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7화 (167/167)

돌파구 (2)

<대한민국, 카타르전 승리··· 9회 연속 월드컵이 눈앞에 보인다.>

신태영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14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8차전 원정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둠으로써. 월드컵 최종예선 A조 2위를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은 전반 25분, 최철순의 반칙으로 내준 프리킥으로 인해 선제골을 내주었고, 전반이 끝나기 직전 손흥빈 선수의 부상으로 인해 패배할 줄 알았으나.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공격한 결과 후반 17분, 기성룡이 동점골을 터뜨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의찬의 추가골로 인해 2-1 승리로 경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

ㄴㅆㅂ 전반까지만 해도 지는 줄 알았다. 진짜. 도하 참사 일어나는줄.

ㄴ그래도 이겼으면 장땡임.

ㄴ그러게, 그래도 이기긴 했네 ㅋㅋㅋㅋ, 돌킬리케였으면 후반에 두 골 넣다가도 역습당해서 3대 2로 졌을듯.

ㄴ에이 설마, 돌틸리케가 했어도 무승부는 했겠지.

ㄴ아냐, 돌틸리케면 또 몰라, 아라크전에 별로인 모습 보였어도 지 마음에 든다며 이라크전에 죽 쑨 이준혁 선발로 박았을걸?

흠.

톡, 톡.

ㄴ뭔 소리야 교체로 들어가고 나서부턴 잘해

“스탑. 댓글 금지.”

“···달면 안 돼요?”

“안 돼. 임마. 나중에 뭔 소리 들으려고.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 이런 거 하나하나가 문제 될 수 있어.”

···음, 어차피 전 이미지 청년 FC 때문에 반쯤 망해서 상관 없을 것 같은-

-빠악.

“악!”

“얌마, 또 이상한 생각 하고 있었지? 청룡이 꼬라보는 눈이 그냥 아주 불손하네.”

아니 이 형은 왜 아직도 안 가고 여기 있는 거냐. 내일 경기면서.

“아니 요한이 형, 형은 아직 시즌중이면서, 서울에 복귀 안 해요?”

“뭐야, 넌 못 들었냐? 나 햄스트링 터졌다. 그래서 감독님이 그냥 이번 경기는 여기에서 쉬라고 하셨고.”

헐.

“···몇 주짜리요?”

“심하게 터진 건 아니야, 그냥 1경기만 푹 쉬래.”

오, 그나마 다행이네.

“내일 슈퍼매치 있는데 부상이라니. 하. 망할.”

“······”

음, 안 다행인가.

거기까지 말하고, 요한이 형은 감자칩을 꺼내더니 그대로 옆에 앉았다.

“뭐, 그러니까 그만 쉬고 하던 훈련이나 계속 해라.”

와그작.

“······”

“뭐, 왜 얌마. 얼렁 해라.”

“선배님, 저기 대학교 친구들도 있는데, 좀 국대의 위엄을 보여주면 안 될까요.”

대충 떡진 머리에 감자칩 와그작거리는 모습이라니. 이거 완전 날백수 모습이잖아.

“난 어차피 이번에 뽑히기만 하고 뛰지도 못해서 저 친구들 별로 관심 없을걸. 너만 지키면 된다.”

“······”

저기요 형님, 저런 사람은 어찌 따끔하게 혼내야 하는 거 아닐-

“야 요한아, 그럼 나도 하나만 먹자.”

“그래. 하나 먹어라.”

젠장, 둘다 서울 시절 유망주때부터 짝 붙어 다녔던 동갑들이라 그런지 아주 기냥 죽이 잘 맞으시네.

더러운 학연축구, 인맥축구. 대한민국 축구계는 썩었다. 레볼루숑, 혁명 정신이 필요하-

-삐이익-!

“이준혁, 빨리 와라! 넌 지금 아니면 이 훈련은 못 할 꺼 아니냐!”

“···예, 코치님.”

에휴, 그래

연습하자, 연습해.

지금 하는 실전과 같은 세트피스 훈련은, 국가대표 팀에 없을 땐 못 하는 훈련이니까.

왜냐고? 축구 훈련할 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데 부족한 게 뭘까?

의견이 많이 갈릴 수 있겠지만, 최소한 내가 생각하기에는 사람이다. 사람 숫자가 제일 중요하다.

물론 ‘훈련을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 축구를 잘 알면서도 내가 고용할 수 있을 정도로만 돈을 받는 사람’이 많은 게 가장 좋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그냥 사람 하나 병풍처럼 있는 것도 아주 도움이 된다. 볼 줍는 걸 도와주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훈련의 질이 얼마나 좋아지는지는 경험해 본 사람은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클럽들은, 팀의 유소년 선수들을.

-성인 선수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저렇게 될 수 있도록 해라.

라는 명목하에. 볼보이라는 직책을 맡기면서 열정페이를 부려먹는 거다. 이것이 바로 돈 한푼도 안 들이고 1군의 훈련 질을 늘리는 방법이니까.

그런데, 그럼 그 수많은 클럽들의 위에 서 있는 국가대표팀은 어떨까?

-짝짝.

“좋아. 그럼 얘들아, 훈련 도와준다고 선뜻 와 줘서 고맙다.”

“아닙니다아!!”

돈을 내고서라도 훈련에 같이 참여하고 싶어하는 ‘성인’ 선수들도 수두룩할 정도로,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이 일반 클럽팀의 몇 배다.

“오늘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너희들도 얻어가는 것이 있길 바란다.”

“예! 알겠습니다!!”

국가대표팀이라는 선수들과 함께 훈련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자랑거리이자 기록이 되니까.

“좋아, 그러면, 이준혁, 크로스 시작해라! 세트피스 3번!”

“예!”

-뻥.

“좋아, 3번은 이제 완벽하다. 이번엔 살짝 바꿔서, 6번이다. 너희, 등번호 10번은 안쪽으로, 11번은 조금 밖으로 빠져나온 상태로! 이준혁, 차!”

-뻥.

“방금은, 크로스가 안 좋았다! 이준혁, 다시 한 번!”

“···예!”

실전과 비슷한 세트피스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도와주는 10명 이상씩의 ‘성인’ 선수들이 쉽게 공급되면서. 인원이 많이 필요한 그 어떤 훈련이던 간에 가능하다.

또 밀도는 어떤가.

-뻥.

내가 크로스를 날리고.

“좋아, 이번엔 좋았다! 그럼 다시!”

궤적을 보고 난 이후 1초도 안 되어서.

-뻥.

다시 크로스를 날리는. 이런 행위가.

10분 내내 볼이 끊기지 않은 상태로 쉬지 않고 한다.

그리고 10분 정도 시간이 흐르면.

“좋아, 그럼 이제 선수들 체인지! 이준혁이, 이번엔 러닝 크로스 세션들이다.”

“···예!”

또 살짝 바꿔서 훈련하면서. 중간에 비는 시간 따윈 없이 그냥 미친 듯이 훈련하니까, 클럽에서 훈련하는 시간이랑 똑같이 훈련해도 훨씬 더 많이 훈련을 하게 된다.

훈련의 질도, 밀도도.

-뻥.

“좀 더 빨리! 빠르게 차라!”

“예!”

일반적인 클럽 팀의 훈련보다, 훨씬 뛰어나다.

‘뭐 마르세유에서 돈 많이 버는 친구들은 이것보다 더 좋은 훈련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돈을 쏟아부어야만 하겠지.

‘내가 이런 혜택을 받는 대상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참 상전벽해야?’

그래서인지, 좀 지치긴 하는데.

-삐익!

“점점 크로스가 빗나간다. 이준혁. 조금 더 집중해! 저점 올리겠다고 했지! 그럼 네가 아무리 지친 상황이라고 해도 크로스가 정확히 올라가야 한다!”

“···예!”

훈련이 참 재밌다.

‘수험생들이 정말 집중 과외 받을 때는 힘든데도 공부가 좀 더 재미있고 문제 풀 때마다 뿌듯함이 든다고 하던데. 이런 거이려나.’

아아- 정말 재미있다.

-와그작.

“화이팅, 화이팅. 우리 이준혁이, 쌩고생 하그라.”

···저 양반이 감자칩만 안 씹으면 더 재미있을 텐데.

-*-*-*-

-···그럼, 다들 수고했고, 앞으로도-

으어어어어어···

-와그작.

아 놔.

“···형. 아직도 그거 하나 다 안 먹었어요?”

“아껴 먹어야지. 임마. 식단 관리 해야 하는데.”

···쳇, 할 말 없게 이럴 땐 또 프로같은 소리 하신단 말이야.

“야. 그건 그렇고, 너 진짜 늘었다. 밖에서 보니까 롱 크로스 올리는 타이밍이 그 때보다도 더 죽여주네.”

“그래봤자, 정확도는 솔직히 더 떨어졌는데요.”

“그건 니가 지금 아침에 체력훈련 코스 한번 하고 크로스 훈련 해서 그런 거잖아. 당연히 정확도는 떨어지지.”

-와그작.

“작년까지만 해도 그래도 나랑 비슷한 정도였는데, 지금은 비교가 안 되는구나.”

“······”

“나도 재작년에 너처럼 연봉 깎일 거 감수하고라도 유럽 가 봤어야 하나 보다.”

···음, 이런 때에는 뭐라고 해야 하나. 아 그래.

“근데 제가 연봉은 더 낮아요, 형.”

“아, 그렇구나? 푸핫.”

자학개그라도 하자.

“그래, 뭐, 생각해 보니 도전했으면 우리 와이프 못 만났을 테니.”

그렇게 웃어넘긴 요한이 형은, 살짝 웃는 얼굴로 물어봤다.

“그럼 뭐 훈련도 끝난 것 같고, 넌 샤워하러 갈 꺼냐?”

“아니요, 편의점에서 음료수 좀 하나 사먹고 들어가려고요.”

“오, 그럼 나가는 김에 내 음료수도 하나 사와라.”

“예압. 포카리죠?”

그렇게 훈련을 마치고 파주 NFC의 편의점으로 걸어가는 동안.

“코너킥은, 국대에서는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소속팀에서는 딱히 도움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냉정하게 요즘 훈련한 내용들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코너킥이라는 옵션을 뚫을 수만 있다면 베스트긴 한데, 감독이 나한테 키커를 맡겨주지 않으면 완전 꽝이 될 테고.

‘이 발을 맞출 시간도 또 2주도 안 남았어···’

마르세유 소집일이 6월 26일로 확정되었다. 젠장. 지금이 6월 16일인데.

비행기 시간까지 합하면 벌써 한 일주일 정도밖에 안 남았다는 거다.

“뭔가 더 없나··· 페널티박스 안으로 어떻게든 우겨넣는 능력은 확실히 늘 거 같긴 해도 이것만 가지고는 저점을 뭔가 확 획기적으로 올릴 방법이라기엔 부족한데···”

그렇게 나도 중얼중얼 거리면서 어느덧 편의점 앞까지 다가가자.

“어?”

“어?”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내가 여기가지 오게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한.

“박 감독님?”

“허어, 이준혁이, 자네 오랜만이구만!”

전(前) 상무 감독, 박흥서 감독님이셨다.

-*-*-*-

“여긴 어쩐 일이세요?!”

“하하, 상무 감독 그만두고 쉬고 있었는데, 집안에만 있으니 마누라 잔소리가 심해서 일 좀 하러 나온 게지.”

아. 하긴. 축구인이 여기에 오면 일 때문에 온 거겠지 뭐겠어.

“그럼 혹시 엄청 바쁘신가요? 바쁘시지 않다면 저녁 식사라도 좀, 제가 사드리겠-”

“아냐, 아냐, 됐어, 내가 왜 자네한테 사달라고 하겠나.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어른한테 밥 사주겠다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야.”

“······”

그래도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정 뭔가 해주고 싶다면, 더 성공하게나.”

···그 말에, 뭔가를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은 살짝 날아가고.

“···저기, 감독님.”

나도 모르게 질문했다.

“뭔가?”

뭔가, 나에게 2년 전 돌파구를 줬던 감독님이라면.

“제가 여기에서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감독님이 보기엔 뭘 해야할 것 같습니까?”

이 감독님이라면 내가 2주 동안 더 늘어날 수 있는 방법은 뭘까.를

가르쳐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네가? 흠···”

질문을 받은 박 감독님은 잠깐 고민하시더니.

“글쎄, 솔직히, 모르겠구만.”

“······”

조금 실망스러운 답변이 나왔다.

“미안허이, 내가 그 경기까지 가 본 게 아니고, 나도 나이가 들어서 얼마나 기발한 조언을 자네한테 해 줄 수 있을지 장담을 못 하겠거든.”

···그렇구나.

‘에휴, 그래. 내 문제는 내가 가장 잘 알겠지.’

괜히 지름길 찾으려고 헛힘쓰지 말고 남은 10일간이라도 훈련 더 열심히 해야-

“뭐, 하지만 그래도 이대로 끝난다면 자네가 해준 조언을 제대로 답변해준 게 아닐 테니, 하나 정도는 더 추가로 말해야겠지.”

“······?”

“자네 이런 말 아나? 머리는 빌리면 된다는 말.”

그 말이야 워낙 유명해서 알긴 하는데. 지금 그 말이 왜 나오시는 거지.

“내가 지금 여기에 온 이유가, KFA 라이센스 교육 특강강사로 초빙된 것 때문이거든. 한번 나보다 머리가 말랑말랑한 젊은 친구들하고 이야기해볼 생각은 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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