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2화 (12/258)

12. 알고도 못 막는 선수 (1)

시카고 파이어와의 경기가 끝난 후 내게 접근한 프로팀 관계자는 넷이었다.

시카고 파이어.

미네소타 유나이티드.

토론토 FC.

그리고······ 스토크 시티.

음.

스토크가 왜 여기서 나와?

내 기억에 따르면 스토크 시티는 2부 리그를 전전하면서 한참 동안 한국 축구팬들에게 잊혔다가 어느 순간 다시 EPL로 복귀를 하긴 한다.

이후 본래 팀이 가진 특성을 잃어버리고 밋밋한 축구를 하면서 관심도가 떨어지기도 해서, 잘 기억나지는 않았다. 한데, 이제 막 고교 축구를 시작한 나를 찾아올 일은 없는 팀이다. 영국의 역사 있는 대회도 아닌, 미국의 친선 유소년 대회에서 뛰고 있는 날 어찌 알고 스카우터를 보냈을까.

옆에 있는 감독님을 슬쩍 보니까 느낌이 바로 딱 왔다.

‘감독님이 연락했군.’

갑자기 스토크 시티의 스카우터가 미국의 유소년 축구를 보러 올 일은 감독님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영국에서 축구를 하셨던 분이니까.

하지만 덥석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계약이란 늘 신중해야 하는 법이니까.

우선 아버지에게 계약에 관련된 모든 업무를 일임했다.

“미네소타 유나이티드는 조금 괘씸해.”

“네?”

“영상을 보지도 않았더라.”

“아······.”

“쯧. 어쩌면 누군가가 간절한 마음으로 보낸 것일 수도 있을 텐데, 이런 애들하고 같이 일하기는 영······.”

“그러게요.”

“물론 선택은 너의 몫이다. 나는 각 팀 관계자를 만나서 그들이 제시한 조건을 최대한 높게 치는 역할만 할 뿐이야.”

“알겠어요.”

아버지는 씩 웃었다.

평생 운동만 하신 분이시지만, 기세만큼은 남다르신 분이었다. 때로는 협상 자리에서 그 기세가 효과적일 때가 있다.

190cm가 넘는 건장한 체격의 아버지는 아직도 현역 시절의 카리스마를 유지하고 있었다. 입을 다물고 계실 때만 말이다.

“하지만 스토크 시티는··· 약간 문제가 있더구나.”

“네?”

“취업비자 말이다.”

워크퍼밋.

취업비자가 문제였다. 영국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하려면 취업비자가 필요했다. 문제는 이 비자를 발급받는 조건이 꽤나 까다롭다는 점이다.

“그래서 스토크는 한 시즌 정도 스코틀랜드 임대를 통해 워크퍼밋을 발급받을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는구나.”

“임대 이적이요?”

“그래.”

음, 이거 일이 좀 복잡해지네.

임대 이적.

스토크 시티가 매력적인 이유는 우선 축구 종주국 영국이란 점, 그리고 언제든 1부에 올라갈 능력을 충분히 갖춘 팀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워크퍼밋 발급을 위해 스코틀랜드로 임대를 간다면······.

‘굳이 더 좋은 이점은 없는데.’

MLS보다 좋은 점을 찾기가 어렵다.

MLS는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미국이 작정하고 밀어준다. 샐러리캡을 폐지하고 유럽의 우수한 코치진과 선수들을 대거 수혈하고, 유소년 정책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한다.

샐러리캡 폐지로 선수들의 연봉이 높아지면서 미국이라는 배경과 어마어마한 스포츠 인프라로 인해 좋은 선수들이 모여든다.

그에 반해 스코틀랜드 리그는 수준이 썩 높다고 할 수는 없다.

유럽대항전에서 경쟁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막말로 평범한 축구팬에게 스코틀랜드에서 뛰고 있는 스타선수를 말해보라고 하면,

제대로 대답할 사람은 없다. 그만큼 인지도가 낮다.

이것도 큰 문제였다.

차라리 미국에서 뛰면,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미국 축구팬들에겐 내 이름을 똑똑히 알릴 수 있다. 근데 스코틀랜드에서 뛰면, 그냥 딱 거기까지일 뿐이다.

뭐, 간다면 확실히 해야지.

내가 반드시 팀의 핵심으로서 주전으로 뛰어야만 한다는 것.

그러나 이건 ‘임대’이기 때문에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 워크퍼밋을 발급받기 위한 임대라서 오히려 큰소리칠 수가 없는 처지니까.

막말로 임대 해지를 빌미로 이상한 포지션에 뛰게 한다면 나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스토크 시티로의 이적은 여러모로 난처한 점이 많았다. 워크퍼밋을 제대로 해결하기 힘들면 말이다.

워크퍼밋을 발급받으려면 거액의 이적료, 또는 국가대표 출전 횟수가 많아야 했다.

여기서 내가 노릴 건 거액의 이적료인데, 지금은 FA나 다름없는 처지니 결국 논외의 대상이다. 당장 영국으로의 이적이 아니라, MLS에서 몸값을 올린 후 거액의 이적료를 안겨 주고 이적하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가능성 높은 방안이었다.

“일단 알겠어요. 아버지가 잘 조율해주세요.”

“그래. 결정은 천천히 심사숙고한 이후에도 늦지 않으니까 잘 생각하렴.”

“네.”

선택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지만, 아직은 깊게 고민하지 말자.

다음 경기가 코앞이니까.

***

시카고 파이어 유스팀과의 경기는 지역 사회에서 꽤 화제였다.

프로 리그가 시즌 중반을 향하면서 열기가 점차 뜨거워지고 있는 시점이기도 했고, 시카고 구단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경기 영상이 올라오면서 소문이 꽤 빠르게 퍼졌다.

영상의 포인트는 당연히 내가 기록하는 골 장면이었다.

시카고 파이어의 팬들은 영상을 보며 생각했다.

“대체 이 괴물 같은 놈은 누구야?”

ㄴ빌어먹을. 그냥 X도 아닌 평범한 고등학교잖아?

ㄴ프로팀 유스가 하이스쿨 풋내기들한테 털렸다고?

ㄴ세상에. 5:0이라니. 도대체 저 괴물 9번은 누구야?

ㄴ구단은 생각이 있으면 당장 쟤를 영입해!

ㄴ지금 우리 공격진보다 훨 나은 듯.

ㄴ그 엿 같은 윌리엄은 쓰레기통에 갖다 처박아 버리고 저 괴물을 데리고 와!

ㄴ윌리엄이 받는 연봉 10분의 1만 줘도 데리고 올 수 있을 듯. 누가 쟤 연봉 알아?

ㄴ멍청아 쟤는 용돈 받고 살겠지. 고등학생이라고.

ㄴ윌리엄보다 낫다고? 고작 유스팀에서 골 좀 넣었다고?

ㄴ위에 윌리엄 왔네. 유튜브나 처보지 말고 연습이나 해. 엿 같은 놈아.

시카고 파이어 팬들과 광적인 스포츠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내가 화제로 떠오르긴 했다. 물론 극히 일부에서지만.

뭐, 어찌 됐건 내 이야기가 SNS에 퍼지길래 잠깐 관심을 가졌을 뿐. 내 관심은 다음 경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

회귀 전, 나와 같은 케이스는 많았다.

물론 나처럼 극단적으로 한쪽에 쏠린 것은 아니어도, 충분한 지능과 천재성을 가져도 피지컬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어 실패하는 선수는 소수지만 찾아볼 수 있다. 유리몸 때문에 벤치만 전전하는 선수도 많다.

그런 선수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건 뭘까?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능과 천재성이란 재능에 튼튼한 피지컬이 더해지길 원할 것이다.

그런데 두 가지 모두 타고 났음에도 단지 게으른 성격 때문에 무너진 천재들이 있다.

내가 왜 갑자기 옛날 생각을 떠올렸냐면.

이번 상대팀, 미네소타 유나이티드 쪽에서 날 쳐다보고 있는 금발 머리를 봤기 때문이다.

쟤가 여기서 뛰고 있었구나.

캔드릭 헤일리.

아마 지금 미국 청소년 국가대표일거다.

어린 시절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나중엔 뭐······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별다른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마친다.

“아는 사람이야?”

“응? 아니. 그냥 재수 없게 생겨서.”

내 말에 로드릭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킥킥 웃었다.

“하긴. 금발 머리가 좀 재수 없지.”

“너도 금발인데?”

“나야 붉은 금발이잖아.”

“내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데.”

“음. 내 눈에는 너나 티비에 나오는 동양인이랑 다 똑같아 보이는 거랑 같은 건가.”

“그거 인종 차별이지?”

“리. 치사하게 나올래?”

로드릭이 억울한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놀리는 맛이 있단 말이야. 그건 산티아고도 동감할걸?

“로드릭이 인종 차별자였어?”

순진하게 눈을 동그랗게 뜨는 얼굴을 보라. 저거 사실 순진한 척하는데, 영악한 것 같단 말이야.

로드릭이 울상을 지었다.

“커모온, 산티! 너까지 왜 그래?”

“산티, 이리 와. 백인 우월주의자한테서 떨어져.”

“응. 리!”

“헤이! 너희 진짜 이러기야?”

“수비나 잘 지키라고. 우린 골 넣고 올게. 가자, 산티!”

‘헛’하고 헛웃음을 터뜨리는 로드릭을 뒤로한 채 천천히 하프라인으로 향했다.

가득찬 관중.

그리고 한켠에서 자기를 봐달라는 듯이 손을 흔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였다.

음.

부모님이 오셨는데,

멋진 모습을 좀 보여 줘야겠지?

**

미네소타 유나이티드는 바로 여기가 홈그라운드다. 그래서 유스 경기임에도 관중들이 가득 찼다.

미네소타 유나이티드 U20팀의 감독인 조메우 감독은 시카고를 폭격하던 9번, 제퍼슨의 움직임을 똑똑히 기억했다.

‘7번의 움직임도 위협적이지만, 결국 모든 공격은 9번이 만들어 낸다.’

9번을 막는 것이 핵심이었다.

제퍼슨을 막기 위해 확실한 대비책을 준비했다.

4-2-3-1의 포메이션.

더블 볼란치를 둬서 수비에 힘을 주고, 공수를 오가는 전천후(Box to Box) 미드필더를 둬서 중앙을 강화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공격수라도 오랜 기간 발을 맞춘 탄탄한 수비 조직력을 단 혼자서 뚫어 내기란 어렵다. 그건 상식이다.

미네소타는 중앙에서부터 강력한 압박과 숨 막히는 수비로 중원을 지배했다.

그리고 공격수와 측면 미드필더, 공수를 오가는 전천후 미드필더인 헤일리가 역습을 시도했다.

“더 압박해! 공을 소유해! 지키란 말이야!”

경기는 전반 40분까지 조메우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패스, 패스, 패스.

강력한 더블 볼란치의 수비력과 짧게 이뤄지는 패스로 인해 점유율은 압도적이었다. 상대는 공을 잡아도 금방 뺏기기 일쑤였으며, 좀처럼 기회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라인 지켜! 더 올라가지 말고. 공보단 전체를 봐. 넓게 보라고! 알렉스. 넌 9번 주위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조메우는 적극적으로 소리치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10대 선수들인 만큼, 더 열정적으로 소리치고 의욕을 끌어 올려줘야 한다. 초반부터 분위기를 잡기 위해 조메우는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

전반 종료 3분전.

뛰어다니느라 체력이 부족해진 상대의 수비 실책을 틈타, 중앙에서 전진하던 헤일리가 공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와아아아!”

“공격해! 집어넣어 버려!”

“슈팅 때려 버려!”

헤일리의 저돌적인 전진은 단숨에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헤일리는 욕심이 많은 선수다.

그는 관중들이 환호하는 지금 골을 넣고 싶었다. 그는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를 외면하고, 슈팅각이 보이자마자 그대로 때렸다.

“아!”

“빌어먹을! 패스했어야지!”

“헤일리 저 자식은 저게 문제야. 아주 지 혼자 해 먹으려고 해.”

헤일리가 작정하고 때린 슈팅은 몸을 날린 로드릭의 좋은 수비에 막혔다.

비록 아쉽게 막혔지만, 당장이라도 골이 나올 분위기였다.

달아오른 경기장의 분위기는 뜨거웠고, 흐름은 좋았다. 조메우 감독의 얼굴에 점차 미소가 떠올랐다.

‘축구는 팀 스포츠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잘 짜인 전술과 동료 선수들과의 협력. 유기적인 움직임과 끈끈하게 짜인 조직력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스포츠가 바로 축구다.

조메우는 하프라인 바로 위에서 미간을 살짝 좁힌 제퍼슨의 얼굴을 바라봤다.

‘확실히 대단한 재능이긴 하지.’

조메우는 시카고와의 경기에서 제퍼슨이 보여준 퍼포먼스에 감탄했다. 그리고 저런 제퍼슨의 입단테스트 동영상을 보지도 않고 메일함에서 지워 버린 유소년 전력분석관을 얼마나 씹어댔던가.

저만한 유망주를 놓칠 거냐고.

아쉬운 상황이다. 제퍼슨이 두각을 드러내면서, 대회에 참가한 시카고와 토론토도 탐을 내고 있다.

무난하게 얻을 수 있던 유망주를 다른 팀하고 경쟁하게 됐고, 자칫하면 뺏기게 생겼다.

‘그래도 뭐, 지금 상황에서 보면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는 않은데.’

동료의 도움 없이 고립된 공격수.

분명 대단한 실력이지만, 경기를 바꿀 수 있는 ‘크랙’까지는 아닌 셈이다. 조메우는 한층 편안해진 얼굴로 경기를 바라봤다.

‘축구는 미식축구처럼 혼자 돌파하고 터치다운을 해서 영웅이 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 어?

로드릭의 허벅지에 맞고 튕겨 나온 공을 잡은 산티아고.

산티아고는 움찔하며 전방을 바라봤다.

그러나 제퍼슨은 이미 단단히 준비한 수비에 둘러싸여 있었다. 라인을 부수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산티아고는 결국 천천히 지공으로 전환했다.

그의 패스가 중원을 향했다.

조메우 감독은 곧바로 제퍼슨을 바라봤다.

슬그머니 움직이는 그의 몸놀림.

“압박해! 9번을 압박해!”

제퍼슨은 몸으로 버텨내면서 패스를 받았다.

한데 조메우는 불현듯 가슴속에 불안함이 피어올랐다.

미드필더 두 명이 뒤에서 압박하는데, 등진 채 버티는 제퍼슨의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힘으로 싸우는 데 전혀 힘든 기색이 없었다.

그 순간 제퍼슨의 몸이 흐물흐물 움직였다.

“······!”

들러붙는 수비수를 화려한 스텝오버(헛다리 짚기)로 제쳐 낸 뒤, 또 다른 미드필더는 부드러운 턴을 보여주면서 간단히 떨쳐냈다.

단숨에 더블 볼란치의 압박을 벗어난 것.

그때부터 제퍼슨의 허벅지에서 폭발적인 스피드가 터져 나왔다.

단숨에 더블 볼란치를 너무나도 쉽게 벗겨 낸 제퍼슨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페널티 박스로 달렸다.

조메우 감독은 필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건 잔뜩 들어선 미네소타의 관중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공간도, 기회도 없었다.

당연히 막혀야 했다. 공을 뺏지는 못해도 전진은 못해야 했다. 그게 그들이 지금껏 본 축구였다.

그런데 왜 미네소타 유스들은 그의 화려한 발재간과 아름답기 짝이 없는 우아한 턴에 무너져 내리는가.

그리고 또, 골키퍼는 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박스 앞에서 때린 호쾌한 슈팅을 망연자실 쳐다보고 있는지.

“Gooooooaaaal!”

관중들은, 뒤늦게 올라가는 스코어를 보고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No.9 제퍼슨 리.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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