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1화 (161/167)

jeu dénué de sens (6)

2017년 05월 20일.

하하하하하. 시발.

“···.아. 씨발. 나 바본가?”

이거 뭐야.

-DROIT AU BUT

-Centre d'entrainement Robert Louis-Dreyfus

“···나도 모르게 그냥 오늘 훈련장으로 와 버렸어어어···”

오늘은 홈 경기를 하는 날이니, 그냥 홈 경기장으로 출근해야 하는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평소처럼 굴다 보니 이렇게 훈련장으로 와 버렸다. 하하.

‘와 진짜,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오네, 푸흐흐. 이거 내가 알기론 완전 반대편인데.’

그래도 웃음으로 끝날 수 있는 이유는.

“에휴- 아무 생각 없이 일찍 나오길 잘 했네.”

다행히. 경기가 있는 날의 출근 시간은 경기가 없는 날의 출근 시간보다 훨씬 늦다는 거다. 덕분에 아직 시간이 30분 정도는 남아 있었다.

“어디 보자··· 웨이즈로 보니깐 늦어도 20분이네? 좋아. 여유 만만까진 아니어도 안 늦기에는 충분하네.”

그렇게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주차장으로 가서 차 시동을 킨 나는.

-nos prochaines nouvelles···

“음, 음, 다음 소식이라고 하는 거 맞지?”

라디오를 틀며 엑셀을 밟기 시작했다.

그래, 라디오.

원래 차 속에서는 난 노래를 듣고 다녔지만. 여기로 오고 나선 어떻게든 프랑스어에 뇌를 절이려고 노력하다 보니 차 안에서 노래를 듣기보단 라디오를 듣는 경우가 많아지게 됐다.

‘그리고 프랑스는 뉴스 들으려면 라디오가 오히려 더 낫고.’

이게 좀 놀라웠는데, 프랑스는 최소한 아침에는 뉴스 들으려면 라디오 트는 게 더 나았다. 티비는? 홈쇼핑 광고나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내가 알아듣기 힘든 드라마 틀어대고 있었고.

‘뭐, 인터넷 신문은 우리나라처럼 네이버 통해서 다 볼수 있는 게 아니라 사이트 들어가서 이것저것 건드려야 하다 보니 그냥 안 가게 되고.’

그래서 더더욱 아침에 이렇게 라디오 들으면서 가는 게 더 나았다.

“자··· 자, 오늘은 RMC가 이번엔 뭔 소리 하려나.”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듣는 건 RMC Sport였다.

일단 이 놈들이 국영 방송사인만큼 발음도 좋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고. 이 놈들이 가장 축구에서는 공신력 높은 언론이라고 해서 말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KBS 스포츠쯤 되려나?’

-Selon un initié parisien, Emery···

아아, 파리는 언제나 시끌벅적하구만, 올해 우승 못 했다고 아주 그냥 떠들석하구나. 감독 잘리네 마네 이야기가 계속 나오네.

‘너무 많이 들어서 외워버릴 지경이니, 노래나 불러볼까.’

흠흠.

“벌~거벗은~ 너의 시선은↗↘ 벌~거 벗은 내 몸을 보↗고오~”

아 아니다. 최소한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국카스텐 노래보다는 이 노래 부르는 게 맞겠지.

"Dans tous les stades on est allé~ C'est nous l'armée des Marseillais~”

(우리는 그 어떤 경기장에던 간에 간다, 우리는 마르세유의 군대니까!)

그래, 오늘은.

“Et pour l'OM il faut chanter Allez l'OM allez allez.”

(그리고 그곳에서 마르세유를 위해 소리 높여 외친다. 마르세유 화이팅!)

드디어.

“Ohohohohohoh ..."

첫 홈 경기니까.

-*-*-*-

“[리, 아슬아슬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조금 더 빨리 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휴우, 진짜 아슬아슬하게 지각 벌금 안 물었다.

뭐 엄청 큰 액수는 아니긴 해도, 나 같은 서민은 이런 지각 벌금도 아껴야 한다고.

‘요즘 출전 보너스 받아서 조금 넉넉해지긴 했어도 말이지.’

어쨌든 간에, 나는 연봉 순위로 따지면 1군 멤버 중에서 최하위권. 아낄 수 있는 건 당연히 아껴야 한다.

“[그럼 바로 점심 식사입니까?]”

“[예, 이 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예예.]”

그러니- 당연히 식사도 구단 쪽에서 제공하는 식사로 먹을 거다. 밖에서 먹는 경우가 많은 홈 경기라고 해도.

‘뭐, 물론 돈도 돈이지만, 나같이 영양사 고용할 사람 없는 쪽에서는 이게 가장 스포츠 의학적으로도 좋을 테고.’

그러니까 내가 에브라만큼, 지금보다 연봉에 0 하나 더 붙여지지 않는 이상에야 무조건 주는 대로 먹는다. 하하.

자, 그럼 유럽에서 열리는 첫 홈 경기에서.

오늘의 메뉴는 뭘까요오- 두구두구두구···

‘토마토 냄새?’

음··· 설마.

-후루룩.

‘음, 역시 스파게티구나.’

군대에서 그랬듯이 말이지.

‘박 감독님이 히딩크 감독님한테서 경기 전 스파게티 먹이는 거 배워왔다고 했던 걸로 아는데. 진짜로 그런가 보네?’

일단 주니 가져가긴 하지만, 생각보단 살짝 아쉽군. 뭔가 홈 경기라서 조금 색다른 걸 기대했는데 말이지.

‘뭐, 그래도 토마토만 있는 게 아니라 해산물 파스타도 있는 것 같으니 이거나 좀 먹어보자.’

-후룹

과연 이 해산물의 도시에서 얼마나 좋은 해산물을 쓸지 한 번 보-

“···!”

오, 맛있다.

음, 맛있어.

다르네, 달라.

‘괜히 프랑스가 미식의 나라가 아니구나. 의심해서 미안하다.’

이런 스파게티라면 꽤나 즐거운 마음으로 몇 번이고 더 먹어줄 수 있-

“[리? 같이 먹을 수 있을까?]”

아, 입맛 한참 좋은데, 누가 눈치없이 말 걸어오네. 누구-

“[아, 물론이지. 세르티치.]”

“Thanks.”

쩝, 미식이 방해받았다는 사소한 일로 나한테 좋게좋게 대해주는 사람 앞에서 나쁜 생각까진 못 하겠다.

“[리, 너 오늘 미드필더로 뛰는 거지?]”

“[어, 응.]”

“[진짜 대단하다. 고작 사흘 연습했는데 감독님한테 Ok 사인 받은 거잖아.]”

“[···뭐 그렇지?]”

“[대단하네, 진짜. 난 베인큐어 부상 아니었으면 못 나왔을 텐데.]”

어, 어. 음.

저기, 세르티치.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냐. 임마.

“[완전히 중미로 오는 거야?]”

“[아, 아니 그건 아닐껄.]”

솔직히, 우리 팀에 풀백이 넘쳐나면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잖아. 오히려 중미가 넘치지.

“[그냥 실험해보는 거야.]”

“[하하, 실험하는 것치고는 너무 본격적이던데? RMC에서도 로페즈 녀석, 이적 제안 받았다고 해서 말이지.]”

···RMC에서?

“[진짜?]”

“[엉, 레알이랑 바르샤가 찔러보고 있다는데. 못 들었어? 요즘 라디오 듣고 있다며.]”

야 임마, 내가 어떻게 뉴스 다 알아듣겠냐. 나는 아직은 뉴스에만 집중하고 자막까지 봐가면서 듣지 않으면 몇몇 개는 놓치는 수준이라고.

그렇지만 이 많은 어휘를 표현할 길이 없어-

“[···못 들었어. 하하.]”

짧게 대답했다. 젠장.

‘내가 반드시 올해 안에 프랑스어 B2, 아니. C1 수준을 따고 말리라.’

그렇게 일단 오늘 경기 끝나고 스펀지밥 정주행 다시 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순간.

“[그래? 그렇구만. 하여튼 오늘 잘 해봐, 잘 하면 너 다음 시즌부터는 중앙 미드필더로도 나올 수 있다는 소리잖아?]”

세르티치가, 조금 어이없는 말을 건네왔다.

일단 내가 중앙 미드필더에서 그 바르샤에서 오퍼오는 그 놈을 밀어낼 수 있는지 현실성은 둘째치고.

“[···저기, 세르티치. 그. 니가 그런 말 해도 되는 거야?]”

세르티치는, 중앙 및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게 가장 컸다.

물론 최근 센터백 훈련도 조금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주 포지션은 미드필더고.

그렇기에 내가 중앙 미드필더 겸업이 가능하게 되면, 안 그래도 백업인 세르티치는 타격이 직빵으로 들어간다.

그런데도 저렇게 밝은 얼굴로.

-너 중앙미드필더지? 잘해봐!

같은 소리를 하다니.

“{[아니, 할 수 있을 거야. 너라면 할 수 있어. 해 줘.]}”

“······?”

이건 또 뭐야. 프랑스어 아닌데?

“[너 뭐라고 한 거야?]”

“[크로아티아어야. 못 알아듣는 게 당연하지.]”

···어라, 얘 크로아티아 사람이었어? 당연히 프랑스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 그보단 뭐라고 했는지를 좀-]”

“[아 그거? 음- 어차피 안 나가도 연봉은 나온다는 소리였어]”

“······”

그렇다기엔 조금 끊겼는데. 게다가 중간에 왜 생각을 하는 거냐.

아무래도 수상-

“[그보단 리, 넌 해산물 파스타 좋아해?]”

“[어? 어, 어.]”

“[그래? 그럼 말이지, 내가 요즘 찾은 해산물 파스타 집이 있는데 말이지-]”

···아 수상이고 나발이고 젠장. 시끄럽다 녀석아.

내가 귀가 좀 뚫리긴 했어도 아직 니가 말하는 거 알아들으려면 온갖 집중 다해가며 신경써야 한다고.

밥 좀 먹, 아니 파스타 좀 먹자 이 녀석아.

-*-*-*-

“[···리, 자네 괜찮나?]”

“[···아, 예,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컨디션 안 좋으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래. 그렇다니 믿어보지.]”

아, 진짜라니깐.

그냥 프랑스어에 머리가 어질어질 해졌을 뿐이라고요.

‘휴- 젠장. 1시간 이상 연속으로 프랑스어로 떠드니깐 머리가 어질어질하네. 진짜.’

원정 경기처럼 딱 비행기 타고, 호텔 나눠서 잠 자고, 좀 늦게 나가서 몸 좀 풀고 컨디션 관련해서 조금씩 조금씩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

한 그냥 1시간 이상식 떠드는 ‘진짜’ 대화까진 아직 갈 길이 멀구나.

“[그럼 이제 빨리 홈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입장 준비하게, 얼마 안 남았으니까.]”

“Oui.(예.)”

그렇게 라커룸으로 가서 무의식적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와 보니. 문득 한 가지 느껴지는 게 있었다.

‘···나, 지금 흰색 옷이구나.’

원정 옷 색깔인 푸르디 푸른색에 흰색이 살짝 섞인 게 아니라.

홈 팀의 색깔인 흰색에 하늘색이 살짝 섞인 유니폼.

지금, 나는 그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뭔가 참 별거 아닌데도. 별 거에 다 의미를 부여하게 되네.’

그만큼, 이 무대를 기대했다는 걸까?

“[자, 자, 다들 서둘러! 경기 입장! 입장해라!]”

그렇게 말하는 순간, 경기장 건너편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We~ will~ We~ will~ Rock you!

-쿵쿵 짝!

-쿵쿵 짝!

‘···음, 갑자기 확 깨네. 왠 위윌락유냐?’

이거 퀸 노래잖아. 이것들아.

아니 뭐 퀸 노래가 위아더 챔피언이랑 돈스탑미나우 같이 스포츠에서 자주 쓰이는 곡이라는 건 아는데. 프랑스에서 이거 써도 되는 건가? 영어도 싫어하는 것들이.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We~ will~ We~ will~ Rock you!

-쿵쿵 짝!

-쿵쿵 짝!

경기장을 가득 메운 마르세유 팬들은, 구장이 떠나가라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래, 뭐, 지들 좋다면 된 거지.’

그리고 뭣보다.

-We~ will~ We~ will~ Rock you!

-쿵쿵 짝!

-쿵쿵 짝!

6만 명의 사람들이 다 함께 우리를 위해 하나의 노래를 부른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Singing!”

짜릿했으니까.

그래, 그렇구나.

‘내가 정말 바라던 게 이거였네.’

6만명, 말이 6만 명이지. 6만이면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시골 군에 있는 사람들이 다 이 경기를 보러 온 거다.

그 정도가 되는 사람들이 모두 이 경기를 보러 오고.

-We~ will~···

“Rock you!”

-쿵쿵 짝!

-쿵쿵 짝!

모두 이렇게 하나로 우렁차게 발 맞추다니.

햐, 정말이지···

“끝내주네.”

너무 멋진 경치다.

스트레스고 뭐고, 다 날아가 버린 기분인데.

···자, 그럼.

‘이런 멋진 경치를 선물해준 저 분들이 웃으면서 떠날 수 있도록 해 드려야겠지.’

이번 시즌의 마지막 경기이자. 내 첫 홈 경기다.

-삐이익-!

어디 잘해 보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