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2화 (162/167)

jeu dénué de sens (7)

-삐이익-!

***

[début du jeu]

Marseille 0 : 0 Bastia

***

[아, 마르세유의 포지션이 오늘따라 조금 특이하군요?]

[예, 원래 저 자리에 마르세유는 로페즈 선수를 집어넣었었는데, 오늘은 풀백에서 뛰고 있던 리 선수가 투입되어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음··· 아마도 다음 시즌을 대비하여 실험을 해 보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나온 이적설대로 흘러간다면, 마르세유는 다음 시즌에 중앙 미드필더를 구해야 할 테니까요.]

[그렇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풀백과 중앙 미드필더는 엄연히 다른데, 무모한 시도가 아니었을까요?]

물론 K리그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뛴 적이 있었지만, K리그에 대한 기록따윈 볼 생각이 없었던 프랑스의 해설진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연한 게 뭐하러 굳이 아직 완벽하게 주전도 아닌 선수를 과거까지 파 가면서 파악한단 말인가. 그럴 시간에 프랑스 내 인기 스타 선수의 가십거리나 더 파고드는 게 이득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사실, 아주 못해볼 생각까진 아닙니다. 점점 풀백과 중앙 미드필더는 굉장히 요구하는 능력이 많이 겹치니까요.]

이런 일은 아예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이 상황에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당장 현 시대에서 가장 뛰어난 풀백 중 하나였던 필립 람이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해서 좋은 평가를 받은 적도 있고, 영국에서는 리버풀의 제임스 밀너가 이번 시즌 주 포지션이 중앙 미드필더였음에도 풀백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풀백과 중앙 미드필더는 유사성이 많습니다.]

그랬다. 현대 축구에서 넓은 시야. 능숙한 공격과 수비의 전환. 거기에다 좋은 축구 지능을 요구하는 것까지 풀백과 중앙 미드필더는 서로 꽤나 많이 닮아있었기에.

최근 들어 이런 식으로 풀백과 중앙 미드필더 두 개를 왔다갔다 하는 선수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한 번쯤 실험해보는 건, 해 볼 만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해 볼 만한 생각이라는 건.

[다만 좋은 생각이라고 묻는다면, 거기에 답하기는 저도 고개를 좀 젓고 싶긴 합니다.]

일반적인 생각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돌고 돌아 해설자님도 같은 의견이시군요, 왜죠?]

[간단합니다. 비슷하긴 하지만 같진 않으니까요. 마침 리 선수가 볼을 잡았네요, 저기 보시죠.]

그 순간, 중계화면에 패스를 받은 23번의 마르세유 선수에게 미친듯이 달려드는 상황이 벌어졌다.

[예, 중앙에서는 저렇게 압박하는 상황이 측면보다 훨씬 더 자주 나오지만, 그 상황에서도 볼을 간수하고 앞으로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

수비하는 쪽 입장에서는 중앙에서 볼을 전개하지 못하도록 빼앗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수비고, 공격하는 쪽 입장에서는 중앙에서 볼을 빠르게 찔러넣는 것이야말로 최고로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리 선수는 그 면에서 좀 부족합니다. 피지컬이 로페즈 선수보다 약한 정도는 아니지만, 볼 터치가 그 선수에 비하면 훨씬 둔탁하니까요. 로페즈 선수가 맡고 있던 빠른 공격 전개 속도가 느려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느려진 공격 전환 속도는. 상대편에게 시간을 주게 되고.

[그 말은, 밀집된 수비진을 뚫기가 한결 더 어려워진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상대가 재정비할 시간을 줘 버리게 되니까요.]

결과적으로는 골을 넣기가 힘들어지게 만든다.

[솔직히 그래서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조금 의문이 듭니다. 리 선수는 이미 풀백으로서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 줬는데 굳이 저기에 가져다놓을 필요가 있는지 말이죠.]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마치 도돌이표처럼 다시 한 번 23번이 볼을 받았지만 압박오는 선수들에게 밀려나는 모습이 반복되는 모습을 보며 해설은 작지만 뚜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저 선수는, 풀백으로 쓰는 게 훨씬 이득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

-투욱.

아 시발, 또 트래핑 살짝 길었다. 제발-

-퍼억.

“악!”

아 미친, 다리 노리고 슬라이딩 태클이냐, 이 새끼는?

-삐이익!

[주심이 휘슬을 부는군요, 파울입니다.]

[확실히, 조금 깊었어요.]

저기 심판님? 카드는요? 카드는 안 줘?

야 심판아. 진짜로?

[카드는 주지 않는군요.]

와, 진짜 안 주네 이 정도가 옐로우 카드도 안 주다니, 참 리그앙 거칠긴 거칠다.

그리고.

“Pardon(미안)”

“···je vais-(괜찮-)”

“Ching Chang Chong.”

“······”

숨쉬도록 나오는 인종차별 표현은 덤이구나.

야, 미안하다는 말과 칭챙총이 함께 쓰일 수 있는 말이냐?

‘에휴, 빌어먹을 새끼들.’

뭐, 맘대로 하거라.

“···어, 그래, Thank you. Europian chinese. pipi au lit.”

“······?”

길바닥에 오줌싸는 게 일상인 새끼들한텐 유럽짱개란 표현과 오줌싸개들이란 표현이 딱이지.

‘하아- 이건 그렇다고 쳐도, 역시 연습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공격에서는 로페즈만큼은 못 하겠다. 하하. 그 녀석과는 달리 엄청 뚝뚝 끊기네.’

후- 뭐, 어쩔 수 없나.

하긴, 중앙에서 공격적으로 움직임을 계속 가져가기엔 난 그만한 재능이 없다.

‘물론 로페즈에게 내 피지컬이 밀리는 건 아니지만, 공격수에게 필요한 건 피지컬이 아니니까.’

그래, 솔직히 모든 포지션 중에서 가장 피지컬이 덜 필요한 포지션은 공격수다.

물론 공격수도 피지컬이 좋으면 좋겠지만, 당장 머릿속으로 생각해 봐라. 키 작은 수비수와, 키 큰 공격수 중 어떤 선수가 더 많이 떠오르는지.

당연히 공격수다.

그리고 신문에서 안 뛰고 걸어다닌다고 까이는 선수들이 어떤 선수들인가? 정확히는, 체력이 없다고 까이는데도 항상 기용되는 포지션의 선수들이 누굴까?

이것도 공격수다.

공격적인 선수에게 피지컬은 물론 있으면 엄청 좋지만,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후순위라는 거다.

오히려 신체 능력보다는 오히려 좋은 볼 터치, 좋은 골 결정력, 골을 넣기 위한 좋은 위치 선정같은 기술 혹은 순간적인 판단이 생각하지 않고 나오는 것이 더 우선순위가 높다.

‘뭐, 그래도 5m에서 15m 사이의 초 단거리 스프린트는 빨라야 하겠지만.’

몸싸움 경쟁력도 없는데 그게 없으면 수비수를 못 따돌리니까. 이 정도는 있긴 해야지.

하여튼, 난 지금 그런 기술이 모두 평균이거나 평균 이하다.

스피드는 20m 이상의 영역으로 넘어가야만 빠른 편이고, 볼 터치는 아주 못 쓸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계 최고에 비하면 당연히 둔탁한 편이고. 페널티박스 내에서의 골 결정력은 없다고 봐야한다.

그러니까.

“[리, 괜찮아?]”

“[엉, 괜찮아. 세르티치. 뛸 수는 있어.]”

내가 18살에 바르샤의 입단 제안을 받는 그 친구를 완전히 대체하는 일 따윈, 불가능하다.

그런 공격적인 ‘재능’ 이 난 부족하니까.

‘뭣보다 패스적인 면에서, 내가 그 놈보다 발을 더 잘 맞출 수 없다는 것도 한 몫 하고.’

내가 뭐 신도 아니고, 3일 연습하고 저 친구들하고 발 잘 맞추는 건 힘들지. 그런 건 세계 최고 클래스의 선수들도 했다가 어맛 뜨거라 하고 매운 맛 좀 볼거다.

“[어-이, 상송?]”

“[리? 왜?]”

“[역시, 내가 로페즈 같은 움직임을 완벽히 재현하긴 힘들 것 같다.]”

뭐, 그래도.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게.]”

승리에 기여하는 방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은 천재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 것처럼.

이 축구장에서 천재가 아니라고 이 경기에서 뛸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고.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역시나, 그렇구만. 그럼 역시 훈련 때 보여줬던 것처럼?]”

“[그래.]”

우리나라 속담엔 이런 말이 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그런데 최근 들어서, 그리고 군대에서는 이 말이 이렇게 바꿔서 쓰이기도 한다.

몸이 좋으면 머리가 고생할 일 없다고.

그래, 머리가 조금 안 좋으면, 몸으로 떼우면 되는 거다.

‘물론 내가 피지컬이 로페즈보다 좋다고 해도 중앙에서는 여전히 약한 편이지만.’

한 가지를 명심하자.

중앙 미드필더의 근본적인 역할이 뭘까?

Pass & Move다.

그래. 패스가 부족하다면.

“[내가 많이 움직일게.]”

Move의 비율을 늘리는 거다.

-*-*-*-

현대 축구에서 4-3-3에서 역삼각형으로 짜여진 세 미드필더의 역할을 따져보면, 4-4-2와는 다르게 철저한 분업이다.

역삼각형 중 맨 밑의 한 명은 수비진을 보호하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그리고 위에 있는 두 명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은 전방으로 볼을 배급하고 침투하는 역할을.

마지막으로 남는 한 명은 그 사이를 이어주는 전형적인 중앙 미드필더를.

하지만- 4-3-3은 역사가 깊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쓰는 만큼 여러 가지의 조합이 있다.

예를 들자면,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일반적으로는 포백을 보호하는 데 집중하는 미켈렐레 같은 홀딩형 미드필더 선수를 원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피를로나 부스케츠같이, 수비진 보호보다는 불 전개의 기점이 되어주고 그러는 데 더 치중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도 있는 것처럼. 저게 꼭 지켜져야 할 정석은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전형적인 앞으로 찔러주는 패스를 노리는 로페즈와는- 좀 다르게 움직인다.

[바스티아의 역습입니다! 바스티아-]

[아, 이미 수비 블록이 두텁게 쌓여 있습니다!]

[이러면 뚫기가 힘들죠!]

[어, 리 선수, 로페즈 선수를 완전히 대체하는 느낌이 아니었나요? 로페즈 선수는 이렇게까지 내려오는 경우는 좀 드문데 말이죠.]

당황하네, 상대방도.

‘하긴 그렇지? 이런 움직임은 원래 로페즈가 하던 짓은 아니니까 말이야. 걘 보통 수비 상황에서 센터라인 위에 있었지.’

자 이제 측면으로 가렴, 어차피 여긴 이미 늦었어, 이 녀석아.

[측면으로 볼을 돌리다가- 아, 에브라! 태클로 공을 빼앗습니다! 바로 역습!]

좋아, 에브라, 나이스 태클. 공수전환 타이밍이구나.

-파앗

나도 달린다.

[아, 잠깐만요, 에브라 선수가 공을 잡는 동시에 중앙에서 리 선수도 동시에 달립니다!]

그래, 나는 로페즈만큼 공격적으로 볼을 배급해줄 수 있는 천재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더 수비를 할 수 있고.

그보단 좀 못 하긴 해도, 어설프게나마 패스를 할 줄도 안다.

그리고, 풀백이기에 그 누구보다 급격하게 빠르게 전력으로 달리는 데 익숙하고, 동시에 어느 정도 공수변환에도 익숙하다.

그러니까. 내가 움직이는 움직임은, 로페즈처럼 볼 배급을 공격적으로 해주는 어드밴스드 플레이메이커(Advanced Playmaker) 가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에서 Move의 비중을 가장 높인.

[리, 선수, 로페즈 선수와 같은 움직임이 아니었군요?!]

우리 팀 골대에서 상대 팀 골대까지 쉬지 않고 뛰기에, 페널티박스에서부터 상대편 페널티박스까지 달린다는 이름을 붙이게 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입니다!]

Box to box.

활동량을 극대화한 미드필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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