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6화 (156/167)

jeu dénué de sens (1)

2017년 05월 07일.

-삑, 삑, 삐이익-!

[경기 끝났습니다. 마르세유가 니스를 잡고, 유로파 진출을 확정짓습니다!]

-우와아아-!

***

[jeu terminé]

Marseille 2 : 1 Nice

[Buts]

Marseille : Gomis(21), Evra(66)

Nice : Balotelli(50)

***

현재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세 팀이 정해진 지금, 유로파 티켓을 두고 마르세유, 리옹, 보르도 이 세 팀이 싸우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 승리로 인해 마르세유는 최소 5위가 확정되면서, 유로파리그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잇었던 거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Nous nous sommes les marseillais, Vous vous êtes des enculés···

나는 헛웃음만 나왔다. 저 노랫소리가 뭘 뜻하는지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구단 공식 응원가가 저래도 돼? 무슨 욕이 저렇게 당당하게 섞여 있어?’

한국말로 해석하긴 좀 애매하고, 영어로 해석하자면 가장 비슷한 단어가 motherfucker라고 할 수 있는 욕이 당당히 공식 응원가에 들어가다니. 참.

‘우리나라 K리그에서 저런 응원가 썼다가는 뭐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둥, 품위가 없다는 둥 아주 난리가 날 텐데.’

기사 제목도 아주 눈에 훤하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는 K리그, 대한민국의 품격을 해친다.’ 이런 식으로 또 신나게 까대겠지.

‘그런 사람들한테 저 광경 한번 보여주고 싶은 느낌이네.’

6만명이 상대팀 보고 마더퍼커라고 욕하는 광경이라니. 뭔가 여러가지 의미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내가 과연 프랑스에 대한 환상이 있을 법한 기자들에게 저 모습 어떻게 보여줄지를 고민하던 도중.

-턱.

“[리, 뭐해! 너도 한 잔 해야지!]”

그 말에 고개를 돌리자, 선수들이 모두들 웃는 얼굴로 어디선가 맥주와 샴페인을 찾아내 뿌리면서 노는 모습이 보였다.

“[부어라! 마셔라! 하하! 맥주 가져와! 맥주!]”

“[맥주도 좋지만 이걸론 안 취하지! 파스티스 가져와! 파스티스!]”

그러자, 나도 순간 그냥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뭐. 괜찮겠지.’

뭐 어떤 곳은 길거리에서 경기 시작 전부터 팬들이 모여서 상대팀 팀보고 패드립을 친다던데. 거기에 비하면 양반이지. 양반이야!

“[하하, 빠질 리가 있겠습니까. 저도 갑니다!]”

-Nous n’auront pas de pitié, Car nous allons vous tuer

···뭐 저새끼들 죽여버려 같은 말이 계속 나오는 응원가가 영 적응이 안 되긴 하지만. 뭐 그래도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아마도.

-*-*-*-

-짤그락, 짤그락.

“으, 살짝 취했네. 열쇠가 잘 안 잡힌다.”

공동 현관문 열쇠가··· 이거다.

‘오른쪽으로 두 바퀴, 왼쪽으로 한 바퀴···’

-드득.

‘여기에서 방심하지 말고, 오른쪽으로 꽉 힘 줘서 다시 반 바퀴!’

-드드득.

“휴, 열렸다.”

이 놈의 집은 정말이지 문 열 때마다 적응이 안 돼.

뭔 문 여는 방식도 외워둬야 하는 거야.

그리고 여기만 열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아직 집 문은 또 따로 열어야 한단 말씀.

‘여기는 왼쪽으로만 세 바퀴 돌리고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리는 거였나.’

-드륵-드륵-드륵-달깍.

‘오, 열렸다. 으흐, 조금 취해서 걱정했는데 그냥 되는구나.’

확실히, 이젠 조금 적응이 됐나보다. 입으로는 매일같이 열쇠 쓰는 게 귀찮다 귀찮다 해도, 손에 익었는지 조금 취했는데도 열쇠 잘 여네. 하하.

“Dans tous les stades on est allé, C'est nous l'armée des Marseillais···”

(우리는 그 어떤 경기장에던 간에 간다, 우리는 마르세유의 군대니까···)

노래도 막 프랑스말이 나오고 아주 그냥 유럽 사람 다 됐···

‘가만, 내가 부르는 노래가 아닌데.’

내가 말했다기엔 발음이 너무 완벽하다. 뭔···

-C’est nous l’armée des marseillais Et pour l’OM il faut chanter···

(우리는 마르세유의 군대라네, 그래서 우리는 소리높여 노래 부르네···)

“···세상에.”

와우. 미친. 술이 확 깨네. 아직도 걸어다니면서 노래부르고 있었어?

“···뭔 밤 11시가 넘은 길거리에서 아직도 저 난리를 치냐. 저 서포터들?”

아니, 기쁘기야 기쁘겠지만, 저렇게 기쁠까? 뭐 우승컵 딴 것도 아니고, 챔피언스 리그에 복귀한 것도 아니고, 고작 유로파 복귀 정도인데.

“···에휴- 쩝, 오늘 못 뛴게 너무 아쉽구만. 오늘 뛰고 저 가운데서 놀았으면 훨신 더 재미있었을 텐데.”

그래, 난 지금까지 계속 유독 홈 경기에서는 잘 뛰지 못했고, 오늘도 그건 다르지 않았다.

왜냐고 묻냐면, 나도 그 이유를 오늘에서야 명확히 알았다고 답하겠다.

-Evra! Evra! Evra-!

‘···에브라가 골 넣으니까. 그야말로 난리 쳤지. 그 많은 사람들이.’

한 선수가 한 팀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기 위한 지표는, 아주 간단하다. 그 선수가 공 잡을 때 환호성이 얼마나 큰지를 보면 된다.

그리고- 솔직히 에브라는 그 측면에서 있어서 나에게 비교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뭐, 파벌 싸움 주도했다더니 뭐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국가대표팀 주장이었잖아.’

어느 나라든 간에 그 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축구팀을 꼽으라면 국가대표팀이다. 이건 그냥 전 세계 공통이다.

지역갈등이 엄청나게 심하던 당시의 이탈리아 나폴리에서도 마라도나가 해준 게 얼만데 정작 이탈리아 이기니깐 별 욕을 다 얻어먹고 쫓겨났던 것처럼.

솔직히, 국가대표팀 주장을 한 적도 있고 작년 유로 2016에서도 주전으로 뛰었던, 총 A매치 81경기를 뛴 선수를 내가 인기에서 누른다? 내가 뭐 지금 당장 필립 람 수준으로 잘 뛰는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거다.

그래서- 내가 원정 경기를 뛰는 거였다. 에브라가 뛰는 게 돈이 더 되니까.

“쳇, 이런 것도 자본주의 만만세라니, 더러운 세상 같으니.”

뭐, 그래도

“어휴, 조금 더 있다가 자자. 자. 오늘은 일찍은 못 자겠다.”

별로 걱정되거나 하진 않았다.

일단 기존에 경기에선 아예 벤치에도 못 앉던 때와는 달리, 오늘 명단에는 들었다는 게 컸다. 그것만으로도 백만 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브로도전엔 리, 부상당하지 않는 이상 자네가 선발이네.

감독이 날 뺄 때,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 나를 ‘달래려는’ 태도를 살짝 보였다는 게 좀 컸다.

이게 뭔 소리겠는가. 감독은 최소한 나를 내년 자신의 플랜에 집어넣었다는 소리였다.

‘내년에 보지도 않을 사람을 달랠 필요는 없잖아.’

뭐 거기에다가 프랑스에서의 인기는 아직 멀었어도.

***

<프랑스 리그앙 35라운드 베스트 11, 이준혁!>

***

“음, 기사 달달하구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꽤나 치솟아올라오고 있었고 말이다.

‘지난 2어시 이후로, 확실히 한국에서도 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났네.’

물론 이번 시즌 부활의 날갯짓을 화려하게 펼치고 있는 손흥빈 선수가 받고 있는 관심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축구 커뮤니티들도 대부분 내가 경기를 진행한 그 날에는 온통 아스날이랑 토트넘 경기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기에 바로 관심을 받진 못했었지만.

<마르세유 이준혁, 폭풍 2어시··· 팀은 0대 6으로 승리.>

이 기사가, 꽤나 컬트적인 인기를 끌면서 나름 알려졌던 모양이었다.

‘크흡, 진짜 중딩 때 그 기사 보고 엄청 웃었는데. 기자님이 꽤나 능숙하게 패러디해 주셨네.’

뭐, 농구에서의 2도움과 축구에서의 2도움은 그 값어치가 전혀 달라서 내 활약이 좀 안 좋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오히려 기자님한테 감사했다.

‘나는 지금 이렇게라도 관심받는 게 오히려 더 나으니까.’

리그앙은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역대급 유망주이자 최고 스트라이커였던 박주영 선수의 기사들도 솔직히 찌라시 재생산이거나 프랑스 언론사들이 보도한 걸 그대로 ctrl+c, ctrl +v 하는 수준이었지.

팀 인터뷰를 정식으로 취재해서 얻은 기사는 극히 적었단 말이다. 왜냐고? 나도 이제까지는 몰랐는데, 이유가 아주 간단했다.

리그앙은 기자회견이, 거의 100% 프랑스어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기자가 거의 없다.

이 두개가 종합되어서 인터뷰할 기자가 없으니 기사도 잘 나오지 않고, 사람들이 관심도 잘 가지지 않는거다.

‘이걸 보면 언어가 참 중요하단 말이야. 흐.’

한국인 선수가 하나도 영국에 없던 시절에도 프리미어리그 관련 기사가 가장 풍부했던 것도 이런 이유라고 봐야 할 거다.

프리미어리그는 영어니까 그냥 기존 스포츠 기자들을 굴려도 어느 정도는 답이 나오는데. 프랑스는 그게 전혀 씨알도 안 먹히니까.

‘뭐 프랑스어 잘하는 기자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런 인간이 기자들 중에서도 가장 천대받는 스포츠 부문으로 왜 오겠는가. 국제부같이 좀 봉급도 훨씬 많이 주고 사회적 시선도 좋은 곳으로 빠지겠지.

‘독일도 비슷한 이유로, 인터뷰하는 우리나라 기자들이 적다고 했지.’

뭐, 독일은 그나마 영어를 프랑스만큼 배척하는 분위기는 아니기도 하고, 파독광부 시절 정착하신 분들이 좀 많은 덕분에 현지 조력자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프랑스 정도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솔직히 우리나라 선수들이 그렇게 많이 진출해 있는데 관심도가 엄청 떨어지는 편인 게 이상했는데. 그게 이런 이유였을 줄이야···

하여튼 이런 점들이 겹쳐져서 지금까지 정말 짤막하게 경기 정리 기사 정도만 나오고 있었는데.

‘이렇게 기사 계속 올려주면야. 나야 좋지.’

조금 반영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말이다.

“음 음, 좋아, 또 다른 기사는···"

<일본 선수는 쓰고 2어시스트를 한 선수는 쓰지 않는다. 가르시아 감독, 이해할 수 없어···>

“푸훕, 이건 또 뭐야.”

아, 정말 정석적인 어그로 끌기형 기사도 나오네. 손흥빈 선수가 골 못 넣어가지고 쓸 거리가 조금 부족했던 기자들에게 참 좋은 먹잇감이 됐구나?

‘지금 난 최소한 2옵션 이상 내지, 에브라랑 주전 경쟁 하는 수준까지는 올라왔다고.’

···뭐, 솔직히 나도 저번 2어시로 조금 내가 앞서는 상태로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결승 골 넣었으니, 또 리셋이겠지.’

프흐. 뭐 그래도.

“많이 올라왔네.”

정말로, 많이 올라왔다.

단 3개월만에, 주전 경쟁을 할 만한 선수 정도까지는 올라왔다.

그리고.

“역전해야지. 보르도전에서.”

내가 처음으로 만나보는 리그앙 강팀과의 대결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Allez l’OM allez allez Ohhohohohohhh

“···좀 자자··· 얘들아. 응?”

제발.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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