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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First Date (11/16)

(2) First Date

파란색 버스가 지나갔다. 정류장에 서 있는 아름다운 남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얼굴에 초조함과 약간의 들뜸이 가득했다. 오기 전에 짧게 자른 머리가 어색해서 간간히 머리를 쓸어 넘기거나 만지작거리는 건 덤이었다.

그는 버스 정류장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봤다. 그 옆을 지나쳐가던 행인 둘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저거 에이든 테일러야?’라고 두 사람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사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몇몇 입도. 물론 에이든 테일러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이는 눈치였다. 당연히 그런 걸 신경 쓸 새가 없었다.

무려 첫 데이트였다. 에이든 테일러는 아주 부푼 마음으로, 약속 장소 앞에서 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서 있는 곳의 반대편 버스 정류장만 쳐다봤다. 진이 저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약속 시간은 10분이나 남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그는 주머니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서둘러 꺼냈다. 혹시 진일까 싶어서. 하지만 화면을 확인한 그는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통화를 거절했다. 통화를 거절하자마자 귀신같은 속도로 메시지가 왔다.

「뉴욕에 회사 내자고 - 제시 제퍼슨」

「이번에 증권사 쪽이랑 같이 하는 프로젝트 있으니까, 뉴욕에 있는 네가 아주 적임이야 - 제시 제퍼슨」

“하… 왜 자꾸 개 같은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에이든은 떫은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러다 도착한 버스 한 대를 보고 반가운 기색을 했다. 조금 전이랑 표정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진이 타고 온다던 버스였다. 에이든이 고개를 조금 빼고 건너편 정류장을 살폈다.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파란색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쳐 사라졌다. 그는 자신이 찾는 사람이 없음을 알고 아쉬운 얼굴을 했다. 아냐, 아직 시간은 더 남아 있으니까. 그가 핸드폰을 다시 확인했다. 5분이나 남아 있었다.

잠시 뒤, 같은 버스가 한 대 더 도착했다. 에이든의 발끝이 초조하게 움직였다. 반발자국 정도 앞으로 걸어간 그가 다시 건너편 길을 살폈다. 푸른 눈이 바쁘게 여기저기를 움직였다.

“…….”

이번에도 그가 찾는 사람이 없었다. 에이든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핸드폰을 다시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이 조금 지나 있었다. 진으로부터는 메시지나 전화도 따로 없어서, 그가 핸드폰을 꾹 잡으며 고민을 했다.

‘조금… 늦는 걸 수도 있으니까, 바로 전화하면 좀… 그래 보일 수도 있으니까…….’

그가 흐리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조금 늦는 모양이었다. 많이 기다린 것도 아니고, 다음 버스에 타 있을 테니까 괜찮았다. 혹시 모르니 메시지라도 남겨야겠다고 생각하며 그가 손을 움직였다.

「진, 나는 네가 말한 버스 정류장 반대편 길에 서 있어」

그리고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파란색 버스가 도착했다. 에이든은 긴장된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훑었다. 사람들이 모두 내린 버스가 정류장에서 출발하고, 에이든이 결국 통화버튼을 눌렀다.

“…….”

이번에 도착한 버스에도 진이 없었다.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진 헤니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렸다. 신호음이 이어졌다. 전화를 받아야 하는데, 응답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

귀에서 들리는 소리에 그가 잠시 숨을 멈췄다. 푸른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했다. 핸드폰을 급히 귀에서 뗀 그가 턱이며 입을 매만지며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다. 작게 기침이 나오고 있었다. 심장소리가 쿵쿵거리며 커지고, 좋지 않은 때의 기억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신호음은 한동안 이어졌다. 초조한 발이 여기저기를 서성였다. 그런 에이든의 앞으로 파란색 버스가 한 대 더 도착했다.

‘제발…….’

간절한 푸른 눈이 건너편을 헤맸다. 사람들이 버스에서 몸을 내리고 있었다. 긴장으로 서성이던 발이 우뚝 멈춰 섰다.

[ 여보세요? ]

“…….”

바라던 목소리와, 기다리던 모습이 에이든 테일러의 얼어붙은 몸을 녹였다. 진 헤니가 핸드폰을 든 채 정류장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잠시 주변을 살피던 그가 건너편의 에이든을 발견하고는 어색하게 전화를 끊었다.

진 헤니는 핸드폰에 찍혀 있는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를 보며 난감한 얼굴을 했다. 무음인 터라 전화가 오는지도 몰랐던 그였다. 약간은 쭈뼛거리며 에이든에게 다가간 그가 작게 인사했다.

“어, 안녕… 에이든.”

“…….”

“중간에 차가 좀 밀렸어… 미안.”

에이든은 제 앞에 어색하게 서 있는 진을 빤히 바라봤다. 진 헤니는 별 대답이 없는 에이든 테일러를 힐끗 쳐다봤다. 푸른 눈은 제게 걸어온 사람을 찬찬히 살피다, 예쁜 모양으로 휘어졌다. 그는 마음이 무언가로 빠듯하게 차오른다고 느꼈다. 심장이 아픈 느낌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기침은 나지 않았다. 아리고, 뻐근한 둔통은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제 박자를 잃고 빠르게 뛰는 것도, 지금은 좋았다. 그냥… 전부 다 좋았다.

“어서 와, 진.”

드디어 제대로 된, 첫 만남이었다.

***

만약 제페토 할아버지께서 지금 두 사람의 모습을 보신다면, 제가 만든 인형들인지 한번쯤 의심을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곤 턱수염을 쓸면서 고민하실 거였다. ‘아니, 분명 내가 만든 건 피노키오 하나인데… 왜 여기 뚝딱거리는 게 둘이나 더 있누?’ 하면서.

두 사람은 관절이 제각기 따로 노는 것처럼 굴었다. 손이든, 손가락이든… 맘처럼 움직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음식을 넘기고 있는 목도 마찬가지였다. 아, 물론 음식을 씹고 있는 입과 턱도 마찬가지였다.

“…….”

“…….”

둘 다 아무 말이 없었다. 여기저기 연인들이 사진을 찍고, 좋은 밤을 보내고 있는 이곳은 뉴욕의 야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루프탑 라운지였다. 두 사람의 테이블 위에는 간단한 저녁식사와 함께 칵테일 두 잔이 놓여 있었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날씨는 완벽했다. 그들의 앞과 뒤, 오른쪽과 왼쪽은 모두 야경으로 반짝였다.

두 사람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야경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자리 선택도 아주 탁월했다. 정말 모든 게 다 완벽한데, 두 사람의 눈동자는 길을 잃고 흔들렸다.

진 헤니는 지금 이 자리가, 심각하게 데이트 같다고 느꼈다. 맞았다. 이건 데이트였다. 데이트 같다가 아니고, 데이트였다.

하지만 진 헤니는 필사적으로 아니라고 부정을 했다.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옆에서 얼레리꼴레리하며 저를 놀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가운데에서 저는 귀와 볼이 빨개져서는 ‘아, 아니라고!’를 외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에이든 테일러랑 데이트를 한다고…? 아닐걸…? 그냥… 밥 먹는 거지, 뭐…….’

혼자 속으로 생각하던 진의 눈이 더욱 빠른 박자로 흔들렸다. 참을 수 없이 어색했다. 아냐, 비슷하게 몇 번 해 봤잖아. 그냥…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밥도 먹고… 뜨문뜨문 몇 마디하고 그러면 되는 거지……. 진 헤니의 마음이 요동치고 있었다.

‘편하게… 친해지기는 무슨…….’

괜히 속이 타서 칵테일을 벌컥벌컥 들이키던 그는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느낌에 기침을 했다. 하필 마신 게 마티니였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에이든 테일러가 놀란 눈으로 물이 든 컵을 내밀었다.

“아, 괜찮아…? 여기 물 마셔, 진.”

목을 부여잡고 컵을 받아들던 진은 에이든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에이든 테일러는 진의 앞에서 허둥대고 있었다. 물을 건네고 나서 그는 자리에 있던 포크며 나이프를 떨어뜨렸다. 챙그랑 소리를 내며 우수수 떨어지는 것들에 그가 허망한 얼굴을 했다.

첫 데이트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전부 다 떨어뜨리는 멍청이 같은 사람이 두 번째 데이트를 하게 될 가능성은 몇 퍼센트일까, 라고 에이든 테일러가 생각했다. 속으로 작게 험한 말을 읊조리던 그는 웨이터에게 새로 포크와 나이프를 받아들며 말했다. 더 이상 등신처럼 굴 순 없었다.

“그… 일은 어때? 아이들 가르친다고 그때 그랬었잖아. 오늘도 거기서 온 거지?”

“아, 응. 그거… 잘 맞고 좋아.”

진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든 테일러가 등신처럼 굴면, 진 헤니가 바보처럼 굴었다. 대화는 잘 이어지지 않았다.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하는데, 둘 다 뻣뻣하게 굳어 쉽지 않았다.

에이든 테일러는 지금 진 헤니와 앉아 있는 이 상황이 비현실적이라 가끔 넋을 놓았다. 푸른 눈은 틈틈이 진 헤니의 기색을 살폈다. 혹시 좀… 지루하거나, 불편하진 않은지……. 에이든은 그렇게 생각하며 또 힐끗 진 헤니를 살폈다. 그리곤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진은 저와 눈을 잘 맞추지 않았다. 그냥 접시만 보며 음식을 먹거나, 옆에 있는 야경만을 봤다. 절로 예전 생각이 났고, 동시에 더 조심스러워졌다. 분명 저는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 아닌데, 진 앞에만 가면 혀도 머리도 다 딱딱해지는 기분이었다. 매력적인 사람처럼 보이기는 무슨… 이 상태로는 두 번째 데이트를 할 수 있다면 다행이었다.

미워해도 옆에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얼마 전이었는데, 진을 보고 나니 욕심이 또 자라나고 자라났다. 그와 여기저기 많이 다니고 싶었고, 여태 못한 얘기도 많이 나누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저를 다시 좋아해 주지는 않을지.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자꾸만 혼자 마음이 들떴다.

에이든 테일러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아직은 어색한 머리를 매만졌다. 진 헤니는 슬쩍 시선을 올렸다. 여태 접시에 코가 빠질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진이 에이든을 바라봤다. 에이든 테일러는 전이랑 분위기가 또 달랐다. 아프면서 살이 조금 빠져서 그런지, 더 예리하고 정교하게 가공된 보석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원래 이목구비가 주는 느낌이 차가워서 더 그랬다. 잘 어울린다고 해야 할지…….

그렇게 생각하던 진 헤니는 이제야 그의 머리가 전보다 훨씬 짧아졌음을 알았다. 여태 접시에 코를 박고 있거나, 시선을 피했으니 모를 수밖에 없었다. 짧아진 머리가 날카로워진 이목구비와 썩 잘 어울려서 진이 속으로만 작은 감탄을 삼켰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름의 노력이었다.

“머리… 자른 거, 잘 어울린다…!”

진 헤니의 말에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에이든 테일러의 손이 우뚝 멈췄다. 푸른 눈이 동그랗게 뜨여서 진 헤니까지 눈을 크게 떴다. 뭐… 나 뭐, 말실수한 건가…? 생각지 못한 반응에 진의 눈이 흔들렸다. 에이든은 대답 없이 눈을 깜빡이다 입을 작게 벌렸다. 그러다 고개를 슬며시 숙이고는 손으로 입 주변을 매만졌다.

너무 바보 같은 웃음이 나려고 했다. 단속하지 않았다면 엄청 멍청한 표정을 지었을 게 분명했다. 에이든은 최대한 표정을 관리했다. 그리곤 너무 머저리 같이 말하지 않도록,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슬쩍 다시 고개를 든 그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예쁜 표정이었다. 날선 분위기가 가득하던 얼굴에 해사한 미소가 자리했다.

“고마워.”

진 헤니가 시선을 다시 옆으로 피했다. 루프탑이라 분명 바람도 잘 불고, 공기도 서늘한 편이었는데 더웠다. 엄청 더웠다. 열이 오르는 걸 보니,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모양이었다. 요즘은 환절기니까…! 자꾸 얼굴이 홧홧해지는 느낌에 진이 다시 앞에 있던 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가 마신 건 애석하게도 또 칵테일이었다. 그리고 에이든 테일러는 그에게 물 잔을 내밀다, 새로 받은 나이프와 포크를 다 떨어뜨렸다. 쿨럭이는 기침소리와 식기가 바닥에 떨어지며 쨍그랑하는 소음이 루프탑 위를 울렸다. 올타임 대환장 파티였다.

***

“안 데려다 줘도 되는데…….”

진 헤니의 말에 에이든 테일러는 그저 웃었다. 저를 보며 옅게 웃는 모습에 진이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한밤중의 맨하탄을 걷고 있었다. 서늘한 공기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지르고 지나갔다. 에이든은 일부러 조금 거리를 두고 걸었다. 예전 일이긴 하지만… 제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 진이 몸을 뒤로 물리던 게 생각 난 까닭이었다.

그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급하게 다가가고 싶지도 않았고, 진이 저를 다시 받아들여 줄 때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었다. 물론 다시 제게 기회를 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A부터 Z까지 다 마음에 들고, 잘 보여도 모자랄 판에 첫 데이트가 아주 망했으니 가망이 없었다.

멀찍이서 걷고 있는 두 사람은 또 말이 없었다. 에이든은 옆에서 걷고 있는 진을 슬쩍슬쩍 살필 뿐이었다. 시간이 오래 흐른 만큼, 진 역시 분위기가 달랐다. 전보다 성숙한 느낌이 물씬 들었는데, 검은 눈이 품은 순수함은 그대로였다. 아니, 그대로라기엔 좀 다르기도 했다. 그때는 아이 같은 순수함이었다면… 지금은 그보다는 더 고집스러운, 혹은 단단해진 느낌이 들었다. 굉장히 오묘했다.

사람이 없는 거리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저벅저벅 들렸다. 진 헤니는 멋쩍은 표정으로 걷다 슬쩍 옆을 바라봤다. 저를 보고 있던 푸른 눈과 눈이 마주쳐 버려 진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진은 바로 앞에 보이는 지하철역에 더듬더듬 말을 뱉었다.

“아, 나는 플러싱 쪽으로 가야 해서 여기서 가 볼게. 그럼 조심히 들어가.”

“집 바로 앞까지 같이 가, 진. 어느 역에서 내리,”

“아냐, 그냥 얼른 들어가…! 뭐 하러 그래. 나 가 볼게. 잘 가.”

진은 어색하게 웃더니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도망치듯 가는 뒷모습에 에이든은 뭐라 말도 못하고 당황한 낯으로 가만 서 있었다. 오늘은 어땠는지, 다음엔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그런 말을 하나도 못했는데……. 에이든 테일러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샜다. 작게 인상을 찌푸린 그가 마른세수를 했다.

에이든은 한동안 그 지하철역 앞을 떠나질 못했다. 푸른 눈에는 아쉬움과 스스로에 대한 짜증이 가득했다. 등신 같은 새끼……. 몇 번이나 얼굴을 쓸어내리던 그는 한참만에야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에이든은 한 발자국을 걸을 때마다 한 번씩 뒤를 돌아봤다.

에이든의 표정이 심각했다. 앞으로는 절대 이래선 안 됐다. 이러다가는 제대로 말도 못해 보고, 그때처럼… 기회를 다 날려 버린 뒤에 후회만 하게 될 거였다. 신경질적으로 눈썹을 매만지던 그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손끝이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진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지금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망설이고 말고 할 때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야 했다. 신호음이 가고, 이내 진 헤니가 전화를 받았다. 에이든 테일러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진, 나야. 집에 가는 동안 통화하고 싶어서.”

[ 아, 어… 근데 나 지하철이라 시끄러워서 잘 안 들릴 텐데……. ]

“아냐, 잘 들려. 저기… 진, 오늘 얼굴 봐서 나는 엄청 좋았어. 같이 시간 보내 줘서 고마워.”

그는 긴장한 얼굴과 목소리였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진은 별다른 대답이 없었지만, 에이든은 그냥 말을 이었다. 등신처럼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됐다.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너만 괜찮으면 우리, 내일 모레 있는 할로윈 퍼레이드 같이 보러 갈까? 내가 찾아보니까 조금 크게 하던데,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서.”

[ 아……. ]

진은 뭔가 곤란한 기색이었다. 에이든은 초조한 얼굴로 뒷목을 매만졌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오늘 데이트가 별로였던 게 확실했다. 오늘은 엉망진창이었지만 다음엔 정말 절대 안 그럴 자신이 있었다. 대체 이 말을 몇 번을 하는 건지, 앞으로는 좀 그만하고 싶었다. 진 헤니의 대답이 늦어지자 에이든 테일러가 다시 입을 뗐다.

“아, 내가 오늘… 긴장을 많이 해서, 좀… 별로였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나는 많이 아쉬운데……. 진, 나 한 번 더 만날 수 있을까? 내일 모레가 좀 곤란하면, 너 괜찮은 시간 말해 줄래?”

[ 아, 그게……. ]

지하철에서 통화 중인 진 헤니의 얼굴은 난처한 빛이 가득했다. 그는 스케줄러에 표시돼 있는 약속 하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이번 할로윈데이에 잡혀 있는 약속 하나. 작게 인상을 찡그리던 진 헤니는 어쩔 수 없다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나 그날은 나디아랑 알렉스랑 약속이 있어, 네가 말한 그 퍼레이드… 가기로 했거든.”

[ 아, 그렇구나. ]

“응, 다른 날 보자…!”

어색한 통화는 그 뒤로 아주 조금 더 이어지다 끝이 났다. 에이든은 다른 날 약속을 잡는 데 성공했지만 표정이 좋지 않았다. 통화가 끊길 때쯤, 딱 알맞게 집에 도착한 그는 굳은 얼굴로 무언가를 생각했다.

‘미안한 일이지만, 알렉스 그레이는… 절대 안 되지.’

에이든 테일러는 다시 할로윈 퍼레이드를 검색했다. 내일 모레,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있을 그 퍼레이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다시 알아둬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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