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Go Toronto, Go LEE! (3)
[토론토 FC, 홈에서 꼴찌 FC 신시내티 상대로 4:2 승리!]
[폭발한 토론토의 화력!]
[홈 관중들 제퍼슨에게 ‘미국의 왕’이라 찬사를 보내]
[제퍼슨 리. 데뷔전 3골 1어시스트. 엄청난 활약으로 토론토의 승리를 이끌다.]
[경기 MOM 선정 제퍼슨 리 ‘골을 넣고 승리하기 위해 토론토에 왔을 뿐이다. 아직 경기는 많이 남았다.’]
[토론토 감독 ‘후반 교체 해트트릭에 감동하였다.’]
[신시내티 감독 ‘후반전 제퍼슨 리의 투입이 경기를 반전시켰다.’]
[마이클 브래들리 ‘그가 17살이란 점을 난 아직도 믿을 수 없다.’]
[Reds! 7위 플레이오프를 향해 진격!]
***
미국은 스포츠의 나라다.
TV를 켜면 스포츠 전용 채널만 수십 개일 정도다. 심지어 종목마다 전문 채널이 있었고, MLS, 그것도 동부 컨퍼런스만 집중적으로 24시간 방송하는 채널도 있었다.
축구팬들은 온종일 TV를 켜 놓고 일하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한다.
그런데 토론토와 신시내티의 19라운드 경기가 열리는 그 시각.
TV를 켜 놓았던 축구팬들은 캐스터의 요란한 반응에 시선을 집중했다.
“오, 세상에. 저 친구 누구야?”
TV에 시선을 빼앗긴 사람들은 답답한 경기 양상에서 호쾌한 중거리 골로 경기를 반전시키는 아시아계 스트라이커를 봤다.
[데뷔전을 치르는 제퍼슨 리. 정말 믿기지 않는 활약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누가 이 친구를 보고 17살의 신인이라고 생각할까요?]
“제퍼슨 리?”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토론토가 쐐기골을 집어넣으면서 4:2로 달아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제퍼슨 리가 있습니다!]
[해트트릭입니다. 데뷔전 해트트릭이라니요!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군요. 완벽한 골이었고, 아름다운 골이었습니다.]
[이거 동부 컨퍼런스의 다른 팀들은 긴장해야 할 것 같은데요? 토론토의 화력에 불을 댕기는 스트라이커가 나타났습니다!]
[재밌겠어요! 제퍼슨 리의 데뷔전, 엄청난 활약으로 오늘 토론토가 승점 3점을 가져갑니다!]
“저게 신인이라고?”
축구팬은 얼떨떨한 얼굴로 급하게 구글에 검색을 시작했다.
“풋볼 러닝백 서부 MVP? 왓 더···!”
그 시간대. 구글에 제퍼슨을 검색하는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미국의 축구팬들 사이에서, 제퍼슨 리의 이름이 최고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
내가 토론토에 와서 감탄한 건 바로 시설이었다.
특히 트레이닝 센터에 있는 첨단 재활 기구는 놀랄 정도였다.
거대한 점퍼 슈트를 입고 물속에서 달리는 것, 또는 커다란 원통형의 기구에 들어가서 근육을 풀어 주는 기계나.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문물이었다.
‘미국은 미국이라 이거지.’
경기장부터 해서 클럽하우스의 시설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선수들은 격한 경기를 끝낸 뒤 기구를 이용해서 근육을 안정시키고 부상을 예방했다.
“제퍼슨? 몸 상태 어때? 45분이지만 상당히 격렬했는데?”
“문제없어. 좋아.”
“몸조리 잘해. 어릴 때 부상 한 번 당하면 훅 가는 거야.”
먼저 기계를 사용하고 나가는 조나단이 씩 웃었다.
조나단은 저번 경기 이후 급격하게 친해졌다. 나야 오프 더 볼 움직임으로 공간을 찾아가는 것인데, 조나단은 자기랑 호흡이 잘 맞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의 크로스를 거의 다 머리로 맞췄거든.
‘후. 좋다.’
마사지 기능이 첨가된 수트는 근육에 쌓인 피로를 풀어 주는 효과가 탁월했다.
마치 사우나에 온 것처럼 노곤해지는 기분.
문득 감독님이 말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성장기라니······.’
메디컬 테스트 결과 나는 아직 성장기였다.
하기야 축구계에는 190이 넘는 공격수와 수비수가 즐비하다.
내가 점프력이 뛰어나 장신 수비수에게서도 헤딩을 따내긴 하지만, 내 키가 엄청 큰 편이라고 하지는 못한다. 근육량은 훨씬 많기야 하지만.
지금 키는 184cm.
그동안 2cm가 더 컸다.
‘한 180대 후반까지 크면 딱 좋으련만.’
그 정도만 되면 괜찮을 거 같았다.
‘문제는 바디 밸런스인데.’
갑작스런 성장이 이뤄지면 바디 밸런스가 무너질 확률이 높았다.
무엇보다 나는 아직 10대였다.
10대 선수는 사실 피로도가 금방 쌓인다.
내가 걱정하는 점은 내 플레이 스타일에 의해 몸에 과부하가 걸릴 가능성이다.
상체와 허벅지의 근육.
이 근육들은 폭발적인 힘을 내는데 좋지만, 문제는 무릎이다.
상체와 허벅지의 체중을 모두 무릎이 버텨내야 한다. 특히 문제는 내 플레이 스타일이다.
높이 떠올랐다가 착지하는 과정에서도 무릎에 충격을 준다. 나는 거기에 고스트 스텝같은 현란한 드리블을 사용하기까지 한다.
‘지금이야 티가 나지 않더라도, 나중에 되면 어떻게 될지 몰라.’
전설적인 축구 스타들이었던 호나우두와 아드리아누가 그러지 않는가.
물론 그 외의 부상과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지금 나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단숨에 골문을 헤집는 엄청난 폭발력과 오랫동안 롱런할 수 있는 지구력을 동시에 유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난 그것을 목표로 달려가야만 했다.
이 사실을 경기가 끝나고 감독님과 얘기를 나눴다.
‘출전시간을 조정해 주마. 그 부분은 사실 팀 닥터들과 피지컬 코치들이 내놓은 의견이라, 나중에 얘기할 생각이었는데······.’
‘우리 구단은 전심전력을 다 할 거다.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의사들하고 전문가들을 모아서, 너에게 가장 알맞은 트레이닝을 찾아낼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이미 감독님과 피지컬 코치, 팀 닥터들은 내 몸에 대한 문제점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사기 피지컬을 얻고 나서도 피지컬이 걱정이라니’
아이러니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제퍼슨의 신체에서 나오는 폭발력. 그리고 이학현으로서 연마한 기술과 기교.
이 모든 게 합쳐져 어쩌면 호나우두와 같은 플레이가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스타일을 유지하려면 정말 큰 노력이 필요했다.
이 폭발력과 지구력을 동시에 챙기면서 선수 생활을 오래 해야 한다.
뭐, 지금 시대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수많은 첨단 의료시설과 발전된 트레이닝 방법이 우후죽순 나오고 있으니까.
내가 잘 대비해야 한다.
고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
“응?”
“혹시 유럽 쪽 스포츠 에이전시에 끈이 있나요?”
“에이전시? 왜 에이전트 고용하게?”
물론 그것도 해야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버지가 훌륭하게 해 주고 계시니까.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볼 사람이 있어서요. 아마 지금쯤이면 대학에 있을 거 같긴 한데.”
“어느 나라?”
“독일이요. 피지컬 트레이닝을 대학에서 강의하고 계실 거예요.”
“음. 한번 알아볼게.”
“네. 마테우스 율리아겐라는 사람이에요.”
어머니는 유럽 쪽 체육계에도 인맥이 있으셨다. 영국계이기도 하셨고 한때 영국에서 코치 생활을 짧게나마 하셨던 영향이다.
마테우스 율리아겐.
유럽의 빅클럽들이 원했던 희대의 피지컬 트레이너.
유명 선수도 아닌 트레이너의 구단 이적설이 연일 뉴스에 오를 정도로 대단한 명성을 가졌던 트레이너.
내가 분데스리가의 뉘른베르크에서 잠깐이나마 활약했던 이유는 그의 공로가 컸다.
최악의 피지컬이던 내가 분데스리가에서 한 시즌 동안 26경기에 출전해 2개의 골과 9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것은, 당시 뉘른베르크에서 피지컬 트레이너였던 율리아겐의 맞춤 트레이닝 덕분이다.
팀이 강등당하고, 율리아겐이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나면서 난 그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분데스리가보다 수준 떨어지는 2부 리그에서도 몸이 버티지 못하고 결국 방출당했으니까.
그만큼 그는 대단한 트레이너였다.
당시 허약하기 짝이 없었던 이학현의 피지컬로도 풀타임을 뛰게 했던 마법의 손이었으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아직 정식 구단에서 뛰지 않고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그를 손에 넣어야지.’
토론토 구단이 미국의 저명한 의사와 트레이너를 아무리 모아도 율리아겐 한 사람만 못 할 거다.
‘개인 트레이너로 고용하는 거야.’
한 구단의 수많은 선수가 아니라, 오로지 나만 전담하는 트레이너.
당시 뉘른베르크에는 1군 선수진만 40명이 넘었다. 율리아겐은 그들 모두를 관리하면서도 완벽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줬다.
그 능력을 오로지 나 혼자한테만 집중한다면?
그러면 내가 직면한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
뉴욕 레드불스는 동부의 강호였다.
18시즌에선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무너지면서 진짜 우승컵을 손에 넣지는 못한, 대표적인 우승 운 없는 구단으로 통한다.
현재 동부 리그 5위.
3위와 승점이 4점 차이밖에 안 나기 때문에,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한 상황.
“조지가 선발일까? 아니면 리가 선발일까?”
“아직은 조지일거야.”
“글쎄. 저번 경기 봤어? 데뷔전 해트트릭이라고. 내가 보기엔 이 친구를 선발로 세울 거 같은데.”
“설마. 조지가 애송이한테 밀린다고?”
“애송이? 보는 눈이 더럽게 없군. 그래서 우리가 저 친구를 영입하자고 할 때 만류했지?”
“······.”
뉴욕 레드불스의 스카우터망에도 제퍼슨 리가 잡히긴 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기록도 없고, 토론토가 거액의 연봉을 제시했단 사실이 알려지면서 발을 뺐었다.
물론 지금 후회하는 중이었고.
“그래도 조지는 국대 주전이야. 아무리 이적이 확정됐다고 해도 벤치에 놓을까?”
“그랜드 감독은 과감한 사람이야. 충분히 제퍼슨을 선발로 쓸 수 있어.”
“누가 선발로 나오면 우리에게 위협적이지?”
“당연히 제퍼슨 리지.”
조지 알티도어는 여러 시즌 리그를 뛰면서 플레이 스타일이 파악됐다.
즉 어떻게 대응하고, 수비할지 가이드가 나온 상황이다.
그러나 제퍼슨 리는 혜성처럼 등장한 선수.
그에 대한 대비책이 있을 리가.
당연히 데뷔전 해트트릭을 터뜨린 제퍼슨이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우선 강력한 피지컬이야. 몸으로 버텨 주는 거는 17살이라고 볼 수가 없어.”
“스피드와 점프력 모두 대단해.”
“지금 피지컬만 볼 게 아니다. 이 자식들아!”
전력 분석팀 팀장이 답답한 듯 소리쳤다.
“피지컬? 대단하지. 근데 그게 뭐 어쨌다고? 피지컬 강하면 다 축구 잘하나? 어? 우리가 볼 건 이 자식의 괴물 같은 피지컬이 아니라 기술이야!”
팀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영상을 되감았다.
중앙에서부터 미드필더의 강력한 압박을 벗어나는 탈압박 능력.
달려드는 수비수를 팬텀 드리블과 상체 페인트로 무너뜨리는 장면.
조나단의 크로스에 앞서 공간을 찾아가는 완벽한 오프 더 볼.
파고드는 바스케스에게 이어지는 킬 패스.
팀장은 답답한 기색으로 휘하 분석관들에게 소리쳤다.
“다들 피지컬에만 속고 있다고. 피지컬만 좋은 선수라고 편견을 갖고 있단 말이야. 그래서 수비들에게 이상한 대책을 내놓지.”
팀장은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웃기지 마. 이놈은 피지컬만 괴물인 게 아니라, 그 안에서도 17살이라고 볼 수 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 빌어먹을 패스를 찔러줄 시야도 갖고 있다고!”
팀장의 눈동자가 타올랐다.
“우리는 피지컬로 때려 부수는 타겟터가 아니라 컴플리트 포워드를 상대할 대비책을 세워야하는 거다. 알겠어?”
분석하던 뉴욕 레드불스의 코치진 사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속에서 팀장이 탁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빌어먹을. 어떤 개자식이 얘 영입하자고 했을 때 연봉이 비싸다고 만류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