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u dénué de sens (2)
2017년 05월 11일.
-삐익-!
“[훈련 종료, 모두 수고했다.]”
“[예, 수고했습니다.]”
언제나처럼 훈련을 끝내고, 잠시 숨을 몰아쉬던 와중.
“Hey Lee.”
우리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 고미스가 말을 걸어왔다.
“quoi de neuf?(뭔 일이야?)”
음음 좋아, 완벽했어.
“buvons un verre après l'entraînement.”
···어, 어, 그러니까. 훈련도 끝났으니 가볍게 술 마시러 가자고? 원정까지 이틀밖에 안 남은 이 타이밍에?
“···Non merci. je n'aime pas ça.”
당연히 거절이지. 얌마.
“···Ah bon? C'est dommage. Hey, Thauvin-!”
···저기, 임마? 너 나한테 거절당하고는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거냐? 너 듣자하니 너 어제도 가볍게 한 잔 했다며. 솔직히 좀 그건 아니-
라고 생각하다가. 맥이 탁 풀렸다.
“···라고 하기도 힘든 게 문제네, 젠장.”
솔직히, 시즌 말에 경기력 개판인데도 저렇게 놀자판이 되어 있다면 경찰청 선수들한테 굉장히 분노했던 것처럼 이건 좀 아니지 않느냐는 식으로 말했겠지만.
저 녀석은 팀 내 최고득점자인 만큼, 솔직히 파예가 말해도 들을까 의문이다.
‘게다가 이제 남은 경기들은··· 사실상 의미가 많이 떨어지기도 하고.’
그랬다. 우리는 이제 유로파 진출을 확정지은 만큼, 이제 남은 2경기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물론 리그 순위를 4위로 만드느냐 5위로 만드느냐의 차이는 있고, 유로파 조별리그 직행 티켓을 따느냐 3차 예선 티켓을 따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는 선수들에게 있어서 막 엄청나게 큰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소위, 죽은 경기처럼 느껴 버린다는 거다.
‘뭐, 그러니 이걸 뭐라고 하기도 좀 그렇지. 솔직히 말해서 훈련에 불참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훈련 끝나고 술 한잔 하자는 거니까.’
저런 걸 잔소리했다가는 내가 느끼기엔 이미 대학교 입학이나 취직이 확정되어 있는 사람한테 왜 공부 안 하고 노냐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과 동급의 꼰대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들은 오버 트레이닝을 할 경우 부상이라는 걸 당할 위험이 커진다는 리스크도 있으니.’
이게 왜 중요하냐면, 나보다 4살이나 많은 저 친구는 현재 계약이 고작 1년 남은 상황이다. 그러니 이번 시즌이 끝나고 나면 ‘거의 100%’ 새로운 계약을 맺을 게 뻔하다.
그런데, 혹시라도 조금 무리했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올해 리그 득점 3위에 빛나는 저 성적을 거둔 게 굉장히 많이 의미를 잃으면서. 엄청나게 불리한 조건에서 협상을 해야 한다.
마치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병장과도 같다고 할까?
그러니 더더욱 저렇게 여유롭게 사는 걸 적극적으로 말리기에는 뭔가 좀 걸린다.
‘당장 나만 해도, 아마 2018-19 시즌에 내가 주전이라면 몸 좀 살짝씩 사리면서 뛰겠지.’
아니 솔직히 돈 제대로 벌 수 있는 마지막 자유계약 시즌인데 부상 위험 최대한 낮추면서 뛰고 싶은 게 사실 아닌가. 솔직히 그 때는 오히려 내가 그 누구보다도 쫄보처럼 뛸 걸.
‘···뭐,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지.
“[앙귀사, 같이 훈련할래?]”
-*-*-*-
시즌 말의 경기는, 소위 죽은 경기 및 의미없는 경기라고 표현하지만.
극히 일부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기회라고.
-뻥.
“[야, 제대로 좁혀!]”
“[죄송합니다. 제대로 하겠습니다!]”
“[하, 좋아, 다시!]”
-뻥.
주전이 몸을 사리는 만큼, 로테이션 멤버나 후보 선수들에게 있어서 만큼은 이만한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히 지금, 마르세유의 훈련장에서 와의 경기에 나가겠다고 열의를 불태울 만한 선수들은 여럿 있었고.
그 외에도 수많은 A팀과 B팀을 왔다갔다 하는 유망주들이, 이번 시즌 말에 단 한 경기라도 붙잡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고?
-퍼억.
-퍼억.
“억.”
“억.”
훈련임에도 서로 진심이 되어 억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히야- 평소에도 유럽 훈련이 K리그 훈련보다 좀 빡세게 몸싸움하는 편이긴 하지만, 요즘은 더 치열하구나.’
특히 그 중에서도.
“[리!]”
-뻥.
‘오우, 빠르고 깔끔하게 앞으로 찔러주는 패스.’
주전에서 살짝, 아주 살짝 벗어나 있는 멤버들은, 훨씬 더 치열하게 뛰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선수들은, 이 셋이었다.
“[리! 조금 더 빠르게 패스해줘.]”
“[오케이. 오케이.]”
일단, 전반기에는 주전급으로 뛰었지만 상송의 영입 이후로 주전에서 밀려나고, 벤치를 지키는 일이 늘어났던 André-Franck Zambo Anguissa. 앙귀사.
“[리, 방금 패스, 바로 그냥 옆으로 통과시켜야 했던 거 맞아?]”
“[엉, 바로 알아채네?]”
“[당연하지. 나도 네 패스 좀 받아 봤다고.]”
팀의 제 4순위 센터백인 레킥(Karim Rekik.)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군계일학이었던 건.
나와 같이 겨울 이적시장에 많은 기대를 안고 팀 내 연봉 랭킹 Top 10을 찍으며 브르도에서 마르세유로 영입되었지만.
“[리, 우리 이 훈련 다음엔 10분짜리 미니게임으로 1세트 끝내자.]”
“[···어 ···오케이, 나야 좋지. 그럼 운동장은 쿼터(1/4)만 쓰는 걸로?]”
“[당연하지, 4대 4니까. 인원이 많지 않잖아.]”
우리 팀의 두꺼운 미드필더진을 뚫지 못하고 살짝 밀려나면서 조금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와 동갑내기인. 세르티치(Grégory Sertic).
다들 솔직히, 내가 보기엔 정말 주전 선수들과 차이가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잘하는 선수들이었다.
-퉁.
“[어? 어? 어?]”
-철썩.
“[하하! 골! 골! 약속한 대로 저녁 너희가 사라.]”
“[···아니, 리, 항상 패스만 날리더니, 갑자기 웬 슛이에요?]”
“[뭐래, 4대 4 게임에서 슛 할 수 있는 놈은 누구든 슛하는 거지.]”
솔직히, 지금 같이 훈련하고 있는 일부 싹수가 있는 B팀, 그러니까 2군 상위권 친구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그렇게 미니게임까지 끝내고 나자.
-짝, -짝.
“[자, 자, 얘들아, 벌써 10분 지났어. 좀 쉬다가 다음 훈련으로 넘어가자고.]”
“[으흐- 벌써? 하하. 시간 빠르네.]”
“[휴, 땀 좀 닦자. 하···]”
이제는 완연한 봄이 되었지만, 우리들에게서는 다들 김이 보일락 말락 할 수준으로 올라와서 각자 가져온 수건으로 몸을 닦기 시작했다.
“휴우-, 딱 기분 좋네.”
음, 음. 좋아. 역시 훈련을 하고 나면, 도파민이 분비되서 그런가. 기분이 참 상쾌하단 말이지.
‘오늘 훈련도 잘 했고, 저녁으로는 저 쪽이 사는 거니까 생선이 아니라 고기 먹어볼까?’
그렇게 내가 땀을 닦으며 오늘 저녁으로 뭘 먹을지를 고민하던 도중.
“[리?]”
“[···어, 세르티치, 왜요?]”
세르티치가 또 말을 걸어와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왜 이렇게 이 친구 오늘따라 친근하게 구냐? 이 친구. 나랑 오늘 훈련 전까지만 해도 대화 거의 안 하던 사인데.’
물론 수비형 미드필더와 풀백이라는, 서로가 서로를 잘 도와줘야 하는 관계인 만큼 아예 대화를 안 했다는 건 아니지만.
꼭 필요한 만큼만 대화했다.
‘뭐, 솔직히 내가 쟤랑 대화하면 질투심 날 것 같기도 해서 일부러 피한 것도 있고.’
아니, 솔직히 질투심 안 날 수가 있겠냐.
똑같은 나이에. 똑같은 시기에 영입되서.
한 쪽은 1군 선수단 중 거의 끝자락에 달한 연봉 받고, 한 쪽은 떡하니 TOP 10에 속하는 연봉 받고 들어오면 질투가 나겠어요, 안 나겠어요.
거기에다가 액수로 따질 경우엔 거의 9배 차이라는 팩트까지 한 숟갈 더 집어넣으면?
이건 공자님이여도 질투나서 미쳐버리실 거다.
“[빨리 이야기하자고, 우리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
그래서, 자연스레 내 말도 조금 딱 잘라내는 느낌으로 대답했는데.
“[···음, 그렇지.용건만 간단히 할게. 내가 어떤 식으로 뛰는 게, 더 편해?]”
돌아오는 답이 너무 상상 외여서, 살짝 머리가 띵했다.
“···잠깐, 뭐라고?”
“[어, 한국말이야? 나 한국말 몰라.]”
“아니아니 미안, [뭐라고 했는지 다시 말해줄 수 있어?]”
“[내가 어떻게 뛰어야 더 편하겠냐고.]”
그 말을 듣고, 나는 물론 내 표정을 내가 볼 수는 없어서 확신은 못 하겠지만, 거의 100% 내가 정말 어이가 없는 표정이 되었을거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니, 세르티치, 니가 왜 그런 걸 물어봐? 오히려 내가 너한테 맞춰야지.]”
우리가 이틀 뒤 상대할 팀. 보르도.
그곳에서 부주장까지 하다가, 월급으로 18만 유로씩 받고 이 마르세유로 스카우트된 사람이 뭔 나한테 맞추려고 한단 말인가.
“[내가 너한테 맞출 거니까. 신경쓰지 말아요.]”
솔직히 연봉이 내 9배인 사람한테 내가 원하는 대로 포지션 맞춰달라고 한다? 음··· 생각만 해도 굉장히 별로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별 이상한 소리 다 듣겠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왜냐니, 백업이 주전한테 호흡을 맞추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
세르티치는 내 두 마디 말을, 짤막한 한 마디로 막아버렸다.
수비형 미드필더 아니랄까 봐 참 블록 잘 하네. 하하.
“[···아니, 세르티치. 뭐 내가 입지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게 확신할 정도는 아니거든?]”
일단 뭐 에브라라던가, 그리고 올해 폼은 완전 죽었지만, 그래도 아직 이대로 은퇴하기엔 젊디 젊기에 올해는 늦었지만, 내년의 불꽃을 불태우려고 드는 베디모도 있다.
‘당장 그 인간 지금 체단실, 아니아니 피트니스 룸에서 엄청 자주 보이니까.’
그걸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위태롭다. 그래서 역전하겠다는 말을 계속 하는 거고.
게다가- 솔직히 말하자면, 이 녀석이 올해 나보다 더 많이 출전했다. 내가 알기로 이 녀석 출전 시간 한 500분은 넘겼다! 난 400분 언저린데.
그런데.
“[아니, 내기해도 좋아. 내년 주전은 너야.]”
“······”
세르티치는, 왠진 모르겠지만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주전을 먹을 거라고.
그리고- 나는 솔직히 어리둥절했다.
‘···왜?’
저 녀석은, 나의 뭘 본 거길래 이러는 걸까.
솔직히- 지금 당장 내가 이 폼을 1년 내내 그대로 유지한다고 해도 아직 완벽한 주전 같은 건 불가능하고, 풀 로테이션 돌릴 게 뻔한데.
‘하아- 모르겠다. 갑자기 저 녀석 이러는 이유를.’
그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머리 굴리지 말고.
“[그럼, 다음 보르도전, 니가 커맨드 하는 게 아니라 나보고 커맨딩해보라는 거야?]”
“[음, 정확히는 공격 상황일 때.]”
그냥, 도와준다고 하는데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해 보자.
내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리그앙 상위권 팀과의 대결이니.
준비할 수 있는 건 다 준비해야지.
“[좋아. 그럼 오늘 간단한 수신호 몇 개 만들자.]”
“[뭔데?]”
뭐긴 뭐야. K리그에선 좀 써봤지만. 여기에선 내가 먼저 요청하기도 좀 뭐하고, 말도 잘 안 통해서 거의 한번도 안 써본 거.
“[스위칭 좀, 해 보자고]”
인버티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