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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4화 (4/258)

4. 반칙 아닙니까? (1)

“제퍼슨 리? 풋볼팀의 러닝백?”

“그 러닝백이 축구팀에 들어오겠대요?”

“세상에. 저 친구가 미친 건가.”

“왜 전액 장학금을 다 포기하고?”

축구팀의 코치들은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소식을 접하고 다 놀랐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에 닿았다.

체력 측정을 하는 제퍼슨.

“피지컬은 테스트할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맙소사. 서전트 점프가 96cm라고? 얘 NBA 선수야?”

“혼자 헤딩은 다 따겠군.”

“체지방률은 11%야. 저게 다 근육이라는 거지.”

“저렇게 근육이 많으면 느리지 않을까?”

“무슨 소리야. 쟤 러닝백 MVP야. 40야드(36m)를 4.58로 끊었어.”

“미친!”

“110야드(100m)는 10.83으로 끊었는데? 지금 우리 육상 선수 테스트 중인 거야?”

“저 몸으로 저 속도가 나온다고?”

“어머님이 앨런 여사래.”

“뭐? 그 올림픽의 육상영웅?”

“역시. 저 피지컬이 괜히 나온 게 아니네. 유전이야, 유전.”

축구팀의 코치들은 경악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맹세코 자신들이 지도하는 축구팀에 저런 피지컬은 처음 봤다.

“뭘 그렇게 놀래? 축구가 빨리 달리면 그만인 줄 알아?”

질리먼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발에 공을 안 달고 달리는 거면 무슨 소용이야? 품에 공안고 뛰는 풋볼하고는 엄연히 달라.”

“그건···그렇죠.”

“수년은 발로 리프팅만 연습해야 사람 취급받는게 이 바닥이야.”

질리먼의 노성에 코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을 차고 드리블하는 것과 그냥 달리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발로 공을 다루는 건 기본기가 필요했다.

트래핑, 패스, 슛.

이 세 가지만 수년 동안 죽어라 갈고닦아야 그나마 선수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이 바닥이었다.

피지컬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질리먼도 저토록 완벽한 피지컬은 처음 봤으니까.

질리먼은 제퍼슨의 기본기를 확인하고자 했다.

질리먼은 팀의 수비수를 불렀다.

“로드릭. 저 러닝백을 막아봐!”

로드릭은 팀의 핵심 센터백이다.

빠른 발과 건장한 체격은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 기대주였다. 기술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지만, 승부욕이 원체 좋아 뭐든 금방 습득하는 친구였다.

이대로 쭉 성장한다면 프로 무대에 입성할 기대를 받는 유망주였다.

“알겠어요, 감독님.”

괴물 같은 제퍼슨의 피지컬을 흘깃 본 로드릭은 다소 긴장된 얼굴로 섰다.

그 긴장된 얼굴을 보고 제퍼슨은 씩 웃었다.

‘고작 한 명?’

**

회귀 전,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상급의 축구지능뿐만 아니라 부단히 연습에 임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개인기였다.

부족한 피지컬은 상대 수비들의 거친 몸싸움에 나가떨어졌다.

그래서 몸싸움을 걸어오기 전에 화려한 개인기로 벗겨내는 걸 목표로 했다.

“축구가 풋볼보다 더 어려운 스포츠라는 걸 보여줄게.”

“스포츠 사이에서 더 쉽고 어렵고가 어딨겠냐.”

뭐 잔뜩 긴장한 얼굴로 저리 말하는 걸 보니, 신경에 거슬리기보단 그냥 귀여워 보였다.

제법 건장한 덩치였지만 얼굴에 주근깨가 있는 걸 보니 아직 어린 게 확실히 느껴졌다.

자, 한번 해보자.

여기 오기 전 집 정원에서 볼을 온종일 다뤄봤다.

최고였다. 처음엔 트래핑도 잘 안되긴 했지만, 이내 익숙해지자 마치 내 몸처럼 다룰 수 있게 됐다. 믿기 힘든 운동신경을 지닌 이 신체는 발로도 공을 아주 쉽게 다뤘다.

나는 천천히 볼을 발바닥으로 툭툭 차며 전진했다.

로드릭이 몸의 무게중심을 낮추고 서서히 접근해왔다.

집중한 듯한 시선이 내 다리에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발만 보네?’

그러면, 한번 낚아볼까. 좌측 무릎을 살짝 굽힌다.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기울여진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다.

마치 그쪽으로 빠지려는 듯이.

로드릭은 내 발만 쳐다봤던 터라 곧바로 반응했다. 왼쪽으로 균형이 기울어진 것이다. 좁혀오던 각도는 일순간 넓어졌고, 그 사이로 틈을 보였다.

툭.

공을 툭 차서 로드릭의 다리 가운데로 집어넣고 어깨를 지나쳐 가볍게 달렸다.

“어어?”

로드릭이 급하게 따라붙으려 했지만 내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지자 코치가 휘슬을 불었다.

삑!

로드릭이 성난 얼굴로 공을 들고 왔다.

“빌어먹을! 이번엔 안 속아.”

“그러시든지.”

다시 일대일 구도다.

다시 발바닥으로 볼을 살살 치며 움직였다. 로드릭은 한층 더 신중한 얼굴로 내 움직임을 주시했다.

아까처럼 해볼까.

슬쩍 왼쪽으로 긁는 듯한 모션을 취했다. 하지만 이번에 쉽게 속지 않았다. 오히려 중심을 잘 잡고 다리를 벌리며 각도를 한번에 좁혀왔다.

제법인데.

아까처럼 가랑이 사이로 공을 빠지게 유도한다. 아마 공이 빠지면 지나치는 나를 향해 어깨싸움을 걸면서 공을 지킬 속셈이겠지.

한번 속아줄까.

그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볼을 툭 차서 가랑이로 집어넣었다. 동시에 로드릭이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빙글 돌며 어깨를 밀쳐왔다. 피할 수 있다. 유연하게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면 된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순간 두 다리와 어깨에 힘을 빡 줬다.

“컥!”

단말마의 신음과 함께 로드릭은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일순 내가 단단히 힘을 주자 그대로 나가떨어진 것이다.

“허. 로드릭이 나가떨어져?”

“로드릭이 몸싸움에서 밀리는 건 쉽게 볼 장면이 아닌데.”

“저건 밀리는 수준이 아닌데? 무슨 성인하고 중학생인 줄 알았어.”

코치들의 감탄 어린 수군거림이 들렸다.

로드릭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붉어진 얼굴로 일어났다.

“아우! 왜 이렇게 단단해! 다시 해!”

사실 나도 놀랐다.

이전의 나였다면 몸싸움을 걸어오면 어떻게든 피해 빠져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내 신체를 믿고 맞불을 놨다.

단 한 번도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적이 없었다. 내가 몸싸움으로 그냥 이겨내다니.

“잠깐! 제임스, 찰리, 너희도 붙어.”

“······.”

단숨에 세 명이 날 포위했다.

흘깃 질리먼 감독을 바라봤다.

진지한 얼굴이었다. 이제야 제대로 나를 평가하려는 듯한 시선이었다. 코치들도 기대감 어린 얼굴로 날 쳐다봤다.

“그래도 세 명은 무리지.”

“공 좀 차는 애들도 세 명이 함께 협력 수비하면 당황하는데.”

“더구나 지금은 패스 줄 사람도 없잖아. 오로지 혼자서 압박을 벗어나야 해.”

“감독님이 조금 짓궂으시군.”

코치들 대부분은 비관적이었다.

하긴 확실히 셋은 부담스럽다.

그러나 포기하기엔 이르다.

내 별명이 ‘탈압박 귀신’이었다.

물론 상대 선수들의 기량에 달렸지만, 적어도 나랑 비슷한 기량의 선수들 사이에서 압박에서 벗어나는 건 자신이 있었다.

더구나 고등학교 아마추어가 상대다?

미안하지만 회귀 전의 기술은 이미 괴물 같은 운동신경으로 거의 다 이식되고 있었다.

공을 발바닥으로 잡고 전방을 주시했다.

한 명은 멀찍이 떨어져 있고, 두 명이 정면, 우측에서 좁혀왔다.

왼쪽은 빠지면 바로 터치라인이다.

그러면 저 사이를 돌파해야 하는데, 돌파한다고 한들 바로 마지막 한 명이 좁혀와서 막아낼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 좁혀오던 수비 두 명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공을 뺏는 움직임보단 밖으로 내보내기 위한 움직임. 정확한 판단과 좋은 수비였다.

바로 몸을 돌려 공을 지켰다.

조금만 밸런스가 무너지면 공은 그대로 라인을 나갈 것이다.

양옆에서 내 몸을 밀쳤다. 강한 압박이었다.

한데······.

‘왜 이리 약해?’

양팔을 벌리고 굳건히 버텼다.

그러자 수비 두명은 볼에 발도 대지 못했다. 있는 힘껏 나를 밀치는데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필드에 닿은 내 두 다리는 나무처럼 움직일 줄을 몰랐다.

“허?”

“미친!”

“무슨 바위도 아니고, 꿈쩍도 안 해?”

“저거 그냥 갖고 노는 거 아닙니까?”

코치들의 장탄식이 귓가에 들렸다.

수비수들은 내가 버티자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무리 밀쳐도 흔들림이 없으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나는 왼쪽에서 압박해오는 수비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빙글 돌았다.

“엇!”

발바닥으로 단번에 공을 툭 차며 빠져나가는 움직임.

당황한 음성이 터졌다. 난 빠르게 공을 툭 차고 달렸다.

빈틈 사이를 메꾸던 마지막 최종수비가 급히 달려왔다.

탓!

난 당황하지 않고 공을 툭 차올렸다.

상대의 머리 위를 넘겼다.

“젠장!”

머리 위를 넘기는 공은 생각도 못 했는지 비명을 내질렀다. 그 비명을 뒤로 한 채 공을 툭툭 차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로드릭은 건장한 체격에 발까지 빨랐다.

하지만 그건 또래에서나 그렇다는 것이겠지.

내 속도는 따라잡지 못했다.

난 볼을 발끝에 달고 달리는 것처럼 달렸다.

곧 뒤에서 따라붙는 뜀박질과 거친 호흡이 들려왔다. 거의 몸을 던지다시피 거칠게 달려들었다. 파울로 끊을 속셈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 밸런스는 무너지지 않는다.

마치 굳건한 바위처럼.

단단하기 짝이 없는 내 근육에 로드릭은 욕설을 내뱉으며 나동그라졌다.

골대가 바로 앞에 있었다.

좋아, 한번 때려보자.

팡!

가죽공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물이 찢어질 듯이 펄럭였다.

발목에 힘이 제대로 들어간다.

허. 내가 이런 슈팅을 때릴 수 있다니.

발목힘이 부족해 슈팅 한번 차기 힘들었었는데.

속이 뻥 뚫린다.

“누구야?”

“풋볼팀의 괴물 러닝백 있잖아.”

“오, 이런, 로드릭이 제대로 털렸잖아?”

“제임스하고 찰리도 탈탈 털렸는걸? 쟤들 표정 봐라.”

훈련장에 막 들어오던 선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날 막아섰던 수비수들은 굴욕 어린 표정이었다. 특히나 핵심 수비였던 로드릭은 분루를 삼켜야 했다.

로드릭은 한차례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성큼성큼 코치진을 향해 다가가 소리쳤다.

“저놈, 우리 팀에 데리고 와요!”

“······?”

“반드시 입단시켜야 합니다. 제가 곁에서 분석할 겁니다. 여기 미네소타에서 쟤보다 잘 차는 놈 없어요. 저놈만 막을 줄 알면 전 다 막을 자신 있어요.”

두 눈이 열기로 활활 타오른다.

열정이 느껴졌다. 저런 승부욕은 선수를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당장 나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곁에 두고 어떻게든 이용해서 스스로 발전하려고 하지 않나.

음, 근데 저놈만 막을 줄 알면 된다고?

‘귀엽네.’

**

“피지컬이 괴물인 건 알았지만······.”

“기술도 장난 아닌데요?”

“애들 다 속아 넘어가는 거 봤어요? 상체 페인트에 우르르 넘어가는 거?”

“그것도 그렇고 아까 머리 위로 공 차올리는 건?”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기술, 어린애들 상대하는 것처럼 그냥 피지컬로 찍어버리는 힘······.”

코치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던 질리먼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괴물 같은 피지컬에 상대를 농락할 정도의 기술···감독님, 이거 반칙 아닙니까?”

“······.”

질리먼은 대답하지 못했다.

반칙이었다.

저걸 어떻게 막을 것인지, 만일 제퍼슨이 상대팀 선수라면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저건 괴물이었고, 반칙 그 자체였다.

“팀에 들입시다. 볼 것도 없어요.”

“최고의 러닝백이 아니라, 최고의 축구선수가 될 수 있어요.”

코치들이 일제히 참새처럼 쫑알댔다.

질리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니폼에 이름부터 찍어줘, LEE라는 세글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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