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5/167)

귀국 (2)

<신태영호, 6월 이라크-카타르전 명단 발표>

지난 3월, 경질된 슈틸리케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한 신태영 감독이 5월 22일 서울 신문로의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5명의 6월 A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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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차전 명단

GK

권태순(가시마 앤틀러스), 김승구(빗셀 고베), 김진연(세레소 오사카), 조현우(대구 FC)

DF

장연수(광저우 R&F) 홍정오(장수 쑤닝) 김인혁(사간 도스) 김민제(전북 현태) 김창수(울산 현태) 고요한(FC 서울) 김진우(전북 현태) 이준혁(마르세유)

MF

기성룡(스완지 시티) 이영주(알 아인) 한국형(알가라파) 이창인(제주 UTD) 이제성(전북 현태) 남희태(레퀴아 SC) 이청룡(크리스탈 팰리스) 권창운(스탕다르 리에주) 손흥빈(토트넘 훗스퍼)

FW

지동언(아우쿠스부르크) 황의찬(잘츠부르크) 이근오(강원FC) 주민구(상주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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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은 오는 29일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소집된 뒤, 내달초 아랍에미리트(UAE)로 출국해 두바이에서 이라크와 평가전을 치르고, 13일에는 카타르와 월드컵 최종예선 8차전 원정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고려스포츠 OOO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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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5월 25일.

-Ladies and gentlemen, you may soon deplane through the front door.

“흐아아아암··· 아, 벌써 도착했네.”

짐은 목배게 하나 빼곤 안 챙겼으니 바로 내리면 되겠네.

-When exit···.

“으그그그···”

후, 진짜 편하게 왔다. 확실히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이 다르긴 다르구나 다리도 쭉 펼 수 있고, 앉아서가 아니라 누워서 잘 수 있다니.

‘게다가 기내식도 참 차원이 다르다.’

그냥 뭔가 사료 처먹는 느낌의 이코노미 클래스가 아니라. 진짜로 뭔가 제대로 된 음식 먹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공짜였다.

“···국가대표라는 이름이, 참 크긴 크다.”

그래, 이번 6월. 이라크와의 평가전과 시리아와의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에. 나는 다시 국가대표로 선발되었고.

덕분에 이렇게 한 300만원이 넘는 비즈니스 클래스 비행기를 돈 한 푼도 안 들이면서 복귀할 수 있었다. 6월 내내 시설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은 건 덤이고.

‘뭐, 국가대표에 한 번이라도 뽑히면 파주에 가서 시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게 공식이긴 하지만···’

난 아직까진 진짜로 한 경기만 뛴 선수라서 조금 꺼려졌는데, 다행히 통했다.

‘자, 자 이젠 빨리 캐리어 있는 곳으로 가서 짐이나···’

까똑-!

‘도착하기가 무섭게 카톡이네.’

뜨른- 하는 왓츠앱 메세지가 아니라, 카톡 메세지가 오다니.

“왔구나- 왔네.”

진짜로 돌아왔다.

톡톡.

-뚜루루

-준혁이냐?

“예, 아버지, 저 이제 짐 찾는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디세요?”

그래, 고작 4개월 만이긴 하지만.

-↑ 짐 찾는 곳(Baggage Claim)

오랜만이다.

그리웠다. 한글아.

그리웠다. 대한민국.

-*-*-*-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으어어어.

“으으으음-!”

김치다 김치. 손으로 찢어먹는 딜리셔스한 김치. 퍽 예.

“더 있으니 천천히 먹어라, 이 녀석아. 누가 안 뺏어먹어.”

지당한 말씀이시지만, 그럼에도 내 숟가락의 속도가 줄어들지가 않자 아버지는 조금 헛웃음을 지으시면서 한 마디를 던지셨다.

“그렇게 한국 음식이 그리웠냐?”

아, 그래도 대답은 해야겠지.

“예, 솔직히 외국에 나가서 아이라잌 김치 외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됐는데, 나가보니깐 이해가 되더라고요.”

진짜 맛있어서 눈물이 나온다. 눈물이.

넘나 맛있어.

“그래, 사골에 김치뿐이지만 이게 맛있다니 다행이구나. 많이 먹거라.”

“예예.”

그렇게 아버지와의 감동의 해후인지. 아니면 김치와의 감동의 해후인지 애매한 만남이 약 세그릇 정도 비워지고 나서야. 좀 제대로 된 대화를 아버지와 나눌 수 있었다.

“요즘 어떤 사람이 나한테 축구 선수 교실 한번 해볼 생각 없냐고 물어보더구나.”

“예? 아버지한테요?”

“그래.”

그건 또 뭐야. 미친 놈아. 아버지는 리틀야구 감독이라고. 이미 웬만한 유소년 축구교실 하는 것보다는 벌이 괜찮으신데 왜 굳이 그 쪽으로 가겠냐.

“그리고 또 돈 빌려달라는 소리도 어찌나 많은지.”

“하, 저 연봉 별로 못 받는다는 소문 나지 않았어요?”

“그래도 뭐 뒷돈 같은 거 있지 않느냐, 뭐 그런 식으로 나오던데. 하하.”

와, 시발.

이거 아버지 전화번호 구하기가 쉬우니 돈 많이 벌지도 못 했는데도 별의별 미친놈들이 몰려오는구만.

“아버지, 폰 두개 쓰세요. 제가 선물해드릴게요.”

“됐다. 됐어.”

“······”

음, 알아서 사야겠구만. 비싼 놈으로다가.

“행여나 너 사지 마라.”

···어떻게 아셨지?

“니 생각이야 뻔하지 않겠냐. 사도 내 돈으로 산다. 이 아버지가 아직 그 정도 능력은 있어.”

음, 그렇군요.

“그러니까. 핸드폰 대리점 같은 데 가서 사올 생각일랑 하지 마라.”

“···예.”

“그래, 잘했다.”

예, 대리점에선 안 사겠습니다.

-톡톡.

인터넷으로 주문할게요.

그렇게 세상의 대부분의 아들이 그렇듯 아버지 말 안 듣는 전형적인 자식의 표본으로서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고 있던 찰나.

“그래, 그럼 넌 힘들던 일은 없었느냐?”

아버지가, 꽤나 마음속에만 쌓아두던 주제를 꺼내주셨다.

하하, 없었냐고요?

“많죠, 어어엄청 많았어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하.

“일단 한국말 못 하는 게 너무 짜증나요. 진짜 프랑스어로 말하려고 할 때마다 제가 잘못 말하지는 않았는지, 발음이 이상하진 않은지, 문법은 제대로 표현됐는지 항상 생각해야 하고, 진짜 너무 스트레스에요.”

“아 그리고 또 밤에 못 나가는 것도 너무 짜증나요. 한국에서는 밤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원하면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여긴 그러다간 진짜로 사고 날 것 같더라고요, 무슨 이상한 냄새나서 한 번 가 봤는데, 알고 보니깐 그게 대마초 냄새 나는 곳이었던 적도 있고···”

“인종차별은, 정말 숨 쉬듯이 그냥 당하고 있더라고요. 칭키는 그냥 일상이고, 니네 나라로 꺼지라는 소리도 은근히 자주 듣고, 나중에서야 그게 인종차별이라는 걸 아는 경우도 엄청 많았아요. 그리고 경기장에서도 그냥 심판 안 보이잖아요? 그럼 그냥 툭 지나가듯이 말하고 다녀요, 씨발. 좆도 아닌 새끼들이.”

“아, 그리고 경기도 참 할 때마다 매번 스트레스에요, 솔직히 아직까진 운이 좀 좋기도 했는데, 진짜 한 번 한 번 경기할 때마다 온 힘을 쏟아붓지 않으면 바로 버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더라고요, 진짜.”

“어, 그리고 요즘은 좀 이상한 고민거리도 생겼어요. 저한테 잘해주는 놈이 있는데, 왜 잘해주는지는 모르겠는 녀석 하나도 있고···”

그렇게, 참 많은 말들이 입 밖으로 나왔지만. 묵묵하게 듣던 아버지는

“그래. 그렇구나.”

그냥 웃으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시고, 한 마디를 내뱉으셨다.

“그래도, 잘 지내고 있나 보구나.”

그리고 그 말에, 나는 불평을 털어놓다가도.

“예, 재미있어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정말 수많은 거지같은 점들이 넘쳐나고, 갈 길이 멀고.

또 넘어야 할 길이 정말 많이 남았음에도-

하루하루 발전하고 있다는 충만감은, 모든 것을 떨쳐버릴 수 있을 정도로 달콤했으니까.

“그래, 외국 가서 연락도 없고 걱정했는데, 잘 지내서 다행이다.”

“하하,그래도 아직 잘 지낸다는 소리를 하기엔 멀었어요. 솔직히 아직 프랑스어도 너무 미숙하고, 주전 자리도 위태위태한데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으레 그렇듯이.

“그래도, 웃고 있잖느냐. 그러면 그 과정까지도 지금은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니까. 잘 지내고 있는 거지.”

굉장히 경제적으로 내 입을 다물게 만드셨다.

“···하하, 그렇네요.”

나도 아버지 아들인데 왜 저렇게 몇 마디로 사람이 할 말 없게 만드는 방법은 모르는 걸까. 저런 건 좀 배우고 싶네.

“하여튼, 그래서 바로 파주에 들어가겠다고?”

“예, 일찍 들어가도 상관 없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좋다고 했다. 안 그래도 이번에 일찍 선수들을 부르는 이유가 팀 합을 맞춘다거나 하기 위해선데, 빨리 오면 빨리 올수록 좋다고.

“음, 너무 급한 거 아니냐? 조금 더 쉬었다가 가도 좋을 텐데.”

“아,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시즌은 진통제 한 번도 안 먹어도 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았거든요.”

별로 출전을 안 해서 말이지.

“···뭐,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럼 6월달은 계속 한국에 있을 생각이냐?”

“아, 그건 또 아니에요, 국대 일정에 참가는 해야죠. 경기도 뛸 테고.”

6월 8일에 이라크랑 경기할 때 두바이로 가고, 14일에는 카타르랑 할 때 도하로 가야 하니까. 정말로 훈련에만 집중할 시간은 한 2주밖에 안 남긴 할 거다.

‘그래도, 2주간 국가대표팀 시설을 마음껏 공짜로 쓸 수 있다는 게 어디야.’

팀을 전담하는 코칭스태프까지 쫙 달라붙어 있는데.

그러니, 나를 비롯한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은 대부분 한 달간 서로 부대끼면서 다 파주에서 같이 훈련하게 될 꺼다.

‘K리그나 J리그 선수들은 시즌중이니까 어쩔 수 없이 2주만 있다가 헤어지겠지만.’

쩝, 아쉽다. 아쉬워. 반가운 얼굴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하고 2주밖에 못 떠든다니. 아쉬워라.

“···못 뛸 걱정은 전혀 하지도 않는구나. 주전으로 뛸 자신은 있는 거냐?”

“아, 그야 당연하죠.”

솔직히 경쟁이야 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왜 못 뛰겠냐.

아직도 솔직히 갈 길이 멀기야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발전했어요.”

국가대표팀 주전 풀백은 이제 내 꺼라고 선언할 정도까지는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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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엉.

“오.”

-예에쓰-! 나이스! 역시 우리 흥빈이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감독님, 저거···”

“나도 눈 있다. 찔러주는 타이밍이 예술이구나.”

이준혁, 저 친구. 마르세유라는 빅 클럽으로 가는 바람에 주전으로 뛰지도 못하고 폼이 확 떨어질까 봐 걱정 좀 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구만. 아주 훌륭하게 커줬어.’

몸싸움도 몸싸움이지만 올라가는 움직임이라던지, 롱 킥을 찔러주는 타이밍같은 것들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좋아졌다.

‘괜히 그 에브라가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밀린 게 아니구만.’

단 반년 만에, 저렇게나 달라지다니.

“참 요즘 애들은 성장이 빨라.”

그 말을 들은 코치들은, 신 감독을 조금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감독님, 준혁이 저 친구는 스물아홉입니다.”

“아 참, 그렇지? 얼굴도 그렇고 작년에서부터야 본 녀석이다 보니, 볼 때마다 나이가 들었다는 걸 깜빡하게 된단 말이야. 하하.”

덕분에 머쓱해진 신 감독은, 화제를 빠르게 넘겼다.

“K리그 선수들 중, 어제 경기에서 부상당한 인원도 없고, 아주 잘 풀려나가고 있군. 좋아. 내일 훈련 준비는 잘 되어 있나?”

“예, 훈련 일정을 다 짜놨습니다.”

-짝.

“좋아. 그럼 모든 선수들이 모이는 즉시 예정대로 세트피스 순번을 새롭게 정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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