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u dénué de sens (3)
-삐이익!
[힘찬 휘슬소리와 함께, 아틀란티크 경기장에서 열리는 리그앙 제 37라운드, 보르도와 마르세유, 마르세유와 보르도의 경기 시작되었습니다!]
***
[entrée en jeu]
Bordeaux 0 : 0 Marseille
***
[오늘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면, 두 팀 모두 주전 선수들을 대거 빼냈다는 거겠죠?]
[예, 사실상 보르도는 6위가 확정적이고, 마르세유도 유로파를 확정지어 버렸으니까요.]
물론 이론상으론 아직 보르도가 이 경기와 마지막 경기까지 다 이기고, 리옹이 다 질 경우 서로 승점 동률이 되기에 아직 ‘확정’ 은 아니지만.
보르도가 남은 경기를 5대 0으로 이기고 리옹이 남은 경기를 모두 0대 3으로 져야만 간신히 극복되는, 득실점 17점 차이가 뒤집힐 가능성이 있을까?
그래서, 보르도는 36라운드 이후로 마음 편하게 6위를 받아들였다. 지난 해 11위에 비하면 이 순위는 꽤나 만족스럽기도 하고.
FA컵에서 PSG가 앙제를 이기고 우승하면, 그들도 유로파를 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축구공은 둥글다고 하지만, PSG가 이 리그앙의 절대 강팀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올해 사실상 리그 우승을 놓치는 것이 확정되어 분노한 PSG가 저 FA컵에 허술하게 덤벼들 리는 없지 않은가.
마르세유도 유로파 진출을 확정지었는데, 굳이 힘을 많이 빼면서까지 이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말이다.
다만-
[그래도 마르세유는 미드필더에선 준주전급 선수들이 꽤나 보이는군요. 상송, 세르티치, 로페즈가 투입되었습니다.]
[예, 마르세유는 아직 이겨야 할 이유가 조금이나마 있긴 있으니까요. 4위를 사수해내면, 유로파 본선으로 직행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파리가 FA컵에서 우승 못 하면 말짱 도루묵이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초반의 경기는 생각보단 일방적이었다.
[아, 마르세유,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보르도 쪽 진형에서 공을 점유하기 시작하네요.]
[역시 유망주는 유망주라는 걸까요. 보르도 쪽이 생각보다 중원에서 많이 밀리는군요.]
그러나. 주전을 대거 빼버린 것은 마르세유도 마찬가지였기에.
[아, 마르세유, 영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미스가 빠져 있으니, 확실히 이런 점이 부족하군요. 마무리를 지어줄 선수가 안 보입니다.]
중앙에서 공격을 퍼붓고 있음에도, 영 득점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마르세유는 다음 시즌에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꼭 좋은 스트라이커가 필요해 보입니다. 고미스가 없으니 경기를 지배하고 있는데도 답답하네요.]
[예, 르 클라시크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그래야겠죠.]
그렇게 슬슬 지루해지면서, 어느덧 평범하게 경기가 0대 0의 행진이 꽤나 길게 이어지던 도중.
[앙귀사, 공을 돌립··· 아! 앙귀사 패스 미스! 패스 미스입니다! 보르도, 공을 빼앗았습니다!]
[아,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죠!]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측면에서 벌어진 실책도 아니고 중앙이다. 중앙.
자고로 실책이 터진다면 측면에서의 실책 두 번이 중앙에서의 실책 한 번보다 훨씬 낫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앙에서의 패스 미스는 아주 치명적이다.
중앙에서 실책한다면, 그건 상대편에게 있어서는 바로 위협적인 역습 기회로 탈바꿈되기 때문이다.
[지금 마르세유 선수들, 너무 올라와 있었죠! 보르도에게 좋은 기회입니다!]
더군다나, 상대방이 공격하느라 라인을 위로 쭉쭉 올렸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되고 말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보르도의 선수들은 바로 빠르게 역습을 시도했다.
[보르도, 좋은 기회입니다! 곧바로 양쪽 윙어 달려나갑니다!]
[요바노비치, 바로 바다에게, 바다!]
-뻥.
[바로 길게 중앙으로 볼을 보냅니다! 중앙의 라보르드에게! 라보르드, 곧 1대 1 찬스!]
그렇게 단 몇 초만의 역습으로, 이 지루한 경기의 균형이 깨지려고 하던 순간.
-촤아악-!
[아! 마르세유, 다행히 역습을 저지해냅니다!]
[오, 아주 똑똑했습니다! 중앙의 저 위치로 공이 올 걸 미리 예측했군요! 세르티치 선수의 멋진···]
당연히 위치상 세르티치일 줄 알았던 해설진들은, 선수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순간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등번호와 이니셜을 보면.
Lee
23
절대로, 저 자리에 있던 선수는 세르티치가 아니었으니까.
-*-*-*-
“휴우- 엿 될 뻔했네.”
-짝.
“[멋졌어, 리. 예상했던 거야?]”
“[아니, 그냥 운이 좋았지.]”
내가 시발 신도 아니고 어떻게 저 놈들이 언제 누구한테 패스 줄지를 몽땅 다 예상하냐.
“[에이, 그래도 이렇게 망설임 없이 중앙으로 왔던 걸 보면, 어느 정도는 예상 한 것 같은데.]”
“[야, 그거야 당연하지, 역습 상황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게 중앙인데.]”
현대 축구가 됐든, 옛날 축구가 됐든.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을 꼽으라면 중앙이다.
일단 이러니저러니 해도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게임이고, 그 골이 가장 많이 터지는 위협적인 구역이 바로 중앙이니까.
다만.
“[그래도 신기해서 그렇지, 뭔 풀백이 뭐 이렇게 중앙으로 많이 들어와? 원래 내가 있어야 할 자리까지.]”
풀백이 수비형 미드필더의 이 자리까지 오는 건 절대로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축구에서 풀백은 한 쪽 측면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일자형 움직임을 갖는다.
특히나, 근래 몇 년간 축구에서는 공격력 극대화를 위해, 측면 공격수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측면을 파고들어서 크로스를 날리는 게 아니라.
드리블로 중앙을 돌파하는 능력이 되면서부터 윙어들은 더욱 더 적극적으로 인버티드(반대발)을 쓰면서 중앙으로 파고들었고.
그러면서 옛날의 측면 공격수들이 맡았던 측면돌파의 역할은 대부분 풀백으로 넘어왔고, 자연스럽게 풀백은 정말 웬만하면 중앙으로 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말했잖아. Inverted(반대발) 윙어처럼 중앙으로 많이 올 거라고. 하프 스페이스에서 놀 거니까. 넌, 오른쪽에 조금 더 집중해.]”
윙어만 안쪽으로 파고들라는 법 있는가.
풀백도 안쪽으로 파고들 수 있다.
그리고, 윙어의 중앙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이 공격력을 증가시킨다면.
[아, 보르도, 다시 기회를 잡습니다. 다시 역습 찬스!]
풀백의 중앙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은, 수비력을 증가시킨다.
[아! 그러나 또 다시 끊겨 버립니다.]
[리 선수가, 오늘따라 유독 중앙으로 많이 움직이는데,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보르도의 역습이 하나같이 영 힘을 못 쓰고 막히고 있습니다!]
축구에서 가장 골이 많이 터지는 중앙이라는 곳이 역습으로 찌르더라도 상대방이 수적 우위를 가지지 못하게 만듦으로서, 수비력을 증가시키는 전술.
이게 인버티드 풀백 및 윙백의 본질이다.
‘물론, 쉽게 쓸 수 있는 전술은 아니지.’
당장 듣기만 하면 좋은 전술 같지만, 이거 내가 서울에서 뛸 때도 한 번밖에 안 쓰고, 상무에서도 FA컵 때 한번 쓰고 말았다.
왜냐고? 당연히- 이거 쓰면 중앙에서 뛰는 놈이 한 놈 늘어나는 거나 다름없기에 자칫 잘못하다간, 서로 동선이 겹쳐지면서 엄청나게 악효과만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풀백이 중앙에 있으면, 측면 방어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지금까지 솔직히 내가 중앙 미드필더에 나랑 이걸 적극적으로 하자고 한 적은 없었다.
이걸 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앙 미드필더, 특히 4-3-3일 경우엔 그 중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와의 나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데.
내가 나보다 돈도 더 많이 벌고 커리어도 좋은 대선배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한다? 하하.
솔직히 고작 중소기업에서 4년째 일하다가 어떻게 대기업에 운 좋게 들어온 경력직이. 공채로 뽑혀서 그곳에서만 6년차 짬밥먹은 사람한테 생전 처음 보는 방법 가져와서.
-이게 좋은데,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떨까요?
하면 듣겠는가? 솔직히, 나 같아도 말 안 듣는다.
그런데, 지금.
-뻥.
‘아, 이거 위치상 나 혼자서는 못 막을 거 같은데.’ “[세르티치-!]”
내 말을, 적극적으로 믿으면서 뛰는 선수가 한 명 생겨났고, 심지어 그 선수의 포지션이 수비형 미드필더다.
[아, 이번에도 리가 막아내려고 하지만- 우나스, 뚫었습니다! 보르도, 절호의 기회!]
그렇다면, 이건 잘만 이용할 경우.
-촤악.
[아! 하지만 이번엔! 세르티치가 태클로 끊는군요!]
[보르도 입장에서는 정말 답답하겠네요! 어떻게 저렇게 공격적으로 선수들이 올라와 있는데도 역습 한 번을 제대로 못 하고 있을까요!]
정말 내 움직임에 있어서 정말 엄청난 자유를 준다.
내가 혹시나 실수를 해도, 그 어디로 움직여도, 그로 인해 생겨난 빈틈을 정말이지 너무나도 잘 메꿔줄 수 있으니까.
-짝.
“나이스! 세르티치!”
“Nice, Lee.”
물론 우리의 연계가 이틀만에 벼락치기로 연습한 만큼, 아직 많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엄청 템포가 빡빡한 경기도 아니고 이 정도라면, 그리 어렵지 않지.’
써먹을 만 했다.
-우우우! 우우우-!
[아, 관중들이 세르티치의 활약에 야유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죠, 올해 부주장으로 보르도의 상승세를 이끌던 주역 중 하나가 저 쪽으로 넘어가서 본인들을 막아세우고 있으니까요.]
-텅! 텅!
-삑! 삐이익!
[아, 이런, 경기가 잠시 중단됩니다. 관중들이 경기장에 쓰레기를 던지고 있네요.]
···음, 얘 멘탈 괜찮으려나? 자기 응원하던 팬들한테 이렇게 큰 원성이라니, 나라면 멘탈 박살날 것 같은데.
“[저기, 세르티치. 괜찮아?]”
“[응? 뭐가··· 아하. 이 소리?]”
그러나, 세르티치는 으레 웃는 얼굴로, 덤덤하게 말할 뿐이었다.
“[뭐, 괜찮아. 이적 직후에는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편지도 받아 봤는데. 이 정도면 양반이지.]”
“······”
음, 그래, 역시 유럽이군.
팬들이 뭐라고 하는 기준이 우리보다 몇 배는 더 높아.
그렇게 내가 세르티치의 멘탈에 새삼 감탄하고, 우리가 보르도의 공격을 몇 번의 공격을 두어 번 더 막아내자.
-삐! 삐! 삐이익-!
양 팀 모두 득점은 하지 못한 채로, 전반전이 종료되었다.
***
[mi-temps]
Bordeaux 0 : 0 Marseille
[Buts]
Bordeaux : (rien)
Marseille : (rien)
***
-짜악.
“Agréable! 세르티치!”
“[하하, 리, 그냥 나이스라고 하던가, super 써. 그거 이상해.]”
“···il est super!”
에잉 이 녀석 까탈스럽기는, 뜻만 통하면 됐지.
“[그보단 리, 너 공격은 오늘 별로 안 나가?]”
“[뭐, 그렇지?]”
오늘은 딱히 공격을 멀리멀리 나갈 생각보다는, 그냥 내가 중앙으로 파고들었을 때 기본적인 수비 연계가 제대로 통하는지 정도만 점검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에이, 뭐야. 조금 더 팍팍 나가 봐. 오늘은 사카이도 안 나와서 네가 나가도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고.]”
···음, 하긴. 생각해 보니 오늘 사카이가 쉬는 만큼 오른쪽 공격이 평소보단 영 덜 활발하다. 덕분에 중원에서 압살하고 있는데도 득점 안 나오기도 했고.
‘물론 가장 큰 문제점은 스트라이커가 개븅신이라는 거지만···’
오늘 이미 고미스는 안 나오기로 한 상태.
좋아. 결론 났다.
“[좋아. 그럼 일단 후반 시작하면 간을 좀 보자고.]”
후반전엔, 공격도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