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7화 (7/258)

7. 이제 좀 스포츠 같네 (1)

질리먼이 주로 사용하는 포메이션은 4-4-1-1이다.

양 날개에서 이뤄지는 크로스. 전형적인 타겟터 스트라이커가 공을 지켜주고, 2선의 쳐진 스트라이커가 침투해나가는 플레이.

“톱은 리죠.”

“리만큼 파괴력 있는 스트라이커는 없어요.”

본래 스트라이커인 선수는 영 성적이 좋지 못했지만, 그래도 3년 동안 팀과 함께 호흡을 맞춰왔다.

하지만 코치진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리의 파괴력은 인정하지만, 실전을 치러본 적이 없다는 점이 주요했다.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하지만 호흡을 떠나 리만한 스트라이커를 벤치에 놓는다고요?”

“이건 좀 아닙니다.”

“리는 기술이 좋아요.”

“기술만 좋나? 피지컬은 프로로 갖다 놓아도 문제없어.”

“그럼 써보죠.”

“리를 톱에 놓는다.”

질리먼은 결정을 내렸다.

**

록하크 하이스쿨은 미네소타주 최고의 고교 축구팀이다.

“또 우리 록하크가 이기겠지. 축구만큼은 우리잖아.”

“올해 풋볼도 졌지?”

“농구하고 야구, 아이스하키 다 졌어.”

“축구는 이기겠지? 이겨야 하는데. 저놈들 SNS에서 도발하는 거 보면 열 받는다고.”

“미네소타 유나이티드 유스들이 다 우리 학교 출신일 정도잖아. 우리가 훨씬 잘해.”

고등학교 경기여도 작은 경기장이라 관중은 가득 찼다.

아무리 축구가 비인기 종목이어도, 미국이란 나라에서 스포츠는 늘 관중동원력이 대단했다.

더구나 지금은 야구도, 농구도, 풋볼도 하지 않는 시간대.

할 거 없는 동네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각 학교의 전교생이 가득찼다.

록하크하고는 오랜 기간 라이벌 관계여서 고등학교 경기임에도 관중들 사이의 신경전이 꽤 날카롭다.

양쪽 학생들이 모여드는 가운데, 덩치 큰 사내 한무리가 경기장에 찾아왔다.

“풋볼팀이네? 쟤, 쿼터백 조세프 맞지?”

“쟤들이 여기 웬일이래. 축구는 시시하다고 하는 놈들이.”

“맞다. 이번에 축구팀 새로 들어온 애가 제퍼슨 리라는데?”

“뭐? 그 아시아계 러닝백? 걔가 왜 축구를 해?”

“뻔하지. 고등학교에서나 아시아계가 러닝백하지. 대학 가봐. 될 것 같아?”

록하크의 학생이 비웃었다.

문제는 그 조롱기 가득한 목소리가 괴물 같은 풋볼 선수들에겐 아주 잘 들렸다는 점이다.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우리 리를 욕해?”

“뭐? 아시안계라서 못해? 인종차별하는 거냐?”

흡사 불곰을 보는 듯한 2m에 120kg의 디펜스맨들이 나서자 비웃었던 록하크 학생은 급히 몸을 숨겼다. 풋볼 선수들의 살기 어린 눈동자가 록하크 쪽 관중을 훑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불곰처럼.

“리 욕하는 놈 있기만 해봐!”

“아주 뼈를 박살을 내줄 테니까.”

“허리를 접어버릴 테다.”

“머리를 부숴버릴 거다! 두개골을 작살내고 뇌를 곤죽을 내주마!”

“미리 엠뷸런스 불러놔라! 걸어서 못 나갈 거니까.”

“······.”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잔뜩 신경전을 펼치던 록하크 학생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풋볼 선수들의 살 떨리는 경고에 기세등등했던 록하크 쪽 학생들이 모두 잠잠해졌다. 반대로 록하크를 이길 수나 있을까 싶었던 홈팬들의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순식간에 작은 경기장의 분위기가 확 바뀐 것이다.

“풋볼 애들이 웬일로 축구를 보러왔대.”

“근데 좀 든든하네요, 감독님.”

“그러긴 하네.”

벤치 뒤 관중석에서 벌어지는 소란을 보며 질리먼은 피식 웃었다.

홈 관중 분위기도 중요하다.

이런 아마추어 경기에서는 관중 분위기에 따라 선수들이 휩쓸릴 수도 있으니까.

“어이! 질리먼! 한번 잘 해보라고!”

“그 괴물을 데리고 못 써먹으면 야구팀에 넘겨! 내가 메이저리그로 보낼 테니까!”

“아니면 내가 NBA로 데리고 갈게! 오늘 못 이기면, 나한테 넘기라고!”

관중석 한편에서 소리치는 농구와 야구의 헤딕, 레드먼 코치를 보고 질리먼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록하크가 라이벌이고, 나머지 스포츠는 다 쉬는 기간인지라 학교의 모든 사람이 다 온 듯한 느낌이었다.

“저치들이 할 일이 어지간히 없나 보네.”

“오늘 이겨야죠. 지면 다른 코치들이 잔뜩 비웃을 겁니다.”

“그래. 한번 보자고. 우리에겐 괴물이 있으니까.”

“치트키치고 경기하는 기분인데요.”

**

선발진의 스트라이커는 당연히 제퍼슨 리였다.

누군가 제퍼슨 리를 알아봤다.

그는 유명인이었다.

아시아계 최초 MVP 러닝백.

추후에 NFL의 정상으로 군림할 가능성이 높은 천재.

그가 그라운드에 축구 유니폼을 입고 올라섰다.

등번호 9번을 달고.

삑-

킥오프 이후 경기는 일방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홈팀이 공을 잡으면 록하크가 거칠게 몸을 부딪치며 강력하게 압박했다.

확실히 록하크 선수들의 기량이 더 뛰어났다.

4-3-2-1의 포메이션의 록하크는 중앙에 힘을 제대로 줬다. 미드필더 간격을 좁히고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두면서 홈팀이 공도 잡지 못하게 강하게 압박했다.

거기에 홈팀의 날개는 수비형 미드필더와 좌우 풀백의 협력 수비에 우왕좌왕하다 공을 잃기 일쑤였다.

“전형적인 타겟터를 이용하는 전술이군. 변함이 없어. 2선과 양 날개만 묶어버리면 아무것도 못 하겠지.”

록하크의 감독은 유능한 편이다.

타겟터가 아무리 공을 잘 지키고 잘 따내도, 양쪽 날개가 크로스조차 올리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주도권을 아예 내주지 않고 점유율을 차근차근 잡아가며 점점 파상공세를 시작했다.

록하크 감독은 씩 웃었다.

경기 흐름은 일방적으로, 그가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음?”

그때 경기를 주시하던 감독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박스에 머무르고 있던 제퍼슨이 슬그머니 하프라인쪽으로 내려오고 있던 것이다.

문제는 공간이었다.

양쪽 날개와 공격형 미드필더만 압박했다. 자연히 공이 흘러가지 않는 스트라이커에겐 시간이 지나면서 압박이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그 느슨해진 압박사이로 제퍼슨의 몸이 유령처럼 움직였다. 아무도 눈치 못한 채. 오로지 밖에서 경기를 주시하는 감독의 눈에만 보였다.

“당장 압박해!”

감독이 뒤늦게 발견하고 외치는 순간.

이미 공격은 시작되고 있었다.

“으랏차!”

서로 볼을 돌리며 강하게 압박하던 록하크의 공격진들 사이로 로드릭이 순간적으로 튀어나왔다.

그의 발에 공이 걸리며 패스가 끊겼다.

공을 단숨에 차단한 로드릭은 곧장 전방을 바라봤다.

양쪽 윙과 수비를 위해 하프라인 밑으로 내려온 2선은 패스를 줄수가 없다.

하면 선택지는 하나다.

“리! 죽여버려!”

로드릭의 패스는 깔끔하지 못했다.

공을 띄운 것이다. 그것도 적당한 높이가 아닌 길게 뻗어 나가는 높은 볼.

그 모습을 보고 록하크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하긴. 타겟터가 공을 떨궈줘도 받을 사람이 없는데.’

세컨볼은 아마 록하크가 따내고, 결국 다시 파상공세를 이어가리라.

잠시 흥분됐던 심정을 가라앉히려던 감독은 순간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훙!

날았다.

록하크 감독은 그걸 날았다고 생각했다.

분명 수비수와 동시에 떠올랐지만, 둘의 타점은 천지 차이였다. 제퍼슨 리의 가슴쯤에 수비수의 머리가 위치했다.

성인과 중학생 같은 타점의 차이.

더구나 같이 뛰어든 수비수는 마치 트럭에 부딪혀 날아가는 사슴처럼 나동그라졌다.

퉁!

제퍼슨은 가슴으로 공을 트래핑하며 바닥에 가뿐히 착지시켰다. 감독은 어이가 없었다.

록하크의 수비수는 겨우 간신히 머리를 댈만한 높이였다. 근데 저 스트라이커는 가슴으로 트래핑한다고?

무슨 점프력이 저럴 수 있단 말인가!

머리로 공을 떨궈줄 조력자가 없으니까 스스로 해결할 속셈이었다. 공을 가슴으로 트래핑하며 착지한 제퍼슨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착지하며 중심이 흐트려진 수비수는 제퍼슨의 강력한 어깨싸움에 상대조차 되지 못하고 나동그라졌다.

순식간에 수비 하나를 무너뜨린 제퍼슨은 공을 툭 차며 빠르게 전진했다.

“우와아아아!”

“와아아아!”

“빠, 빠르다!”

두꺼운 허벅지 근육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스피드에 관중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금까지 웅크렸던 홈팀이 순식간에 상황을 역전시키는 모양새였다.

“막아! 상대는 한명이다! 라인 복귀하고 달라붙어서 밖으로 공을 내보내!”

수비수는 한 명이 좌측으로 제퍼슨을 몰아가며 달라붙었고, 나머지 두명이 빠르게 박스안쪽으로 복귀하면서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늘 생각처럼 되지 않는게 스포츠인 법이다.

제퍼슨은 공을 길게 찼다.

“뭐야? 슈팅이야?”

“아니···그냥 치고 달리는데?”

접근해오는 수비를 밀어내며 공을 길게 찼다. 급히 자리를 잡은 수비가 공을 차단하려 했지만, 치고 달리는 제퍼슨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우와아!”

“리! 리! 리!”

단숨에 수비 두명을 스피드로 벗겨내 버린 제퍼슨의 앞에는 단 한 명의 수비만 남았다.

하지만 공간이 벌어졌다. 제퍼슨의 속도에 수비수는 간격을 좁히지도, 그렇다고 태클을 할 거리를 확보하지도 못했다.

제퍼슨의 눈이 번뜩였다.

스피드를 한껏 올린 제퍼슨은 조그만한 공간에서도 위력적인 슈팅을 때릴 수 있었다.

수비가 급하게 따라붙으며 슬라이딩 태클을 했지만, 이미 공은 발끝을 떠났다.

빠앙!

발등에 정확히 맞은 강력한 슈팅.

마치 중거리를 때리듯, 맞고 뒤져라 같은 슈팅이었다.

골키퍼가 황급히 몸을 날렸지만 발목힘이 제대로 들어간 슈팅은 골네트를 찢어버릴 듯 꽂혔다.

“Gooooooal!”

“우와아아아아!”

“리이이이이! 리! 리! 우리의 러닝백! 리!”

“리! 리! 리! 리! 제퍼슨 리!”

박스 안에서 중거리를 날리듯 강력한 슈팅을 넣어버린 리가 양팔을 펼치며 가볍게 세레모니 했다.

“우와아! 리, 기가 막혔어!”

제퍼슨의 벼락같은 선제골로 1:0 앞서갔다.

그런 리의 모습을 보면서 록하크의 감독은 들고 있던 수첩을 떨어뜨렸다.

“···타겟터 아니었어?”

**

10대들은 당연히 스마트폰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SNS를 한다. 지금도 그랬다.

경기장에 있는 학생들은 모두 경쟁적으로 SNS를 업로드하기 바빴다.

[우리 러닝백이 멋진 골을 넣었어! #러닝백 #제퍼슨 리 #데뷔골 #록하크]

[록하크 애들 털리는 것 보라고! #록하크 멸망 #드리블 #러닝백]

[수비수들 넋 놓는 것 좀 봐! #제퍼슨 리 #축구]

[이제 축구도 우리한테 안되는 듯 #축구 #제퍼슨 리]

[쟤가 누군데?]

[풋볼팀 MVP 러닝백! 리가 이제 축구로 전향하자마자 록하크를 침몰시키고 있어!]

[축구마저 우리가 록하크를 이기면 걔들은 너무 불쌍한데.]

[불쌍하라지! 리! 아주 죽여버리라고!]

[뭐야? 지금 경기중이야?]

[이제 전반전이야. 빨리 와! 리가 한 골 더 넣을 것 같···우와! 리가 또 한건 했어! 지금!]

[미쳤다! 리의 플레이!]

[뭐? 지금 간다. 심판보고 경기 잠깐 중단 좀 시키라고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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