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프로 무대로 (2)
소문은 생각보다 무섭고, 빠르게 퍼지는 법이다.
특히 SNS와 유튜브 같은 매체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용하는 이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유스 경기에 관중이 가득 차다니.”
“그러게. 자기 팀 경기도 아닌데 말이야.”
“구경 한 번 하러 온 거지.”
관중들의 대화는 현재 상황을 그대로 말해줬다.
미네소타에서 펼쳐지는 유스 컵대회의 결승전.
일반 고등학교 축구부와 캐나다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 토론토 FC의 경기.
그런데도 관중이 가득 차 있었는데, 대부분이 그냥 ‘축구 팬’이란 점을 주목할 만했다.
“그 괴물이 나오지?”
“괴물?”
“몰라? 제퍼슨 리. 풋볼 출신 괴물인데 벌써 7골이나 넣었어.”
“그럼 그 친구를 보려고 날 경기장에 데리고 온 거야?”
“제대로 한 번만 보라니까. 저번에 시카고 유스 애들을 혼자서 막 휘젓는데······ 우와. 우리나라에 저런 축구 선수는 랜던 도노반 이후 처음 본다니까.”
어느 한 팀을 응원하는 관중은 많지 않았다.
토론토의 팬들이 MLS에서 열정적이라고 알려졌지만, 굳이 이 먼 곳까지 유스 경기를 보러 오진 않는다.
결국, 이 가득 찬 관중들은 미네소타 주에 이름을 조금씩 알리기 시작한 제퍼슨 리를 보러 온 것이다.
관중뿐만 아니다.
“감독님. 저쪽 보시죠.”
토론토 FC의 감독 그랜드는 코치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축구장에 어울리지 않게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두명에 대한 얘기였다. 그들은 카메라로 경기를 촬영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랜드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빌어먹을 할리우드 샌님들이 왜 여기 있어?”
그랜드가 할리우드 샌님이라고 격하게 반응하는 저 남자들은 다름 아닌 LA 갤럭시의 스카우터들이었다.
MLS의 최고 인기팀이자 강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제법 인지도가 있는 팀.
그 팀의 스카우터가 확실했다.
그랜드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정보력 한번 대단하구먼. 캘리포니아에서 햇빛이나 쐬어야 할 놈들이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말이야.”
“원래 이쪽 바닥은 소문이 빠르게 도니까요. 그리고 감독님. 저기 워싱턴에서도 왔습니다만.”
“DC 유나이티드?”
“네.”
“······.”
서부의 최강팀 LA 갤럭시.
동부의 강호 DC 유나이티드.
그 두 팀이 오로지 제퍼슨 리를 보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그저 친선 경기에 불과한 이 대회에 말이다. 그랜드 감독은 강팀들의 스카우트 정보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 만큼 그에 대한 욕심이 더 강해졌다.
‘내 눈은 정확해‘
전술 능력은 부족하지만, 선수 보는 눈만큼은 미국 제일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이 바로 그랜드였다.
그런 그랜드 감독의 눈에 비친 제퍼슨 리는 성인 레벨에서도 대표급의 선수였다.
“그래도 지정 선수는 모험 아닙니까, 감독님.”
“전혀. 지정 선수라는 강수가 아니면 저 친구 못 잡아.”
“하지만 구단주는 조지의 빈자리를 유럽 선수로 채울 의중을 가지고 계시던데요.”
“빌어먹을. 적어도 즐라탄급 아니면 웃기지 말라 해. 괜히 어쭙잖은 유럽 출신 스타라고 데려와 봤자 아무것도 못한다고.”
“······그거야 뭐.”
“저 친구가 보여 줄 거야. 공격 포인트 15개? 남은 반시즌만 해도 넘길걸?”
그 말에 코치는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었다. 공격포인트 15개는 아무나 올릴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니까.
“에이, 그 정도겠습니까?”
“흠. 그래, 한번 보라고. 솔직히 말해 우리 애들이 저 친구를 얼마나 잘 막아 낼지 궁금하군.”
“우리 유스팀은 북미 최강입니다.”
유소년 감독을 하다가 1군 코치로 올라왔기 때문에, 코치는 경기장에서 몸을 풀고 있는 유스들을 자랑스러워했다.
동부와 서부를 모두 아우르는 유소년 최강팀이 바로 토론토였다.
일각에서는 MLS 꼴찌팀하고 토론토 유스하고 붙으면 비등하지 않냐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랜드 감독도 이번 휴식기가 끝나면 유스팀에서 몇몇을 콜업해서 1군으로 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 이번 경기는 쉽지 않을 거야.”
“제아무리 날고 기는 공격수여도, 혼자서는 무립니다.”
“맞아. 하지만 팀원들의 실력이 떨어져도 혼자서 경기를 결정짓는 엄청난 선수가 세상엔 있었지.”
“······.”
“보자고. 어찌 될지 말이야.”
그랜드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모든 고민과 걱정을 저 멀리 날려 보낸 채, 오로지 축구를 즐기는 전형적인 스포츠맨의 웃음이었다.
***
“내일 골드컵 미국 대 파나마 전에 앞서 아주 흥미로운 경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토론토FC, 그리고 자이언트 킬링을 보여 주며 결승까지 올라온 하이스쿨의 축구팀이 맞붙습니다!”
경기는 확실히 입소문을 타고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특히 골드컵을 치르면서 미국 스포츠팬들의 시선이 축구에 향했고, 그런 와중 미국에 넘쳐나는 라디오와 인터넷 방송사들은 이번 경기를 놓치지 않았다.
“이 경기가 주목되는 이유는 두 명의 선수 때문입니다. 무명의 축구 선수, 제퍼슨 리. 이 선수는 무려 풋볼 MVP 출신입니다. 그가 현재 대회에서 7골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일약 스타로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토론토 FC의 중앙 수비수 알렉산더 바카. 좋은 실력을 지녔고 그랜드 감독의 눈에 들어 프로 데뷔를 준비 중이죠.”
“과연 새로운 스타와 이미 인정받고 있는 젊은 스타. 두 선수의 대결이 아주 많이 기대되는군요.”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이었다.
스포츠팬들도 해설과 마찬가지로 두 선수의 대결에 주목했다.
더구나 한 명은 축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수였다.
그에 반해 알렉산더 바카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
아무래도 대다수의 관중은 알렉산더 바카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이미 프로 데뷔를 앞둔 확실한 팀의 에이스였으니까.
과연 저 아시아계 스트라이커가 미국의 미래라고 평가받는 유망주의 수비를 뚫을 수 있을까.
“리가 역시 선발이야!”
“널 보러 왔다고, 리! 보여 주라고!”
세 경기에서 보여 주었던 리의 충격적인 퍼포먼스.
그걸 목격한 몇몇 축구팬은 벌써부터 그의 팬임을 자랑하며 제퍼슨의 이름을 연호하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내 토론토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오!”
“수비수 나가떨어졌는데?”
경기가 시작한 지 5분 정도 지난 무렵.
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탐색전을 펼치는 양상. 관중들의 시선이 점차 9번을 달고 있는 제퍼슨에게 꽂혔다.
“확실히 물건인데?”
“물건은 물건이 맞네. 장난 아니야. 몸으로 싸워 주는 능력이······.”
“아니, 드리블 좀 보라고.”
몸으로 버텨 주는 강력한 피지컬.
그리고 우아하기 짝이 없는 볼 터치와 선수 한두 명을 가볍게 제치는 발재간.
22명이 뛰고 있는 그라운드에서 제퍼슨의 모습이 점점 눈에 띄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관중들은 화려한 선수를 좋아한다.
평소 보기 힘든 화려한 개인기와 멋진 플레이에 열광한다.
제퍼슨은 골을 넣지 않았음에도 이미 그런 플레이를 보여 주고 있었다.
“집중하라고! 놓치지 마!”
토론토의 알렉산더 바카는 이미 실력은 프로급이라는 게 축구팬들의 판단이었다.
깔끔한 태클과 전체적인 수비라인 조율 능력.
높은 집중력과 좋은 신체 조건에서 나오는 몸싸움 능력은 같은 나이대 최고의 수비수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알렉산더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적어도 유스 리그에서는 철벽으로 군림하는 센터백이다.
그랬기에 제아무리 제퍼슨이어도 고전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이 경기 전 예상이었다.
그리고 예상은 언제나 빗나가는 확률이 늘 존재하는 법이다.
“우와아아!”
“지금 알렉산더가 뚫렸어!”
제퍼슨이 어깨를 먼저 집어넣으면서 정당한 몸싸움으로 알렉산더를 뚫어 버린 것이다.
같은 나이대에서 몸싸움으로 밀리지 않는 알렉산더가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도 못했다.
“오! 거의 탱크 같군!”
“세상에. 지금 하나 또 제쳤어!”
제퍼슨이 발바닥으로 공을 끌면서 전진했다.
알렉산더가 무너졌다.
알렉산더의 뒤를 커버하는 백업 수비수도 제퍼슨의 팬텀 드리블로 가볍게 벗겨졌다.
눈 깜짝할 사이.
어떤 관중이 잠깐 한눈이라도 판 사이. 순식간에 수비수 둘을 벗겨 낸 제퍼슨은 그대로 골문을 향해 인사이드 슈팅을 때렸다.
골키퍼의 사각지대를 노리는 정확한 슈팅.
야구에서 투수가 몸쪽 스트라이크를 던지듯, 완벽하게 계산된 궤적으로 골문에 꽂혔다.
”Goooooooaaaal!“
“리! 리! 리!”
“제퍼스은! 제퍼슨!”
“세상에! 저 선수 도대체 누구야?”
“아드으으을! 우리 아드을!”
제퍼슨은 자기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중들 사이로,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 부모님 쪽으로 향했다.
단거리 스프린터를 준비하는 자세를 취하고 부모님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짧은 세레모니.
세레모니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일반 관중들은 멋진 골에 열광했고, 어머니는 그저 흐뭇하게 웃을 뿐이었다.
고작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터진 벼락같은 선제골.
거의 다 중립팬인 관중들이 일제히 벌떡 일어나 소리 질렀다.
골이란 그런 거다.
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제퍼슨의 아름다운 골에 매료됐다.
***
유튜브 라이브로 스트리밍 되는 경기.
주로 아마추어 축구 경기나 프로팀들의 2군 친선전, 유스 경기를 중계하는 인터넷 방송사 ‘JJ스포츠’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지금 라이브 시청자 4만 명이야!”
“빌어먹을! 맙소사! 유스 경기가 4만 명 찍힌 건 처음인데?”
“LA 갤럭시하고 영국 맨체스터 유스팀이 친선전 붙을 때 7만 명이었던가?”
“그건 해적 방송이었잖아.”
“그래서 30분 만에 방송 짤렸지.”
“이번엔 미네소타 경기 주최 측으로부터 중계권 샀다고. 그것도 아주 싸게.”
“하긴, 유스 경기를 중계해 주겠다고 하는데 나 같아도 싸게 넘기지.”
“덕택에 우린 대박이고!”
“으하하! 화면 상단, 하단에 계속 광고 배너 띄우라고!”
PD는 계속해서 올라가는 라이브 시청자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
특히 전반 10분에 터진 제퍼슨 리의 벼락같은 선제골 때는 채팅창이 불타올랐다.
-미친. 저거 누구야?
-저 골 보라고. 홀리 쉣,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제퍼슨 리. 저 선수 아는 사람?
-하이스쿨 학생이야.
-그냥 학생이라고?
-거짓말하지 마.
-토론토 유스의 알렉산더 바카. 저 친구 U-20 월드컵 전에 낙마한 친구 아니야?
-맞아. 그 친구를 평범한 수비수로 만든 게 저 9번, 제퍼슨 리라고.
-미쳤군.
-빌어먹을. 은하계는 당장 저 친구를 영입해!
-닥쳐. 할리우드 샌님은 그냥 유럽 스타나 영입해. 저 친구는 우리 팀에서 데리고 가야해.
-세상에! 금방 골 봤어?
-???
-왜 너만 중계 빠르냐.
-엿 같은 JJ스포츠! 방송 끊기잖아!
-JJ스포츠 개자식들아. 중계를 할 거면 똑바로 해!
-오, 불쌍한 것들. 방송 끊긴 사이에 제퍼슨이 미친 골을 또 넣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