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1)
2017년 05월 23일
<마르세유, 4위로 시즌 마무리, 절반의 성공> - L'Équipe
<고미스와의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마르세유는 새로운 스트라이커를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RMC Sport
<마르세유, 기존 선수들 재계약 협상 시작.> -Infosport+
<마르세유 B팀의 사이드백 Julien Da Costa는, 마르세유의 프로 계약을 거절했다.> -La Provence
[독점] 크리스탈 팰리스의 스티브 만단다는 마르세유와 최종 협상에 돌입했다. - GF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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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7 시즌의 리그 1 38라운드는 끝나면, 선수들은 모두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지지만, 리그가 끝났다고 해서 시험 끝난 학생들처럼 바로 개인행동으로 빠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선수들끼리 끝나고 바로 여는 쫑 파티, 그리고 구단에서 공식적으로 여는 해산식 등등의 일정이 끝나야만 ‘공식 일정’ 이 완벽하게 끝이 나는 거다.
그리고 그 해산식에서. 우리는 다들 좁은 장소에 모여서 쇠공을 던지고 있었다.
-탁!
“[좋아-! 파예, 나이스! 나이스입니다!]”
“[훗, 내 뻬땅끄(Pétanque) 실력은 아직 죽지 않았군.]”
빼땅끄라고.
꼬쇼네인지 뭔지하는 작은 공을 하나 가져다 놓고, 그 근처로 쇠공을 떨어뜨려서 그 공에 가장 가까이 던져놓은 사람이 점수를 따고, 둘 중 누군가가 일정 점수에 먼저 도달하면 이기는 프랑스 전통 게임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솔직히, 그냥 맨바닥에서 하고 과녁이 움직이는 컬링이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그럼, 리, 네 차례다!]”
“[예에.]”
“리! 지면 안 돼! 지면 오늘 하루종일 저 인간들 서빙해야 한다고!]”
휴, 가슴이 울렁거린다.
“[빨리 해-!]”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언제나 나를 배신한 적이 없던 내 손을 믿자.
내 손은 그 무엇보다 정확하니까.
‘하나, 둘, 하나, 둘.’
-휘잉.
오른쪽 옆으로 바람이 부니까. 이것까지 감안해서!
-따악.
“에이, 에이, 에이, 에이- 예에에-쓰!”
아싸, 이겼다!
“[뭐야, 씹, 졌다고?]”
“[···이건 꿈이야. 꿈이라고!]”
“[크크, 승부는 났어! 이 녀석들아! 자 파예, 빨리 와인 가져와요! 오늘 하루종일 하인인 거 알죠?]”
그 난리 가운데서 파예는 잠시 침묵하다가.
“[···흠, 흠, 봐 준거지. 리는 우리나라 문화에 익숙하지 않잖아? 그러니 잘 적응하라는 의미에서···]”
윗 사람이 승부에서 졌을 때 하는 전형적인 변명을 시작했다.
“[우우, 혓바닥이 길다. 우우.]”
“[차기 주장이라면 한 말에 책임을 가져라!]”
물론 전형적인 변명이 그렇듯이 씨알도 안 먹혔지만.
“[아, 그런 거였어요? 그렇구나. 에이, 하긴. 제가 이기는 게 말이 안 돼죠.]”
내 윗사람의 변명은 아무리 뻔해도 겸허히 덮어 줘야 하는 법이다.
“[와, 리, 차기 주장이라고 그렇게 감싸주는 거 있어?]”
“[맞아. 리. 여긴 프랑스, 마르세유라고! 추하게 변명이나 하는 권력자는 모가지가 썰려야지. 주장 완장 반납해라! 우우.]”
음, 뭘 모르는구나. 이 녀석들. 어려서 그런가.
‘나라고 여기에서 나도 파예를 더 놀리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냐. 이놈들아.’
자고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윗사람 놀려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개꿀잼인 건 진리다.
하지만 자고로 왕의 모가지를 자른 빠게트 놈들과는 다르게 먼 옛날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렸던 곳에서 자라난 트루-한국인으로서 어찌 그런 무도한 짓을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군대라는 곳에서 윗사람의 변명을 너그러이 받지 못하는 놈은.
“[반납해라! 반납- 으어어억!]”
괜히 한 대 더 아프게 맞는 법이라는 걸 DNA에 새긴 한국인 남성이 말이다.
“Hah, Il vaut mieux plier que rompre?”
“[···세르티치, 그건 또 뭐야?]”
“[꺾이는 것보다는 굽히는 게 낫다는 속담이야. 리.]”
음, 아주 적절한 표현이긴 하네.
“[그건 그래도 너 진짜 잘 하던데? 리. 너 진짜로 뻬땅끄 처음 해본 거 맞아?]”
“[뭐, 규칙이 어려울 것도 없잖아. 그리고 난 뭘 손으로 던지는 건 꽤나 잘 하는 편이라서.]”
그래서 소올직히 야구를 해 볼까 한 적도 있지만. 머리에 야구공 한 방 맞고 난 이후로 살짝 트라우마 생겨서 그만뒀었지.
“[하하, 이렇게 뻬떵끄에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 한국에 있었다니. 뻬떵끄 선수로 전업해볼 생각은 없어?]”
“[한 달에 십만 유로씩만 주면 생각해 볼게. 하하.]”
“[이런, 그런 돈은 없으니 사양할게.]”
그렇게 까불다가 한 대 괜히 맞은 어린놈들과는 다르게, 물에 물 탄듯 자연스레 넘어간 우리들은 그렇게 실없는 소리들을 하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이야- 스페인 음식까지 아주 잘 차려졌네. 포요 알 아히오에, 엠파나다에. 마음에 드는데?]
-[푸핫, 블랙 푸딩도 있네.]
나는 난생 처음 보는 요리의 향연에, 조금씩 조금씩 덜어내면서 맛을 보기 시작했다.
‘블랙 푸딩은, 이게 어딜 봐서 푸딩이지? 이건 완전 피순댄데.’
푸아그라 같이 운동선수에게 엄청나게 해로운 식사는 차려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대한 기름지고 다양한 음식들이 잔뜩 준비되어 있어서 나름 재미있게 식사를 즐기던 도중,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딱 사람 수에 맞춰서 테이블을 놨다고 들었는데도, 빈 자리가 좀 보이네.’
미리 공지도 해 뒀고, 시즌이 끝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모르고 어딜 갔을 리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 말인즉슨.
“[···세르티치, 여기에 안 온 사람들은, 사실상 내년에 못 볼 꺼라고 생각하는 게 좋겠지?]
“[뭐, 바뀔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보는 게 속 편하지.]”
“······”
그 말을 듣자, 나는 입이 텁텁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조용히 들고 있던 생과일 주스를 입 안에 털어넣었다.
빈 자리에는.
-Gomis
우리 팀의 저번 시즌 주장이자, 최다 득점자도 속해 있었으니까.
‘참 냉정하다. 그래도 팀 내 최다 득점에 리그 득점 3윈데, 주급이 안 맞아서 저렇게 원 소속팀으로 돌아가 버리다니.’
그리고 그 중에선, 내가 본 팀원 중에서 꽤나 훌륭한 편에 속하는.
“[레킥도 안 나왔네?]”
“[출전 시간에 불만이 있었다고 들었어.]”
유망주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즌이 끝나고 고작 사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구단의 소속원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세르티치나 나는 그런 점에선 좀 거리가 멀다는 거이려나.’
보통 유럽 축구에서는 재계약을 보통 계약 1년이 남았을 때나, 자유계약으로 풀리기 전에 제시하지만.
우리 둘은 둘 다 계약이 2년 이상 남아있는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이적 요청을 할 리도 없었다. 시즌 말로 갈수록 출전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는데 왜 불만을 가지겠는가.
다만 그래도 예외는 있어서.
“[리,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줄 꺼야?]”
“[뭔데.]”
“[넌 재계약 제안 받았지?]”
“[···뭐, 오긴 왔지.]”
나한테는 재계약 제안이 왔다.
재계약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연봉인데, 세르티치와는 다르게 그 연봉이 나는 꽤 낮은 편이었으니. 구단이 부담없이 재게약을 요청해 온 거였다.
‘뭐, 물론 월급으로 따질 경우에 월 2천만원이 무조건 넘어가는 금액은 K리그 기준으로는 꽤 고연봉자지만···’
글쎄, 이 금액은, 마르세유에게 있어서는 큰 부담이 되는 금액은 아니다. 1군 멤버 중에서 꼴찌에서 세네번째 정도인 수준의 계약이니까.
그래서인지. 마르세유는 이번 시즌이 끝나자마자 나에게 계약을 걸어 왔다. 1년 계약 연장에, 연봉 거의 두 배라는 조건으로.
‘고작 반 시즌 괜찮은 모습이었는데도 이렇게나 대우가 달라지다니, 참.’
참 세상 요지경이다.
“[사인 할 거야?]”
“[···글쎄, 거기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 안 하고 있었어가지고.]”
물론 난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바로 수락하자고 했지만.
-아니요, 더 받을 수 있습니다. 좀 기다려주세요.
에이전트님이 그렇게 말하면서 최소 베디모의 절반은 받아내야겠다고 하시던데. 솔직히 그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 연 10억이 넘는다는 소리잖아.’
그래서 솔직히 그 협상은 그냥 에이전트님한테 맡겨버렸다. 내가 손댔다가는 어떻게 될 지 예상을 못 하겠어서. 전문가한테 맡겨야지.
“[그렇구나. 그럼 리, 너는 그동안 뭐 할꺼야?]”
“[뭘?]”
“[우리 전지훈련 전까지, 시간이 좀 남아있잖아.]”
“[아.]”
세르티치의 그 말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마르세유의 여름 전지훈련은, 6월 말에 시행된다. 그렇기에 선수들에게 이제 한 달 정도의 개인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셈인데.
그 시간동안 뭘 할 건지를 물어본 거다.
“[네 성격상, 그 시간동안 뻔히 쉬진 않을 것 같아서 말이지.]”
“···아, 하하하···”
세르티치 이 녀석, 날 너무 잘 아네.
“[맞지?]”
“[그래, 이미 훈련 계획을 짰어, 6월이 되자마자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할 거야.]”
그랬다. 뭐 내가 풀타임으로 선발출전했으면 모르겠지만, 나름 출전이 에브라랑 배분하면서 하는 정도였으니 몸이 크게 지쳐있는 상태도 아니었고.
덕분에 이번 구단주 파티만 끝나면 바로 훈련에 돌입할 생각이었다.
“[역시나구만, 그럼 리, 혹시 나도 같이 훈련할 수 있을까?]”
“[어? 같이?]”
그런 내 의문에, 세르티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래, 단독으로 훈련하는 것보다는 둘 셋이 같이 하는 게 더 낫잖아, 그리고 네가 구할 수 있는 트레이너는 조금 한계가 있을 거고.]”
“······”
저 말이 맞다. 내가 아무리 프랑스에서 열심히 훈련하려고 해도 좋은 훈련장소까진 구할 수 있어도. ‘엄청나게 좋은’ 트레이너까진 구하기 좀 힘들다.
그런 트레이너는 돈도 돈이지만, 인맥이 엄청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니까, 나랑 6월달에 같이 훈련하자, 나도 다음 시즌은 독하게 마음먹고 제대로 준비할 생각이거든. 네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
“[······?]”
그 제안을 듣고,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한 사람이 인맥을 소개시켜주겠다는 건, 정말 많은 의미를 뜻한다. 소개시켜줬다가 서로가 별로라고 생각한다면 둘과의 관계가 모두 나빠질 수도 있고, 이런 인맥 하나하나가 운동선수에겐 재산이기에.
본인이 생각하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신뢰 관계를 굳건히 쌓은 사람에게나 이런 인맥을 소개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이건 놀랄만한 소리였다.
이 말은, 세르티치는 나를 평범한 동료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었으니까.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지?’
내가 세르티치의 호감도를 쌓을 뭔가를 한 적이 있었나?
‘아마도, 이건 정말 진지하게 한 번 정도는 알아봐야 할 것 같네.’
하지만 지금은.
“[고맙지만, 거절할께.]”
“[···? 왜?]”
일단은, 거절해야 했다.
정말 좋은 제안인 것은 맞고. 솔직히 이 제안도 엄청 끌리긴 하지만.
“[이미 구했거든.]”
“[···벌써?]”
“[그래, 이미 구했어.]”
“[어디에서?]”
어디긴 어디야.
“[국가대표팀에서, 6월 내내 있어도 좋다고 허가를 받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