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4화 (154/167)

preuve(증명) (6)

시즌 말 리그의 강등권 팀은, 그 나라가 어떤 축구를 하던 간에 대부분 항상 전원 수비하다가 역습을 하는 쪽을 택한다. 왜 그럴까?

그건 축구라는 게임의 특징이 공격보단 수비가 쉽기 때문일 수도 있고, 타 구기종목들에 비해 훨씬 운빨좆망겜 요소를 노려보기 쉬울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무승부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인 게 가장 크다고 본다.

‘둘 다 골 못 넣으면 승점 1점이라도 챙겨가니까.’

승리했을 때 얻는 승점 3점에 비하면 새발의 피긴 하지만, 그래도 경기당 평균 승점 1점도 얻지 못하던 팀이 승점 1점이라도 얻으면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말은 반대로 말하자면.

[아, 캉의 선수들, 조금씩 조금씩 라인을 올리고 있습니다.]

[당연하죠, 지금은 밑에 있으면 안 되죠! 어떻게든 득점을 해야 합니다.]

승점 1점도 못 얻을 상황에 처한 강등권 팀은, 절대 수비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소리기도 하다.

***

[[première mi-temps 7]

Caen 0 : 2 Marseille

[Buts]

Caen : (rien)

Marseille : Thauvin (2), López(5)

***

‘하긴, 전반전에 초반부터 한 골도 아니고 두 골을 넣었으니. 라인을 내릴 리가 있나.’

경기 초반에 한 골 차이면, 그래도 가끔씩 수비적으로 구는 팀들이 있다. 숨 죽이고 기회를 노리다 보면, 한 골 정도 넣을 기회는 어느 팀이나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두 골 차면. 90%의 팀들은. 절대로 그냥 가만히 있지 않는다. 여기에서 골을 더 넣지 못한다면 패배라는, 승점 0점이 이루어질 확률이 자명하기에.

‘물론 득실점으로 강등 갈릴 수도 있는 특수한 10%는 가끔 계속 수비적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캉은 득실점이 이미 박살날 대로 박살났으니.’

뭣보다.

-Caen (짝짝), Caen (짝짝), Caen...

홈에서 팀이 개박살나는 모습 보여주고 싶은 감독은 그 어디에도 없다.

똥개도 자기 집이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지기들 홈에서 10분도 안 되서 꼬리 내릴 리는 없겠지.

‘음··· 조금 더 내려가야 하나?’

다만 지금 내가 독단적으로 더 내려왔다가는 왼 쪽에 중앙에 빈 공간이 너무 휑하게 생겨날 수도 있기에 망설이던 찰나.

[델라플레스, 공 빼앗았습니다.]

적 팀이 공을 빼앗자마자 바로 내 쪽을 쳐다보는 모습은, 그 망설임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 카리모에게!]

젠장. 생각하자 마자냐. 그래도 어느 정도는 미리 내려와 있길 잘했네.

그게 아니였으면 스피드 경쟁이 아예 안 됐을 테니.

[카리모, 수비수를 달고 그대로 돌파를 시도합니다!]

자, 해봐. 어린 친구야. 계속 돌파해봐.

‘치고 달리기 하고 싶잖아. 그렇지? 측면도 열어줬으니. 더더욱.’

-뻥.

‘이런, 생각보다 조금 빠르긴 한데···’

그래도 정석대로 할 수는 있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연스럽게 어깨 집어넣고.

-투욱.

좋아, 그럼 이대로 버티고 바로-

-턱.

‘씁, 젠장 밀리네. 하긴 저 놈 스트라이커도 겸한다고 했지?’

이러면 그냥 빠르게 걷어내는 데만 집중하자.

-뻥.

[리, 옆으로 걷어냅니다! 깔끔한 역습 저지였습니다.]

휴, 그래도 역습 막긴 막았다. 잘못하면 엿 될 뻔했네.

“[리, 잘했어. 깔끔했는데?]”

“[아니에요, 제가 너무 올라갔었네요.]”

젠장, 오랜만에 올라가다 보니, 뒷 공간이 조금 털릴 수도 있다는 위험이 조금 부각되는구나. 좀 더 깔끔하게 막을 수 있었는데.

‘조금 더 익숙해지면··· 아니다. 저 녀석 스피드가 만만치가 않아.’

방금 전 역습에서 바로 이 쪽으로 공 준 것도 그렇고, 앞으로 이 녀석 위주로 공격을 풀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아무래도.

“[홀란두.]”

“[응?]”

“[오늘 제 쪽은 하프라인 이상으로 올라가는 건, 자제하겠습니다.]”

최소한, 오늘은 위로 올라가긴 힘들겠다.

‘뭐, 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풀백은, 솔직히 뛰는 입장에서 애매하긴 하지만 일단 수비수고.

수비수는 골을 안 먹히는 게 우선이다.

‘공격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연습했던 건, 아쉽긴 해도 지금은 어쩔 수 없어.’

지금 내가 마크하고 있는 얀 카리모 저 녀석, 스피드도, 파워도 꽤 있다. 내가 미리 자리잡고 있지 않는다면, 뚫려버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원래 하던 대로, 사카이한테 자주 올라가 달라고 해 주세요.]”

“[좋아, 접수했다. 사카이-!]{평소처럼 올라가!}”

“[알겠어-!]”

쯥, 그래도 좀 아쉽긴 하네.

오랜만에 오버래핑 위주로 플레이 좀 해 보고 싶었는데. 그건 못 보여주겠다.

‘···뭐, 그래도, 그렇게 실망할 필요는 없지.’

상대편이 허겁지겁 올린 라인. 그로 인해 정돈되지 않은 수비진.

하지만- 컨디션이 좋아, 그걸 뚫을 능력이 되는 공격진.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여러 공간들.

‘롱 볼 축구하기, 딱 좋은 상황이니까.’

배운 걸, 그대로 써먹어볼 시간이다.

‘자, 당분간은 골키퍼를 좀 유심히 보자.’

-*-*-*-

사실 롱 볼 축구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선 아직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긴 하다. 뻥축이라는 아주 입에 착착 달라붙는 비하 용어까지 있을 정도지 않나.

‘일단 뻥 하고 차다가, 앞에 있는 선수에게 운 좋으면 넣을 수도 못 넣을 수도 있는 축구라면서 말이지.’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롱 볼 축구는 확실히 숏 패스에 비해서 그 한계점이 명확하다.

당장 지금 세계 프로 축구리그의 강팀들 전술을 보면, 숏 패스의 전술을 주된 전술로 채택한 팀들이 대다수고, 롱 볼을 메인 플랜으로 삼은 팀은 그에 비하면 소수다.

그리고 리그의 약팀들을 볼 경우엔? 보통 정확히 그 반대다.

게다가 숏 패스와 포지션 플레이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의 대성공으로 인해,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가속되어지면서.

롱 볼이란, 사람들에게 점점 시대에 역행하는 전술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축구에서 영원한 건 없고, 하나의 전술만 써서는 강팀이 되기란 힘들지.’

축구에서는 몇 번이고 말하지만, 절대로 ‘완벽한’ 전술 따윈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게 당연하고, 상대방이 얻은 것을 최대한 억제하고, 그 포기한 것을 밖으로 드러내게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의 싸움일 뿐.

숏 패스든 롱 패스든, 그냥 어느 쪽의 전술이던 간에 쓰기 적당한 상황에 맞춰서 골만 잘 넣으면 되는 거다.

‘당장 우리나라가 뻥축구를 할 땐 일본을 박살내고 다녔지만, 슈틸리케나 조광래 감독이 어설프게 숏 패스 할 때는 오히려 당했듯이 말이지.’

자, 그럼.

-뻥.

[아, 아쉽군요, 토뱅, 이번엔 뚫지 못하고 간신히 공을 돌립니다. 캉의 수비가 단단하네요.]

[더 이상의 실점은 안 된다는 거겠죠.]

‘···음, 어느새 골 나온지도 20분쯤 지났네.’

슬슬 롱 볼을 한번 찔러보기 딱 적당한 타이밍이다.

‘흠··· 일단 가장 좋은 후보는 저 토뱅이긴 한데···’

상대편 공격수가 갑자기 달려와서 어떻게든 뻥 차버리고 흐름 끊어야 하는 뻥 차는 볼이 아니라. 제대로 의도하고 주는 롱 볼의 유형은 크게 나누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우리 팀이 등을 돌리지 않고도 받을 수 있도록 주는 유형.

두 번째는, 우리 팀이 등을 돌려서 헤딩이든 트래핑이든 한 번 해야 하는 유형.

솔직히 두 번째 유형이 가장 일반적인 롱 볼이지만. 나는 가능하면 항상 첫 번째 유형을 쓰고자 노력하는 쪽이었고, 거의 이 쪽 유형의 롱볼만 지금까지 써 왔다.

왜냐하면. 두 번째 유형은, 우리 쪽 공이더라도 우리 쪽 공이 아니게 될 확률이 상당히 높아지니 말이다.

자, 생각해봐라.

롱 볼을 내가 차서 중앙에 있는 우리 쪽 선수가 받았다.

그리고 받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상식적으로 골대 쪽에 있던 상대편 중앙 수비수는 당연히 나와서 상대편이 등 돌리지 못하게 만들고, 좀 위에 있던 미드필더는? 당연히 내려와서 스트라이커에게 압박 가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바로 2대 1 상황이고, 여기에서 중앙 공격수가 머뭇거리면? 기껏 앞으로 잘 줬더니 공 빼앗기는 경우가 대다수다.

‘뭐, 그 상황에서 등 돌려서 슈팅까지 연결하는 선수도 있지만···’

그게 되면 그 선수는 그 리그 어느 팀에서든 모셔가는 공격수가 되어 버린다. 이 리그앙으로 치면 카바니나 라카제트 정도의 선수만이 가능한 플레이라고 해야겠지.

그래서, 난 첫 번째 롱볼을 쓰는 빈도가 다른 롱 볼을 주는 플레이어에 비해 훨씬 높았다. 줄 수만 있다면, 이건 우리 팀 앞을 보고 공을 받게 되기 때문에 ‘달리면서’ 받을 수 있고, 이러면 훨씬 더 위협적이니까.

그리고, 그렇기에 빠르고 개인기 좋은 윙어인 토뱅이 내 롱 패스를 받을 수만 있다면 그게 가장 최상이다.

‘문제는 줄 수 있다면, 이란 말이지.’

그래, 문제는 주기가 힘들다는 거다. 이건 내 정확도의 문제와는 달리, 상대편이 저 선수를 집중 견제하고 있다면 나오기 힘든 공격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상대편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걸 허용하는 순간, 바로 치명적인 기회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K리그에서도 역습의 역습 상황같이 측면 선수가 달릴 공간이 많을 때나 사용했지.’

-툭.

[리, 오랜만에 공을 잡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기는 토뱅을 아예 전담 마크를 붙여버린 느낌이다.

훌륭하네. 이러면 결국 두 번째밖엔 답이 없-···

지는 않지. 어떤 한 가지 경우에는 말이야.

“[헤이이-! 파예!]”

결국, 공간이란 건, 상대적인 거다. 저렇게 오른쪽으로 쏠려서 선수들이 저 쪽에서 숫자 우위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왼쪽은 빈다면.

-뻐엉.

왼쪽은 ‘상대적으로 비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떤 한 경우엔 그러면 왼쪽의 페널티 박스의 빈 공간에 집어넣어 버리면 된다.

‘골키퍼가 잘 나오지 않고, 반대쪽을 조심하고 있는 그런 경우에는 말이지!’

[아, 이거 조금 깁니다. 골키퍼가 처리··· 파예?]

[논스탑으로 달려와서-?]

-삐이익! 삑! 삐이익!

[골! 골! 골입니다! 마르세유가,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3대 0을 만들어냅니다!]

“이야-하! [너무 좋았어요! 파예! 당신은 역시 최고예요!]”

“[···어우, 리 설마 노린 거였어? 저 쪽 골키퍼, 순간 당황하던데.]”

“[당연하죠.]”

그래, 결국 롱 패스란, 수비수가 비어있는 빈 공간. 그리고 공격수가 뛰기에 좋은 빈 공간을 찾아 패스해주는 것이 가장 위력적이다.

그리고, 최후방 수비수는, 골키퍼다.

수비수들이 아무리 빽빽하게 보일지라도, 골키퍼가 어떠한 포지션을 잡느냐에 따라서 아무리 비좁아 보이는 페널티박스라고 해도 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을 나는 이제까지는 알고 있으면서도 쓸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바보같이 말이지, 스위퍼 골키퍼라는 말도 생긴 지 꽤나 오래되었는데.’

이래서, 축구를 공부하는 것을 놓질 못하겠다.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내가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고.

이 눈이 좋아질수록, 더욱 더 내가 잘 할수 있다는 것이.

나를 중독되게 만드니까.

“[자, 자, 방심하지 말고, 내려가겠습니다. 롱 볼로 득점해놓고 롱 볼로 득점당하면 안 되잖아요?]”

자, 그럼, 이젠 진짜로 오늘은 많이 올라가진 않아야지.

‘물론 어시스트 더 올리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긴 하지만···’

과연 내가 롱 볼 수비도 더 나아졌을지가 훨씬 궁금하니,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