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구 (1)
2017년 06월 08일
[김창수, 중앙에서- 권창운, 슛-! 이 아니라!]
[골! 골! 골입니다아-! 지동언 선수, 골이에요! 선취 골입니다!]
***
<2017년 6월 A매치 평가전>
[후반 3분]
이라크 0: 1 대한민국
[골]
이라크 : (없음)
대한민국 : 지동언(47)
***
[지동언 선수, 올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더니, 오랜만에 국가대표팀에서 골까지 넣었습니다. A매치 4경기만에 득점!]
[권창운 선수의 어시스트도 기가 막혔어요! 패스인지 슛인지 애매했는데, 패스였군요! 소속팀에서는 아직 뜨거운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오늘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 이제야 좀 편하겠다. 창운아. toutes nos félicitations!”
“···형, 그건 무슨 말이에요?”
“축하한다고, 너 벨기에 갔으면서 프랑스어 안 배웠어?”
그 말에, 창운이 녀석은 살짝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전 통역사 있어서요···”
···와 시발. 이게 대우받고 간 놈과 대우 못 받고 간 놈의 차인가. 더러운 부르주아지 자식. 혁명 마렵다.
“그건 그렇고, 형은 왜 이리 잠잠해요? 훈련에서는 좋은 모습 보여주더니.”
그 말에 나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그러게, 컨디션이 오늘따라 별로다.”
내가 평소보다 못 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 할 말이 별로 없었으니까.
뭐, 일단 내가 못하는 이유를 대자면 엄청 많았다. 일단.
덥다.
욕을 오만가지를 덮어 씌워서 말해도 이 엿같음을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니 시발, 진짜 어떻게 이 밤에 체온보다 온도가 더 높은 건데?’
그래서인지 음료수로 입 안을 헹궈도 입 안이 바로 바싹바싹 말라 들어간다.
‘그나마 습도가 오늘은 많이 높지 않다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
솔직히 지금까지 중동 놈들의 수비 내지 침대 축구를 이해 못 했었는데, 한번 여기 날씨를 체험해 보니까 격하게 이해가 간다. 날씨가 죽여주는 마르세유에서 더 오래 있었던 덕분에 더더더욱.
얘네들은 애초에 침대 축구 안 하고 열심히 90분 뛰다간 지쳐서 쓰러진다.
그리고- 그 외에도 잡다한 게 날 괴롭협는데.
-흐아-음.
‘몸이 아직도 시차에 적응 잘 못 했네. 으으, 좀 피곤하다.’
지금은 한국 시간으론 새벽 2시, 내가 이미 잠들고도 한참 남아야 할 시간이다.
물론 내가 지구 반대편 프랑스에서 뛰긴 했고, 비행기 타고 원정온 적도 있긴 하지만. 이렇게 시차가 많이 나는 곳으로 이동한 지 3일밖에 안 된 시점에서 뛰는 건 처음이다.
이런 미세한 점들이 겹쳐져서.
[아, 이준혁 선수, 몸이 무거워 보입니다. 오늘따라 활동량이 좀 적네요.]
[아마도 중동의 더운 날씨에 적응이 덜 된 듯 싶습니다. 힘을 내야 합니다. 풀백이 활동량이 적으면 그만큼 팀에 민폐가 없어요.]
오늘따라, 너무 몸이 무거웠다.
‘후. 진짜 개 같네. 머리도 좀 안 돌아가는 것 같고.’
그럼에도 내가 교체 안 되고 있었던 이유라면.
일단 오늘의 경기가 월드컵 예선전이 아니라 승패에 관계 없는 평가전이기도 했고.
[아, 이라크의 역습 찬스. 아메드 야신, 측면을 파고드는데!]
-뻥.
[이준혁 선수가 잘 막아줬군요. 이라크의 스로인입니다.]
일단 수비는 어찌어찌 되고 있었으니까.
‘휴- 그래도 발전하긴 했구나. 한 1년 전이라면 이렇게 컨디션 안 좋았으면 그냥 답도 없이 말리면서 교체당했을 텐데. 저점이 확실히 올라왔다. 올라왔어.’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그래, 이 정도로는 내가 자만했던 것처럼. 완벽히 주전을 자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렇게 컨디션 개판인 상태의 나보단, 컨디션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K리그 최고의 풀백, 김진우가 훨씬 더 나을 테니까.
‘휴, 참. 앞으로 이거 컨디션 관리할 방법도 좀 만들어야겠네.’
하지만, 일단 경기는 시작되었고.
오늘 경기에서 이미 박살난 컨디션인 상태를 후회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슈우우웃-! 아, 골대 밖으로 빠져나가 버립니다. 아쉽네요.]
그러니. 지금은 컨디션이 박살난 상태에서도 내가 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해야겠지.
-삐이이익-!
[아, 한국의 코너킥입니다. 수비수가 걷어내 버리는군요.]
[그럼 기성룡 선수가 코너킥을 준비··· 아, 아니네요?]
“잘 해봐라.”
“예.”
[이준혁 선수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 세트피스다.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뭘까?
바로, 공격적으로 굴어야 할지, 수비적으로 굴어야할지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거다.
분명 월드컵 진출한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팀들과 싸울 경우엔 한국은 냉정하게 승점 3점을 따낼 제물에 불과하기에 라인을 내리는 팀 따윈 없고. 이를 보면 수비적으로 굴어야 하는 것 같지만.
이 아시아에서는 대한민국은 ‘우리가 제일 강하다’ 라고 말할 만한 자격이 꽤 충분한 강팀이다.
‘뭐, 솔직히 유럽리그에서 뛰는 선수 수나 자국 리그의 질로 보나 호주, 일본, 이란 정도를 빼곤 우리나라보다 한 수 아래라고 봐야 하는 게 맞긴 하지.’
그래서- 솔직히 전술이 왔다갔다 할 수밖에 없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수비적으로 구는 게 맞는데. 그러려고 하다 보면 월드컵을 가는 길이 가시밭길이다.
그러니, 수비적으로 하든, 공격적으로 하든. 항상 골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방법을 짜내야 하는 것이 문제였고.
-우리는 이번 평가전 동안, 세트피스 전술을 최대한 실험해볼 거다.
감독님이 그 해법으로 이번 평가전과 카타르전에, 준비했던 세트피스를 보여줄 생각이셨다.
“6번! 6번!”
그리고 그 일원 중 하나로, 내가 선택된 거였고 말이다.
‘오늘은 난 이거라도 잘 해야 해.’
지금 폼이 망가져 있어서 러닝 크로스도 조금 감각이 안 좋은 상태지만, 지금은 정지상태 크로스다. 그나-마 좀 정확도가 덜 망가져 있다.
자, 일단.
[이준혁 선수, 코너킥을, 짧게 넘겨줍니다!]
오케이, 자, 동언이가 공을 받으니 따라나오는구나. 하지만.
[아, 그런데 다시 넘겨주네요!]
자, 이제 진짜다. 이놈들아.
동언이는 미끼고, 진짜는 흥빈이가 달릴 공간을 만드는 거라고.
[손흥빈! 달립니다!]
계획대로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에서 딱 스루 패스 해 주면서 흥빈이한테 주면 약속된 움직임이지만···’
이라크 놈들, 기본이 안 되어 있구나? 저기를 왜 비워.
-뻐엉.
순간적인 비 대칭.
그리고, 순간적으로 빈 중앙.
너무나도, 넣기 쉬운 찬스다.
[아, 기성룡~! 기성료옹-!]
-떼엥.
[아아아아! 아, 아쉽습니다. 골대에 맞았습니다!]
[세컨 볼을! 급하게 이라크 쪽이 쳐냅니다! 한국의 스로인.]
[아, 좋은 찬스였는데, 아쉽군요.]
아 놔, 젠장.
“어, 준혁아,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네.”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뭐. 이건 약속 안된 움직임이었으니까요.”
쩝,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시대를 지배하는 월드클래스 공격수도 완벽한 찬스 두 번 중 한 번은 놓치는 법인데 약속되지도 않은 움직임이었으니.
“그래도, 아주 좋은 판단이었다. 이거 연습 한번 해 보는 거 어떠냐? 흥빈이 움직임에 저렇게 팔리는 거”
“글쎄요. 감독님한테 이야기해 보고요.”
정규적으로 써먹기엔 글쎄, 애매한 세트피스다.
저게 되기 위해서 일단 동언이가 위협적인 공격수라고 인식되어서, 상대편 수비수 두 명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이 흥빈이라는 이름값에 지레 겁먹고 중앙을 비운다는 바보같은 선택을 해야 하니깐.
‘휴우- 그래도, 연습한 걸 보여주긴 했다. 계속 코너킥 찰 수는 있겠네.’
아버지한테 자신있다는 말투로 말한 것 치곤 별로 좋은 활약까진 아니였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내 저점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찾아서 다행이다.
‘에휴. 아직 100% 주전을 주장하기엔 아직 채워야 할 점이 많구나.’
지금 내가 보여주는 모습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직 반 시즌 반짝이니 말이다. 그리고 한 시즌 반짝은, 내 포지션 경쟁자인 김진우도 해 봤다.
‘더 상위 리그인 분데스리가에서. 말이지.’
그리고 김진우 저 친구, 올해 전북에서 프리키커로 벌써 2골이나 넣었다. 세트피스 면에서도 오히려 나보다도 더 써먹을 구석이 많다는 거다.
‘뭐, 흥빈이가 프리킥을 잘 차서 2순위이긴 하지만.’
하여튼 지금 당장은 유럽에 가는 내가 주전 자리를 밀어내긴 했지만, 조금만 주전에서 멀어지는 순간 저 친구가 나를 밀어낼 수도 있다는 소리다.
‘주전이란 자리는, 한 가지로만 정해지는 게 아니니까.’
내가 에브라를 밀어내는 게 에브라의 인기 때문에 훨씬 어렵듯이.
내가 저 친구를 밀어내는 것도, 아직은 의견이 팽팽하다.
한국 국가대표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어린 선수에게 힘을 더 실어줘야 한다는 등, 아직 유럽에서 주전도 아닌 선수에게 대한민국의 왼쪽 풀백을 맡기는 게 말이 되냐는 등등의 의견도 꽤 많다.
‘내가 지금것 대표팀에서 거의 뛰지 않았기에 불거지는 팀합 문제도 있고 말이지.’
왜냐고? 저기 저-4번.
“민제야, 너는 내려가라. 스로인이라서 득점 날 확률 크지 않거든. 역습 대비해.”
“예, 형님.”
대한민국의 역대급 센터백으로 평가받으면서 K리그를 씹어먹고 있는 민제라는 놈 때문이다.
‘경주 한수원에서 봤을 때도 물건이라고 생각했지만. 뭔 벌써 국대까지 올라오냐.’
그리고 저 놈이 전북에서 뛰어서 그런지, 훈련 때도 나보다 진우랑 할 때 훨씬 더 편하게 느끼고 있다.
그만큼, 주전은 그냥 내가 평범하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였다.
당장 오늘 오른쪽 윙어만 봐도 보인다.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뛰면서 시즌 16골이란 엄청난 활약을 보인 황의찬, 그 친구가 오늘 오른쪽 윙어로 투입되지 않고.
이번에 벨기에로 가서 11경기 1골 1도움으로 아직 살짝 허우적거리고 있는 창운이가 투입되었고,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실력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가 주전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 감독의 전술, 잘 하는 선수와의 팀합 등을 맞출 수 있는 선수가 주전으로 기용되고. 결과를 낸다는 거다.
‘에휴- 진짜로 건방졌던 소리였지.’
막말로 메시조차 다른 선수들이 그의 적은 활동량을 커버해줄 전략이 없으면 팀이 개판되기 일쑤인데 내가 뭐라고 툭 주전을 확답할 수 있었던 건지. 쳇.
‘···뭐, 그래도 이 자리, 줄 생각은 없다.’
마르세유에서 완벽히 주전으로 자리잡는 것만큼이나.
나에겐 국가대표라는 꿈은, 항상 바래오고 또 바래오던 자리니까.
“자! 자! 그럼 아직 우리 공격입니다! 집중! 집중하자! 내가 던진다. 흥빈아! 넌 들어가 있어!”
그러니- 이 세트피스든 뭐든 간에. 탐욕스럽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배우고 또 배워서.
오늘같은 날이 잘 일어나지 않도록.
일어난다면,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더 알아내서.
일년 내내 뛰어도 슬럼프가 슬펌프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나의 저점을 올리는 방법들을 이번 대표팀에서 얻어가고야 말겠다.
***
<2017년 6월 A매치 평가전>
[경기 종료]
이라크 0: 1 대한민국
[골]
이라크 : (없음)
대한민국 : 지동언(47)
***
<신태영 감독, 권창운, 이준혁의 활약에 만족해··· '계획한 대로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