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화 (1/258)

1. 프롤로그

38세.

그라운드에서 더는 뛰기 힘든 나이다.

“이학현도 결국 은퇴하는구나.”

“38살이면 오래 뛰었지.”

“하기야, 피지컬 안 좋고 유리몸으로 유명한 선수였는데 38세면 폼 유지 오래한거지.”

“피지컬이 아니라 머리로 먹고사는 선수였으니까.”

“피지컬만 좋았으면 유럽 4대 리그서도 먹힐 선수였을걸?”

“패스 줄기 하나하고 공 쫓아가는 움직임 하나는 기가 막혔잖냐.”

“비운의 선수지.”

“그래도 못 잊는다. 저번 월드컵에서 프리킥 골은 진짜, 데헤아가 넋 놓는 거 봤냐고.”

“진짜 피지컬만 좋았으면.”

“피지컬만 좋았으면 진짜 다 씹어먹고 다녔을 텐데.”

비운의 선수의 은퇴식이 이뤄지고 있는 경기장.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선수를 바라보던 팬들의 심정은 다 비슷했다.

**

“헤이, 리. 뭔 생각해?”

조세프는 넋 놓고 있는 리의 어깨를 툭 쳤다.

리는 그제야 라커룸에 들어온 조세프를 쳐다봤다.

“아, 조세프. 왔어?”

“MVP 탔다고 너무 정신 놓는 거 아니야?”

“······.”

“하기야 하늘을 걷는 기분이겠지. 널 모셔가려고 몇 개 대학이 전액장학금을 제시했는지 원······.”

조세프는 리의 어깨를 꽉 잡아줬다.

고등학교 풋볼팀의 주전 러닝백.

고교미식축구에서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보여준 리는 이쪽에서 보기 힘든 아시아계였다.

미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그가 더 주목받는 건 온갖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고교리그에서 MVP급 활약을 펼치는 러닝백이란 점이었다.

“조세프.”

“응?”

리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조세프는 보호장비를 착용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다소 망설이는 듯한 얼굴.

늘 자신감에 차서, 흑인이든 백인이든 다 때려부수겠다던 리에게서 보기 힘든 표정이었다.

뭔가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 조세프는 장비를 차다 말고 리를 똑바로 바라봤다.

“뭔 고민 있어?”

“내가 원하던 건 이 풋볼이 아니었어.”

“응?”

“내가 신에게 빌었던 건 이 풋볼이 아니었다니까.”

“무슨 소리야?”

“젠장. 나 풋볼 그만둘 거다.”

“뭐?!”

“진짜 풋볼을 할 거야.”

“무슨 소리야. 이게 풋볼이지.”

“아니, 그래. 풋볼이 아니라 사커. 사커를 할 거라고.”

**

“다시 한번 선수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진짜 상처 하나 입지 않는, 피지컬로 쳐부술 수 있는 그런 몸으로 좀 달란 말입니다.”

억울했다.

희대의 축구 센스를 타고난 천재라는 칭호 아래, 유리몸이란 단어가 항상 꼬리말처럼 붙어 다녔다.

툭하면 부상이었다. 늘 잔부상을 안고 뛰었다.

그런 그를 종이 인형이라고 조롱하던 상대 팀 서포터즈.

더 기분 나쁜 건 그게 변명할 여지 없는 사실이란 점이다.

학현은 최악의 피지컬로 유명했다.

아무리 운동해도 근육은 붙지 않았다. 프로선수들과 몸싸움을 하면 나가떨어지는 건 늘 자신이었다.

그래도 이 축구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몸싸움을 걸어오면 탈압박하기 위해 발재간을 늘렸고 패스 속도를 한박자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연습했다.

그렇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최고는 되지 못한 채 은퇴했다.

“빌어먹을. 유리몸이다 못해 이제 심장병입니까?”

뛰어난 축구 센스.

경기장 전체를 보는 넓은 시야.

선수들 사이에서 심리전의 달인.

그 재능이 아까워 코치 연수를 받던 도중 쓰러졌다.

심장병이란다.

유리몸이다, 최악의 피지컬이다, 종이 인형이라고 수많은 조롱을 받았건만,

이젠 죽을병에 걸려 더는 축구를 할 수 없다.

억울했다.

그래서 빌었다.

이 억울함을 제발 풀어달라고.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피지컬 하나만으로 다 때려 부수는 그런 신체를 지닌 선수가 되게 해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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