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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14화 (14/258)

14. 프로 무대로 (1)

“미네소타에서 연락이 왔다.”

“연락이요?”

“흐흐. 영상도 안 보고 씹은 놈들이 매달리는 꼴을 네가 봤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음흉하게 웃으셨다.

미네소타 유나이티드는 유소년 계약이 아닌 프로 계약을 제시했다.

1군으로 바로 써먹겠다는 의미였다.

내가 원하던 제안이긴 했다.

유스 레벨이 아닌 1군 프로 무대.

“미네소타뿐만이 아니야.”

“다른 팀에서도 연락 왔어요?”

“시카고에서도 프로 계약을 제안했어. 특히 얘들은 아예 서면으로 출전 비율을 명시해주겠다고 했어.”

“출전 비율을 정한다면, 무조건이네요?”

“그래. 한 시즌 동안 30% 이상 경기를 소화할 수 있도록 정해 주겠다는구나. 거기 감독이 너한테 완전히 반한 것 같다.”

“그러게요. 파격적이네요.”

“토론토에서도 비슷한 제안이야.”

“토론토면 캐나다죠?”

“응.”

토론토 FC는 아직 경기를 치르지 않은 팀이지만, 유스팀도 아주 강력했다.

록하크를 6:1로 대파.

시카고를 3:0으로 연파하며 2연승 중인 상태였다.

우리 팀은 록하크를 이기면 승점이 9점이 되고, 토론토도 미네소타를 이기면 9점이 되니까······.

아마 토론토와의 경기가 이번 컵대회의 결승전이 될 확률이 높았다.

“심지어 토론토는 네가 1년 동안 충분한 퍼포먼스를 보여 주면 재계약 때 지정 선수 조항을 넣는 걸 진지하게 고려할 예정이라고 얘기하더라.”

“지정 선수요?”

솔직히 말해 놀라운 제안이다.

MLS는 샐러리캡이 적용되어서 선수단의 총 연봉이 정해져 있다.

아마 한화로 30억쯤 되려나?

따라서 선수에게 지급할 수 있는 연봉에 제한이 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여도 정해진 연봉 이상으로 지급해 줄 수가 없다.

한데 시간이 지나면서 샐러리캡으로 인해 리그의 수준이 낮아지자, 협회는 지정 선수 제도를 도입한다.

팀의 핵심 선수나 해외의 슈퍼스타를 지정 선수로 지정하면, 샐러리캡의 허용 한도를 넘는 연봉을 지급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카카, 슈바인슈타이거,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다비드 비야 등 유명 선수들이 미국에서 받는 거액의 연봉이 바로 지정 선수 제도 때문이다.

지정 선수는 슈퍼스타 또는 팀의 핵심만 받는다.

그런데 그런 지정 선수 지정을 이제 유소년인 나에게 해 주겠다고?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자 아버지는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지금 토론토 공격수 알지? 조지 알티도어.”

“네.”

“이 친구가 다른 팀으로 이적이 확정됐다. 그래서 그 자리를 대체할 선수가 필요해.”

“절 그 자리로 낙점했다고요?”

“그래. 나는 거기 감독이 좀 맘에 들더라. 다른 팀은 스카우터를 보냈지만 여기는 감독이 직접 와서 설득하던데······.”

“음.”

지금 토론토 FC의 스트라이커 조지 알티도어는 미국 국가대표 선수로 스페인, 영국, 터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팀의 핵심이자, 미국 국가대표 주전 스트라이커.

그 대체자로 날 점 찍은 것이다.

“네가 보여 주는 활약에 걸맞은 연봉을 지급해 주겠다는 거지. 거기 감독이 너한테 단단히 반한 것 같던데?”

“음.”

“뭐, 아직은 구두로만 얘기한 거니까. 하지만 계약서에 서면으로 명시할 부분을 얘기해 보니까 진지하게 생각하더라. 지정 선수로 해외의 슈퍼스타를 데리고 와 봤자, 기량이 떨어져 제대로 활약 못 하는 선수가 어디 한둘이냐.”

“그렇긴 하죠.”

“그럴 바엔 지금 널 써 보고, 걸맞은 퍼포먼스만 보여 준다면 지정 선수로 해 주겠다 이거지.”

“퍼포먼스면 뭐, 득점이겠죠?”

“그렇지. 거기서는 공격 포인트 15개를 기준으로 생각하더라.”

“음. 15개라······.”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뭐, 아직 내가 MLS를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15개의 공격 포인트가 버겁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천천히 생각해 봐라. 그리고 영국팀은······.”

“워크퍼밋 때문에 좀 걸리네요.”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좀 알아보니까 거액의 이적료로 이적하면 워크퍼밋이 나온단다. 내 생각엔 MLS에서 뛰다가 이적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인다만. 네가 유럽을 원한다면, 유럽으로 이적에 적극적으로 동의해 주겠단 서명을 받아 내도록 하마.”

“알겠어요.”

뭐, 지금 당장 영국에 가 봤자 워크퍼밋은 나오지 않는다.

스토크에서 제안한 건 스코틀랜드로의 임대 후 한 시즌을 뛰고 워크퍼밋을 취득하는 것.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굳이 MLS를 버리고 스코틀랜드 리그로 갈 아무런 이유가 없다.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미국은 엄청난 자본력을 기반으로 작정하고 MLS를 밀어주기 위한 투자를 감행하니까.

아버지 말씀대로 미국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몸값을 높인 뒤, 거액의 이적료로 진출한다면 문제없다.

굳이 영국이 아닌 다른 유럽팀을 노려도 되지만, 지금은 아마추어 축구팀이니 여타 다른 유럽팀에서 제안이 쉬이 오지는 않겠지.

일단은 프로 선수로 데뷔하는 방안이 최우선이었다.

***

“으아아악!”

로드릭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를 지나친 뒤 골문을 향해 가볍게 슈팅했다.

“왜 이렇게 빨라! 대체!”

“네가 느린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내가? 내가 느리다고?”

“응.”

“세상에. 내가 발 빠른 수비수로 얼마나 유명한지 알아?”

로드릭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과도한 반응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로드릭은 어떻게든 날 막아 내겠다며 훈련 때마다 이런다. 그런데 나도 져 주고 싶지가 않았다. 로드릭은 재능이 있었으니까.

어쩌면 저 과도한 승부욕.

앞뒤 안 가리고 불도저처럼 돌진하는 승부욕이 그가 가진 재능의 원천이 아닐까 싶었다.

‘회귀 전에 로드릭이란 선수가 있었나?’

모르겠다.

나 역시도 유럽 변방에서 몇 시즌 뛰었고, 나머지는 한국에서 뛰었으니까.

내가 모른다면 아마도 엄청 유명한 선수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MLS에서만 활약한 프로일 수도 있지.

하여튼 로드릭은 충분한 재능이 있었다. 성격도 싹싹하니 좋았고, 무엇보다 축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마음 맞는 동료, 케미가 좋은 선수가 한 경기에서 같이 뛴다면 그것보다 좋은 팀은 없다. 적어도 로드릭은 충분히 좋은 팀메이트가 될만한 자질이 있었다.

그래서 그를 발전시켜 주고 싶었으며, 일부러 져 주는 짓 따위는 일체 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로드릭은 더욱 승부욕에 불타서 정진했다.

아마도 비슷한 나이대의 선수 중 미국에서 저만한 수비수는 없으리라.

“어후. 내가 말을 말자. 나보다 몸도 두꺼우면서 어떻게 저리 빠를 수가 있지? 안 그래, 산티?”

“응? 응, 맞아. 리는 신기해. 뛰는 거 보면 육중한 곰이 치타처럼 달리는 거 같다니까.”

산티아고의 눈이 영롱하게 반짝였다.

순수한 표정으로 저리 말하니까······.

음.

칭찬이겠지.

로드릭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산티의 어깨를 툭 쳤다.

“좋아. 산티. 덤벼 봐.”

“뭐?”

“리는 도저히 못 막겠고, 넌 좀 할 만하다. 덤벼.”

“······.”

아이고.

로드릭아.

쟤 미래의 챔스 우승 주역이야.

쯧쯧.

산티아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순진했던 얼굴이 딱딱해지면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일변했다.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렸군.

한데 로드릭은 그것도 모르고 속 편하게 웃고만 있었다.

“응? 내가 말이야. 리는 못 막아도, 너 정도 꼬맹이는 쉽게 막을 수 있지!”

두 번 정도 막았다.

아, 물론 26번 정도 붙어서 2번이었나.

***

미네소타와 경기 나흘 후 이전에 붙었던 록하크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감독님은 내 체력을 보전해 줄 요량으로 벤치에서 시작하게 됐다.

록하크는 여전히 매서운 상대였다.

선제골은 록하크가 먼저 넣었다. 록하크는 이전 경기 패배의 치욕을 갚겠다는 듯, 한 골 넣고 잠그기 모드였다.

어떻게든 1승이라도 따내겠다는 마인드였다.

결국, 후반 20분쯤 내가 투입됐다.

체력을 충분히 보전한 나는, 그대로 록하크의 골문을 미친 듯이 두들겼다.

산티아고는 맹렬하고도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수비수들의 어그로를 끌었고, 열린 빈 공간으로 내가 뛰어들어 동점골을 만들었다.

그리고 종료 직전, 내가 떨어뜨려 준 공을 산티아고가 가볍게 밀어 넣으면서 2:1로 승리를 따냈다.

이로써 우리 학교는 3전 3승으로 승점 9점을 따냈다.

같은 날 토론토와 미네소타의 경기도 토론토가 미네소타를 4:1로 제압하면서 승점 9점이 되었다.

예상대로 마지막 토론토전이 우승팀 결정 경기가 되었다.

미네소타는 자신들이 주최한 대회임에도 준우승조차 차지할 수 없게 된 상황에 쓴웃음을 삼켜야 했다.

우리 팀이 이번 컵대회에서 우승하게 되면 얻는 효과는 엄청나다.

일단 상금.

비록 친선 컵대회지만 엄연히 상금이 있었고, 적지만 우리에겐 큰 금액이다.

다른 스포츠에 비교해 학교의 지원이 없는 만큼, 그 상금으로 훈련장을 개선하고 훈련 장비를 새로 살 수 있었다.

또 감독님은 자신의 지도자 커리어 중에 우승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감독님 우승 트로피 하나 선물 해줘야지?”

“그렇지? 리?”

“해드려야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질리먼은 불독같은 외모에 고집불통 같지만, 가만보면 누구보다 선수를 아껴주는 훌륭한 어른이었다.

선수들은 다 그런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우승컵을 안겨주자는 강렬한 동기부여가 생긴거지.

마지막 경기.

비록 친선 컵대회라지만, 평범한 고등학교 축구부에게 있어서 큰 여정이었다.

록하크는 애당초 고교 축구 강팀이었다.

미네소타 유나이티드와 시카고 파이어는 프로팀이다.

우리는 이 모든 팀을 다 꺾었다.

“프로라고 별거냐. 리가 골 다 넣었잖아.”

“리가 있는데 뭐가 문제야?”

“우리는 잘 막기만 하자고. 리가 해 줄텐데!”

음.

이것들 봐라.

나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심한데.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가 넣은 골만 7골이었다. 거기에 어시스트도 4개였다.

우리가 기록한 득점 상황은 모두 내가 관여하고 있었다.

뭐, 맞는 말이긴 하네.

“그래. 나만 믿어.”

“리는 역시 거침없다니까.”

“이번에도 해트트릭이야?”

“4전 중 3번의 해트트릭도 멋진 일인데.”

미국에서 겸손은 좋은 덕목이 아니다.

자고로 스포츠 스타라면 뽐낼 줄 알아야 하는 법.

본래의 제퍼슨은 그런 면에서 아주 유능했고, 그 덕택에 인기도 많았다. 원래의 나였다면 이렇게 자랑하는 건 쑥스러운 일이지만 내가 곧 제퍼슨이기도 했으니.

토론토는 U-18 국가대표인 헤일리 같은 특출한 선수는 없지만, 끈끈한 팀컬러와 뛰어난 조직력을 자랑하는 원팀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쉽지 않은 상대임은 분명했다.

***

“자네가 제퍼슨 리지?”

화장실을 갔다가 라커룸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웬 거구가 다가와 아는 척을 했다.

세상에.

나도 거구라고 느껴질 정도로, 중년인은 상당히 큰 체격이었다.

내가 크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우리 풋볼팀 애들밖에 없었는데······.

“네.”

“반가워. 토론토FC의 그랜드 감독일세.”

“아, 예. 반갑습니다.”

“자네 활약, 아주 많이 눈여겨보고 있어. 아버님을 통해 내 의중을 전달했는데, 혹시 들었나?”

“네. 뭐, 1군 데뷔에,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 주면 지정 선수로 해 준다고요?”

“응. 조지가 이번 시즌 끝나고 딴 팀으로 갈 예정이거든. 그 빈자리에 자네를 원해.”

난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 섣불리 대답할 필요는 없지.

그랜드 감독은 미소 띤 얼굴로 내 어깨를 몇 번 두들겼다.

“오늘 경기 기대하겠어.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 줘서 나를 안달복달하게 해 주라고.”

“제가 좋은 활약을 보이면 감독님네 유스 애들이 지는 건데요?”

“글쎄. 그게 그렇게 쉬울까?”

그랜드 감독은 자기네 유스팀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 보였다.

난 씩 웃어 보였다.

“그렇게 어려워 보이진 않네요.”

그래 봤자 유스팀인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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