론토 최대 일간지에 심층 분석 기사가 실리다니.
이성학은 아들의 실력에 순수하게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물론 풋볼을 계속했다면 이것보다 더 대단한 선수가 됐을지도 모른다.
‘수백만 달러는 기본이지.’
전 세계 스포츠 선수의 연봉 순위를 매기면, 그중 상위권에 풋볼 선수가 차지하는 비율은 엄청나다.
한마디로 미국 내에서 돈과 명예를 원했다면 풋볼을 계속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이성학은 내심 풋볼을 그만두고 축구를 한단 사실에 환호했다.
위험했으니까.
풋볼은 선수 생명이 짧기로 유명하다. 몸에 피해가 누적되고 뇌에 큰 충격을 준다.
모든 스포츠가 위험성을 안고 있지만, 풋볼은 그 강도가 더했다. 부모 된 처지에서 아들이 풋볼을 그만두고, 축구에서 활약하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2경기 4골 1어시스트의 맹활약.
이 페이스가 계속 유지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성학은 또 바빠질 것이다.
여러 구단에서 문의가 들어올 게 분명하니까.
하지만 토론토 이후 제퍼슨이 갈 방향은 명확했다.
“유럽이라······, 유럽.”
이성학은 아들이 유럽에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걸 잘 알고 있다.
“쩝. 그때가 되면 에이전트를 따로 고용해야지.”
유럽의 구단을 상대하려면 자신의 역량으로 부족하다.
이성학은 그 사실을 체감했고, 이미 아내와 자신의 체육계 인맥을 총동원해서 괜찮은 에이전시를 물색하고 있었다.
‘선택은 아들 몫이지만.’
에이전트를 선택하는 것도 결국은 아들 몫이다.
자신은 그저 아들의 조력자로서 그가 가장 환하게 빛나게 하는 역할만 할 뿐.
‘그러고 보니, 우리 아들이 이번 시즌 몇 골이나 넣으려나?’
***
마테우스 율리아겐.
그러니까 이 남자는 전 세계 빅클럽들이 노렸던 피지컬 트레이너였다.
심지어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은 핵심 스트라이커를 라이벌 구단으로 이적시켜도, 율리아겐만큼은 지키겠다는 발언을 했을 정도다.
또 다른 별명은 재활 공장장.
이미 전성기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선수들의 폼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 엄청난 능력을 보여줬다.
바이에른 뮌헨의 레반도프스키는 39살까지 뛰었으니, 오죽하겠는가.
또 1년을 통째로 날리는 시즌 아웃 부상을 당한 선수를, 다음 시즌에 더 엄청난 활약을 할 수 있게 만들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지.
그만큼 미래에는 몸값이 엄청나게 뛸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축구계에 뛰어들지 않은 교수였다.
캐나다까지 날아온 율리아겐은 미래에서 봤던 모습보단 확실히 젊은 얼굴이었다.
각진 얼굴과 짙은 눈썹. 약간 회색빛이 감도는 푸석한 머리.
은테 안경을 쓰고 굳게 닫힌 두 입술을 보니, 예의 그 성격이 짐작되는 얼굴이었다.
‘딱딱해서 같이 대화하기 힘든 종류였지.’
옛 생각을 떠올리니 쓴웃음이 나온다.
“반갑습니다. 마테우스 율리아겐입니다. 뮌헨 대학에서 스포츠 생리학과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
“Schön dich kennenzulernen. Es heißt Jefferson.(반갑습니다. 제퍼슨이라고 합니다.)”
내 입에서 독일어가 튀어나오자 율리아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독일어가 유창하시군요.”
“조금 합니다.”
물론이지. 그래도 분데스리가에서 두 시즌이나 뛰었는걸.
내가 독일어로 인사하자, 분위기는 약간 부드러워졌다. 뭐, 그래 봤자 율리아겐은 여전히 딱딱한 얼굴이긴 했지만.
바로 본론을 얘기했다.
어머니에게 내 생각을 말해 놓은 터라, 이미 그녀와 많은 교감이 이루어진 상태일 것이다.
“절 고용하고 싶다고 들었습니다.”
“네. 개인 트레이너로요.”
“제가 강단에서 버는 돈이 적지 않습니다.”
돈이야 사실 문제없지.
지금은 미래에 비교하면 율리아겐의 급여는 박봉 수준일걸?
미래에는 웬만한 선수보다 더 받는 트레이너로 유명했으니까.
더구나 난 지금 받는 돈을 딱히 쓸데가 없어 모으고 있다. 지금은 이 돈이면 충분할 거다. 시간이 흐른다면 모르겠지만.
훗날 율리아겐이 빅클럽의 제의를 받고 떠난다면, 나도 그 클럽으로 떠날 용의가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율리아겐은 대단한 사람이다.
돈 얘기를 꺼냈지만 율리아겐은 돈에 연연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만약 돈을 따졌다면, PSG가 엄청난 주급을 제시했을 때 뮌헨을 떠났겠지.
나는 그가 어떤 유형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우선 계약에 관해 얘기하기 전에 이것부터 일독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 메디컬 테스트 결과입니다.”
“음.”
미국 스포츠 선수들에게 개인 트레이너가 붙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구단에서 붙여 주는 의사와 트레이너 외에도 스타들은 각자 잘 맞는다고 생각되는 트레이너를 따로 고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선 자료를 요청했다.
그랜드 감독은 멋쩍은 기색이었지만 메디컬 테스트 자료를 건네줬다.
‘앨런 여사의 소개로 만나는 트레이너라면 믿을 만하겠지.’
역시, 여기서도 어머니의 명성이 통한다.
스포츠계에는 아직도 ‘육상 영웅’이라고 불리는 어머니니까.
하여튼 율리아겐은 돈을 보고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오랫동안 스포츠 생리학을 연구하면서, 운동선수들이 어떻게 초인적인 힘을 내고, 움직임을 보여 주는지에 골몰했다.
한마디로 연구 욕심이 강한 스타일이었다.
그런 그를 사로잡을 수 있는 건, 엄청난 피지컬의 생생한 데이터다.
즉. 나란 얘기지.
율리아겐은 테스트 자료를 쭉 읽었다.
아주 꼼꼼하게.
그러면서 몇 번 나를 흘끔 바라보고, 눈썹이 꿈틀거렸다.
음.
저거 심각한 얼굴인데.
내가 과거에 다쳤을 때 저런 표정이었지.
서류를 다 읽은 율리아겐이 서류를 소리 나게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재밌는 몸입니다.”
율리아겐은 그렇게 말하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음.
저거 설마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던진 말은 아니겠지?
내가 딱히 반응이 없자 율리아겐은 안경을 벗었다.
“리. 주변에 가장 큰 병원이 어디 있죠?”
“토론토 대학 병원이 가장̀······.”
“함께 가시겠습니까? 직접 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사항이 많습니다.”
“아···네. 그러죠.”
***
결론부터 말하자면, 율리아겐과 계약에 성공했다.
내 신체 능력을 살펴본 율리아겐은 뭔가 탐구 어린 눈빛이었다.
Großartig! (대단해!)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아마 그는 돈보다는 내 몸을 한번 살펴보고 관리하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힌 듯했다.
어찌됐건 율리아겐은 계약 후 바로 일에 착수했다.
장시간 비행의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 텐데, 그는 고지식하게 일을 시작했다.
‘우선, 제가 권고해 드리고 싶은 건 체력 훈련을 최소화하는 겁니다.’
타인과 비교하면 내 신체는 이미 완성된 수준.
그러나 내 몸은 아직도 크고 있었고, 더 성장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무리하게 체력 훈련을 계속하면 바디 밸런스가 무너질 염려가 크다고 말했다.
‘신장과 체중, 그리고 근육. 또 어느 부위의 근육이 어느 정도의 비율을 유지할지, 그 모든 것을 조사한 뒤, 결정되는 게 밸런스입니다. 제가 운동 루틴을 분석하고 트레이닝 방법을 연구해 보겠습니다.’
원하던 바였다.
나 역시 피지컬 쪽 훈련에는 문외한이다.
개인기나 패스, 경기장을 넓게 보기 위한 기술을 상승시키는 훈련에는 도가 텄지만 말이다.
‘아직 성장 중인 청소년기의 신체에 과도한 운동은 오히려 독입니다. 겉으로 티는 나지 않더라도, 근육에 피로도가 누적되고, 끝내 독이 됩니다.’
율리아겐은 그렇게 말하면서, ‘성장 중인’이란 부분에서 잠시 망설였다.
확실히 망설였어.
내 몸이 성장기라는 게 그도 사실 놀란 눈치였다. 나도 놀라운 데 뭐.
‘또한, 되도록 풀타임 경기를 하지 않는 걸 권고해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이야 시즌 막바지, 그리고 몇 경기 남지 않았습니다만. 다음 시즌부터는 다르니까요.’
그의 말대로 이번 시즌은 경기가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
그랜드 감독은 벌써 내 몸을 걱정해 출전 시간을 조절해 주고 있긴 하지만.
문제는 다음 시즌이었다.
정규리그 34경기에,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에 따라 몇 경기 더 늘어난다.
거기에 올해 시즌을 잘 마쳐서 북중미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확률도 있다.
리그 컵경기에, 캐나다 팀들끼리의 컵대회도 있다.
적어도 50경기 이상이다.
10대의 몸이 50경기를 뛰면 혹사다.
‘그전까지 최대한 몸을 만들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성장이 끝났다고 여겨지기 전까진 출전 시간을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알겠어요.’
그랜드 감독에게 이런 얘기를 전달하면, 그는 충분히 좋은 방안을 선택할 것이다. 좋은 감독이니까.
하여튼 율리아겐이 나에게 오면서 걱정은 한시름 놓았다.
이젠 나는 그가 만들어 준 트레이닝 방법으로 훈련에 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축구를 하면 되는 것이다.
자, 다음 경기가 DC 유나이티드였던가.
현 동부 컨퍼런스 1위 팀.
그리고 득점 1위에 랭크되어 있는 웨인 루니(Wayne Rooney)의 팀.
***
“긴장하지 마.”
저번 경기에서 주전 수비수가 햄스트링으로 이탈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오랫동안 콜업 얘기가 나왔던 알렉산더 바카가 1군으로 승격했다.
바카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했다.
“오랫동안 1군 데뷔를 꿈꿔왔어. 여기 토론토에서. 그런데 네가 먼저 데뷔했더라. 오늘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거야.”
뭐, 미래의 미국 국대 수비수니까 잘해 주겠지.
씩 웃으며 그의 어깨를 몇 번 두들겨 줬다.
바카가 올라왔으니까 로드릭이 이제 유스 주전이겠구나. 잘하면 로드릭도 같이 뛸 수 있겠는데.
현재 리그 13승 3무 3패, 승점 42점으로 동부 컨퍼런스 선두를 달리고 있는 DC 유나이티드와의 일전.
여기엔 슈퍼스타가 있다.
서부에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그리고 동부, DC에는 웨인 루니가.
사실 유럽의 슈퍼스타가 나이 먹고 미국에 오면, 다 호의적인 반응은 아니다.
폼이 떨어지니 돈이나 벌러 왔다고 비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웨인 루니는 달랐다.
그는 작년 2승 5무 7패의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도중에 입단했다. 팀에 오자마자 시즌 막바지 10경기에서 9골을 기록하며 팀을 7승 3무, 무패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번 시즌 슈퍼스타의 클래스를 보여 주면서 현재 19경기 득점 22점으로 득점 1위를 달리며 팀을 선두로 이끌고 있었다.
물론 웨인 루니만의 원맨팀은 아니었다.
미국의 95년생 국가대표 미드필더 폴 아리올라.
훗날 PSG로 이적하는 10번 아르헨티나 루치아노 아코스타.
베네수엘라 국가대표 주니오르 모레노.
미국의 차세대 센터백 스티브 번바움.
그야말로 현재 MLS에서 가장 막강한 스쿼드를 구축한 강팀이다.
하프라인에 올라섰다.
다소 작지만 단단한 체격. 바위 같은 느낌의 남자가 여유로운 얼굴로 동료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웨인 루니였다.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요즘 캐나다에서 핫한 친구군. 조지를 벤치로 보내 버린 신예 선수!”
“반가워요, 루니.”
“설마 내 팬이야?”
난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좋은 경기 부탁해요.”
“물론이지. 근데 너희 팬들한테 미안해질 거 같은데. 오늘 컨디션이 좋거든.”
“이런. 저도 오늘 컨디션 좋은데, 공교롭네요.”
“호!”
가벼운 기 싸움.
사실 이것도 자신 있는 거다.
유리 몸 때문에 그라운드에서 나를 얕보는 거친 수비수들을 상대할 땐, 때론 깡이 필요했다. 두둑한 배짱과 지지 않는 기세. 그리고 기 싸움.
루니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삑.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자.
공격 포인트 15개까지 몇 개나 남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