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uve(증명) (7)
[아, 산티니, 산티니-!]
-티잉.
[아아, 이런, 골대 맞고 튕겨져 나와 버립니다!]
[아, 이건 산티니 선수가 너무 급했습니다. 조금 더 침착하게 행동했다면 충분히 들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하지만, 캉의 선수들도 할 말은 있었고, 선수 출신이던 캐스터는 저 쪽의 심정이 이해갔기에 그들을 변호해줬다.
[뭐, 이 상황에서는 안 급해지는 게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
[seconde mi-temps 6]
Caen 0 : 4 Marseille
[Buts]
Caen : (rien)
Marseille : Thauvin (2), López(5,30), Payet(28)
***
후반 6분, 이제 승점을 따기 위해서는 사실상 10분에 한 골씩을 넣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는 선수가 과연 마음이 급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아, 캉, 왼쪽으로 길게 찌릅니다!]
그들은, 미드필더를 거치지 않는 축구, 소위 뻥축을 자신들도 모르게 시전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차근차근 만들어나가는 것이 더 좋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페레, 공을 받습니다. 이어서-]
[아, 베인큐어, 태클로 볼을 끊어냅니다!]
강등권 팀과, 유로파 진출을 노리는 팀의 중원 수준이 같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볼을 이어가도, 마르세유의 페널티박스 안을 노리다가 계속 끊기고 있는 이상 이게 그들에겐 최선이었다.
그랬기에 캉에게 있어, 이것은 그들의 최선이었다. 팀 득점의 절대 다수를 기록하는 두 명의 측면 공격수와 한 명의 포워드. 그 셋을 믿고 계속 뻥뻥 공을 올려주는 게 최선이었단 거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그들이 노리는 것은 그 중에서도 측면이었다.
한 쪽은 자주 올라가느라 뒷공간이 비어 있는 경우가 많고. 한 쪽은 신장의 차이가 현격하니까. 공중볼을 올려주면 잘 따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다만, 4점 차라는 점수가 있는 이상. 마르세유도 슬슬 이제는 수비를 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는지 잘 올라오지 않아.
[아, 캉, 또 바로 길게 날아가는 롱 킥입니다!]
자연히 그들의 공격은 그들 기준 오른쪽, 상대편 기준 왼쪽의 저 측면에 가해지게 되었다.
[얀 카리모! 공을 받을 준비합니다.]
토니 르마 이후로 캉이 자랑스럽게 발탁해낸. 18세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U-21의 일원으로서 발탁될 확률이 높다고 주목받으며 수많은 오퍼를 받고 있는, 그들의 유망주에게 말이다.
자국 리그 내에선 현재 우승이 유력한 AS 모나코에서.
세리에 A에서는 피오렌티나와 인터 밀란이라는 명문 팀들에게.
심지어, EPL에서도 뉴캐슬. 그리고 맨시티와 아스날이라는 빅 클럽들에게 구애를 받고 있는.
그런 기대를 받는 선수가. 에브라도 아니고 저 키도 작은 아시아인 정도도 못 이겨낼 리가 있겠는가.
[카리모, 공을 받-]
-휙.
[-아내지 못합니다! 마르세유의 스로인입니다!]
-*-*-*-
키 작은 놈은, 절대로 같이 행동할 경우 공중 볼 경합을 키 큰 놈보다 잘 할 수는 없다. 이건 담백한 현실이다.
그렇기에- 키 작은 놈이 키 큰 놈과 경합할 경우엔. 일단 첫 번째 조건은.
-뻥.
‘온다! 저쪽, 뛰고.’
-꽉.
“hein?”
조금 더, 빨리 알아차려야 하고, 조금 더 빨리 움직여야만 한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약 10cm의 우위를 없애는 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절대 정면으로 완벽히 이기려고 들면 안 돼.’
공중볼에서 완벽하게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낼 정도의 경합 승리는. 키가 190이 넘는 센터백들조차 매번 성공하지 못하는데. 내가 경합에서 승리하길 바란다?
그건, 너무 크나큰 욕심이다.
그렇기에 나의 경합은, 상대편도 제대로 된 경합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조금 더 초점을 두는 방식이다.
다시 말하자면.
‘잡았다.’
-삐이익-!
[아, 카라모가 헤딩을 제대로 공을 받지 못하고 볼이 지나쳐 버리네요, 마르세유의 골킥입니다.]
하하. 막았다. 역시 축구는 다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 팔도 참 중요하다.
“Putain de mer-”
아아, 안 들려, 안 들려, 치사하다고 욕하려면 하렴. 내가 보기엔 그 키에 그 스피드 나오고 98년생으로 어린 게 더 반칙이야.
그렇게 내가 신경도 안 쓴다는 표정을 짓자, 이 어린 친구는 내려가면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다녔다.
“Hé, ···encore ···balle!”
흠, 뭐, 시끄러워서 잘 안 들리긴 하지만, 앙코르에 발이라는 단어 들어가는 거 보면 공 다시 달라는 소리네.
‘공 다시 달라고 할 정도면, 그래도 할 만하다고 느꼈나 보지?’
뭐···
‘하긴 그럴 수밖에 없지. 내가 너라고 해도 그럴 거다.’
그래, 키가 작은 선수는.
키가 큰 선수를 온갖 방법을 다 써야만, 간신히 간신히 맞먹을 수 있고.
한 순간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바로 무너진다.
‘참 불공평하다. 정말. 흐.’
이럴 때마다, 내가 참 얼마나 참 축복받지 못한 피지컬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시야라는 재능은 조금 있지만. 173cm에 71kg이기에, 가장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한 중앙 미드필더에서 홀로 무언가를 만들기에는 너무나도 약한 프레임.
그래서 풀백으로 옮기긴 후, 여기는 그나마 스피드가 더 중요한 재능이었기에 살아남을 수는 있었지만.
나보다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잘 달리는 놈들은 여기 측면에도 넘쳐났다.
‘풋, 쓴웃음이 나온다.’
-짝.
뭐, 그렇다고 해서, 옛날처럼 꼴사납게 주저앉아서 울 생각따윈 없다.
이미, 지난 몇 년이고 느껴왔던 사실이고, 알고 있었던 진실 아니었던가.
그리고- 뭣보다.
‘그런 꼴 보기 싫었으면, 그냥 한국에 남았을 꺼야.’
내가 알고 선택한 길인 만큼,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뭐 새삼스럽게 더 격한 반응을 보이겠는가. 그냥 쓴웃음 한 번 짓는 정도로 끝내야지.
무엇보다.
‘롱 볼의 본질은, 그것만 있는 게 아냐. 오히려 그 다음이 더 중요하지.’
나도 머릿속으로 정립한 건 최근에야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홀란두. 혹시 이쪽으로 더 좁혀주실 수는 없나요?]”
“[음,사카이도 내려왔으니 그쪽으로 좁혀주지 못 할 건 없는데, 왜?]”
롱 볼의 본질은.
“[세컨 볼 상황에서 저한테 주면, 바로 역습으로 바꿔버리겠습니다.]”
Second ball(세컨 볼) 상황에서 어떻게 할 지가.
조금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타 종목의 표현이지만 이만한 놈이 없다.
‘리바운드’ 다.
-*-*-*-
사실 축구를 해 본 사람이나, 많이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롱 볼은, 그 어떤 사람이 공을 주던 간에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 누가 볼을 주든, 공을 받는 사람은 모두들 자신의 신체로 터치하기 전에 공을 무조건 한 번은 땅에 꽤 크게 튀기게 된다는 것.
‘설령 터치하더라도 한 번은 크게 한번 튀기는 건 변함 없··· 잠깐, 베르바토프 같은 인간이면 그냥 발 툭 갖다대면서 안 튀기는 게 가능하려나?’
···뭐 그럼 대부분이라고 말을 바꾸자. 하여튼 중요한 건, 공중볼의 대부분은 공을 한 번 크게 튀기게 될 수밖에 없고.
-텅.
“윽.”
“[하-! 칭키! 이게 바로 격의 차이라는 거야!]”
그 튀겨지는 볼이 되는 상황을 Second ball situation(세컨 볼 상황) 이라고 하여,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바로 공중으로 날라온 볼의 최종 승자가 되는 거다.
공중 볼 경합에서 이겼다고 해서, 졌다고 해서.
[아, 홀란두, 세컨 볼을 잡습니다.]
모든게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거다.
‘옛날 농구 만화에서 이런 말이 있었지, 리바운드를 지배하는 자가 경기를 지배한다.’
그것처럼, 세컨드 볼을 지배하는 자가 공중 볼의 지배자다.
‘아니, 더 심하지.’
시도하면 골이 그래도 절반은 들어가기에 절반의 상황에서만 벌어지는 농구의 리바운드 상황에 비해. 공중 볼은, 세컨드 볼 상황이 거의 99.9% 벌어지니까.
특히, 바로 헤딩이나 발리 킥 넣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인 풀백과 경합하는 공중볼 경합이라면 더욱 더.
결국- 내 측면의 위치에서 공중 볼을 지배하는 것은, 경합도 경합이지만.
“홀란두-!”
세컨 볼 상황에서의 움직임, 포지션.
그리고-경합에서 졌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는 움직임이다.
공중 볼은, 롱 볼은 불확실하다. 그 전술 천재라는 펩 과르디올라조차 공중 볼이 많은 축구는 바라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선수로 도배를 한다고 해도, 최후의 승자가 되리란 법이 없는 계산이 힘든 영역이니까.
그러니, 경합 상황에서 졌다고 해서 실망할 틈이 있다면 그 순간에 뛰어라.
[아, 홀란두, 빠르게 리에게 연결합니다!]
[막을 사람, 없습니다. 없어요! 뒤늦게 달려들지만 이미 늦습니다!]
경합을 패배했다고 하더라도.
경합이 끝난 그 순간에 방심한다면 얼마든지.
[리, 빠르게 얼리 크로스-!]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이 이겼다고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막판 뒤집기가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토뱅! 토뱅이! 골! 골! 멀티 골입니다!]
[리그앙 4월의 선수에, 음바페뿐만이 아니라 나도 있다고 주장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러면 세 경기에 4골 3도움이죠? 엄청나네요!]
“Woo-hoo, sacrément bon! Lee!(존X 잘했어! 리!)”
그렇게 토뱅의 세레모니를 함께하던 도중 비속어를 쓰면서까지 칭찬해준 파예의 그 말에, 나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De rien, il n'y a rien à faire.(천만에요, 별 거 아니었어요.)”
그래, 내가 한 이런 것들은, 전부 알게 모르게 내가 하고 있긴 했던 것들이다.
롱 볼을 집어넣는 것은, 상대편의 빈 공간에 집어넣어야 훨씬 더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다던지.
나는 키가 작으니 공중 볼 경합에서 밀리니 세컨 볼 상황에서 조금 더 집중한다던지.
사실, 전부 다 알게 모르게 내가 K리그에서도 하고 있던 것이었고, 코치 준비하면서도 개념 자체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정말 조금 차이인데, 그 차이가 정말로 크구나···’
이 조그마한 차이가. 내가 판단하는 데 살짝씩 머뭇거리게 했던 움직임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 한 발짝이. 한 걸음이.
이렇게나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나는, 조금 더 나아졌다.
이 경기가, 그 증명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아직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
“[자, 자, 빨리! 빨리! 토뱅, 너도 놀지 마! 헤트트릭 만들어서 이달의 선수상 노려보자고!]”
“[···그래. 좋아.]”
***
[jeu terminé]
Caen 0 : 6 Marseille
[Buts]
Caen : (rien)
Marseille : Thauvin (2,62,88), López(5,30), Payet(28)
***
<마르세유 이준혁, 폭풍 2어시··· 팀은 0대 6으로 승리.>
< 이준혁, 맥이 끊긴 유럽파 수비수의 계보 잇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