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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17화 (17/258)

17. 프로 무대로 (4)

학교에서 찬밥 신세였던 축구팀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학교 본관 중앙에 처음으로 축구팀이 따낸 트로피가 전시됐다.

질리먼 감독님은 학교와 재계약에 성공했다.

오히려 학교 측에서 좀 더 안달복달했다지?

그에게 접근한 다른 학교들이 많았다고 했으니까.

그 외에도 축구팀에 대한 학교 측의 지원이 활발해졌다.

정식 잔디 기술자를 불러 훈련 구장의 잔디가 새것처럼 변했다.

냉장고, 정수기, 에어컨, 공기청정기 같은 일반 시설, 그리고 개인 락커도 새것으로 교체됐다. 스탭들은 대회 상금으로 낡은 훈련 장비들을 신상으로 바꿨다. 개인 유니폼까지 말이다.

이제 허름한 팀이 아니라 그럴듯한 축구팀이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게 남았다.

“장학금이요?”

“저희 다요?”

재단 측에서 훌륭한 경기를 보여 준 축구부 전원에게 장학금 형식으로 후원금을 지급한 것.

부유한 집안사정으로 인해 큰 금액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원래 돈이란 게 그렇다.

받으면 기분 좋거든.

일종의 우승 수당이라고 생각하고 받았다. 이 돈으로 부모님께 외식이나 한번 대접할 생각이었다.

“고마워, 리!”

잔뜩 상기된 얼굴의 산티아고가 쪼르르 달려왔다.

할머니와 둘이 지내는 산티는 아무래도 이 장학금에 상당히 감격한 기색이었다.

산티도 이번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2골 3어시스트인가.

충분히 좋은 기록이지만 내 기록에 밀려 빛이 바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내가 9골 5도움이었으니까.

“네가 없었다면 꿈도 못 꿨을 거야.”

솔직히 말해 우리 팀이 우승할 확률을 도박사가 배당을 매겼다면 터무니없이 낮았겠지.

팀과 개인의 격차가 어마어마했으니까.

산티아고, 로드릭을 제외하면 동네에서 그냥 공 차는 수준일 뿐이었다.

특히 산티아고는 거의 나하고만 패스를 주고받았다.

높은 활동량으로 수비진을 누벼도 공간에 침투해가는 선수는 나밖에 없었다.

어디로 갈지 몰라 멀뚱멀뚱 제자리만 지키는 공격수의 모습을 본다면 아무리 착한 산티라도 그 자리에서 쌍욕을 하고 싶었을걸.

솔직히 이해한다.

회귀 전 내 포지션은 2선이었다.

패스를 주려고 해도 공격수의 움직임이 답답하면 진짜 뚝배기를 깨주고 싶었으니까.

만일 산티하고 로드릭이 없었다면 이번 대회 우승은 나로서도 힘들었겠지.

막말로 나 혼자 3~4골 넣으면 뭐 하나.

수비진에서 헌납하면 끝인데.

“너도 잘했어.”

“나야 네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지. 득점왕에 대회 MVP에 도움왕까지 다 탔잖아!”

“그래 봤자 트로피 하나 없는 건데 뭐.”

작은 친선 컵대회지만 미국은 미국이었다. 구색은 다 갖췄단 말이야.

개인 시상까지 있었는데,

득점왕, MVP, 도움왕까지.

심지어 경고 한 장 받지 않아서 페어 플레이상까지 받았다.

거기에 대회 관중들이 선정한 팬들의 선수에도 뽑혔다.

커리어에 올릴 법한 대회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이번 대회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적어도 내 이름은 완벽하게 알린 셈이었다.

아마 아버지도 지금 골치가 아프겠지.

LA 갤럭시와 DC 유나이티드까지 내게 오퍼를 했단 사실이 축구계에 파다하게 퍼지며 여러 구단에서 문의가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어디로 갈 거야?”

“글쎄.”

사실 결정했다.

내가 갈 곳은······.

***

“환영하네. 제퍼슨 리. 다음 주 월요일이 기대되는데!”

“그때 뵙겠습니다, 감독님.”

그랜드 감독은 유명한 헐리우드 액션 영화배우를 연상시키는 중후한 얼굴이었다.

특히 벗겨진 머리를 보면 바로 생각나는 배우가 있을 정도였다. 다이하드 시리즈 주인공처럼 생기셨다.

“토론토를 선택한 건 아주 훌륭한 선택이 될 거다.”

내 선택은 다름 아닌 토론토 FC였다

LA 갤럭시나 DC 유나이티드가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그들은 나에 대한 가능성을 ‘유망주’에 그쳤다.

무엇보다 그들의 팀엔 핵심 공격수가 존재했다. 단지 실력을 떠나 팀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가.

LA 갤럭시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DC 유나이티드에는 웨인 루니.

경기에 나오는 것 하나만으로 구름 관중을 모으는 스타플레이어다. 미국에서 축구는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로 돌아간다. 설령 내가 실력이 그들보다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스타성에 뒤처져 그들을 밀어 내고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는 어려울 터.

그래서 선택지에서 제외됐다.

그 외에 미네소타, 시카고 같은 팀 역시 수비적인 전술이라 탈락.

나는 공격수로서, 내가 돋보일 수 있는 전술을 펼치는 팀을 원했다. 스트라이커는 수많은 공격 포인트로 자신을 증명한다. 그렇게 내 가치를 끌어올리고 유럽으로 진출을 노리는 게 내 목표.

그래서 선택한 게 토론토다.

토론토는 지극히 공격적인 성향의 팀이다.

한두 골 먹히면 세골을 넣겠다는 마인드.

수비수가 다쳤으면 공격수를 교체로 넣어 버리는 감독의 스타일.

한마디로 마초의 팀이었고, 특유의 공격 축구 때문에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팀이다.

더구나 토론토는 주전 스트라이커의 이적 공백을 내가 메꿔야 하니 주전 경쟁도 청신호가 켜진 상태였다.

‘계약 조건도 파격적이고 말이야.’

첫째, 유럽 4대 리그에서 오퍼가 왔을 시, 구단은 전심전력으로 유럽 진출을 돕는다.

둘째, 한 시즌 동안 공격 포인트 15개를 기록했을 시, 즉시 지정 선수로 계약이 전환된다. 이때 계약 조건은 연봉 150만 달러로 하며, 승리 수당과 득점 수당은 재논의한다.

연봉은 36만 달러(한화 4억 400만).

샐러리캡 때문에 선수에게 지급 가능한 연봉이 50만 4천 달러가 최대치임을 생각하면, 고작 17살인 나에게 엄청난 수준의 연봉인 셈이다.

지정 선수로 전환이 된다면, 150만 달러, 한화로 약 17억이다.

익숙한 주급 형식으로 바꾸면 3천3백만 원 정도.

그야말로 토론토로써는 통이 큰 배팅을 시도한 셈.

‘그만큼 공격 포인트 15개가 쉽지는 않다 이거겠지.’

이번 시즌은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토론토는 동부 컨퍼런스에서 꼴찌를 다투는 중이다.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 핵심 선수들의 이적을 메꾸지 못한 스쿼드.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감독의 마초 축구.

이런 상황에서 공격 포인트를 올리기는 쉽지 않은 일.

‘못할 건 없지.’

그동안 MLS 경기 중계를 여러 번 찾아봤다.

해볼 만하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자신감이 제대로 붙었다.

이젠 회귀 전 내가 할 수 있던 기술과 플레이는 완벽히 해내는 걸 넘어 더 발전시킨 플레이로 연결할 수 있었다.

가공할 운동 신경에 나조차 혀를 내두를 때가 어디 한두 번인가.

여하튼 토론토 FC와 계약서를 작성하고, 다음 주 월요일에 팀에 합류하기로 결정이 났다.

그로 인한 작은 변화.

***

“결정했어!”

식사자리에서 별안간 어머니가 탁자를 내리치며 선언하듯 외쳤다.

아버지가 화들짝 놀랐다.

“뭘?”

“내가 따라갈게.”

“응?”

“내가 우리 아들 따라서 토론토 갈게.”

“어머니가 가신다구요?”

“응.”

“······여보, 무슨 말이야?”

아버지는 당황한 얼굴과 함께 목소리가 떨렸다.

“미네소타 주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까운 미시간도 아니야. 캐나다라고. 거길 고등학생 혼자 보내? 안 되지. 가서 엄마가 챙겨 줘야지!”

아버지가 말을 잃고 멍하니 쳐다보는 가운데, 어머니는 날 바라보며 외쳤다.

“아들!”

“네.”

“가서 엄마가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청소도 해줄 테니까. 우리 아들은 열심히 운동만 해. 알았지?”

“네.”

“···여보, 나는?”

“당신이 애야?”

졸지에 기러기 아빠가 되게 생긴 아버지는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사실 유소년 선수에게 챙겨 줄 수 있는 가족의 존재는 무척 중요했다.

나는 억대연봉을 받게 됐다.

돈을 흥청망청 쓰고 놀기 바쁘다면, 운동하지 않게 되고 재능이 묻히게 될지도 모르지. 어쩌면 어머니는 그걸 걱정하셔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리라.

뭐, 나로서는 환영이다.

뒤에서 서포트해 줄 수 있는 가족의 존재는 나에게도 고마운 일이다.

오로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으니까.

***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곧 1군으로 올라갈게!”

“두고 봐!”

산티아고랑 로드릭 둘 다 토론토로 가게 됐다.

애들은 유스 계약이었지만, 아마 얼마 안 가서 프로로 전환이 될 것이다.

특히 산티아고는 말이다.

“아들들. 여기에 짐 옮기는 것 좀 도와줄래?”

“네!”

어머니와 새롭게 이사하는 토론토의 집.

거기에 로드릭과 산티도 같이 들어오게 됐다.

뭐, 나쁘지 않았다.

특히 산티네 할머니는 혼자 토론토로 간다니까 걱정 많이 하셨는데, 울 어머니가 따라간다니까 안심하는 눈치였고.

산티아고 역시 할머니 혼자 남겨지는 게 불안한 눈치였는데, 아버지가 센스 있게 가정부로 고용하셨다.

잘된 일이지.

“어머니! 여기다 놓으면 돼요?”

“응! 거기다 놓으렴, 산티.”

야.

우리 엄마야.

어머니는 졸지에 아들이 두 명이나 더 생겼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산티는 유난히 우리 어머니를 잘 따랐다.

원래 낯가림 없는 로드릭이야 이전부터 우리 집을 자주 드나들면서 안면도 익혔으니 문제가 없고.

“아참, 리. 메디컬 테스트하러 언제 간다고 했지?”

“내일 예정되어 있어.”

“흐흐흐흐. 기대되네.”

“뭐가?”

로드릭이 갑자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 학교에서 너 체력 테스트 한다고 했을 때 감독님 표정 봤었어?”

음.

애써 놀란 표정을 감추려는 기색이 역력하긴 했지.

“토론토에서도 메디컬 테스트하고 다들 깜짝 놀랄 거 생각하니 내가 다 설레네.”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어쨌거나 고등학교가 아닌 프로 축구팀이다.

거기엔 이미 완성된 성인의 피지컬이 즐비하고, 그중에는 대단한 선수도 몇 있을 거다.

그들을 관리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해 온 의료팀이 무작정 놀랄까.

꼭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아닐걸? 메디컬 테스트하던 사람들이 놀란다는 사실에 3달러를 걸지.”

“오케이. 콜.”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는 3달러를 로드릭에게 주게 됐다.

***

“얘 17살 맞아요?”

“맞아.”

“······세상에.”

토론토 FC의 의료진들은 본인 스스로 펜으로 기록하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는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메디컬 테스트 할 의미가 없는데요.”

“건강하다 못해 뛰어납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 구단 선수 중에 이 친구보다 신체 조건이 좋은 선수가 없어요.”

“조지하고 비교하면?”

“실례죠.”

“역시. 조지한테 실례란 얘기지?”

조지 알티도어는 미국의 드록바라고 불릴 정도로 좋은 피지컬을 가진 선수로 유명했다.

그러나 대답했던 팀 닥터는 한숨을 내쉬고는 정색했다.

“아뇨. 이 젊은 친구한테 실례죠.”

“뭐?”

“조지는 나이를 많이 먹었어요. 이미 신체 기능이 저하되기 시작했죠. 아니, 최전성기 때랑 비교해도 이 친구가 압도적일 겁니다.”

“그 정도야?”

“축구 선수 중에 서전트 37인치(96cm) 뛸 수 있는 친구가 있어요?”

“호날두?”

“공식 기록은 이 친구가 더 높아요.”

“헐.”

“110야드 10.7초는요?”

“······.”

“빌어먹을. 체지방이 10%에요. 이건 뭐···가능한 수칩니까?”

“······.”

“사람이 아니라 괴물을 테스트 중이 아닌가 싶네요.”

“풋볼 출신이라 그런가.”

“그렇죠. 풋볼이니까.”

“빌어먹을. 풋볼 애들이 축구했으면 월드컵 제패했겠군.”

“그 친구들이 다 이 친구 정도로 발기술이 있으면 그렇겠죠.”

“······.”

헤드 팀 닥터는 입을 다물었다.

그도 중계 영상을 봤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발재간.

안정적인 볼 키핑 능력.

수비를 무너뜨리는 힘. 수비진을 꿰뚫는 패싱력과 아름다운 크로스.

거기에 이런 피지컬이라고?

“얘 연봉이 얼마라고?”

“36만 달러랍니다.”

“17살짜리가?”

“풋볼이었으면 300만 달러는 받았겠죠.”

“그랜드가 제대로 된 놈을 데리고 왔군.”

잠시 정적이 가라앉았다.

그들은 닥터 생활을 하면서 이런 괴물을 처음 봤다.

그 상황에서 닥터 한 명이 다소 망설이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저, 헤드.”

“응?”

“더 무서운 건 뭔 줄 아세요?”

“뭐?”

“이 친구······ 성장판 안 닫혔어요.”

“······뭐?”

“아직, 한참 성장기인 청소년입니다.”

“왓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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