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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Happy Halloween (12/16)

(3) Happy Halloween

나디아는 어딘가 멍해 보이는 진을 바라봤다. 저거 또 상태가 왜 저래? 인상을 작게 찌푸리던 그녀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탕탕 내려쳤다. 진 헤니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는 맹하게 웃으며 다시 대화 주제를 상기했다.

“아, 그러니까… 나디아 너는 뭐 하고 싶다고? 트럼프…?”

“집중해, 진 헤니. 어?!”

“미안…….”

어색하게 웃는 진 헤니를 보다 나디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거… 뭔가 또 이상했다. 그 이름이 이 자리에 크게 유쾌하지는 않아서 웬만하면 말을 안 하려고 하는데, 짚고 넘어가긴 해야 했다.

“내가… 웬만하면 어? 말을 아예 안 꺼내는 게 좋아서 말을 안 하는데! 그 씹… 하, 그래… 그 새끼가 아주 조금이라도 또 지랄 떨면, 난 그땐 정말 총으로 쏠 각오가 돼 있어, 진.”

“응……?”

“어차피 그 새끼 지금 뉴욕에 있지? 여긴 내 구역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해.”

“왜 꼭 뉴욕에서만 총을 쏴야 되는지 모르겠네. 총이 있었으면 진작 좀 쓰지…….”

마지막 말은 알렉스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너무 온화하게 웃는 표정이라 말한 것과 매치가 잘 안 됐다. 진 헤니는 두 사람 중간에 앉아서 눈을 깜빡이다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너 지금 내 앞에서 그 새끼 감싸는 거야, 진…? 애인 때문에 날 버려?!”

“아니야…! 애, 애인 그런 것도 아니야…….”

나디아 놀즈는 버벅거리는 진 헤니를 노려봤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닌 게 더 이상했다. 울고 짜고 난리를 피우다 다시 만나 놓고, 이제 와서 뭘 애인이 아니래? 진이 행복해지려면 그 새끼가 필요하다는 ‘상황’을 인정한 거지, 그 새끼 자체는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눈에, 아니… 눈, 코, 입 전부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 안 됐다.

“됐고, 빨리 다시 집중해. 당장 내일이니까.”

그녀의 갈색 눈이 진 헤니를 흘겨봤다. 진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나디아는 짧게 혀를 차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곤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진의 얼굴을 살폈다. 나디아는 언젠가부터 진이 안경을 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제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필사적으로 가리고 있던 앞머리도 깔끔히 잘린 채였다. 이제는 저를 가려 줄 두꺼운 안경도, 긴 앞머리도 필요 없다는 듯이.

“진, 너 이제 안경 안 써도 돼? 안경 쓰는 게 더 편하다며.”

“응? 아… 그랬었는데, 지금은 괜찮아.”

진은 홀가분한 얼굴로 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알렉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진이 자신을 필사적으로 가리지도, 감추지도 않아도 마음이 편하단 소리였다. 그건 다행이었다. 2년을 꼬박 쓰던 안경을 벗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인 모양이었다. 한 사람만 있으면. 그렇게 생각하는 알렉스의 입이 썼다.

“요즘 잠은 잘 자고?”

알렉스의 입에서 나온 물음이었다. 진은 뜬금없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을 잘 자냐고…? 진이 뭔가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알렉스가 집에 왔을 때, 뭔가 실수한 게 있는지까지 생각해 보는 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아서, 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잠…? 응, 잠 엄청 잘 자는데, 왜? 알렉스 너 자고 갔을 때 내가 막 잠꼬대 했어…? 나 코 골아…?”

진의 표정이 심각했다. 알렉스는 진의 말을 듣고도 가만 앉아 있었다. 그러다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응, 진 너 잠꼬대도 엄청 심하고, 코도 엄청 골더라. 제대로 자지를 못했네, 내가.”

“진짜…?! 나 원래 잠버릇 없는데…! 미안해, 알렉스. 나는 몰랐,”

“하… 농담이야, 진. 농담…….”

“아, 그래? 그럼 다행이다….”

짓궂게 놀려도 진은 다행이라며 헤실헤실 웃기만 했다. 알렉스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진의 손과 발을 한 번씩 번갈아 바라봤다. 잠든 채 헤맸을 때 생기는 상처들은 이제 없는 것 같았다. 진의 말대로 그는 이제 잠을 푹 자는 모양이었다. 생기가 도는 눈빛과 건강해진 안색이 증거였다. 진의 곁에서, 그의 상태를 살피며 살았던 알렉스 그레이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진이 많이 건강해졌고, 편안해졌다는 걸.

그렇게 생각하던 알렉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 기색을 느낀 나디아가 할로윈 코스프레 목록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괜히 혀를 한 번 차고는, 앞에 앉아 있는 알렉스의 눈치를 봤다. 그냥 말하지 말 걸 그랬네. 우직한 등신의 표정이 좋지 않아서, 저도 마음이 안 좋았다.

알렉스 그레이는 그녀가 제 눈치를 보는 걸 느꼈다. 진이 행복해졌다면 좋은 일이었다. 표정이 굳어서, 옆에서 다른 사람이 눈치나 보게 만들 일이 아니었다. 알렉스는 등신처럼 구는 스스로를 속으로 비난했다. 그리곤 다시 원래 대화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나디아에게서 코스튬 목록을 빼앗아 들며 입을 뗐다.

“이거 적어 봤자 뭐 해. 어차피 우린 네가 입히고 싶은 대로 입힐 거잖아.”

“맞아…….”

진 헤니가 작게 거들었다. 나디아 놀즈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눈썹을 비틀어 올렸다. 뭐라 말을 하려던 그녀는 그냥 싱긋 웃었다. 사실 맞는 말이라서 부정을 할 수 없었다. 나디아는 알렉스의 손에 들려 있던 종이를 낚아채며 말했다.

“잘 아네. 그럼 누나 말을 잘 듣도록 하자.”

“나디아, 너는 대체 왜 트럼프가 하고 싶어…? 너 트럼프 싫어하잖아…….”

“아, ‘나는 머저리입니다’라고 목에 걸고 다니게.”

나디아가 만족스러운 낯으로 대답했다. 진은 그 모습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나디아와 잘 어울린다고 해야 할지……. 그의 표정이 애매했다. 나디아 놀즈는 코스튬 목록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알렉스 너는 뭐, 스스로도 알고 있지 않냐? 네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누가 봐도 캡틴 아메리카를 해야 하잖아. 알면서 뭘 모른 척이야. 좀 꽉 막히긴 했는데 어쨌든 우직한 면이 아주 잘 어울려. 그리고 너는 미국 국가대표니까, 이래저래 딱이야.”

알렉스 그레이는 그냥 체념한 낯을 했다. 어차피 본격적으로 쫄쫄이를 입는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고… 그냥 어디서 캐릭터 가면이나 사다 쓸 거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나디아가 아주 신나 보이니까 하고픈 대로 하도록 둬야 했다. 하기 싫다고 안 할 방법도 없었다.

“그럼 우리 진은 귀여운 멍멍이.”

“대체 왜 나만 사람이 아닌 건데…?”

“내 맘이야. 이거 까만색 강아지 마스크 예쁘다, 진. 난 리트리버가 좋더라. 꼬리까진… 봐줄게.”

“그래, 고마워…….”

진 헤니 역시 포기한 상태였다. 꼬리는 봐준다니 그건 다행이었다. 나디아가 진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움직이면 커다란 귀가 달랑달랑거리는 플라스틱 강아지 가면이었다. 나디아는 아주 환히 웃고 있어서, 진은 그저 흐린 표정으로 마주 웃었다. 알렉스가 그 모습을 보며 최대한 웃음을 참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잘 어울릴 것 같긴 했으니까. 피식 웃던 알렉스 그레이는 마지막으로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리했다.

“그럼 내일 7시부터 퍼레이드니까, 6시까지 퍼레이드 시작 지점에서 봐.”

“거기 근처 소품샵에서 다 한꺼번에 사 가자!”

진은 신나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맑게 웃었다. 마음 한구석에 누군가가 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어쨌든 즐거운 할로윈이 될 것 같았다.

***

나디아 놀즈는 배를 잡고 웃었다. 그녀는 지금 핸드폰을 들고 미친 듯이 사진을 찍어대는 중이었다. 진은 그냥 가만 서 있었다. 그가 한숨을 쉬느라 몸이 조금 흔들리자, 귀가 팔락거렸다. 그 모습을 본 나디아가 결국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훔치며 깔깔 웃던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와, 이거 씌우길 너무 잘했다. 역시 나의 안목은 대단해.”

“더워… 벗을래.”

“뭐가 더워, 지금 겨울이 다 돼 가는구만! 씨알도 안 먹힐 소리 마.”

안 통하네……. 진 헤니가 속으로만 고개를 저었다. 진짜 저었다간 또 귀가 팔락일 거고, 그럼 카메라를 들이댈 테니 오늘은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했다. 진은 흐린 눈으로 목을 빳빳이 세웠다. 그렇게 가만 서 있던 그는 저를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눈을 발견했다.

“…….”

“…….”

알렉스 그레이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그는 절대 웃지 않기 위해 이를 악 물고 있었다. 소리만 안 냈지 초록색 눈에는 웃음기가 가득해서 진이 한숨을 쉬었다. 아, 한숨 쉬면 안 되는데…….

“하하, 미치겠네…….”

“하… 그래, 두 사람이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해…….”

“아씨, 지금이라도 꼬리 사 올까?!”

“꼬리는 안 해도 된다며!”

결국 알렉스의 입에서도 크게 웃음이 터졌다. 진은 나디아를 노려봤다. 그녀는 허리를 젖혀가며 깔깔 웃었다. 진 헤니는 아주 억울했다. 두 사람은 그냥 간단한 플라스틱 마스크로 샀으면서, 제 것만 본격적이었다.

“조금 있으면 퍼레이드 시작할 테니까, 시작 지점에 가 있자. 퍼레이드 뒤를 따라다니는 게 제 맛이지.”

나디아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진은 모든 걸 포기하고 귀를 팔락거리며 걸었다. 나디아가 자꾸 꼬리를 사러 가야겠다고 해서 그는 필사적으로 나디아의 팔뚝을 잡고 있었다. 꼬리는 절대 안 될 말이었다. 심각한 멍멍이로 걷던 진 헤니는 울리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진, 오늘 할로윈 퍼레이드 보러 간다고 했었지? 지금 거기 있어? - 에이든 테일러」

「응, 퍼레이드 보러 가는 중이야」

진 헤니는 나디아와 알렉스를 뒤따라 걸으며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전송하고 나서는 주변을 둘러봤다. 짧아진 해 때문에 빠르게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해가 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마스크를 쓴 저희와는 다르게 본격적인 할로윈 분장들이 많았다.

들뜨는 기분에 옅게 웃던 진은 옆을 지나가는 좀비 떼들에 어깨를 흠칫 굳혔다. 진 헤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중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갇혀서 이도저도 못하던 그는 제 팔을 가만 끌어당기는 누군가를 바라봤다.

“잘 따라와야지.”

“아, 어… 갑자기 놀라서. 고마워.”

알렉스 그레이가 그를 사람들 가운데에서 빼왔다. 진은 다행이라는 얼굴로 다시 두 사람을 따라 걸었다. 퍼레이드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세 사람은 가장 잘 보일 만 한 자리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진은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다가, 핸드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에이든의 메시지였다.

「진, 너는 어떤 분장했어? 네 친구들은? - 에이든 테일러」

이걸 말을 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진은 잠시 흐린 낯으로 고민을 했다. 어차피 분장한 걸 보여 줄 것도 아니고, 말해 주는 것 정도는, 뭐…….

「나는 검정색 개 마스크고, 친구들은 트럼프랑 캡틴 아메리카 가면 쓰고 있어」

「검정색 개…? - 에이든 테일러」

메시지를 확인하던 진 헤니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나디아와 알렉스가 보이질 않았다. 진이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나디아를 발견했다. 진이 사람들 사이를 헤쳐 지나갔다. 나름 끙끙거리면서 걷고는 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따라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나디아와 알렉스는 건너편 인도에서 진을 찾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진의 마음이 급해졌다. 퍼레이드가 곧 시작될 텐데……. 빨리 반대편으로 건너가지 않으면 퍼레이드 내내 못 만날 수도 있었다.

진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나디아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핸드폰을 보며, 그가 건너편 인도로 건너가려는 순간이었다.

“……?”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진 헤니가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퍼레이드가 시작했다. 크게 노래가 울리기 시작했고, 이미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일은 불가능해진 지 오래였다.

많은 인파, 사람들이 크게 웃고 떠드는 소리들. 그 복잡한 소음에도 귀 바로 옆에서 뱉어진 목소리는 분명히 들렸다.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진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의 옆에 선 사람은 쓰고 있던 플라스틱 가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Trick or Treat."

가면에 숨겨져 있던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 푸른 눈이 예쁘게 휘어지고, 한쪽 뺨에만 보조개가 지는 미소까지……. 진 헤니는 눈 한가득 들어오는 장면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주변에 있는 소음이 잠시 멎고, 모든 게 느리게 지나가는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해피 할로윈, 진.”

앞에 선 사람이 인사했다. 진 헤니는 그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제 앞에 있는 사람을 다시 살폈다. 바다보다 깊고 푸른 눈, 태양보다 찬란한 머리칼. 그는… 에이든 테일러였다.

“해피 할로윈, 에이든…!”

진은 잠시 멍한 눈으로 에이든을 바라봤다. 그러다 제가 쓰고 있는 가면을 떠올리곤 당황한 낯을 했다. 진이 가면을 벗으려고 허둥댔지만, 이미 팔락거리는 귀를 모두 들킨 뒤였다. 당황한 진의 움직임이 커질 때마다 에이든의 미소가 짙어졌다. 진은 마음이 급했다. 가면을 빨리 벗고 싶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벗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벗는 데 실패한 진은 작게 한숨을 쉬다 말했다.

“그, 여긴… 여긴 무슨 일로… 혼자 왔어?”

“할로윈인데… 혼자 보내기 쓸쓸하기도 하고, 나는 뉴욕에 아는 사람이 진 너밖에 없잖아……. 나도 끼워 주면 안 될까?”

에이든은 불쌍해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알렉스 그레이랑 떼놓을 수 있다면 뭐든 해야 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그 새끼는 안 될 일이었다. 에이든 테일러는 부러 흐리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건 마음이 약한 진 헤니에게 아주 잘 먹혀들었다. 진은 난처한 얼굴로 건너편과 에이든을 번갈아봤다. 그때 진 헤니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어쩌면 좋을지 몰라 인상을 쓰던 진이 전화를 받았다.

“어, 알렉스…! 나 지금 너희 반대편에 있는데… 그게, 퍼레이드 끝나고…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볼까? 지금은 펜스로 막혀서 못 건너갈 것 같은데…….”

[ ……. ]

알렉스는 전화를 해 놓곤 말이 없었다. 끊긴 건가…? 진 헤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핸드폰 화면을 확인할 동안, 알렉스 그레이는 헛웃음을 치고 있었다.

많은 인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두 남자의 사나운 눈빛이 오갔다. 진을 찾는 데 걸리적거리는 플라스틱 가면은 벗어 던진 지 오래였다. 알렉스 그레이는 진이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지 못하는 이유가, 또 다시 저 새끼 때문인 게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에이든 테일러 역시 저를 쳐다보고 있는 저 좆같은 초록색 눈을, 언젠가는 꼭 뽑아 버리리라 다짐했다. 건방지게도 자꾸 진과 제 사이에 끼어들려 하는 게, 아주 마음에 안 들었다. 뭐라도 되냐고 했던가? 알렉스의 말을 되새기던 에이든이 사납게 웃었다. 저를 보며 삐뚤게 웃는 모습에 알렉스 그레이의 낯도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저기, 알렉스? 여보세요?”

진은 대답이 없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건너편을 바라보려던 순간, 시야가 막혔다. 진은 제 앞으로 다가와 선 에이든을 올려다봤다. 진이 알렉스 그레이를 볼 수 없도록, 에이든이 건너편 길을 등지고 서서 말했다.

“친구들 때문에? 퍼레이드 다 끝나면 찾을 수 있을 거야. 지금은… 나랑 걸어 줄래?”

에이든 테일러는 뭐라도 되냐고 물은 말에 아직은 해 줄 대답이 없었다. 아직 무엇도 되지 못했으니까. 괜찮았다. 이제부터 그의 무엇이라도, 되고야 말 거니까.

***

에이든 테일러에게 한 가지 난감한 점이 있다면, 이곳에선 ‘적정거리’를 유지하는 게 힘들다는 거였다. 난감하긴 한데, 사실은 조금 들떴다. 길거리에는 사람이 많았다. 멀찍이서 떨어져 걷기는커녕,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손을 잡고 걸어야 할 지경이었다. 물론… 아직 손은 못 잡지만, 가까이서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많이 좋았다. 제가 가까이 있어도 진이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자꾸 쳐서 미안…….”

“아냐, 괜찮아. 조금 더 이쪽으로 와도 돼, 진. 너만 괜찮으면.”

에이든이 제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은 자꾸 어깨로 툭툭 그를 건드리게 돼서 난처했다. 그는 최대한 몸이 붙거나 부딪히지 않도록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이 조금 멀어지자, 에이든의 낯이 흐려졌다. 약간 씁쓸한 미소가 그의 입에 걸렸다. 가면이 표정을 가려 주고 있어 다행이었다. 슬픈 얼굴이던 그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진과 뭐라도 얘기해 보려 노력했다.

“나는 할로윈 축제 와 보는 거 처음인데. 진, 너는?”

“아, 나도 처음이야…!”

앞만 보고 걷던 진이 에이든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귀가 달랑거렸다. 에이든은 그 모습을 보다가 작게 소리 내 웃었다. 진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 차라리 둘 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게 덜 창피한 것도 같았다. 진 헤니는 에이든 테일러가 쓰고 있는 플라스틱 가면을 보다 입을 열었다.

“그 가면은… 일부러 고른 거야?”

“가면? 아니, 그냥 보이길래 샀어. 이게 뭔데?”

에이든 테일러는 제가 쓰고 있는 캐릭터의 정체가 뭔지 몰랐다. 그냥 오는 길에 아무거나 사다 쓴 거였다. 하지만 진이 보기엔 아무거나 사다 썼다기엔… 그와 잘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아주 여러모로.

“영화 아이언맨, 안 봤어…?”

“아, 나는 영화를 안 봐서… 뭐 하는 앤데?”

뭐 하는 애냐는 질문에 많은 것들이 진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뭐라고 해야 되지……. 돈은 엄청 많은데, 어디가 좀 아팠다. 심지어 아픈 부위도 비슷했다. 혼자 이것저것 생각하던 진 헤니는 피식하니 웃었다. 이 상황이 웃겼다. 제 머리에선 강아지 귀가 달랑거리고, 에이든 테일러는 슈퍼 히어로 가면을 쓰고 거리를 걷는 이 상황이.

“이상한 거야…? 다른 걸로 다시 사야 되나…….”

“아냐, 잘 어울려…!”

에이든 테일러가 걱정스럽게 말하자 진 헤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얼굴이 가면으로 가려지자, 마음을 가리고 있던 건 느슨해졌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에이든 테일러 역시 긴장이 덜했다. 귀를 팔락거리며 걷는 검은색 강아지가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애정을 듬뿍 담은 푸른 눈이 옆에 선 사람을 살폈다.

“영화… 진, 너 영화 보는 거 좋아해?”

“응, 요즘에 몰아 보는 중이야. 못 본 게 많아서.”

“아, 그럼 다음 주에 만나서 같이 영화 볼까…?”

나름 자연스러운 화제 전환이었다. 영화관을 가도 좋았고, 야외 상영회가 있다면 찾아보고 가도 좋을 것 같았다. 요즘엔 무슨 영화가 하려나. 같이 보기엔 로맨스 영화가 좋겠지? 에이든 테일러는 오늘 집에 가서 검색해 볼 것들을 속으로 정리했다. 그러던 그는 조심스럽게 제게로 향한 말에 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에이든, 너는 영화 보는 거 안 좋아하는 거 아니야? 다른 거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안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네…….”

“……?”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왜…? 나처럼 섬에 갇혀서 산 것도 아니고……. 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이든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책이든 영화든, 아무튼 그런 거는 잘 못 봤어. 어렸을 때부터.”

“…….”

“아… 진, 그거 기억나? 내가 어릴 때 말했던 그 책 말이야. 나 얼마 전에 그거 서점에서 사서 읽는 중인데, 지금 보니까 또 뭔가 다르더라고. 하긴… 그때는 좀 어렸으니까. 사실 뭘 많이 이해하면서 읽진 못했을 거야.”

에이든 테일러는 조금 들떠 보였다. 진 헤니는 아무 말 없이 그 들뜬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조금 크게 뜨인 검은 눈이 옆에 선 사람을 살피고 있었다. 옆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땐 엄청 아는 척하면서 말했는데……. 그냥 좀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그랬던 거지, 뭐.”

“…….”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때 아기 돼지 삼형제랑 벌거벗은 임금님이 뭔지 몰랐어.”

간혹 사람들에게 밀려 걸음이 휘청이기도 하는 이 순간. 사람들의 화려한 분장과 퍼레이드 행렬 때문에 눈이 어지러웠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터지는 소음에 귓가는 시끄러웠다. 하지만 진 헤니는 제 옆에 선 사람이 그 어떤 때보다 뚜렷하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왜 여태 낯설다 생각했는지 모를 만큼.

“근데 어렸을 때만큼 재미있지는 않은 것 같아. 왜 그러지…? 읽지 말라 그래서 더 읽고 싶었던 건가.”

에이든을 빤히 보며 걷던 진은 제 어깨를 강하게 밀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휘청였다. 에이든은 옆으로 밀쳐진 진의 어깨와 허리를 받쳐 잡았다. 제게로 쓰러지듯 안겨온 몸에 푸른 눈이 크게 뜨였다. 진 헤니 역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젠가 맡았던 향수 냄새가 제 코로 끼쳐 들어왔다.

“진, 괜찮아…?”

“아, 어…! 괜, 괜찮아. 미안.”

상체가 꼭 맞붙어 있어 진의 허둥댐이 커졌다. 품에서 벗어나려던 진 헤니가 고개를 들자, 두 사람이 쓰고 있던 플라스틱 가면이 부딪히며 달그락 소리를 냈다. 아주 사랑스러운 검은색 개의 주둥이 부분이 말썽이었다.

동그랗고 귀엽게 자리한 콧잔등이 저를 안고 있는 주인에게 입 맞추듯 뺨과 입 주변을 스치고 지나갔다. 진 헤니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동안, 에이든 테일러의 목울대가 크게 울렸다. 주변이 시끄러워서 망정이지, 조용했다면 침 삼키는 소리가 다 들리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가면끼리 달그락거리며 부딪힐 때마다 진 헤니는 아주 당황스러웠다.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다 들켰을 거였다. 아니, 가면을 안 썼으면 이럴 일이 없긴 했는데… 그게, 어쨌든…!

진이 서둘러 커다란 품에서 벗어났다. 그리곤 옆으로 세 발자국을 멀어졌다. 에이든은 제게서 멀찍이 떨어진 그를 보며 입을 달싹였다. 이건 너무 멀었다. 조금 전까지 품에서 느껴지던 체온이 다 거짓말인 것처럼, 진 헤니는 멀찍이서 걷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얘기를 해도 잘 들리지도 않을 거리였다. 이제 곧 퍼레이드도 다 끝날 것 같은데……. 아주 잠시 고민하던 에이든이 성큼성큼 진의 옆으로 다가갔다. 가까워지는 에이든 테일러에 강아지의 귀가 조금 더 크게 흔들렸다.

“진, 그럼 우리 다음 주에는 야외 상영회 같은 데 갈까? 센트럴 파크나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할 것 같은데, 아니면 영화관이 더 좋으려나…?”

“아, 그냥…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

진 헤니는 달아오른 뺨이며 얼굴을 가려서 다행이었고, 에이든 테일러는 자꾸 흐려지는 낯을 가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진은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말한 뒤엔 에이든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 반응에 에이든이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나 하고 싶은 거 말고… 둘이서 같이 하고픈 걸 하고, 보고… 그러고 싶은데…. 하긴… 진은 저랑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에이든 테일러의 푸른 눈이 복잡하고 우울했다.

진은 에이든이 점점 슬퍼지는 걸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나디아와 알렉스를 찾는 데 여념이 없었다. 곧 퍼레이드가 끝날 것 같으니, 돌아가야 했다. 가면 때문에 잘 보이질 않는 것 같아 그가 끙끙거리며 쓰고 있는 걸 벗으려 했다. 이건 대체… 어떻게 벗는 건지…….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손도 자꾸 헛돌았다. 에이든이 가면을 벗으려 낑낑거리는 진에게로 다가섰다. 그는 제가 쓴 가면을 벗은 뒤, 조금 눌린 머리를 손으로 흐트러뜨리며 진에게 물었다.

“내가 도와줄까?”

“아, 이게 여기 밑에 후크 같은 게 있을 텐데… 내가 안 보여서…….”

진 헤니의 손이 가면 밑, 목 근처에서 허둥댔다. 에이든 테일러는 그의 뒷목 근처에서 진이 말한 후크를 발견하곤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푸른 눈이 허락을 구하듯 진 헤니를 바라봤다. 직선으로 부딪혀 오는 눈빛, 푸른 눈을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내가 벗겨 줄게.”

에이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진 헤니는 손을 꼬옥 말아 쥐었다. 가면을 벗겨 준다는 소리일 뿐인데, 왜 망설이게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우물쭈물하던 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팔락거리는 귀를 보며 옅게 웃던 에이든이 그의 목 뒤, 가면 안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진 헤니의 뒷머리칼을 가르고 들어섰다.

“그러게… 손으로 잘 안 잡히네, 잠깐만…….”

“…….”

에이든 테일러가 조금 더 가깝게 다가섰다. 그리곤 후크가 어디 있는지 보기 위해 진의 귓가 바로 옆으로 고개를 숙였다. 또 다시 에이든의 향수 냄새가 진의 코끝에 맴돌았다. 에이든 테일러의 향수는 정말 이상했다. 분명 그의 향은 깨끗하고, 청량했는데… 이상했다. 내가 이상한가…?! 자꾸 뒷목에 소름이 돋아서 진은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귀에 가깝게 뱉어지는 숨, 가면 안을 조심스럽게 헤집는 손가락. 질끈 감긴 진 헤니의 속눈썹이 흔들렸다.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갈 때면 진의 손끝이 움찔거렸다. 가면을 써서 그런지 얼굴에 열이 올랐다. 입술을 꼬옥 깨물고 있던 진 헤니는 탁하는 소리와 함께 벗겨지는 가면에 눈을 떴다.

“고, 고마워. 나는… 그럼 이제 친구들한테 가 볼게…!”

진은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그는 에이든의 손에 들린 가면을 뺏듯이 가져갔다. 그리곤 서둘러 뒤를 돌았다. 급히 걸음을 옮기려던 진 헤니는 제 팔을 조심스럽게 잡아오는 손길에 움찔 멈췄다. 슬쩍 뒤를 바라보자 에이든이 조금 초조한 얼굴로 입을 뗐다.

“저기, 진… 여기 주변에 되게 좋은 펍도 많고, 오늘 퍼레이드 있어서… 가게들도 다 늦게까지 하는 것 같더라고…….”

“……?”

“나랑 좀 더 같이 있으면 안 될까…?”

에이든 테일러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 더, 너랑 같이 있고 싶다고. 진 헤니는 대답이 없었다.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검은 눈이 흔들렸다. 에이든은 진에게 가깝게 다가서며 말을 덧붙였다.

“저쪽에 있는 펍에서 고디바 칵테일 팔던데……. 진, 너 초콜릿 좋아하니까 같이 거기 가면 좋을 것 같아서.”

“…….”

“아, 혹시 술이 좀 별로면 나는 다른 것도 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이 에이든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검은 눈은 바닥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진은 뭔가 곤란해 보였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슬쩍 에이든을 보다, 다시 바닥으로 시선을 처박았다.

“다음에… 다음 주에 보자, 에이든. 나 친구들한테 가 봐야 해서…!”

“응, 알겠어. 연락할게.”

에이든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웃기 위해 노력했다. 원래 친구들이랑 선약이었고… 제가 끼어든 거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서운하고 그럴 일이 아니었다. 왜 자꾸 이렇게 주제도 모르고 욕심만 커지는지 알 수 없었다.

진을 볼수록 더 같이 있고 싶고, 사랑 받고 싶었다. 더 많이 저를 봐 줬으면 했고, 더 많이 웃어줬음 싶었다. 지금 제게서 멀어지는 진을 보며 느끼는 아쉬움, 그와 비슷한 느낌을 진도 조금은 느껴 주기를 바랐다. 조금은 아쉬워 해 줬으면 좋겠는데… 성큼성큼 걸어가는 걸 보니 전혀 아쉽지 않은 것 같아 에이든은 괜히 슬펐다.

에이든 테일러가 손에 들린 가면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미소가 씁쓸했다. 잘 보이고, 잘해 주고 싶어도 같이 시간을 보낼 기회가 없으면 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

한숨만 나왔다. 요새는 괜찮던 가슴께가 다시 무겁게 조여지는 느낌이었다. 약이 필요한 아픔인 건지, 아니면… 그냥 아픈 건진 알 수 없지만.

에이든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가면만 내려다봤다. 그가 한 번 더 한숨을 내쉬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옮기는 발자국 하나하나에 아쉬움과 미련이 뚝뚝 떨어졌다. 오기 전에 찾아 본 그 펍은 분위기도 좋고, 진이 좋아하는 단 것들을 많이 팔아서 아주 마음에 들었었다. 같이 가면 정말 좋았을 텐데…….

에이든 테일러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진 헤니는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품에 들린 강아지 가면의 귀가 팔락거렸다. 팔락거리는 속도가 빨라질 때마다 진 헤니의 심장이 쿵쿵거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야! 진 헤니! 너 어디 있다가 지금 와!”

“아, 미안…! 나 너희 따라가다가, 중간에… 다른 데를 좀 헤매느라…….”

나디아는 어색하게 웃는 진의 등짝을 쳤다. 진은 움찔 놀라다 또 다시 맹하게 웃어 보였다. 주변이 어두워서, 얼굴이 잘 안 보여서 다행이었다. 얼굴에 계속 열이 올랐다. 이젠 가면도 안 썼는데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더웠다. 사실… 왠지 알았지만, 그냥 모르는 걸로 하고 싶었다.

“다른 데를… 많이 헤맸나 보네.”

알렉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웃는데 왠지 표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아서, 진이 슬쩍 눈치를 봤다. 알렉스는 진이 제 눈치를 보는 모습에 한숨을 삼켰다. 그리곤 손에 들고 있던 플라스틱 가면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말했다.

“잘 찾아 왔으니까 됐어. 어디 들어가서 야식이나 먹자. 나 배고픈데.”

“나도 존나 배고프다. 진, 너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응…? 아, 난 다 좋아…!”

세 사람은 야식을 먹을 만한 곳을 찾아 걸었다. 멍하게 걸으며 진 헤니는 생각했다. 모르긴 몰라도, 조금만 더 같이 있었다간… 심장을 뱉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에이든 테일러가 온몸으로 제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 상황은 감당이 되질 않았다. 정말… 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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