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valiser (1)
2017년 03월 13일
-빠↗빠↘ 빠빠빠 빠↗빠빠빠↘ 빠삐라빠빠···
“으아아하···암. 5분만··· 아니다.”
아, 이젠 슬슬 저 나팔소리도 익숙해져서 강력함이 많이 줄어들었네.
딴 걸로 바꿔야 하나.
“하아아- 일단 방 환기부터, 환기부터.”
-덜컥.
“이야, 날씨 참 좋-네.”
내가 프랑스로 온 이후, 뭐 이런저런 것들이 많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을 말하자면, 날씨라고 답하겠다.
‘어떻게 된 게 연해주나 일본 삿포르랑 비슷한 위도인데 이런 날씨가 나오는 거지, 참 지구의 신비야.’
뭐, 굳이 트집잡을 게 있다면 습도가 좀 높다는 거겠지만, 솔직히 최고 기온 한 20도 남짓, 최저 기온 한 10도 남짓에 이 쨍쨍한 태양에 바람이 휭휭 불면 그런 것도 많이 상쇄된다.
‘왜 EPL에서 뛰던 남미나 남유럽 출신 선수들이 날씨타령하면서 EPL을 떠나려드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살짝이나마 될 것 같기도 하네.’
이렇게 태양이 쨍쨍하고 눈을 볼 수 없는 기후에서 살다가 그 우중충하기로 유명하다는 영국 날씨 한번 맛보면 헤어나오기 힘들 테니.
그리고, 이렇게 창문 열어도 미세먼지 걱정할 필요도 없고 말이지. 하하.
“아, 이제 아침이나 준비해야지, 아침. 이제 집이니까.”
그래, 드디어 집을 구했다.
마르세유에서 가장 비싼 부촌 동네 1구 Vieux Port의 한 집···은 아니고, 그 옆에 붙어있는 Opéra라는 동네의 한 아파트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마르세유가 대충 부산이니까. 한··· 진구 중에서 좀 땅값이 싼 곳 찾아간 거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뭐 그래도 이곳 1구 자체가 땅값이 비싼 만큼 그럼에도 월세가 영 싸진 않았다. 850유로나 됐으니까.
‘젠장. 무슨 침실 하나에 거실 하나인 방이 100만 원이 넘는 거야. 내 주급의 거의 4분지 1이 날아가는 거잖아···’
내 주급이 4800유로라곤 하지만. 세전이니까 30% 떼서.
오로지 숙박비로만 말이다. 전기세, 수도세 그런 건 당연히 별도고.
물론 에어컨 설치되어 있고, 가구들을 내가 준비해서 들어갈 필요 없이 옷가지랑 몸만 들어가면 되는 집이라 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비싼 건 비싼 거다.
···뭐, 그래도 이게 호텔보단 싸니까. 그나마 그걸 위안이라고 해야겠지?
“뭐··· 그래도 이 동네에 집 구한 게 어디야.”
부촌이랑 엄청 가까워서, 치안적인 면에서 안전한 곳(총소리 들려오지는 않는)이고.
훈련장이랑은 차로 한 20분 운전하면 될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으며. 홈 경기장하고도 차로 10분 정도만 가면 될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으니 말이다.
‘주차장 문제도 가까운 데에 공동주차장 있어서 해결이었고.’
그래서 고민할 것도 없이 중고차도 한 5천 유로 가격으로 아주 저렴하게 내가 원하는 소형 차량을 살 수가 있었다.
‘보통 수동에 에어컨 있는 차량이 한 5천 유로 하던데 그 가격에 샀으니···’
아마도, 마르세유 구단쪽에 중고차 파는 사람이랑 아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음흠, 음, 계란 여기 있고.”
-탁.
-치이익
그렇게 계란이 익는 동안, 나는 아침식사 준비를 테이블에 쫙 펼쳐놓기 시작했다.
계란 프라이와 같이 먹을 호밀빵과 잼, 오렌지 주스. 방울토마토, 요플레.
참 일반인과 별 다를 거 없는 아침 식단이다.
-냠.
‘뭐,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저 빵이 호밀빵이라는 게 그나마 일반적인 사람들하곤 좀 다르려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먹는 밀가루 식빵처럼 그냥 빵만 뜯어먹어도 달달함이 느껴지는 설탕과 지방이 잔뜩 들어간 부드러운 밀가루 빵이 아니라.
진짜로 좀 먹었을 때 좀 거친 흑빵을 먹는다는 것. 그게 아마 내가 일반인들과 다른 식단 딱 하나일 거다.
‘여기에서 계란 빼고 땅콩버터 넣으면 미국 마이너리그 식단일 텐데.’
PB&J라고 해서 말이다. 그 마이너리그의 눈물젖은 빵이라고 불리는.
-냠.
‘에휴- 근데 내가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살고 있네.’
뭐 영양소적인 면에서야 식빵으로 탄수화물과 식이섬유 섭취하고, 달걀로 단백질 섭취하고, 잼으로 당분 섭취하니까 아주 밸런스가 좋고.
그리고 무엇보다 계란 후라이 하나만 필요해서 설거지할 거리가 고작 프라이팬 하나인 것도 좋지만.
역시,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아침을 먹는다는 건 조금 섭섭하다.
지중해를 맞대고 있는, 이 항구도시까지 와서 이렇게 해산물이 하나도 없는 식단으로 먹는다는 건, 조금 슬픈 일 아니겠는가.
‘저녁에는 항구 쪽에서 고등어라도 한 손 사가지고 와서 요리해볼까.’
그리고, 점심 때는 또 뭘 먹을까- 도 고민해야 하네.
‘흠, 호텔에서 나오니까 이런 점이 귀찮다. 확실히.’
어디 대충 이 근처에 저렴하면서도 괜찮은 집이 있으려나? 이런 거 고민하는 것도 은근 일인데.
‘아 그래, 오늘 사람들하고 훈련하면서 물어볼까?’
누가 가르쳐 주려나.
-*-*-*-
와우.
“très bien!”
[하하, 그래?]
와, 여기 진짜 맛집이네, 맛집.
‘음, 맛있다. 맛있어. 이 쿠스쿠스란 거. 아프리카 음식이라고 해서 좀 특이한 향신료가 들어갔을까봐 걱정했는데, 아주 제대로 취향 저격인데?’
구글에 쳐 보니 파스타 면 만드는 밀가루로 만든, 세상에서 가장 작은 파스타라고 하는데. 솔직히 내 느낌은···
밥 같다.
진짜. 밥 같다.
그래서, 엄청 맛있다.
‘역시, 한국인은 밥힘이라는 건가... 거기에다가 내가 원하던 생선까지 들어가 있으니, 딱이다. 진짜.’
거기에다가 이 스튜를 곁들이면서 먹으면··· 이야.
‘시원-하다.’
뭐라고 해야 하냐··· 아. 그래.
‘동태찌개 집에 가서 국물에다가 밥 말아먹는 느낌이네. 김가루 빼고.’
쌀을 요즘 못 먹은지가 벌써 한달째라 엄청 확실치까진 않은데. 이 정도 느낌이면 확실하다.
‘음. 이제 집도 생겼으니 전기밥솥이랑 쌀도 들여올까? 그럼 가끔씩 빵이 질릴 땐 밥 먹으면 될 것 같은데. 아니다. 밥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최소한 김치 정도는 더 가져와야 의의가 있는데, 그럼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그렇게 내가 고민하면서 열심히 한 손으론 수프를 끼얹고, 한 손으론 열심히 퍼먹다 보니.
[···리? 리??]
순간적으로, 말을 놓쳤다.
[아, 미안해요, 못 들었습니다. 뭐라고요?]
[음식, 맘에, 들어?]
아하.
[물론이죠, 파예.]
여기에서 끝나면 좀 그러니까··· 한 마디 더 붙여서.
“Je suis excité!(저 엄청 신나요!)”
너무 저렴한 표현이지만, 그래도 맛있다는 표현은 알아들었겠···
-푸흡.
[큭, 큭. 큭··· 크래··· 맛있었구나? 그럼 됐어.]
뭐야 시발. 저 반응 뭔데.
‘단어는 제대로 맞았을 텐데···? excite를 변형한 단어가 excité 아냐?’
그러나, 아무래도 저 인간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게 아니다. 시발.
뭔가가 더 있다.
{방금 내가 말한 거, 뭔 뜻이예요?}
{···아냐, 아냐! 아주 훌륭했어. 그냥 그대로 써도 돼.}
음. 확실히 잘못 말한 게 맞군. 저따위로 웃는 거 보면.
{그래요? 그럼 내가 지금 당장 훈련장으로 돌아가서 아무 남자 직원한테나 당신이 저 보고 이 말 했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
맞네.
{말해봐요. 뭔 뜻이에요 이거?}
그러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아직 웃음기가 남아있는 얼굴로 파예가 이실직고했다.
{그거, 성적인 의미로 흥분된다는 소리야. 푸하하하···}
{······}
아 씨. 프랑스는 excite가 성적으로 흥분된다는 소리야? 개엿같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나 발정났어’ 라고 외쳤었다는 뜻이잖아.
‘하, 인생···’
프랑스어 엿같다. 진짜.
{···.그럼 뭐라고 해야 해요?}
{J'ai hâte de 뭐뭐뭐. 이런 식으로 해야 돼.}
“Merci.”
그렇게 살짝 충격받았지만, 그래도 자신도 모르게 남자에게 고백하는 끔찍한 미래는 사라졌음에 위안을 삼던 도중.
{그런데, 어떻게 알아챈 거야?}
파예가 여전히 실실 웃는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그야 뻔하죠. 남정네가 그냥 외국인이 하는 말 듣고 웃는 일이 얼마나 됩니까.}
뻔하다. 외국인이 자기도 모르게 발음이나 언어 잘못 사용해서 자폭하는 개그 쓰거나, 욕 쓰거나아님 엄청 단어의 늬앙스가 바뀌어 버리거나 한 거지.
싸이가 한참 유행할 때 외국인 앞에서 챔피언의 ‘니가’ 부분 부를 때 니그로로 들릴 수 있으니까 되도록이면 쓰지 말라는 소리가 인터넷에서 도시전설처럼 퍼져있지 않았나.
그리고 솔직히, 우리나라도 조카라던지 같은 잘못 발음하면··· 좀 상스런 욕이 되는 것도 있으니 더 알기 쉬웠고. 아주 쉬운 추론이다.
{눈치가 빠르네?}
{···파예, 저 살면서 눈치 빠르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요.}
난 ‘넌씨눈’ 유형의 사람으로서. ‘넌 씨발 눈치가 없냐’ 라는 말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듣는 사람이란 말이다.
{아, 그래? 그건 좀 의외네. 내가 보기엔 너 누구보다도 눈치 빠른 유형인데.}
그 순간, 나는 살짝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어째서요?]
파예, 디미트리 파예.
마르세유에서 가장 비싼 연봉 받는 에이스이자. 왼쪽 윙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랑 대화를 굉장히 안 하던 선수 중 한 명이 왜 이리 친근하게 군단 말인가.
{이런 거, 너 지금 그 실수해놓고도 대화하면서 최대한 프랑스어 쓰려고 하잖아.}
···그게 눈치 빠른 거랑 뭔 상관인거야?
{또, 저번 경기에서 패스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 보여줬고. 집도 구하고, 자동차도 샀잖아.}
아니 그러니까 그게 뭔 소리냐니까요?
{저번 경기에서 감독이 좋아하는 플레이도 보여준 김에. 금방 떠나버릴 지도 모른다고 널 의심하는 감독한테, 마르세유에 뼈 묻을 생각이니까 의심 거둬달라고 우회적으로 말한 거 아니였어?}
{···네?}
이건 또 뭔 소리야. 감독이 날 의심했었다고?
{···어, 표정 보니깐 아니었나 보구나?}
{아니, 왜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마르세유 금방 떠날 거라고?}
내 나이가 나이인 만큼, 여기가 마지막 도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뭔-
{너 나이가 나이잖아.}
{······}
젠장, 나이를 보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긴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선수가 팀에서 잘 뛰고 있다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연봉까지 깎아가며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이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내가 그냥 적당히 여기에서 잠깐 머물다가 금방 고향으로 돌아갈 사람일 거라는.
‘그래서 프랑스어 늘어날 때마다 나한테 친근하게 다가오는 동료들이 조금씩 늘어났던 거였어?’
그리고 지금에서야 말하는 거 보면, 파예도 의심했던 쪽이었던 것 같고 말이지. 젠장.
{지금 표정 보니 전부 오해였던 것 같긴 하지만. 하하.}
{···하하. 그렇죠. 제가 왜 마르세유를 먼저 떠나려고 들어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뭐 이렇게 피곤하게 사냐.
다들 그냥 축구나 할 것이지.
‘그래도 이제 파예가 먼저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걸 보면, 사라졌다는 거겠지?’
그걸로 만족해야 하려나?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감독님은 저번 경기에서 보여준 네 모습만으로도 만족했겠지만.}
{···..?}
이건 또 뭔 소리야.
{제가요?}
뭐, 내가 생각하기에 나쁜 활약은 아니었지만. 나 결국 교체당했는데?
{그래, 너 저번 경기에서 보여준 패스, 기억 나?}
{···어떤 패스요?}
{그 패스, 압박받고 있던 상황에서 딱 4번의 패스로 중앙을 뻥 뚫어버린 패스 말이야.}
아. 그거.
{쉬운 거잖아요? 그거.}
{그 쉬운 걸 못 하는 풀백이 수두룩하니까 우리 팀이 이렇게 풀백을 여러 명 영입한 거야.}
{······}
···그런가?
{그러니까. 꾸준히 식단관리 해. 몸 지금처럼 망가뜨리지 말고 관리 열심히만 하면, 이제 슬슬 너도 출전이 늘어날 테니까.}
···글쎄요, 이번 앙제전에선 저 아예 선발 명단에서 제외시키신 걸 보면. 아직 만족 못 하시는 거 같은데.
그래도-
[예, 감사합니다.]
말은 이렇게 해 줘야겠지. 뭐.
팀 에이스 말에 토 달아 봤자 뭐가 좋겠어.
‘에휴, 다음 선발 명단에는 언제 들 수 있으려나···’
이제 A매치 주간이 곧 다가오니까. 3월은 더 이상 출전기회 없겠지? 4월에는 출전 기회 좀 늘어나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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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짐 싸라. 이번 릴 원정에는 네가 선발이다.]
[···Oui!]
뭐야, 진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