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uve(증명) (5)
축구 선수가 하루에 훈련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뭐,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곤 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기준에서 말하자면 대부분의 프로 선수들은 시즌을 진행하고 있는 경우 ‘팀 훈련’은 보통 훈련을 1시간 반에서 2시간 이내로 끊고.
그렇기에 보통 오후 1시가 되면, ‘팀 훈련’ 일정은 사실상 끝난다고 보면 된다.
-삐이익-! 삑!
[자, 세션 종료. 모두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저녁이 되면 총소리가 들릴 수도 있는 마르세유라 할지라도, 아직 해가 쨍쨍하게 떠 있는 시간이 최소 4시간이 넘게 남았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나머지 시간을 선수들은 어떻게 보낼까?
뭐, 일단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헤이, 친구. 패스 게임 좀 도와줄 수 있어? 아무래도 요즘 발 감각이 둔해진 거 같아서.]
[음, 그래, 같이 하자.]
개인 훈련이다.
저렇게 4~5명이 모여 단체로 크로스, 슈팅, 패스를 연습하거나.
[아 미안, 나는 오늘은 웨이트 일정이라서.]
아니면 크로스핏이나 웨이트를 조금 하는 식으로 신체적인 측면을 조금 더 보강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대수는.
[그래? 그럼 페페, 당신이라도 좀 훈련 도와줘요!]
[난 생략해줘, 시즌 말인데, 몸 조심해야지.]
그냥 푹 쉰다. 사실 오히려 이 유형이 가장 많다.
축구 선수들은 축구하는 기계가 아니고, 그들도 좀 놀 수 있을 때 놀고, 쉬고 싶어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뭣보다 부상도 조심해야 하고 말이지.’
뭐··· 물론 예외도 있다.
[토뱅? 그럼 너는?]
[나도 됐어.]
저렇게 물론 수업만 듣고도 매일 시험 100점을 맞는 것만 같은 천재인 경우도 있으니까.
‘하, 부럽네, 부러워.’
나도 저만한 재능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럼 나는 이들 중 어떤 유형이였냐 하면.
[그래? 이런, 생각보다 많이 빠지네. 그럼 리, 너는?]
[아, 미안, 오늘은 나도 빠질래.]
왔다갔다 하는 유형이었다. 물론 내가 천재 유형이라는 건 아니고.
[아, 이런, 또 공부 시간이야?]
[하하. 뭐 그렇지.]
외국어 공부 시간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축구 훈련하는 시간보다 외국어 공부 시간이 더 많은 형편이지.’
솔직히 훈련은 개인훈련까지 포함해도 정말정말 많아봤자 4시간 반 안으로 끊어야 하는데, 외국어 공부는 기본적으로 하루에 4시간씩 쏟아부으니 솔직히 요즘은 내가 축구 선수인지 언어 공부하는 학생인지 헷갈릴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았는데.
[에이, 하루만 빠져주면 안 돼? 공부는 언제든 할 수 있잖아!]
[하하, 그래도 이러지 않았으면 내가 이렇게 대화 못 했지.]
이 프랑스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빠르게 선수들 사이로 녹아들지는 못했을 테니 말이다.
[쯥, 그건 그렇네. 어쩔 수 없지. 공부 열심히 해라. 잘 가.]
[그래, 내일 보자.]
그렇게 연습 요청을 언제나와 같이 물리친 후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뭐, 오늘은 굳이 따지자면 영어 공부겠지만.”
그도 그럴 것이 난 지금.
-In the chosen ball situation, the pass is usually made by a central defender, while this can also be a goalkeeper, a fullback, or a midfielder who’s fallen back. In successful situations···
이런 걸 읽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하, 젠장. 겁나 어렵네.”
-*-*-*-
저번 낭시전이 끝나고 난 직후. 감독은 날 사무실로 불러서 몇몇 질문들을 던졌었다.
[자네, 이 상황에서 왜 이런 롱 패스를 줬나?]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를 이야기해줬다. 토뱅이 훈련에서 공중 볼이 올라왔을 때 어떤 움직임을 즐겨했는지, 어떤 모습을 보였었는지를 생각하고 저 쪽에 찔렀다고.
그 말을 듣자, 가르시아 감독은 으레 그렇듯 그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래? 그럼 이 상황에서, 자네라면 어떤 패스를 줬을 거라고 생각하지?]
[이 상황에서는?]
챔피언스리그 경기 몇 경기를 보여주면서 저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떤 플레이를 했을 것인가.’를 몇 개 더 묻더니.
[흠··· 자네는 내일부터 이걸 읽고, 한번 플레이에 반영해보게.]
[물론, 반영 안한다고 해도 상관없네, 그건 자네의 자유야.]
갑자기 종이 뭉치들을 던져줬다.
“시이발, 누가 이탈리아에서 감독하던 인간 아니랄까 봐 거의 논문 수준의 글을 가져와서 읽으라고 하네.”
야 감독놈아, 백업 선수한테 뭐 하나 던져줘놓고 한번 반영해보라고 하면 그걸 넘겨들을 수 있을 것 같냐. 이건 회사 임원급이 주임한테 뭐 시키고.
-아, 이 주임. 이것 좀 참고해서 일해 보세요. 물론 강요하는 건 아니고요.
이러는 거잖아. 진짜.
···그나마 다행인 거라면, 영어로 된 걸 던져줬다는 게 인간적인 걸까? 냅다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로 된 걸 줬다면 구글신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을 테니.
‘···뭐, 구글신도 한계가 있긴 하지만.’
아무리 구글신이라고 해도 이런 장문의 글은 하나하나 내가 다 뜯어서 해석하지 않으면 정말 어색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씹, 머리 아프다. 진짜. 하아- 엿같네. 이 lay-off 라는 개념은 또 뭐야. 진짜. 이거 모르면 아예 이해가 안 될 것 같은데.”
그럼에도-
톡톡, 톡.
-{감독님, 리입니다. 몇 가지 이해 안 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가르침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읽기를 멈추질 않았다.
물론 이걸 제대로 소화 못 한다면 간신히 올라온 이 자리조차 빼앗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발전하기 위해선, 훈련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나는, 천재가 아니다.
하루 2시간의 훈련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얻을 수 있는 천재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개인 훈련을 멈추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훈련 시간을 늘리다가는, 부상이라는 악령이 찾아오게 될 확률도 높아지고. 만일 그걸 한 번이라도 당하는 순간?
훈련으로 얻은 모든 것들은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해가 안 된다는 거지?}
···이렇게 내가 다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감독을 미워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래, 하아. 요즘 훈련도 내가 올라가는 전술을 연습하는 빈도도 늘었고. 그러고 있는데, 이 정도는 버텨야지. 젠장. 하아-”
아, 그래도···
너무 어렵다. 진짜. 살려줘.
-*-*-*-
-{lay-off란 개념이 도대체 뭡니까?}
그 채팅을 받은 가르시아는.
“하.”
환하게 웃었다.
“하하하! 하하하! 으하하- 하!”
그리고는, 영어로 답장했다.
밤 8시가 넘어서 온 업무 메세지였음에도.
-{공을 받은 선수가 다른 침투하는 선수에게 공격수가 원터치. 혹은 일반적인 패스를 내주는 것을 말하는 거라네. 연계 플레이라고 해도 되겠지.}
상대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말이다.
그 모습은 일반인들이 보기엔 이해 못 할 광경이었지만,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최소 25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많이 엇나가지 않도록 교육하고 관리하면서, 10번을 잘해도 1번 못하면 그 순간 수만 명에게 욕을 먹고.
본인의 건강검진도 제대로 회사에서 안 해주기 때문에 건강 알아서 챙겨야 하며. 보통 한 회사에 3년을 근속하면 꽤 오래 버티는 경우에 속하는.
그야말로, 돈을 많이 벌 수도 있다는 것 하나만 보고 달려들기엔.
너무나도 고생은 많지만, 책임은 많은 직업. 축구 감독.
이런 직업을 15년이 넘게 해온 사람이 정상일 리가 없지 않은가. 최소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돈이 궁하다면 모르겠지만, 그건 감독 경력이 짧은 다수의 감독에게나 속하는 것이다.
리그 우승을 이끌고 프랑스 올해의 감독 3회 수상이라는 경력은, 한 사람이 평생 먹고 살 돈을 벌게 만드는 데 충분했고.
씀씀이 때문에 조금 부족하다고 해도 원한다면 구단의 단장직이나 협회의 행정직으로 가서 적당히 일하면서도 돈은 따박따박 들어오고 욕은 덜 먹는, 그런 자리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가르시아는, 아직 감독이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조금 성공하니까 지가 세상에서 가장 잘난 줄 알고 겉멋 부리는 유망주.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주전 선수.
나이를 쳐먹고도 타의 모범이라고는 쥐뿔도 되지 않는 베테랑.
이런 선수들을 마주치며 못 볼 꼴을 계속 보면서 회의감을 느낄 때도 많았지만, 여전히 이 감독이라는 책임이 굉장히 많고, 욕을 최전방에서 먹는 이 직업을 버리지 않고 있었단 말이다.
왜 그랬을가?
그것은- 오로지 그가. 자신이 계획한 대로 선수들이 움직이고. 연습한 대로 선수들이 움직임으로서 가져오는 승리라는 결과를 통해.
이 축구라는 세계에서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지독한 고집쟁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르시아는 이준혁의 이 어찌 보면 무례한 메세지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축구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친구였군.’
그리고, 그것 하나면 충분했다.
한국 선수이기에 생겼던 편견?
그것은, 그 편견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반대로,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방해가 된다면 얼마든지 치울 수 있는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뭐, 물론 이 친구가 내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는지를 알아보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자신의 철학은 굳이 따지자면 4-3-3을 A플랜으로 미는 만큼, 롱 볼을 중시하는 축구라기보단 기본적으로 숏패스 위주의 플레이에 유기적인 움직임을 주문하는 공격축구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팀에, 수비진에서 롱 볼을 전문적으로 처리할 만한 선수가 딱히 없었으니 이는 환영할 일이지.’
그는 밸런스를 그 누구보다도 더 추구하는 감독이기도 했다.
릴의 감독으로서 우승할 때, 그를 우승으로 이끈 것은 리그 최다 득점의 강력한 공격력이었지만, 동시에 실점이 2번째로 적은 강력한 수비진이 없었다면 우승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로마에 부임할 때도 그는 리그 득점이 5위였으나, 실점 또한 5위로 공격만 좋았던 로마를 득점 2위, 실점 19위의 밸런스가 잘 맞는 팀으로 만들어낸 만큼.
그는, 그 누구보다도 승리라는 철학을 위해.
롱 볼이라는 전술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훈련에서의 모습도, 점점 좋아지고 있지.’
자신이 어떤 플레이를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플레이를 하는 것이 맞는지.
‘정답에 가까운’ 플레이를 하던 친구에게.
‘정답인’ 플레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자.
본인은 별 차이를 아직 못 느끼고 있는 듯 싶지만.
저 친구는,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가르시아는, 이 선수에게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번 캉 전에서, 과연 자네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겠네.”
기대라는 감정을 살짝 품었다.
“만일 실전에서도 지금 연습하고 있는 그 모습의 편린이라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다음 시즌 마르세유 레프트백의 주전은 에브라가 아니라 자네 것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