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3화 (13/258)

13. 알고도 못 막는 선수 (2)

“시카고가 5:0으로 졌다고?”

“혼자 세 골을 넣었다는데.”

“미쳤군.”

“하지만······ 그래 봤자 유스 계약도 못 한 애송이잖아.”

그랬다.

적어도 오늘 경기장에 온 미네소타 팬들의 생각은 같았다.

17살의 제퍼슨 리는 유스 계약도 하지 못한 고등학교 축구부 선수일 뿐이다.

“뭐 그래도 실력은 있지.”

“시카고 애들이 당한 건 골을 못 넣어서야.”

“그건 맞아. 먼저 선제골만 넣었으면 분위기가 그렇게 안 바뀌었겠지.”

“결국 제퍼슨에게 가는 흐름을 차단하고 우리가 먼저 골을 넣으면 무난히 이기지 않을까.”

팬들의 토론은 의외로 수준 높을 때가 많다.

이들의 생각은 경기를 준비하던 조메우 감독과 코치진의 생각과 어느 정도 일치되는 부분이 있었다.

코치진 역시 경기를 앞두고 제퍼슨을 어찌 막을 것인지 대비책을 세우는 데 고심했다.

“무서운 건 이놈 피지컬이야.”

“몸으로 버티는 걸 이겨 낼 재간이 없더군.”

“그러면 근접 수비보단 지역 방어가 좋겠어.”

“드리블도 조심해야 해.”

“수비형 미드필더를 배치하면 협력 수비로 드리블을 할 공간을 만들어 내지 못할걸.”

“오프 더 볼 움직임은?”

“그거야 뭐······.”

“온 더 볼 움직임도 장난 아닌데.”

“······.”

경기를 준비하던 코치진 사이에 점점 묘한 기류가 흘렀다.

가만 놓고 보니 이건 뭐 말이 안 된다.

피지컬 좋고, 드리블 좋고, 오프 더 볼, 온 더 볼 움직임이 좋으며 득점력까지 가진 스트라이커.

‘이런 선수가 있다고?’

순간 코치진들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우리가 너무 과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시카고 애들 컨디션 안 좋아 보이기도 했어.”

“원래 분위기 타면 10대 애들이라 확 올라갈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래도 대비는 해야지. 너무 겁먹진 말자고.”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으면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도 그랬다.

제퍼슨 리는 분명 뛰어난 선수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선수 정도는 아니라는 것.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더블 볼란치로 수비를 지원하고, 간격을 좁히자.”

“헤일리를 박투박으로 넣어서 많이 뛰게 하자고.”

“중원에서부터 점유율을 가지고 제퍼슨에게 가는 패스를 차단하자.”

“결국, 제퍼슨이 공만 못 잡게 만들면 이 경기 잡을 수 있어.”

오랫동안 발을 맞춰 온 팀원들의 끈끈한 팀워크.

수비진의 탄탄한 조직력.

일반 고등학교 축구부랑 비교도 할 수 없는 전술 이해도.

제퍼슨 리를 막는다.

그러면 공격의 핵심이 묶인 팀은 무너지게 되리라. 그리고 스스로 자멸하게 될 것이다.

······라고.

***

“라고 말했지? 더 할 말이 있어?”

조메우는 제퍼슨 리에게 탈곡기처럼 탈탈 털리는 수비진을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빌어먹을! 할 말이 있으면 지껄여 보라고! 뭐? 과하게 생각해? 알렉스 무너지는 것 좀 보라지! 한 번을 못 막아, 한 번을!”

조메우는 들고 있던 물통을 던져 버렸다.

제퍼슨의 충격적인 선제골 이후 수비진은 완전히 무너졌다.

더블 볼란치의 강력한 압박에서 제퍼슨은 자유로웠다. 그의 흐물거리는 움직임, 때로는 강력하게 싸워 주는 피지컬 앞에 픽픽 나가떨어질 뿐이었다.

공간이 생기면 비집고 들어갔고,

공간이 없으면 몸으로 부딪쳐 만들어냈고,

그것도 안 되면 화려한 개인기로 수비를 제쳤다.

스피드, 힘, 기술 그 어느 하나 제퍼슨을 제대로 막는 선수가 없었다.

“저게 어딜 봐서 17세야! 저게! 당장 성인 국가대표로 뽑혀도 손색이 없는데!”

코치들은 조메우의 분노를 묵묵히 감수했다.

평소 같았으면 성인 국가대표는 아니지 않겠냐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모두 은근히 공감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어린애들 경기에 뛰어든 프로선수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말도 안 돼. 어디서 저런 놈이 나타난 거야.”

조메우는 머리를 붙잡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난생처음 보는 선수가 미네소타의 수비수들을 모두 떨쳐 내면서 헤더슛을 성공시킬 때 조메우 감독은 결국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도 못 막는 선수였어. 우리가 더 준비했어도, 못 막았을 거야.”

때로는 알고도, 대비하고도 못 막을 선수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은 바로 제퍼슨이 그런 유형의 선수였다.

***

“너 뭐야?”

“뭐긴 뭐야. 두 골 넣은 공격수지.”

“······.”

헤일리의 날카로운 반응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이 꽂힌다.

쯧. 이해하지 못할 거다.

두 골을 넣었다.

하나는 화려한 개인기로 수비진을 붕괴시켜서 반박자 빠른 슈팅으로.

두 번째 골은 수비수 셋을 달고도 머리 하나는 더 뛰어올라 완벽한 헤더로.

동나이대에서 보여주기 힘든 움직임이었으니까.

헤일리는 무너지는 팀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다들 집중하라고! 집중해!”

헤일리는 U-17 국가대표였고 팀에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데, 지금 내 생각엔······.

‘U-17도 별거 없군.’

헤일리 덕택에 지금의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U-17 국대라면, 그 또래 선수 중에서도 확연히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빠르고, 힘 좋고, 슈팅도 좋지만 사실 애매했다.

수비 실력은 나에게 태클 한 번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힘 역시 나에게 밀렸고, 슈팅도 로드릭의 몸을 날리는 혼신의 수비에 막혔다.

‘프로로 가야겠어.’

생각을 굳혔다.

내가 팀을 선택할 가장 큰 기준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마 대부분 팀이 내 나이 때문에, 유스 계약을 제시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지금 나는 유스 레벨이 아니다.

제퍼슨의 괴물 같은 신체에 점점 내 기교와 기술, 감각이 녹아들고 있었고,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너. 진짜 그냥 고등학교 축구부야?”

“보면 몰라?”

“빌어먹을. 대체 너 같은 애가 왜 지금까지 대표로도 안 뽑힌 거지?”

“뽑는 사람들이 눈이 삐었나 보지.”

헤일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 같다. 넌 U-20 대표로 뽑혀도 문제없겠어.”

“고작 U-20이라고?”

“뭐라고?”

“성인 국대 얘기하는 줄 알았는데.”

“······.”

그렇게 어이 없는 눈빛으로 쳐다보면 좀 그러잖냐.

그리고, 저기 날아오는 공 안 보고 왜 계속 날 봐?

“경기 중엔 집중해야지.”

“뭐?”

산티아고가 길게 패스를 찔러줬다.

헤일리가 나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만들어진 공간.

난 헤일리를 몸으로 힘껏 밀어내면서 달렸다.

“억!”

뒤늦게 헤일리가 따라붙었지만 이미 공은 발에 걸렸다.

한데 강하게 압박해오는 수비는 없다.

나에게 된통 당한 수비진은 라인을 올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다. 깊게 웅크려서 수비에만 임한 것이다.

이럴 땐 좋은 방법이 있다.

내려앉은 수비를 상대하는 방식은 딱 하나다.

중거리 슈팅이다.

발목에 제대로 힘이 들어간다. 발등에 정확히 맞은 인스텝 슈팅이 미사일처럼 쏘아졌다.

이미 자세를 잡고 있던 골키퍼가 급하게 손을 뻗었다.

“큽!”

단발마의 신음.

간신히 손을 뻗어 공을 툭 살짝 건들지만, 이미 힘이 제대로 실린 슈팅은 살짝 건드린다고 막아 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리이이이! 제퍼슨!”

이로써 세 번째 골.

두 경기 연속 해트트릭이었다.

***

미네소타 유나이티드의 1군 감독도 이 경기를 보러 경기장에 왔다.

1군의 경기와 훈련이 없는 날이기도 했고, 유소년 선수를 점검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감독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경기 양상에 어이가 없었다.

“지금 우리 유스 애들이 상대하고 있는 팀이 LA갤럭시라도 되나?”

“아닙니다.”

“분명 그냥 고등학교 축구부라고 들었는데.”

“네. 맞습니다.”

“그런데 스코어는 왜 저러지?”

“······.”

3:1

놀랍게도 미네소타의 스코어는 1점이었다.

세 골을 먹히고 끌려가고 있었다.

특히나 해트트릭을 기록한 9번의 공격수, 제퍼슨.

“저 친구 말이야. 우리 팀에 입단테스트 영상 보냈다고 했지?”

“네.”

“빌어먹을 유소년 전력 분석관은 보지도 않고 스팸메일로 처리해 버렸고?”

“······네.”

“그 자식 불러와.”

비서는 한숨을 푹 내쉬며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코치진 인선에 있어서 타 팀과 다르게 미네소타는 감독에게 전권이 있었다.

그건 감독이 유명한 유럽 출신의 베테랑 코치였고, 감독이 부임하며 내건 조건이기도 했다.

“빌어먹을. 헤일리는 무슨 똥강아지처럼 공격수만 쫓아다녀? 쟤는 또 언제 포지션 변경이라도 한 거야?”

이참에 1군으로 콜업까지 할 생각으로 염두에 뒀던 헤일리가 제퍼슨과 경합하며 계속 쓰러지자 감독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감독님. 유소년 전력 분석관 제이크입니다.”

“이 빌어먹을 자식! 엿 같은 자식! 뭐? 저런 선수를 영상도 안 보고 무시해? 자네 돈 받아먹으면서 이메일 하나 확인조차 못 하나?”

감독의 갑작스런 호령에 제이크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이메일을 못 본 건 실수입니다. 저희한테 입단테스트 영상을 보낸 걸 보니, 그래도 우리 팀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의향이 있는 거 같으니 제가 한번 만나 보······.”

“닥쳐! 이 개자식아. 시카고랑 토론토 애들이 저런 애를 가만히 놔둘 거 같아?”

“하······ 하지만”

“엿 같은 놈아. 네놈이 이메일만 제대로 봤으면 어마어마한 스트라이커가 넝쿨째 굴러오는 거였는데. 빌어먹을 놈. 돈 받아먹으면서 게으르기 짝이 없는 돼지 같으니라고. 꺼져!”

“네?”

“해고라고. You are fired!”

***

[유소년 축구 소식. 미네소타 유나이티드 3:1 패배!]

[고등학교 축구팀의 유쾌한 반란! 시카고 5:0 대파, 미네소타 3:1 연파!]

[돌풍의 중심엔 풋볼 출신 제퍼슨 리.]

[헤수스 조메우 U-20 감독 ‘단순한 아마추어가 아니다. 우리는 그를 영입해야 한다.’]

[시카고 파이어, 토론토FC, 미네소타 유나이티드. 새로운 신성에 눈독 들여]

[경기장에 영국 프로팀 스카우터 목격.]

[풋볼 스타에서 축구 스타로?]

[새로운 유망주의 등장에 떠들썩한 미네소타 주, 프로팀들의 스카우트 전쟁, 그 중심엔 제퍼슨 리!]

[U-17 미국 국가대표 헤일리 ‘리는 강력하다. 단단하고 대단하다.’]

[질리먼 감독 ‘리는 내가 지도자 생활을 하며 본 선수 중에 가장 빛나는 재능’ 극찬]

***

미네소타 유나이티드까지 잡아 버리자 지역 신문의 스포츠면에 우리 경기와 감독님의 인터뷰가 실렸다.

“빛나는 재능이라.”

그 불독 같은 얼굴로 낯 뜨거운 말을 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네.

골드컵 대회가 시작되어 리그는 잠시 휴식기를 맞이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프로 축구 팬들은 유스팀들 경기에도 관심을 보였고, 특히 미네소타 주 축구 팬들 사이에 우리 경기는 화제였다.

“어이! 너 제퍼슨 맞지? 우리 팀 상대로 해트트릭한 괴물!”

“경기 대단했어! 우리 팀으로 오라고! 괜히 시카고나 토론토 가지 말고.”

“너라면 1군까지 금방 콜업될 거야!”

이렇듯, 시내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난 것이다.

뭐 대부분 미네소타 유나이티드 팬이긴 했지만.

그때 로드릭이 어깨동무를 걸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로 갈 거야?”

“뭘?”

“팀 말이야 팀.”

“아. 아직 안 정했어.”

“영국에서도 제안이 들어왔다면서?”

“응. 그런데 워크퍼밋 때문에 임대로 다른 곳에서 뛰어야 하나 봐.”

내 말에 로드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내 눈치를 봤다.

뭐야, 얘.

“너 왜 그러냐?”

“사실······ 나도 제안을 받았거든.”

“그래?”

하긴, 로드릭 정도라면.

생각해보면 두 개의 프로팀 유스를 맞이해 한 골만 내준 건, 로드릭의 공이 컸다.

골을 넣어서 이기는 거야 내가 하는 것이지만, 수비는 엄연히 로드릭이 다한 것이다.

당연히 그도 레이더망에 들 법하지.

“그래서?”

“이왕이면 너랑 같은 팀 가면 좋을 것 같아서······.”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나도 같은 팀 가고 싶은데.”

“응?”

산티아고마저 눈을 반짝였다.

“너도 제안받았어?”

“응.”

“어디?”

“미네소타, 토론토, 시카고.”

“나도.”

얘들 봐라.

마치 내 선택을 기다리는 애들처럼 눈이 반짝인다.

산티아고는 원체 애가 어린애 같아서 괜찮은데, 로드릭은 좀······.

“징그러워. 저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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