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uve(증명) (2)
2017년 04월 02일.
내가 식단을 변경하기로 한 이후, 가장 메인으로 자주 먹는 요리가 된 것은 단연 쿠스쿠스였다.
‘솔직히 여기 오기 전엔 그런 요리가 있는 줄도 몰랐지만 말이지.’
그럼에도, 이 난생 처음 보는 음식이 주가 된 이유는 일단 영양학적으로 쿠스쿠스는 파스타와 비슷하게 운동선수들이 탄수화물 섭취에 있어서 가장 좋은 식품으로 꼽기도 하는 식품이었고.
맛 자체가 나한테 굉장히 익숙한 맛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저렴한 편이었다.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한다. 저렴하다.
운동 선수에게 저렴하면서도 영양학적으로 좋고 맛도 괜찮으면, 그 음식은 단연코 메인 요리로서 먹어줄 가치가 있다.
그래서 내가 상송과 파예에게 끝나고 같이 쿠스쿠스를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 그들도 별 말 없이 동의했다.
[그래서, 요즘은 항상 내가 추천해준 여기에서 먹었다고?]
[예.]
[하하, 리, 정말 좋은 선택이야. 그래, 이 남프랑스의 주식은 생선 수프 따위가 아니야! 쿠스쿠스지!]
음, 이건 뭐지··· 프랑스 사람들도 약간 먹부심 있나?
이 도시의 명물은 ~다 같은 식으로 기싸움하는?
[크흠- 그건 그렇고, 우리랑 같이 뭘 하고 싶다고 했지. 리. 뭘 하고 싶은 건데?]
[그러니까··· 당신들하고 로리앙 전에서 했던 트라이앵글을 본격적으로 같이 해 보고 싶어요. 팀 훈련을 할 때에도, 팀 훈련이 끝나고 나서도 조금씩.]
그 순간 상송도, 파예도 살짝 눈을 껌뻑였다.
[음, 저기, 리. 우리 팀 전술상 우리가 너랑 같이 트라이앵글을 만들기는 쉽지 않아. 알고 있을 텐데?]
···솔직히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어떤 대답이 나올지를 어느 정도 예상한 덕에 그래도 대충은 알아들었다. 힘들다는 소리겠지.
‘하긴, 지금 팀의 전술상 마르세유는 오른쪽에서 훨씬 더 활발하게 공격을 진행하니까.’
그래, 현재 마르세유의 중심은, 중앙과 오른쪽이다.
비록 지난 시즌 EPL에서는 처참한 기록이었지만, 저번 시즌부터 다시 마르세유에 돌아오고 이번시즌 현재까지 10골 7도움을 기록하면서.
이번 A매치 소집기간에 처음으로 프랑스 성인 국가대표팀에까지 뽑히며 출전하게 된 플로리안 토뱅.
그리고 그 뒤를 받쳐주는 오른쪽 풀백은, 솔직히 현 시점에서는 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우측 풀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카이 히로키.
그 둘이 있으니, 기본적으로 마르세유의 공격 전술은 왼쪽보다는 중앙과 오른쪽 위주로 풀어나간다.
‘공격 비율이 한 2 : 4: 4 비율이니. 왼쪽은 별로 안 쓴다는 거지.’
그리고 이렇게 한 쪽의 풀백이 공격을 위해 자주 앞으로 나가면?
반대로, 한 쪽의 풀백은 굉장히 적게 전진해야 한다. 균형을 맞춰야 하니까.
그리고 그 소리는, 내가 공격적으로 나가는 일이 적을 수밖에 없단 소리고,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 상송과 패스를 주고받을 일이 굉장히 적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저번 릴하고 경기할 때도 삼각패스보단 크로스 위주 플레이를 먼저 생각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 앞으로 깊게 못 나가니까.’
그렇지만.
[그래도, 왼쪽이 죽어있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어제 디종전을 봐. 우리 완전히 답답했잖아?]
[······]
그렇게 두 곳만 위주로 파고들면, 상대하는 팀들이 좀 더 쉽게 면역이 생기고, 하위권 팀도 우리들에게 한 방 먹일 힘이 생긴다.
‘어제 강등권 팀인 디종이 우리에게 무승부를 따냈듯이 말이지.’
결국 리그의 최상위권 강팀이 되기 위해선, 중앙이든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간에, 컨디션에 따라 어느 쪽을 주로 파고들어도 이상하지 않도록, 필드를 넓게 써야만 한다.
가위바위보에서 세 종류를 다 내지 못하고, 두 종류만 내면 승률이 떨어지는 거랑 마찬가지 이치라고 하면 알맞을 거다.
‘뭐, 축구에선 가끔 바위를 이기는 가위같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메시라던가, 메시라던가, 메시같은 선수 말이다.
하지만 그런 선수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런 선수라고 해도 매번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러니 그냥 세개 다 잘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다.
[당장 뭐 대단한 플레이를 하자는 건 아니야. 다만 왼쪽이 이대로 계속 죽어있는 건 당신들한테도 도움될 건 없잖아?]
[···..]
그렇게 침묵이 계속되던 가운데.
[좋아, 난 한다.]
[파예!]
[왜, 너도 이번 시즌 도움왕 노리려면, 왼쪽 공격이 살아나는 게 나쁠 건 없잖아?]
그리고 그 순간, 사실상 상송의 의견도 정해졌다.
마르세유의 에이스이자 최고 연봉자, 그리고 다음 시즌부터는 주장 완장까지 차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그가 동의한다고 하는데 상송이 거부해 봤자.
[싫으면 그만두고, 앙귀사 불러오면 그만이다? 앙귀사가 로페즈 자리 빼앗기 힘들어서 요즘 심심찮게 네 자리 노리던데.]
[······]
막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으니까. 심지어 감독이라고 할지라도.
[하아- 좋아요, 좋다고요.]
[그래, 아주 좋은 자세야. 그럼 뭐부터 할 꺼야. 리? 설마 이제부터 생각하는 건 아니지?]
하하, 그럴 리가요.
[뭐, 일단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본적인 것부터 연습하죠.]
그래, 내가 이 둘에게 연습을 제안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내가 약한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많이 노력을 했지만, 아직도 내가 그 방법만으로 나아졌다고 할 수는 없어.’
나는 피지컬적인 면에서, 스피드를 제외하고는 축복받았다는 표현을 쓰긴 힘든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압박을 풀어나가는 가장 정석적이고, 또 정석적인 방법도 써야 하지 않겠는가. 바로.
[서로가 서로에게, 탈압박이 가능하도록 말이죠.]
패스를 이용한 탈압박이다.
-*-*-*-
2017년 04월 09일.
[아, 마르세유, 요즘 공격이 영 잘 풀리지가 않는군요.]
[그렇습니다. 디종에게 무승부를 거두더니, 이번엔 툴루즈한테도 별로 좋은 내용의 축구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
[seconde mi-temps 13]
Toulouse 0 : 0 Marseille
[Buts]
Toulouse : (rien)
Marseille : (rien)
***
[이렇게 되면, 마르세유에게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닌데요, 어느새 브르도가 바싹 등 뒤까지 따라붙었거든요.]
[그렇죠, 이러면 챔피언스 리그는 고사하고, 유로파 본선 진출도 위험합니다.]
-삐, 삐, 삐이익-!
[아, 마르세유 선수 교체가 있습니다. 에브라가 교체되는군요?]
***
Marseille
In : Lee/Out : Evra
***
-휴우.
‘···23일 만에, 출전이구나.’
뭐, 그래도 생각보단 빨리 기회가 찾아왔다.
일수로 따지면 3주만인 거지만.
경기로 따지면, 릴 전이 끝나고 2경기만에 출전하는 거니까.
거기에다가.
-리.
-Oui.
-지금 공격진이 잘 안 풀리니, 오늘은 공격적으로 해 봐라.
-···Oui.
공격적으로 해도 좋다는 말까지 들었다.
‘···나름 긍정적인 신호라고 볼 수 있을까?’
뭐,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출전한 이상 이기기 위해. 그리고-
“상송! 파예! 그거 해 보죠! 그거!”
그동안 연습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 할 뿐이다.
그리고, 내 한국어로 말한 말에 두 사람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이 쪽을 쓱 한 번 쳐다보고, 고개를 전방으로 다시 돌렸다.
‘휴- 좋아. 모든 준비는 갖춰졌어.’
압박, 그놈의 압박.
사실 2017년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의 모든 축구에 있어서 압박은 중대지사다.
현재 가장 전술적으로 영향력이 큰 감독을 꼽으라면 여러가지 말이 나오겠지만, 보통은 대부분 이 셋 중 하나를 꼽을 텐데.
펩 과르디올라.(Pep Guardiola)
위르겐 클롭.(Jürgen Klopp)
디에고 시메오네(Diego Simeone)
이 세 감독을 유독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는 이 셋을 따라하는 ‘마이너 카피’ 형 감독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그들이 속한 리그의 색깔까지도 좌우했다는 점이 가장 클 것이다.
펩 과르디올라는, 라리가를 가장 공격적인 패스 축구를 선도하는 리그로 만들어 버렸고.
위르겐 클롭은, 분데스리가를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고 스피디한 선수들이 넘쳐나는 리그로 만들어 버렸으며.
시메오네는, 라리가를 이제 전원 수비가 넘쳐나는 리그로 슬슬 변모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 셋 모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압박’을 자신의 전술들에서 어떤 방식으로 할지를 굉장히 명확하게 해놓은 것이다.
그만큼, 압박은 현대 축구에서 무조건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필수요소고. 그 어떤 전술이던 간에 어떻게 할지를 명확하게 정해둔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 압박이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대방이 공을 잡은 지 2초 만에 어떻게든 다가가서 원하는 플레이를 하지 못하게끔 견제하는 수비적 액션을 취하는 것이다.
그렇다. 2초다.
어찌 보면 정말 촉박하다고 할 수 이 시간이지만. 숙련된 프로라면, 공을 받고, 크로스를 하는 과정까지의 속도를 2초만에 끊을 수도 있고.
이 2초라는 시간은, 몸놀림이 꽤 재빠른 축구 선수라면 10~12m를 뛰고 급정거까지 가능한 시간이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압박이란 이 공을 잡고 2초의 시간 안에 상대방 코앞에 다가가서 경합을 한다. 그럼 압박이고.
그 2초 안에 오는 경합을 매끄럽게 넘긴다면 그것이 바로 탈압박이다.
드리블이든, 몸빵이든, 트래핑이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선호하는 것은-
-탁.
[리, 공을 잡습니다. 장, 바로 압박에 들어갑니다!]
-뻥.
바로, 패스를 통한 탈압박이다. 나는, 바르셀로나가 최강 팀일 때의 시대에 가장 전술을 깊게 공부했던 사람이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두 선수들은 4-3-3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할 만한,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내가 왼쪽에서부터 공을 차내면.
-뻥.
바로, 내가 차는 그 순간부터 생각을 했다는 듯이 상송은.
-뻥.
거의 망설이지 않고, 바로 또 파예에게 보내주고.
내가 그 사이에, 상대방이 나에게 압박을 하느라 비어버린 공간으로 파고들 것이라고 미리 예측해서 파예는.
-뻥.
상대방 윙어가 나오면서 비어버린, 내 앞쪽의 빈 공간에 준다.
[오! 깔끔한 패스 플레이입니다!]
[아주 빠르네요! 저 패스가 연결되는 데 몇 초나 걸렸죠?]
이렇게 거의 단 3초만에 공은 내 전방 10m 앞으로 전진해오고.
내 앞에 서 있던 윙어는.
[아, 스피드 싸움! 리, 장!]
이미 공이 그 곳으로 갈 것이란 것을 알고 있던 나보다 한 발 늦게 스피드 경쟁을 시작하게 된다.
[리가! 따냅니다!]
그럼으로서, 내가 다시 볼을 따내는 방식.
이것이 바로 패스플레이를 통한 탈압박이다.
‘내’ 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상대방을 떨처내는 방식의 탈압박.
그리고. 이 패턴은 단 한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한 후에, 로리앙 때처럼 내가 중앙으로 넘겨줄 수도 있지만.
[리! 계속 돌파를 시도합니다!]
내가 직접 공을 몰고 윙어 지역까지 넘어간 후.
“파예-! 안으로-!”
파예가 페널티박스 안으로 파고드는 순간.
그에게 신경이 쏠린 틈을 타.
-뻥.
페널티 박스 앞까지 올라온 상송에게 공을 뿌림으로써
마크가 허술한 상태의 상송에게.
[상송! 노 마크입니다!]
[좋은 위치, 슛-!]
-뻐엉-!
슛을 때리게 만든다.
[아! 안타깝습니다! 골키퍼가 잘 처리했네요.]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실패했음에도.
‘그래, 이거야. 이거라고.’
웃음이 나왔다.
정말, 정말 생각한 그대로 플레이가 된다.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순간. 어느새, 공이 와 있고.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위치로 공을 찌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 탈압박이 되고.
유효 슈팅이라는, 골로 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물들이 나온다.
“[에이- 이런, 아깝네.]”
“[하하, 다음엔 되겠죠. 뭐.]”
그래서, 나는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파예.]
그가 이렇게 나와의 훈련에 어울려준 덕분에,
나는 드디어 시작점에 설 수 있었으니까.
[고맙기는, 그건 그렇고 리, 넌 반말 쓸 건지 존댓말 쓸 건지 좀 명확하게 해. Vous(당신) 썼다가 어투는 또 반말에나 유용한 어투 쓰고 있네.]
[···아, 미안해요, 프랑스어가 익숙치가 않아.]
[또또. 그냥 tu 써도 돼. 반말 쓰라고.]
그래.
“On se tutoie, d'accord?” (그럼 반말한다?)
“Okay, Okay.”
이제, 시작이다.
“Allez-!”
***
[jeu terminé]
Toulouse 0 : 1 Marseille
[Buts]
Toulouse : (rien)
Marseille : Payet(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