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화 (149/167)

preuve(증명) (1)

A매치 기간을 맞이하여, 마르세유의 팀 훈련은 언제나와 같지는 않고, 살짝 다른 훈련을 하고 있었다.

패스 게임같이 메인 훈련을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포지셔닝 훈련같은 것을 진행하기엔 주축 선수들이 쏙쏙 너무 빠져버려서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긴 한데, 이런 훈련을 하게 될 줄이야.’

풀백들을 모아 크로스 연습을 한다고 해 놓고, 저렇게 스텝 한 명이 무슨 태권도장에서나 쓰일 매트? 라고 해야 하나. 저걸 들고 있는 스텝과 한 번 부딪치고 나서 크로스를 올려보라고?

‘뭐 이런 훈련이 다 있냐.’

-뻥.

{아니지! 파니, 센터백한다고 감 다 죽었나? 다음, 베디모!}

-뻥.

{베디모! 골대 위로 가는 크로스는 못 써먹는다! 다음, 리!}

-뻥

후, 좋아, 당황하지 말자, 부딪쳐올 걸 알고 있잖아.

미리 알고, 각오를 하고 있으면 그래도-

-퍽.

‘큭.’

젠장, 생각보다도 더 휘청거리네.

그래도 빨리, 빨리···

-투욱.

하, 이런 망할.

{리! 그게 뭐냐! 골대 근처에도 못 갔다! 다음, 에브라!}

휴, 역시, 한 사람이 대인마크 박아버리고 나한테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나는 위로 띄우는 크로스가 잘 안 된다.

‘뭐 물론 쫀득하게 압박 넣고 있을 때 크로스를 백이면 백 정확하게 날릴 수 있는 선수는 이 지구상에 절대 없지만···’

당장 우리 쪽 풀백들 중에서도 완벽하게 크로스에 성공한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고 말이다.

다만, 정확한 크로스가 10점 만점에 10점짜리 크로스라고 할 경우, 상대편 선수가 방해하더라도 7점짜리 크로스를 날리느냐, 아니면 4~5점짜리 크로스를 날리느냐의 차이는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럼, 좋아, 다음은, 에브라!}

그리고 저기에, 맨유와 유벤투스라는 빅 클럽에서 격렬한 몸싸움에 단련되어 있어서.

-뻥.

{좋아, 에브라, 나름 괜찮았다!}

부딪친 직후에도 7점짜리 크로스를 꽤나 자주 올리는 사람은 있었다.

“······”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나를 포함한 풀백들의 시선은 조금 복잡해졌다.

이 훈련이, 주전 경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를 리가 없지 않나.

‘물론 파니 씨는 이번 시즌은 사실상 센터백으로 전환했으니 당장 큰 문제는 없겠지만···’

나랑 베디모는, 키 180도 안 되어서 센터백을 소화 못 하는 전문 풀백들이니. 그건 불가능하다.

‘뭐, 다지고 보면 나도 중앙 미드필더가 소화가 가능하긴 하지만, 솔직히 재능있는 영건들이 넘치는 그 자리를 내가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냐···’

솔직히 내가 감독이라고 해도 중앙에 나를 기용하느니. 그 시간에 상송, 로페즈, 앙귀사라는 세 영건을 키우는 데 집중할 거다. 셋 모두 훈련장에서 본 모습만 봐도 나중에 이 프랑스 리그를 떠날 게 분명하다고 느껴지는 친구들이었으니.

-삐이익!

{그럼, 풀백들은 팀 훈련 이걸로 종료! 다들 수고했다!}

{···수고했습니다!}

그렇게 누군가는 만족하고, 누군가는 불안에 떠는 팀 훈련이 끝난 가운데.

[코치님, 저번에 보여드린 일정 그대로, 개인 훈련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도록.]

나는, 움직였다.

이미 여기를 선택한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건-

‘···처음부터 예상한 일이었으니까.’

-*-*-*-

사실, 원래부터 어렴풋이 느끼긴 했다.

내가 압박에 약하다는 것을.

중앙 미드필더에서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던 첫 해.

내가 수비에서 구멍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꾸준히 기용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측면에서 반대편 측면으로 넘어가는 정확하고 넓은 크로스를 날릴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롱 패스는, 내가 중앙 미드필더에 있을 때에는 가지지 못한 재능이었다.

‘그게 중앙에 있을 때도 됐으면 내가 고양에 있었을 때도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 수 있었겠지.’

물론 상무에서 안정된 곳에서 잘 먹고 잘 쉬면서 많이 몸을 키우면서, 솔직히 지금은 K리그 챌린지 수준에선 중앙 미드필더로 뛰어도 나름 몸싸움에서 강한 편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었기에 내가 클래식으로 올라오고 나서는 중앙에서 뛰더라도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압박이 덜한.

그렇기에, 알고는 있었다. 알고는.

나는 상대방의 압박을 이겨내는 능력이, 정말 부족하다는 걸.

‘다만 이렇게나 차이나는 줄은 몰랐지···’

더 강팀을 만나더라도 압박이 줄어드는 순간. 활약이 가능하고.

더 약팀이더라도 압박이 강해지는 순간. 활약이 극히 제한되는 정도라니.

'그래도 다행인 건. 이걸 뼈저리게 깨달은 지금이 바로 A매치 휴식기라는 거겠지.'

물론 내가 뽑힐 수도 있었겠지만.

***

2017 03. 16

<신태영호, 오는 15일, 월드컵 예선 6차전 명단 발표··· 김민제 깜짝 선발.>

***

이미, 릴과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명단은 발표되어 있었고.

그래서 나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번 국가대표 소집에는 빠졌다.

‘국가대표에 나만 있는 게 아니고, 이번 시즌 전북으로 가서 잘 뛰고 있는 김진우 선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코치님, 저 왔습니다.]

[또? 하하, A매치 기간에 경기가 없다곤 하지만, 너무 개인훈련 시간이 많은 건 아니야? 나도 좀 쉬고 싶다고.]

음. 쉬고 싶다고 말하는 건가?

역시 빠게트 놈들은 근성이 없구만 근성이.

[나중에 비싼 와인 하나쯤은 선물해야 할 거야? 자네?]

[하하, 예, 주전만 되면 나중에 와인 괜찮은 걸로 하나 선물할게요.]

일단,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하나, 둘, 셋, 다운!]

-쾅.

[수고했다. 여기 물.]

[후우- 후우- 감사합니다.]

몸을 어느 정도 키우는 것이었다.

‘지금 나한테 부족한 건 몸싸움이니까.’

물론. 당연하게도.

[그럼, 웨이트는 언제나처럼 이 정도로만 끝낼 거지?]

[예, 웨이트는 가볍게만 해야죠.]

웨이트를 아주 강하게 하지는 않았다.

축구선수들에게 있어서 웨이트는 만능이 아니다. 정확히는 양날의 검이다.

축구할 때 근육이 크면 몸싸움 잘하겠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다면 왜 축구계는 우락부락한 헐크 같은 몸매를 가진, 소위 헬창들이 지배하지 못하고 있을까?

선수들이 게을러서 웨이트를 하지 않는 걸까? 천만에 말씀. 축구를 할 때 근육이 큰 선수들은 민첩성이 떨어지고, 쉽게 지치기 때문이다.

‘뭐 물론 근육도 크고 민첩성도 좋은 극소수의 예외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 예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솔직히 대부분의 축구선수들은 웨이트를 하더라도 코어 위주의, 그러니까 복근-둔부-허벅지 쪽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주로 하거나 크로스핏 위주로 한다.

웨이트 트레이닝 ‘만’ 열심히 하는 축구선수가 있다?

그럼 솔직히, 그 시간에 크로스핏이나 열심히 하는 게 이득이라고 분명하게 말해주겠다.

우리는 속근육, 근지구력 등이 중요하지. 막 겉으로 보이는 우락부락한 근육은 오히려 독이다. 스피드가 중요한 측면 선수라면 특히나 더.

그러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 그리고 체지방률 결과 나왔다.]

[헉- 헉··· 얼마나요?]

[8.4%.]

[···좋네요.]

최대한 체지방률을, 가능한 한도 내에서 더더욱 줄이는 거다.

‘체지방을 8%, 극한까지 맞춘다.’

물론, 내가 게을러서 체지방률을 9%로 유지했던 건 아니다. 축구선수의 적정 체지방률은 8~11%고. 보통은 9%~10%로 맞춘다.

왜냐하면. 그 이하로 떨어뜨리는 순간부터는 시즌을 빡세게 진행하다 보면 선수가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근손실이 오면서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뭐, 간혹 3% 4% 나온다고 자랑하는 놈들도 있지만.’

그건 훈련 빡세게 하고 난 이후에 재면 그렇게 나오는 거고. 경기 뛰기 전 몸상태는 다들 일반적으로 9~11%다.

‘호날두가 평균 체지방 7%라고 하는 소문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그 인간은 활동량이 적고 스프린트도 공격 상황에서만 하니까 그래도 되는 거고.’

하지만, 나는 풀백이고. 가장 체력 소모가 심한 포지션이다.

그러니 한 시즌을 제대로 버티기 위해서는 9%가 가장 적절한 정도라고 생각해서 계속 이렇게 유지했지만···

‘이제는 안 돼.’

[마지막 세트! 10···! 9···!]

[으아아아-!]

한 시즌을 버틸 체력이고 나발이고, 어느 정도는 희생해야 했다.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그 무엇보다 우선이다.

[끝! 수고했다!]

[크허··· 헉헉.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체지방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좋아, 오늘도 수고했어. 그럼 이번 주 식단은, 이렇게 가.]

[···예.]

식단도 당연히 조절해야 한다.

9%라는 이미 괜찮은 몸 상태에서 지방만 빼고 거길 근육으로 채운다는 건. 절대로 운동만으로는 불가능하니까.

이젠, 정말로 군것질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단 음료수, 아이스크림 등등, 당이나 지방이 많이 들어간 음식들은···

이제 전부 금지다.

‘휴-’

물론,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그러니 하나를 더 추가했다.

[자, 그리고 원하던 대로 심판들 교육 영상 구해 왔네.]

[오, 감사합니다.]

더티 플레이, 여기에 본격적으로 손을 댈 마음을 먹은 거였다.

다이빙이든, 손이든, 팔꿈치든 뭐든 간에, 쓸 수 있는 건 전부 써야 했다.

[나 참, 그거 아나? 더티 플레이를 배우겠다고 심판들 교육 영상을 가져다달란 선수는 자네가 처음일세.]

아 망할. 저건 또 뭔 소리야.

{···긴 말은 영어로 말해주시죠.}

[아, 미안, 미안, 깜박했군] {자네같은 놈은 처음이라고.}

하, 하긴 그러려나.

‘하긴, 보통 더티 플레이를 배우는 건 선배 선수들한테서나 배우지, 분석해서 자신이 하나라도 더 습득해내겠다 드는 인간은 별로 없었을 테니까.’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해봐야죠.’

어차피, 여기에 온 이상, 내가 K리그에서 하던 대로 한다고 해서 저 친구들을 누르고 주전을 쟁취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따윈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비록, 이제는 먹는 기쁨따윈 더 이상 느끼지 못할지라도.

온갖 사람들이 나에게 비난을 퍼붓는 더티 플레이어가 될지라도.

약물을 제외하고는, 그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는, 어떻게든 앞으로, 주전으로 나아갈 거야.’

반드시.

-*-*-*-

-퍽.

[악! 코치님, 파울! 파울!]

그러나, 연습 게임의 심판을 보고 있던 코치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의 눈엔 반칙이라고 할 만한 행위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틈을 타.

[앗!]

[오케이!]

-뻥.

[코치님, 수비 성공입니다! 공수교대 가시죠!]

저 조그마한 동양인은, 어느새 공을 걷어내버렸다.

[썅! 리, 너 이거 반칙이지! 코치님, 이거 반칙입니다! 반칙!]

[뭔 소리야, 코치님이 못 보면 끝이지.]

[하? 차라리 쿵푸 축구를 하지 그러냐?]

{오, 미안하지만,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서 뭔 말인지 모르겠는걸?}

그렇게 순간적으로 싸움이 격해질 분위기를 보이자.

-삐익!

[그만 싸워라. 일단 나한테는 안 보였고.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태클도 아니었으니, 그 정도라면 허용범위야! 공수 교대다! ]

그 모습을 보던 가르시아는, 순간적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허 참. 허. 체지방 줄이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했을 땐,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방법을 찾을 줄이야.

‘아주 독종이군. 저 친구.’

저러면, 확실히 아무리 개인 압박을 걸어도 어느 정도는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아니, 오히려 피지컬 좋은 것보다 저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스피드는 어느 정도 그대로 살리면서, 저렇게 해보려고 한 거니까.

‘···음. 어쩐다.’

본래, 이번 시즌 A매치 휴식기가 끝나고 나서는 에브라 주전에, 백업으로는 본래의 A플랜이었던 베디모를 쓸 생각이었지만-

솔직히, 그것도 영 마음에 들진 않았다.

‘내 전술에, 에브라는 맞지 않아.’

나이가 나이인 만큼, 절대적인 활동량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자신이 추구하는 전술에 부합하지 못했다.

그리고, 베디모는? 슬슬 이제 소생 불가 판정이 서서히 내려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남은 시즌, 그나마 남아있는 레프트백 복권은 저 친구. 하나뿐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저 친구가 정말로, 정말로 압박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전술을 짠다면 어떨지···

‘···한 번은 실험할 가치가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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