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9화 (9/258)

9. classic, class (1)

[제퍼슨 리는 미쳤어! #록하크 #축구대항전 #5:0]

[4Goal, 1Aissst! 미쳤다! #축구 #랜던 도노반 #제퍼슨 리]

[다음엔 농구팀에 넣어! 그러면 20득점은 그냥 찍을 거야! #NBA #천재 #제퍼슨 리]

[레드먼 코치가 야구팀으로 데리고 간다면서? 올해의 고교 홈런왕이 되지 않을까? #레드먼 코치 #제퍼슨 리 #MLB]

[웃기지 마. 그는 축구 선수야 이제! 어디에도 가지 않아!]

[쟤 닉네임 봐. God_rodric인데?]

[축구팀 수비수?]

[축구팀 주장 로드릭?]

[욕심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리가 농구, 야구, 풋볼에 가면 우리가 다 이길거라고! 돌려 쓰자!]

[아이스하키는 왜 빼먹어?]

[거기는 리가 없어도 일등이잖아.]

[아니, 너희들이 뭔데! 리는 축구 선수라고! 내 소울메이트란 말이야!]

[세상에, 쟤 게이였나봐.]

[인스타에서 커밍아웃 #로드릭 #커밍아웃 #게이 #축구팀 주장]

**

“으아아아!”

“왜 그래?”

“미쳤어. 다들 널 농구나 야구로 데리고 가려고 하잖아!”

한참 폰을 만지길래 뭐 하나 했더니, SNS에 빠져있었네.

“적당히 해. 퍼거슨 감독이 한 말 몰라?”

“뭐?”

“SNS는 인생의 낭비다.”

“···이것도 안 하는 10대가 있어?”

“음.”

“설마 너 안 해? 계정은 있던데?”

“요즘에는 안 해.”

본래 제퍼슨이 안 했을 리가. 뭐 본래 제퍼슨도 상당히 괜찮은 친구긴 했다. 허영심이 많은 거야 그 또래 스포츠 스타의 자신감 정도로 포장할 수 있고, 무엇보다 얘가 사람이 남자였다. 상남자. 의리파였는데 그 때문에 저번 경기장에 풋볼팀애들이 단체로 왔었다.

“응? 사람이 좀 많네?”

학교의 가장 변두리에 있는 축구팀은 찾는 사람이 없다. 선수와 코치빼면 말이다.

그런데 훈련장에는 낯선 학생들이 열댓 명이 모여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는데 애들이 갑자기 날 쳐다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커모온! 리가 왔어! 헤이, 리!”

“오! 제퍼슨 리!”

“어제 경기 멋졌어! 록하크 놈들 박살을 내던데?”

“피를 쭉 뽑아내더만. 역시 풋볼팀의 러닝백답게 터프했어!”

“록하크 애들 나가떨어지는 걸 보니 속이 시원하더라!”

“어···어. 안녕.”

뭐야.

난생처음 보는 사내놈들이 반가운 얼굴로 인사해오는 건 첫 경험인지라 황급히 안에 들어갔다.

“뭐에요? 이게?”

“어. 왔어? 어제 경기보고 축구팀에 들어오고 싶단 학생들이야.”

“네?”

“어제 경기가 좀 화끈했잖냐. 너 찍은 영상들 학교 애들 SNS에 엄청나게 돌아다니더라. 그거 보고 한두 명씩 찾아왔다.”

“헐.”

“세상에. 리. 네가 축구팀을 살리고 있어!”

“아니, 뭘 살리기까지야······.”

“이러다가 풋볼도, 농구, 야구도 아닌 우리 축구가 1순위가 되는 건 아니겠지?”

로드릭이 호들갑을 떨었다.

단언컨대 절대 그 정도는 아닐 거다.

어제 경기를 보고 흥미가 생긴 학생 몇몇이 노크한 수준이겠지.

뭐, 비인기 종목인 축구팀에 지원자가 갑자기 생겼다는 건 확실히 고무적인 일이긴 하지.

어제 경기는 10대 사춘기 남자애들의 ‘마초’ 본능을 건드리기엔 충분했다.

유혈이 낭자했거든. 비유가 아니라 진짜다.

일단 내가 무릎으로 얼굴을 찍은 놈은 코피를 터뜨렸다.

경기는 이후에도 감독의 퇴장, 선수의 부상, 자제력이 없는 10대 경기인 이상, 또 특히 마초 문화가 배 있는 미국 스포츠 문화 때문에 난투극 직전까지 갔다.

그 와중에 나에게 거친 반칙을 하던 놈을 심판 안 보는 사이 아주 제대로 걷어차 줘서 쓰러뜨렸다. 어쭙잖게 파울을 하던 놈은 머리를 대놓고 박아버려서 이마가 찢어졌다.

어제 경기는 확실히 풋볼 못지않게 화끈했다.

‘그래도 이 몸이니까 다행이지.’

새삼 이 몸이 신기하다.

어제처럼 수비수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반칙해대고 몸싸움을 하는데 하루 지나니 몸이 가뿐했다. 후유증이 전혀 없다.

괴물 같은 피지컬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하기야 풋볼팀의 라인맨들은 120kg이 넘는 게 기본이다. 심지어 라인맨들은 아무리 느려도 40야드를 5초대 초반에 주파한다. 그 중량과 속도로 돌진해오는 걸 버티고, 피하는 게 바로 러닝백이니까.

“아니, 내가 왜 탈락인데요!”

불만 어린 목소리가 창틈을 비집고 사무실 안까지 들렸다.

100kg은 될법한 거구가 코치를 향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알만하군.

“야, 로드릭.”

“엉?”

“가서 혼쭐 좀 내줘라.”

“···내가 맞을 거 같은데? 체급이 달라.”

“축구로 혼쭐 내주라고.”

“아하!”

로드릭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로드릭은 재능이 있었다.

‘제법 패스 재능도 있단 말이야.’

공을 커트하고 길게 뿌리는 능력이 제법이었다. 수비수뿐만 아니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도 그 역할을 잘 수행할 것 같았다.

어찌 됐건 로드릭은 우리 팀 최고의 수비수다.

제아무리 덩치가 커도 나랑 특훈을 반복한 로드릭을 힘으로 이기지 못할걸.

난리를 피우던 거구는 이내 로드릭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쯧. 저런 물살하고 탄탄하게 만들어진 로드릭의 근육질하고 질 자체가 다른데.

대결은 간단했다.

드리블이든 뭐든 로드릭을 뚫어내는 것과 헤딩경합에서 이겨내는 것.

결과는···뭐 뻔하지.

“우하하! 뚫어보라고!”

“으하하! 나보다 키도 큰놈이 왜 이렇게 못 뛰어?”

“뚱뚱해서 그래, 인마. 살 빼! 그래서 점프를 못 하잖아?”

신났네, 신났어.

거구는 치욕감에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돌아섰다. 노려보는 눈빛이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어찌나 살벌한지 철없는 로드릭도 순간 분위기를 뒤늦게 파악했다.

“헉. 리. 나 지켜줄 거지?”

“뭐?”

“쟤 나중에 와서 주먹 휘두를 거 같은데?”

“총이라도 들고 다녀 그럼.”

“······.”

로드릭이 입단 테스트 도우미를 시작하는 동안 나는 간단히 몸을 풀었다.

경기 다음날에는 간단히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훈련이 중요했다.

“우왁!”

“대박!”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아우! 다시 해보자고, 다시!”

잔뜩 골이 난 로드릭의 목소리.

왜 이렇게 화가 났어?

로드릭은 홍시처럼 얼굴이 붉었다. 그의 눈동자가 일전처럼 승부욕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로드릭의 맞은 편에는 170cm나 됐을법한 키 작은 친구가 공을 잡고 서 있었다.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린 동글동글한 얼굴은 일견 순진해 보였지만, 굳게 닫힌 입술은 진지해 보였다.

“다시 해보라고, 산티아고!”

응? 산티아고?

산티아고는 툭툭 공을 차며 천천히 전진했다.

로드릭은 신중했다.

이전에 된통 당했는지 그는 집중력을 최고조로 발휘했다. 그러다가 기회를 발견한 듯 강하게 어깨를 밀고 들어갔다.

몸싸움에 이제 슬슬 깨달음을 얻고 있는 로드릭이라면, 저 작은 체격의 산티아고는 나가떨어져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한데 버텼다.

등을 돌려 공을 보호하면서 넘어질 듯 말 듯 했지만 절대 넘어지지도 않았고, 공은 그 와중에 붙어있었다.

로드릭은 자기보다 머리통 하나가 작은데도 제대로 밀어내지 못하자 잔뜩 화가 났다.

그때, 산티아고의 발이 빠르게 거짓말처럼 우아하게 움직였다.

“와!”

왼발로 공을 툭, 오른발로 툭, 그러다가 힐킥으로 로드릭의 가랑이 사이로 빼낸 것이다. 빼내면서 동시에 어깨를 밀어내며 가볍게 돌아 공을 몰고갔다.

로드릭은 자신이 어떻게 당하였는지도 모른 눈치로 그대로 굳어버렸다.

“쟤가 누구라고?”

멀리 있던 질리먼 감독이 잔뜩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테스트를 담당하던 코치가 황급히 서류를 보며 말했다.

“어······산티아고 차베즈. 이번에 전학 왔답니다. 멕시코 이민가정 출신이요.”

“산티아고 차베즈라고요?”

쟤가?

**

산티아고 차베즈.

7년 후.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 혜성처럼 등장한 미국 국가대표.

안방에서 열린 월드컵이라 미국은 축구의 인기가 극도로 높아진 상태였고, 8강을 향하는 결승골을 집어넣으며 산티아고는 미국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똑똑히 알렸다.

미국이 배출한 축구 스타, 랜던 도노반 이후 이렇다 할 스타가 없던 미국 축구계에서 일약 스타덤에 등극한 천재.

작지만 빠른 몸놀림으로 적의 골문을 폭격했던 타고난 스트라이커!

그가 바로 산티아고 차베즈였다.

걔가 이 학교 출신이었구나.

산티아고는 로드릭을 8번 상대해서 6번을 이겨냈다. 마지막 두 번은 로드릭이 산티아고의 패턴을 어느 정도 읽어내서 막아냈다.

질리먼 감독은 테스트 자리에서 바로 통과시켰다.

저만한 재능은 이 아마추어팀에서 보기 어렵다.

질리먼 감독은 불독 같은 외모 때문에 기뻐하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지만, 난 알았다. 입꼬리가 꿈틀거리면 분명 좋아하고 있다.

어쩌면 감독님이 원하는 축구를 보여줄 만한 좋은 선수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리?”

“응?”

산티아고가 조심스럽게 날 찾아왔다.

“어제 경기 잘 봤어.”

“어, 봤어?”

“응. 경기장 옆에 주택가에 이사 왔어. 시끄럽길래 갔는데 마침 경기하고 있더라.”

경기장 옆.

거기 빈민가인데. 행색을 보니 가정형편이 어려워 보였다. 멕시코 이민가정이라.

티를 내지 않고 밝게 웃어줬다.

“잘 부탁해, 산티아고.”

히스패닉 쪽 애들이 거친 친구들이 많은데, 산티아고는 다소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있는 얼굴로 악수를 받았다.

산티아고는 어정쩡한 실력을 지닌 친구가 아니었다.

미래에는 미국 프로리그에서 제안하는 거액의 연봉을 마다하고 스페인에 진출했다.

AT마드리드에서 끝끝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그야말로 난놈이었다.

회귀 전 나에게는 꿈만 같던 별들의 무대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친 축구스타.

“응, 잘 부탁해 리. 어제부로 너의 팬이 될 것 같아.”

“어···그래. 뭐······.”

참, 살다살다 미래의 챔스 우승 주역한테 팬이란 소리를 듣네.

**

지잉지잉.

“어. 존스. 지금 영국은 새벽 아닌가?”

-아니, 선배님. 이거 영상 주인공이 누굽니까? 이 괴물이 대체 누구에요?

“진정해, 진정.”

-선배님.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이 신체스펙이 말이 됩니까?

“하하하. 그치? 말이 안되지? 여긴 미국이야. 그런 애들 찾아보면 많아. 다만 축구가 아니라 다른데 있을 뿐이지.”

질리먼은 영국에서 뛰던 시절 한참 후배였던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에 그저 웃었다.

그저 제퍼슨 리의 테스트 영상과 저번 경기 영상을 이메일로 보냈을 뿐이다.

-선배님. 언제까지 가면 돼요?

“두 눈으로 보게?”

-아무리 봐도 영상 속 실력이 진짜라면, 당장 써먹을 수 있을 자원 같은데요. 누가 쟤를 고등학생으로 봐요?

“그렇긴 하지.”

-실력만 있으면 10대때 월드컵 나가는게 축구판입니다. 제가 데리고 가고 싶은데요.

“주말에 시카고 파이어 유스팀이랑 경기가 있어.”

-알겠습니다. 선배님. 스카우터를 보내죠.

“행운을 비네. 존스.”

-좋은 선수 소개해줘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질리먼은 전화를 내려놨다.

아무리 봐도 고작 이런 아마추어 고등학교팀에 뛸 친구가 아니었다.

때문에 질리먼은 영국에 있는 후배에게 전화했다. 나름 코치로 성공해서 이제는 엄연히 한 프로팀의 감독을 맡고 있는 녀석이니까.

선수 보는 눈만큼은 제대로니까, 제퍼슨을 잘 봐줄 것이다.

“후. 그러면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겠지.”

사실 준비할 것도 없다.

질리먼은 전술 포메이션이 그려진 칠판을 바라봤다.

톱에 제퍼슨 리.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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