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7화 (147/167)

rivaliser (2)

“음, 그렇군, 그러면, 자네는 3선에서 서는 건 불편하다. 이건가?”

가르시아 감독의 그 말에, 파예는 가감없이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못 뛰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면 저는 2선, 그러니까 좌측 윙어 아니면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계속 기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릴에서 감독님이 절 쓰셨던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파예가 3선에는 더 이상 기용되기 싫다는 의사표현을 명확히 하자

“그래, 알겠네.”

가르시아는 놀랍게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팀 내 연봉 1위이자, 팀 내에서 가장 잘 뛰고 있는 선수의 의견은 무리가 아닌 이상에야. 어느 정도는 들어줘야지’

그 선수가 먹튀도 아니고 연봉값을 충분히 하고 있다면 더더욱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리한테는 말한 대로 했나?”

“예, 말씀하신 대로 곧 기용될 거라고 넌지시 언급했습니다. 감독님.”

“흠, 어떻던가?”

그 말에, 파예는 본 그대로 대답했다.

“좀 예상 외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음, 릴 원정 명단을 받았을 때도?”

“예, 코치님한테도 이미 보고를 받으셨겠지만, 오히려 조금 어리둥절해하더군요.”

대답을 하고 난 후, 파예는 가르시아 감독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봤지만.

“음, 그렇군, 수고했네.”

가르시아 감독은 언제나 그랬듯 무표정한 얼굴을 지을 뿐이었고, 그 얼굴을 보는 순간 파예는 확신할 수 있었다.

‘확실히, 릴에 계실 때하고는 좀 달라지셨군.’

그랬다. 옛날 가르시아가 릴을 이끌던 시절, 파예는 가르시아 밑에서 11-12, 12-13의 두 시즌동안 뛴 적이 있었기에, 좀 더 젊었던 시절의 가르시아 감독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는 조금 더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셨는데.’

뭐, 물론 자신이 에이스로 거듭난 2012-13 때는 팀이 조금씩 분석되고, 그로 인해 패배가 많아지면서 한숨이 좀 더 많아지시긴 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가르시아 감독은 기쁠 땐 기쁨을, 슬플 땐 슬픔의 감정을 얼굴에 가감없이 드러내는 감독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 표정을 보아라, 모든 것을 검증하고 또 검증하고, 거기에 대해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 것이··· 그래. 마치 기계같지 않은가.

‘로마에서의 일로 변하신 거일 텐데, 무슨 일이시지.’

그렇게 가르시아 감독이 로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잠깐 의문을 품은 파예였지만.

“예,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크게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

감독이 감정이 죽어있다고 해서 감독 일을 잘 못 하는 건 아니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선수와 감독 사이에 긍정적인 감정이 들어감으로써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내고 팀이 하나로 뭉쳐지는 것이겠지만.

그건,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반대로 망하는 경우도 많다.

당장 맡은 팀마다 그를 위해 죽을 수 있다고 말하는 선수들이 넘쳐나도록 만드는, 세계 최고의 카리스마를 가진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하나. 조제 무리뉴.

그가 선수단과의 불화로 인해 지난 시즌 우승한 팀을 강등권으로 떨어뜨리게 만드는 사건도 있지 않았던가.

그만큼 선수단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건, 감독으로서 굳이 플러스를 줄 만한 요소는 아니지만, 결격사유도 아니다.

‘뭐, 세리에 경험의 여파인지는 몰라도 세부적인 전술은 훨씬 원숙해지시기도 했고.’

그러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

-뜽 뜽뜽 뜽뜨르등뜽

“Oh, Putain.”

그렇게, 짧게 욕설을 중얼거린 파예는, 전화를 받을까 말까 약 10초간의 고민 끝에.

“Allô?(여보세요?)”

전화를 받았다. 안 받을 수가 없었던 이유가.

-헤이 파예, 받았냐? 감독이랑 이야기 좀 했다며.

-아, 그냥 별 말 안 했습니다. 선배님.

그렇게 별거 아닌 투로 말했지만, 전화 속의 목소리는.

-에이, 별 말 안하긴, 파예. 우리 자랑스러운 레블뢰의 일원끼리 거짓말같은 걸 할 필요는 없어. 그냥 솔직하게 말해도 돼.

그런 모르는 척은 용납지 않겠다는 투로, 도망칠 출구를 막아버렸다.

‘···하, 진짜 별 말 안했다고.’

그저 자신이 3선으로 뛸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보고. 리 그 녀석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슬며시 떠본 결과만 보고했단 말이다.

-진짜로, 별 말, 안했어요.

-···정말?

-예, 정말입니다. 제가 중앙 미드필더 가끔 뛸 생각 있는지나 물어보고 끝났습니다.

그러자, 전화 속의 남자는 살짝 목소리가 끊기더니.

-그래? 그 인간, 못쓰겠구만. 그래도 되는 거야? 프리미어리그에서 왼쪽 윙어로 베스트 11까지 받은 선수를, 왜 굳이 그렇게 내리려고 하는 거야? 에이스에 대한 존중이 없구만, 존중이!

주제를 돌려, 감독을 욕하기 시작했고, 파예는 살짝 코웃음이 나올 뻔했다.

-글쎄, 당신이 화난 이유는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에브라. 27라운드, 파리 셍제르망과의 홈 경기에서의 대 패배 이후,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으니 감독한테 화 난 거잖아. 아냐?

주장이면서 뒤에서 선수 왕따질이나 주동하던 당신이니까.

‘···그렇게 말해주고 싶지만, 참아야겠지. 하.’

이러니저러니 해도,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대 선배고.

‘···썩어도 현재 우리 팀에서 가장 뛰어난 레프트백은 당신이니.’

그렇게 마음을 다스린 파예는, 여전히 웃음기를 띤 목소리로 계속 전화를 이어갔다.

-하하, 뭐, 지금 로페즈 그 친구가 빠지면 넓게 패스 뿌려줄 플레이어가 없으니까요. 말이야 할 수 있죠.

그렇지만, 길게 유지는 못 할 듯 싶어서.

-그럼,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럼 죄송하지만 사업 때문에 약속이 있어서, 이만 끊겠습니다.

최근 꾸준히 밀고 있는 핑계를 통해 빠르게 전화를 끊는 쪽으로 선회했다.

‘뭐, 진짜로 최근 다시 사업에 손대고 있는 게 사실이니 거짓말도 아니지.’

몇 년 전 마르세유를 떠나며 접었지만, 이제 돌아왔으니 다시 사업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 또? 이 녀석아, 사업은 축구에 지장가지 않을 정도로만 해!

-예, 예, 그럼. 나중에 식사 한 번 하시죠.

-그래, 그래.

-뚜뚜뚜···

“하, 그건 당신이 말 안 해도 알고 있어.”

그리고-

“정말로 필요하다면, 3선도 뛸 생각은 있고 말이지.”

뛰기 싫다는 말은 그저, 자신이 왼쪽 윙에 뛰는 것이 팀의 승률을 더 높일 거라고 생각해서 한 소리고 말이다. 지금 팀에 자신보다 더 잘 뛴다고 할 만한 왼쪽 윙어는 없으니까.

세계 최고의 리그, 프리미어리그.

그 곳에서 연봉도 깎아가며 이 마르세유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항상 마음속으로 다짐하지 않았는가.

반드시, 이 곳에. 자신이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이 도시에, 이 클럽에 컵을 들어올려주겠노라고.

그러니- 그 누구든 간에. 그 무엇이든 간에.

이 마르세유가 강해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설령- 국가대표 대선배라고 해도. 팀 분위기를 흐트러뜨린다고 판단될 경우, 가차없이 내쳐내자고 대립할 각오도 되어 있을 정도로.

“그러니, 부디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에브라.”

-*-*-*-

[자, 다들 준비 됐나?]

“Oui.”

와, 진짜 선발이네.

‘좋긴 한데··· 좀 예상 외다. 솔직히, 내가 출전한다면 저번 앙제전일 줄 알았는데.’

보통 팀에 들어온 신입생이 경기 데뷔를 하는 건, 홈에서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데뷔를 원정에서 했으면, 그 다음 경기는 특이한 일이 있는 게 아닌 이상 홈 경기 데뷔를 곧 하게 되고.

그도 그럴 게, 원정 경기에서 뛴다는 건 팬들이 직접 보질 못한다는 소리니까. 팬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그리고 선수의 부담을 살짝 줄여주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왜 내가 출전하는 경기는 두 번 다 원정인 거냐, 진짜. 난 그 축구에 미친 팬들의 응원을 받고 싶어서 마르세유로 온 거라고...’

축구에서 이기면, 아이처럼 환호성지르며 기뻐하고.

축구에서 지면, 열받아서 하루종일 꽁해있고.

축구가 그 사람들의 생활이자, 공기이자, 종교와 같은. 그 열정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여서 리에주 주전을 포기하고 여기로 온 거란 말이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일단 선발 출전 시켜준 것만으로도 감사, 또 감사해야 할 일이긴 한데···’

그래도 이왕이면, 좀 홈에서 뛰게 해주면 덧나냐.

‘왜 안 그러는 거지. 영 모르겠네.’

날 못 믿어서? 그건 아닐 꺼다.

지금 순위야 앙제가 더 위라곤 하지만, 솔직히 팀 전력을 비교해보라고 했을 때 릴보다 앙제가 더 밑이라고 하는 팀은 한 사람도 없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재작년에야 승격한 팀과, 유럽 대항전 티켓 못 따면 이상한 팀을 비교하는 건 미안한 일 아니겠는가.

‘뭔가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그렇게 왜 내가 홈에서 경기하지 못하는가라는, 남들에겐 쓸데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 개인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던 찰나.

“Joueurs, commencez à entrer”

어느새. 입장 신호가 들려왔다.

“Oui.”

쳇. 조금 더 고민하고 싶었는데.

‘나한텐 이거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내가 여기로 온 가장 큰 이유가 관중으로 가득 찬 경기장에서 환호성 받으면서 경기할 수 있다는 거였는데, 그걸 못 하고 있으면 솔직히 좀 걱정될 수밖에 없잖아.

나한테 이건 글로 쓸 경우 궁서체로 몇 번이고 강조해도 모자른 일이란 말이다.

‘그 느낌을, 좀 알고 싶다고.’

···뭐, 그나마.

‘···지금 이 광경을 보면’

-와아아아-!

‘그 느낌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는 있을 것 같긴 하네’

-Allez Lille OSC, Allez Lillois allez

-(앞으로 가자 릴 OSC, 가자 릴.)

-Ce soir on va chanter,

-(오늘 밤, 우리는 함께 이 노래를 부를 거야.)

-Allez Lille

-(가자 릴)

대륙 대회 진출은 기본이요, 잘 하면 챔스를 나갔던 강력한 팀이 현재 리그 30라운드에 14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의 4만 명, 아니 그 이상이 찾아오다니.’

뭔가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지역 라이벌전, 소위 ‘더비’도 아닌 그냥 평범하디 평범한 리그 경기에. 홈 팀 팬으로만 말이다.

‘마르세유에서 여기 릴까지 올라온다는 건 그냥 휴가내지 않는 이상에야 어려운 일이니.’

어느 정도냐면, 대충 이탈리아에서 벨기에 가는 정도 거리라고 봐도 된다. 프랑스 남쪽 끝에서 북쪽 끝으로 오는 거니까.

-Nos joueurs qui ont du coeur

-(모두들 하나된 마음으로.)

-Portent haut nos couleurs.

-(모두 같은 옷을 입은 우리들은 외친다.)

-Ensembles nous seront tous vainqueurs...

-(오늘 우리는, 승리하리라···)

‘···참 부럽네.’

한국에서는 이 열기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 결승전이 판가름날 정도의 경기가 아닌 이상 힘든데.

그래서- 솔직히 더더욱 궁금해졌다.

‘리에주보다 조금 더 인기있다는 릴이 이런데, 마르세유 홈 경기는 어떨까.’

아마도, 더 환상적이겠지.

그러니.

“Ensembles nous seront tous vainqueurs.”

오늘, 우리 마르세유의 승리를 이끌어서.

나는 반드시, 반드시 구장을 가득 채운 그 푸른빛 물결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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