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반칙 아닙니까? (2)
“여보, 또 전화 왔어?”
“응. 이번에는 교장 선생님이시네.”
“아이고야, 우리 아들 인기 많네. 이번이 몇 번째지?”
앨런 여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첫날 풋볼팀 코치님. 다음에 농구팀, 그리고 야구팀.”
“이번에는 교장선생님?”
“다음에는 대학팀에서 전화 오는 거 아닐까 몰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들이 얼마나 운동을 잘하길래 이리 모셔가려고 할까?”
“그게 누구 닮아서겠어?”
식사하던 제퍼슨은 말꼬리가 묘하게 바뀌는 앨런 여사의 말에 멋쩍게 웃었다.
부부의 얼굴엔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내 아들이 이 정도야!’라고 얼굴에 쓰여 있었다.
이성학도 흘깃 쳐다보는 걸 보니 대답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여기서 어머니 운동신경을 물려받았다고 하면 삐질 게 분명했다.
제퍼슨은 어깨를 으쓱였다.
“스피드는 엄마 닮았고, 힘은 아버지 닮았죠. 뭐.”
“저이가 힘은 무슨, 그거 다 헛심이야 헛심.”
“아니 헛심이라니. 한창때 내 돌려차기에 헤드기어 쓰고도 정신 잃은 놈이 어디 한둘이었어?”
“아이고. 그러세요? 힘이 그렇게 좋으면 오늘 우리 아들 동생 좀 만들어볼까?”
“···크흠.”
어머니의 일격에 아버지는 무안한 표정으로 침음을 삼켰다.
그 모습에 제퍼슨은 피식 웃었다.
처음 회귀했을 때만 해도 어색했지만 본래 제퍼슨이 지내온 모든 기억과 경험은 그대로 남아있었고, 감정마저 그대로였다.
어색함은 잠시였다. 이학현은, 제퍼슨의 몸과 감정에 거의 완벽하게 동화했다.
“아, 맞다, 아들. 아빠가 생각을 좀 했는데 말이야.”
“네.”
“계속 고등학교 축구팀에 있을 거니?”
“네?”
“네 훈련 영상 봤다. 거기 코치님도 훌륭해 보이고, 동료들도 좋아 보이긴 하는데···”
“제 수준에 안 맞는다고요?”
“응? 음, 그렇지.”
“저도 알아요.”
이성학의 의견은 제퍼슨도 진작 체감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세계에서 성공하진 못했지만, 그의 축구 지능은 ‘천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만일 피지컬만 기본만 됐어도 세계 정상급이 되었을 거라고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했었다.
그런 이학현의 축구 지능과 기술에 훗날 NFL 최고의 러닝백 중 한 명인 제퍼슨 리의 피지컬이 합쳐졌다.
고등학교 축구팀.
명문도 아닌 평범한 축구팀과 수준이 맞을 리가 없다.
“그래서 말인데, 아빠가 너 훈련 영상하고 간단한 이력서들을 프로팀에 보내려고 하는데, 괜찮겠니?”
“프로팀이요?”
“그래. 일단 여기 미네소타 유나이티드 유스팀하고 위스콘신, 미시간에 있는 축구팀에 보내 볼 생각이야.”
“음,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요즘도 비디오테이프만 보고 뽑을까요?”
“그쪽에서 관심이 생기면 한번 플레이를 보자고 하겠지.”
제퍼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팀 유스가 더 높은 수준일 것은 자명했으니까.
“아버지가 잘 알아서 해주세요.”
“그래, 아들! 아들은 이 아빠만 믿고 축구만 열심히 해라!”
“당신 일은 어떡하고요?”
“괜찮아. 요즘 한국에서 후배들이 찾아와서 사범 일은 여유가 생겼어.”
이성학은 미네소타에서 가장 큰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는 사범이었다. 선수 생활을 그만둔 후배들이 몇몇 찾아와 여유가 생겼으니, 은근슬쩍 아들의 에이전트 일을 조금씩 할 생각이다.
**
식사를 끝나고, 티타임을 가졌다.
영국계이신 어머니는 차를 즐겨 마셨고, 식사 후에는 티타임을 꼭 지켰다.
“미식축구 선수가 축구로 전향하면 성공할까요?”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잠시 서로 쳐다봤다.
“글쎄. 축구 선수로 전향한 예가 있나 모르겠네.”
“NBA하고 MLB에는 꽤 많아. 엄마가 응원하는 미네소타 팀에도 빅맨이 NFL 출신이야.”
“축구선수 중에도 있나······.”
“축구가 인기가 별로 없잖아. 미국에서는.”
“NFL 선수만 되어도 명예와 돈을 얻고, NBA, MLB, 아이스하키 같은 다른 선택지도 명예와 돈을 얻는 건 같으니까.”
아버지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나도 당장 떠오르는 선수가 없긴 하다.
축구는 발끝의 섬세한 기술이 엄청나게 중요하니까.
흔히 고정관념처럼 생각하는 게 있다.
몸이 크고 근육이 두꺼우면 순발력이나 기술이 부족할 거라고.
하지만 나는 아니다.
피지컬만 좋아서는 성공할 수가 없는 게 당연하지만, 이미 회귀 전 기술과 지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엄청난 피지컬을 얻게 됐다.
어머니가 홍차를 한번 홀짝였다.
“보통 근섬유가 좀 달라서 축구선수가 되는 케이스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근섬유요?”
“아무래도 폭발적인 힘을 내는 스포츠 선수들은 속근이 발달했으니까.”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반해 축구는 좀 다르지. 90분 동안 뛰어다니면 10km 넘는 건 예삿일도 아니니까. 이론적으로 축구는 지근이 중요해.”
“이론과 달리 실재는 안 그런 경우가 있어. 여보, 누구지? 한국 선수 있잖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아, 쇼트트랙 선수였다가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선수?”
“응.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도 메달 따지 않았어?”
“우리 와이프, 그걸 다 알고 있네. 한국인도 아니면서.”
“당신이랑 결혼하고 반 한국인 됐거든. 봐봐. 김치찌개 할 줄 아는 백인 여자가 어딨겠어?”
“내가 그래서 우리 와이프를 사랑하지.”
“얼씨구.”
아버지가 은근슬쩍 어머니의 어깨에 팔을 올리자, 어머니가 야릇하면서도 묘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갑자기 이상한 포인트에서 잉꼬부부네.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자 아버지는 부끄러워지셨는지 헛기침을 하셨다.
“흠흠, 하여튼 이론과 실제는 좀 다르단다. 이론만으로 스포츠를 정의할 수는 없어. 멘탈리티도 아주 중요하거든. 너라면 축구로도 성공할 거다. 아빠는 아들 믿어.”
“엄마두!”
부모님 두 분 다 운동에서는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었다.
내가 가진 고민을 털어놓고 같이 의논하기에 아주 좋았다.
“근데 우리 아들은 속근 위주로 발달했긴 했지만, 지근도 상당해 보이던데. 저 근육 봐봐. 당신보다 훨씬 단단해!”
“현역에서 물러난 지가 언젠데······.”
“응. 뱃살 삼겹살.”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랑말랑한 뱃살을 꼬집었다.
“이 나이대에 이 정도면 단단한 거지.”
“근육 다 빠진 것 봐. 아이고. 이젠 아저씨야 아저씨.”
어머니가 한국말로 ‘아저씨’라고 중얼거리자 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말은 또 어디서 배웠대?”
“드라마에서요. 좀만 더 찌면 아주 단추 터지겠어.”
“크흠······. 그래도 하체 근육은 짱짱하지. 넓적다리 근육 보라고. 이것도 속근이야. 단번에 쾅! 상대 선수 머리를 쾅!”
“그래서 참 짧지. 오래 못 가잖아.”
“응?”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말에 난 순간 이해를 못 했다. 근데 아버지는 무언가 깨달았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어···설마 그런 얘긴가?
“한꺼번에 힘을 쏟아붓고 지 혼자 만족해서는 쓰러져버리는데······어휴. 재미가 없어. 재미가.”
“크흠, 당신, 지금 애 앞에서 무슨···”
“힘이 세면 뭐해? 밤이 짧은데. 당신도 마라톤이나 뛰지 그랬어? 지근이 발달했으면 좀 오래갔을텐데.”
어머니의 연이은 일격에 아버지는 침몰했다.
“······.”
어···음.
이게 아메리칸 스타일 가족인가.
혼란스럽다.
**
‘단점을 보완하기 힘들다면 장점을 살리자.’
당장 어머니 말씀처럼 속근이 중심이 된 상황에서 지근을 발달시키기 위해 운동을 하는 건 위험하다.
바디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질 수 있으니까.
내가 선택한 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율이었다.
움직임은 최소화하지만, 정확한 패스와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적재적소에서 활약을 펼치는 것.
물론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축구 선수들은 경험이 충분히 쌓인 30대가 넘어야 시야가 넓어지면서 효율적인 움직임을 더 중시하게 된다.
그제야 눈이 뜨인다고 할까?
대부분 선수는 그쯤에 시야가 트인다.
내가 회귀 전에 아쉬워했던 부분은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점이다.
아무리 킬패스를 날리고, 기가 막힌 움직임으로 압박에서 벗어나도, 화룡정점은 골이다.
결국, 골을 터뜨리기 위해선 폭발적인 스피드와 힘으로 단숨에 수비진열을 무너뜨려야 하는 법.
그런데 지금은 가능하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힘을 비축하고, 적재적소의 기회에 미식축구 특유의 파괴력과 스피드를 폭발시킨다면?
지잉지잉.
한참 머릿속으로 고민을 하면서 웨이트를 하는데 문자가 왔다.
‘로드릭?’
나한테 된통 당한 주근깨 가득한 수비수였다.
-뭐 하고 있어 리?
-쇠질 중.
-너 없는데? 나 지금 학굔데?
-집에서 하고 있어
-집에 웨이트 기구가 있어?
-응
-헐
-왜 문자함?
-어···같이 훈련···할래?
-쇠질할거임.
-나도 좀 가르쳐줘.
-웨이트?
-응 너처럼 단단해지고 싶다.
음.
아마도 나한테 몸싸움으로 된통 깨진 게 충격이었나보다.
-우리 집으로 와. 주소 여기임
-헐. 거기 살아? 거기 부자 동네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로드릭은 자전거를 몰고 나타났다.
대문을 열어주자 로드릭은 마치 서울을 방문한 촌놈처럼 목을 길게 빼고 둘러보았다.
“뭐야, 부모님 무슨 사업 하시냐?”
“아버지가 태권도 도장 운영해.”
“태권도? 혹시 그랜드 마스터 성학 리?”
“응.”
“세상에. 그랜드 마스터가 아버지였어? 나 어렸을 때 거기서 태권도 배웠는데.”
로드릭은 생각보다 말이 많은 녀석이었다.
입단 테스트 통과 후에 훈련장에서 수비와 공격으로 몇 번 부딪치다 보니 제법 친해졌다.
일단 성격이 승부욕에 불타오르지만, 또 묘하게 낯가림이 없었다.
딱 그 나이대의 어린 동생 같은 느낌이었다.
더구나 핵심 수비수인 만큼 현재 주장을 맡고 있었다.
그가 코치진한테 나를 무조건 통과시키라고 생떼를 부린 바람에, 으레 어느 스포츠팀에 있는 텃세 같은 건 없었다.
“무슨 집에 헬스장이 있어?”
“아버지가 마련해주셨어.”
“이 기구는 우리 학교에도 없는 건데!”
“있는데?”
“이게 있다고?”
“아, 풋볼팀에만 있다.”
“빌어먹을 교장 자식. 하여튼 풋볼팀만 편애한다니까.”
로드릭은 쉴 새 없이 투덜댔다. 거 참, 불만 많아.
“벤치 프레스 몇 치냐?”
“어···글쎄.”
“한번 보자고.”
난 벤치 프레스를 102kg에 고정했다.
사실 처음 할 때만 해도 긴장이 가득했다. 하지만 미식축구 선수들은 으레 하는 것들이었고, 보통은 102kg으로 기록을 쟀다.
“225파운드(102kg)를 친다고? 한두 개만 해도 힘들 텐데? 이걸로 기록을 재?”
“풋볼은 다 이렇게 해.”
“농구팀 애들은 185파운드(83kg)로 기록 재던데?
“그건 농구고.”
“오 쉣.”
회귀 전에는 꿈도 못 꾸던 벤치프레스 102kg.
내 머릿속에서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쳤다.
“흡!”
온몸의 근육이 터질 것처럼 부풀고 얼굴에 핏기가 솟구쳤지만 가뿐했다.
1회, 2회, 3회······
끊임없이 기구가 오르락내리락했다.
“13···14···15···16···17! 오 쉣! 17회야! 미쳤어 이건!”
쾅!
“훅, 훅!”
“세상에 리! 풋볼 애들은 다 이정도야? 너보다 기록 좋은 놈이 있지는 않겠지?”
“내 체격에서는 내가 최고지. 220파운드 넘는 애들은 더 많이 하는 애들도 있긴해.”
웨이트가 이렇게 즐거운 거였다니.
회귀전에는 그저 고통스러웠던 웨이트가 지금은 엄청난 성취감을 느끼게 해줬다.
“후우, 자 한번 해봐.”
“뭐? 이걸?”
“응.”
“···했다간 죽을 거 같아.”
“아냐, 딱 하나만 해봐.”
“···흐아압!”
“오케이, 좋다, 하나만 더!”
“······.”
음.
피지컬 코치가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더 하자!’ 할 때 내가 저런 표정을 지었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