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Go Toronto, Go LEE! (2)
두 팀의 순위는 하나 차이였지만, 전력 차는 명백했다.
신시내티는 약팀이었다. 그러나 토론토는 17시즌 리그 우승, 18시즌 북중미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등 분명한 강팀이다. 이번 시즌만 유난이 운이 따르지 않을 뿐.
[토론토 FC가 신인선수 제퍼슨 리의 벼락같은 중거리 슛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립니다!]
[소름 돋는 중거리 골이었습니다.]
[제퍼슨 리. 데뷔전에서 데뷔 골을 만들어 냅니다!]
“What the fuck!”
그랜드 감독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소리쳤다. 답답하던 경기 양상을 한 번에 반전시키는 엄청난 골이었다.
깊게 내려앉은 두 줄 수비를 단숨에 침몰시키는 강력한 한 방.
그랜드 감독은 제퍼슨의 동점골에 경기의 흐름이 바뀌는 걸 느꼈다.
‘조지하고는 다른 느낌이군.’
주전 공격수, 조지 알티도어는 전형적인 타겟터다.
공을 따내고 버티면서, 2선으로 넘겨주는 스타일이다.
득점력도 출중하고 버텨 주는 힘도 강했다. 그러나 저렇게 내려앉은 수비의 틈을 비집고 슈팅을 때려 넣지는 못했다.
알티도어가 막히면 그날의 경기가 어렵게 풀리는 것이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제퍼슨 리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것처럼 브래들리와 원투 패스를 주고받더니, 공간이 열리자마자 벼락같은 슈팅을 욱여넣었다.
“빌어먹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자식!”
BMO필드에서 토론토의 열렬한 응원가가 퍼지는 가운데, 그랜드 감독은 터프함을 여지없이 보여 줬다.
모두가 반신반의했던 제퍼슨 리의 영입.
그러나 그랜드 감독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제퍼슨은 그 데뷔 골로 보여준 것이다.
***
신시내티는 동점골을 허용하고도 수비 전술을 유지했다.
애당초 그들의 목적은 승점 1점이었다.
전력 차가 명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토론토의 강력한 공격에 튼튼했던 수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Ohoooo-! Ohooo-!
Ohh, Ohh, Ohh, Ohh, my team.
My team, my toronto!
Go Toronto, Go Reds!
3만 홈 팬들의 뜨거운 응원가는 원정팀의 귓속을 파고들었고, 동점골을 넣고 사기가 오른 토론토의 공격은 매서웠다.
“뛰어! 조나단!”
캡틴 브래들리가 중원에서 강력한 수비로 신시내티의 공을 빼앗았다.
그리고 곧바로 왼쪽에서 달려 나가는 클래식한 윙어, 조나단 오소리오를 향해 쭉 뻗어 나가는 스루패스.
우오오오!
BMO필드가 한순간 울린다.
“들어가! 파고들어가!”
그랜드 감독이 과격하게 소리쳤다.
왼쪽 사이드라인을 파고든 조나단은 빠른 주력으로 풀백의 압박을 단숨에 벗어나 코너 라인까지 공을 몰고 갔다.
스피드 하나만큼은 대단한 선수였다.
그랜드 감독은 시선을 돌렸다.
박스를 향해 수비수를 떨쳐 내고 뛰어드는 움직임.
조나단은 동료에게 택배 크로스를 올려 주는 것으로 유명한 선수였다.
그때 제퍼슨은 마치 손발을 여러 번 맞춰 본 동료인 양, 조나단이 원하는 위치로 달려가고 있었다.
왼쪽 사이드라인을 무너뜨리며 질주한 조나단은 박스를 흘끔 보고 그대로 크로스를 올렸다.
“막아! 저 자식 막아!”
제퍼슨의 움직임이 기민했다. 크로스를 예측한 수비수가 제퍼슨이 뛰어오르지 못하게 어깨를 밀어 넣고, 한 명은 옷깃을 은근슬쩍 붙잡았다.
“빌어먹을! 반칙이잖아 심판! 카드를 포커카드에 끼어 놓고 왔냐고!”
그랜드 감독이 역정을 질렀지만 심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퍼슨은 반칙에 가까운 방해에도 불구하고 뛰어오르고 있었다.
“왓 더······!”
어깨 위치를 선점당하고, 옷깃마저 잡아끄는 상태.
이 상태에서 뛰어오르는 건 어려운 일이다. 몸의 무게 중심이 무너지고, 설령 뛰어오른다고 해도 정확한 타점을 맞출 수 없다.
그러나 제퍼슨은 그 모든 방해를 뿌리치고 뛰었다.
한 놈은 강력하게 몸으로 부딪쳐 넘어뜨리고, 옷깃을 잡아끄는 놈은 아무도 못 보게 발등을 밟고.
붕 뜬 크로스.
그리고 높고 정확한 타점!
터엉!
강력한 헤더는 골퍼스트를 맞고 튕겨나왔다. 세컨볼을 차지하기 위한 선수들의 몸싸움.
수비들이 뒤엉켜 쓰러지며 혼란은 가중된다.
그리고 굴러가는 공을 툭 밀어넣는 발끝!
[제퍼슨 리가 엄청난 헤더에 이은 침착한 마무리로 득점을 기록합니다!]
[세상에. 지금 도대체 어떤 플레이가 벌어진 것이죠? 박스에 수비수들이 바글거렸지만, 제퍼슨이 끝내 이겨 내고 헤더에 성공해 냅니다! 심지어 문전 혼란 상황에서 모든 방해를 무릅쓰고 발끝을 공에 갖다대며 득점합니다!]
[오늘 데뷔전을 치르는 제퍼슨. 신인선수답지 않은 노련한 플레이입니다!]
“Goooooooaaaaaal!”
“Reds! Re―dsssss!”
“리! 리! 제퍼슨 리! 리―!”
BMO필드가 무너질 듯이 요동쳤다.
몇몇 관중은 윗옷을 벗어 던지고 미친 듯이 뛰었다.
“Fucking wondgoal!”
“오, 세상에. 사랑에 빠질 거 같아.”
“당장 저 녀석의 유니폼을 사겠어! 내 엉덩이에 저 녀석의 이름을 새기지!”
“좀생이 같은 신시내티 녀석들. 이게 축구라고. 이게 터프한 축구지!”
팀의 동점골과 역전골을 만들어 낸 제퍼슨은 그대로 관중석을 향해 달려간 뒤 자신의 등에 적힌 이름을 가리켰다.
제퍼슨 리.
그리고 어깨를 으쓱이며 이게 뭐가 문제냐는 듯 거만한 제스처.
그 모습에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저 녀석 터프가이(tough guy)야!”
“멋진 자식. 네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마!”
“한 골 더 넣어서 해트트릭해 버려!”
크로스를 올린 조나단 오소리오가 달려와 제퍼슨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애송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크로스를 그렇게 제대로 받아먹을 줄이야. 조지도 컨디션 안 좋으면 못 받아 내는데!”
“크로스가 좋았어. 조나단.”
제퍼슨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조나단, 지금 어시스트가 몇 개지?”
“나? 한 7개 기록했나?”
“나한테 패스를 주면 이번 시즌 도움왕을 만들어 줄게.”
그 말에 조나단이 미친 듯이 웃었다.
“빌어먹을 정도로 거만한 자식! 마음에 들었어. 좋아, 어떤 크로스를 원해?”
“아무거나 상관없어. 낮으면 발로, 높으면 머리로.”
“너 진짜 17살 맞아?”
“물론.”
“빌어먹을. 17살이면 내가 고작 6년 전이었을 때인데. 좋아. 그럼 난 널 득점왕으로 만들어 줄게.”
조나단은 당당하고 자신 넘치는 이 친구가 마음에 들었다. 조금도 빼는 기색 없이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왠지 너랑은 잘 맞을 것 같단 말이야.”
제퍼슨이 씩 웃었다.
***
[제퍼슨 리의 동점골과 역전골을 보라고. 빌어먹을. 그랜드 감독이 훗날 자기가 사기꾼이라고 불릴 것이라는 예언이 벌써 맞아 떨어지고 있어! #제퍼슨 리 #토론토FC #REDS]
[지오빈코와 알티도어의 빈자리를 차지할 대형 스트라이커야! #제퍼슨 리]
[빌어먹을 정도로 사랑해. Fuck lovely! #제퍼슨 리 #토론토FC #원더보이]
***
신시내티는 버티고 버텨서 승점을 얻어내는 것이 첫째 목표였다.
그것이 1점이든, 3점이든 말이다.
신시내티는 적어도 전반전까지는 원래 목적을 넘어 승점 3점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후반전에 내려앉은 수비를 뚫어버리는 중거리 골.
그리고 밀집된 수비를 떨쳐 내고 성공시킨 헤딩 골.
두 개로 승점 1점은커녕,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됐다.
당연히 이렇게 되면 신시내티는 동점이라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전진할 수밖에 없다.
2:1로 지나, 3:1로 지나 똑같으니까.
그러나 분위기를 타기 시작한 토론토는 무자비했다.
두 골을 기록한 제퍼슨 리가 계속해서 유효 슈팅을 만들었다.
수비진을 무너뜨리는 중거리 슛과 빅토르 바스케스에게 찔러주는 아름다운 패스, 박스에서 버텨 주고 2선 침투하는 조나단도 있었다.
[오늘 데뷔하는 신인 선수가 경기를 지배하고 있군요.]
[도대체 저 선수가 어디서 튀어나왔을까요? 그랜드 감독은 도대체 저 선수를 어떻게 발굴했을까요?]
[얼핏 보기엔 타고난 골잡이 같습니다만, 발 기술을 보세요. 화려한 발재간과 상대를 농락하는 드리블, 그리고 풋볼에서나 볼 수 있는 고스트 스텝을 응용한 드리블까지! 완벽한 테크니션입니다!]
[제퍼슨 리. 휴식기 이후 MLS 동부 컨퍼런스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선수가 나타났습니다.]
[지오빈코와 이제는 곧 떠날 조지 알티도어. 특급 스트라이커의 공백을 메꿀 완벽한 스트라이커가 나타난 것 같군요.]
“Go, Reds! go, Toronto!”
“Go, Lee! go, Jefferson!”
경기장을 가득 울리는 열정적인 응원.
전반전만 해도 굼떠 보이던 토론토 선수들은 제대로 기세를 탔다. 끊임없이 골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제퍼슨 리. 박스에서 공을 잡습니다!]
[등을 진 채 버텨 주는군요. 그리고 침투해 들어가는 빅토르 바스케스! 바르셀로나에서 온 바스케스에게 제퍼슨의 리턴 패스가 도달합니다!]
[오, 세상에. 바스케스―! 침착하게 밀어 넣는 골입니다! 골!]
[제퍼슨과 빅토르 바스케스의 환상적인 호흡입니다!]
***
Landon_Timothy Donovan
-그는 단순한 골게터가 아니야.
패스도 할 줄 아는 컴플리트 포워드라고!
그때 업로드된 한 트윗.
축구를 안 보는 미국인도 유일하게 이름을 정확히 아는 축구스타, 랜던 도노반의 트위터였다.
***
토론토가 세 번째 골을 넣은 후 경기는 더 격해졌다.
이제는 잃을 게 없는 신시내티는 있는 힘껏 공격에 임했다.
양쪽 윙백들은 부지런히 전진했고, 서로의 측면은 텅텅 비었다.
그야말로 난타전의 양상이 펼쳐진 것이다.
전반전과 달리 화끈한 경기에 관중들의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전진해! 더 달려들란 말이야!”
“제퍼슨! 박스에서 싸워 줘! 더 부딪쳐!”
“브래들리! 수비를 도와줘! 네 역할이 뭐야? 박투박이잖아! 뛰고 또 뛰어서 공격하고, 수비하고 싸워 주라고!”
서로의 벤치에서 지시가 마구잡이로 쏟아질 때. 잃을 것 없다는 생각으로 공격에 임하던 신시내티의 만회골이 터졌다.
“앨런 크루즈가 올려 주는 낮은 땅볼 크로스! 달려드는 파넨도 아디가 발끝을 갖다 댑니다! 오, 완벽한 골입니다! 3:2! 신시내티가 BMO필드에서 만회골을 넣으며 바짝 쫓아갑니다! 엄청난 골이에요!”
만회골이 터지자 신시내티 원정 팬들은 적은 수지만 열정적인 응원을 보냈다.
그러나 토론토는 흔들림이 없었다.
오늘같이 공격의 물꼬가 한번 트이면 끊임없이 터지는 게 토론토 특유의 공격 축구였다.
하프 라인까지 내려와 제퍼슨이 공을 탈취했다.
그리고 그를 지나쳐 앞으로 달려 나가는 공격형 미드필더, 빅토르 바스케스.
왼쪽 사이드를 뚫고 질주하는 조나단.
그리고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공을 받을 준비를 하는 캡틴 브래들리.
제퍼슨은 공을 툭 브래들리에게 주고 빙그르르 돌아 수비하던 수비를 벗겨 낸 뒤 달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브래들리의 리턴 패스가 발끝에 도달했다.
“빌어먹을, 또 저놈이야! 막아!”
미드필더 하나가 빠르게 달려와 어깨를 밀어 넣었다.
파울을 각오한 움직임.
몸싸움으로 이겨내기 힘들 거라 생각한 미드필더는 거의 몸통 박치기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 줬다.
그러나 제퍼슨은 여기서 몸싸움을 선택하지 않았다. 왼발로 공을 툭 밀어 넣으면서 상체를 크게 흔들었다.
달려들던 미드필더의 중심이 무너졌다.
가볍게 볼을 터치해 압박을 벗어난 제퍼슨의 앞에는 텅텅 빈 공간이 펼쳐졌다.
빈 공간에서 누구보다 파괴력 있는 게 빠른 발과 강력한 피지컬을 가진 선수다.
그리고 제퍼슨은 그에 완벽히 부합하는 플레이를 보여 줄 수 있다.
직접 볼을 차고 드리블해 가는 움직임.
두꺼운 허벅지 근육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가속도는 순식간에 최고 속도까지 이르렀다.
그 순간 발목을 노리는 위험한 슬라이딩 태클이 들어온다.
제퍼슨은 흔들리지 않고 공을 살짝 띄우고 점프하며 태클을 피했다.
“······!”
“미친!”
엄청난 가속도. 그 상황에서 공을 띄우는 우아한 움직임.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던 경기장에 잠시나마 정적에 잠긴 듯했다.
“리! 여기야!”
“헤이, 아까처럼 한 번 더 하자고!”
왼쪽에선 조나단이, 오른쪽에선 바스케스가 손을 든다.
그러나 제퍼슨은 멈추지 않고 돌진했다.
수비들이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공간을 채우고 경로를 막는다.
동료 선수들의 공격적인 움직임은 제퍼슨이 더 날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제퍼슨은 공간이 생기면 그 누구보다 강력한 선수였다.
“저 공격수를 막으라고!”
골키퍼가 외쳤다.
골문 앞에서 보는 광경은 수비가 보는 광경과 다르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다른 윙어와 2선은 모두 수비를 끌어내기 위한 미끼에 불과함을.
뒤늦게 수비수가 달라붙었다.
그러나 제퍼슨은 가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상체를 크게 흔들며 가볍게 페인트로 제쳤다.
조나단을 압박하던 수비가 황급하게 내려온다.
그 순간 조나단을 향해 뿌려지는 제퍼슨의 패스.
“좋았어!”
조나단은 스텝오버를 펼치며 페널티 박스를 파고들었다.
좁은 공간에서 펼쳐진 패스 플레이.
신시내티의 두터운 수비벽이 단숨에 무너졌다.
제퍼슨의 드리블 돌파와 이어지는 패스에 수비수들은 마치 농락당하는 것처럼 휘둘렸다.
박스로 툭툭 파고들던 조나단이 골키퍼 가까운 위치로 땅볼 스루패스를 찔러줬다.
키퍼가 팔을 쭉 뻗는 순간.
순식간에 스퍼트를 올린 제퍼슨이 수비수를 떨쳐내고 패스를 받았다.
그 순간 지켜보던 그랜드 감독은 머리에 벼락이 치는 듯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구단 최연소 해트트릭?’
45분만 주면, 해트트릭하겠다고 공언했었지.
그랜드 감독은 보았다.
조나단의 다소 무리한 패스를 엄청난 속도로 잡아낸 뒤, 달려드는 골키퍼를 넘기는 가벼운 로빙 슈팅을.
관중석의 홈팬들과 벤치의 스태프들이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후반 교체 투입된 신인선수의 해트트릭.
얼굴이 시뻘게진 홈 관중이 소리쳤다.
“빌어먹을 자식! 빌어먹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자식! 오, 세상에. 우리팀의 스트라이커를 보라고! 미국의 왕이 될 스트라이커가 왔다고! 여기, 토론토에! BMO필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