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ébut (3)
-But(골)-!
“감독님.”
“왜 그러나. 봉파르.”
“이 코너킥 세트피스들, 전부 예측하신 겁니까?”
“음···”
잠시 고민한 가르시아는, 짧게, 하지만 솔직하게 답했다.
“첫 번째는 어느 정도는 의도한 것이 맞네만, 두 번째는 완벽히 선수들이 재치 있게 만들어낸 운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그도 그럴 것이, 코너킥 이후 박스 안에서의 혼잡한 상황에서 욱여넣은 첫 번째의 득점은 박스 안에서의 포지셔닝이 잘 잡혀있었던 덕에 얻을 수 있었던 골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했지만.
두 번째 골은 코너킥이 빗나가 어떻게든 아웃되려고 하는 볼을 뒤꿈치로 살리고, 그 공을 어떻게든 골대 근처로 우겨넣으려고 하다가 들어간 걸 의도했다고 말하는 건, 솔직히···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뻔뻔한 행위였으니.
“뭐, 그래도, 덕분에 오늘 경기는 무난하겠어.”
“하긴 그렇군요. 긴장감이 많이 사라졌네요.”
고작 전반 20분이 지나기도 전에 2대 0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
[première mi-temps 22]
Lorient 0 : 2 Marseille
[Buts]
Lorient : (rien)
Marseille : Rolando(6), Payet(19)
***
다만 옥에 티가 있다면.
“상대편 점유율이 얼마나 되지?”
“60%가 넘습니다.”
오히려 필드의 주도권 싸움에선 지금 밀리고 있다는 거였다.
‘뭐, 점유율에서 밀리는 건 상관없지만···’
2010년도 초반,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가 최강 팀으로 군림할 때, 많은 패스를 통해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는 그들의 축구를 탁구공이 왔다갔다 한다는 뜻을 담아 티키-타카(Tiqui-Taca)로 표현했고.
지금도 점유율은 경기에 대한 주도권을 누가 가졌느냐에 대한 지표로서 아주 유익한 지표인 것처럼 언론들이 떠들고 있긴 하지만.
사실, 점유율은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점유율이 높다는 것은 그저 ‘우리 편이 조금 더 많이 공을 가지고 있다.’ 의 표현밖에 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하프라인을 넘어가 상대 팀 진형으로 올라가지 않고, 자신들의 진형에서만 공을 돌리는 짓을 하더라도 점유율 그 자체만으론 앞설 수 있다는 거다.
그렇기에, 점유율은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수치다. 그게 낮아서 좋을 것은 없지만, 그게 높다고 해서 승리에 더 가까워진다거나 하는 건 아닌, 그런 지표.
다만 그게 다른 하나까지 겹쳐진다면, 이제 좀 위기감을 느껴야 하는데.
‘로리앙 쪽이, 볼을 적극적으로 빼앗으려고 드는군.’
바로 ‘압박’이다.
압박과 점유율 이 두 개가 모두 상대팀이 더 강하다면, 이 때부터는 살짝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 최근 5분간 로리앙 PPDA가 얼마나 되지?”
“7.5 입니다.”
“쯥, 지고 있다고 전방 압박 아주 야무지게도 하고 계시는군.”
PPDA
Passes allowed Per Defensive Action의 약자.
풀이하자면 센터라인 위 구역에서 상대팀이 시행한 총 패스 횟수를 우리팀이 시행한 수비 행위 횟수(태클, 가로채기, 파울 등)로 나눈 것으로.
쉽게 말하자면, 센터서클 위쪽 진영에서 벌어지는 상대방의 패스 플레이를 얼마나 집요하게 방해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소위 그 팀이 ‘전방 압박’ 을 얼마나 잘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낮을수록 좋은 지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PPDA가 7.5라면. 지금 저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압박을 수행하는 팀이라고 봐야 했다.
당장 지난 2015/16 시즌 유럽의 빅 5리그(EPL, 라리가, 분데스, 세리에, 리그앙) 기준으로, PPDA가 8 이하인 팀은 단 4팀 뿐이었으니 말이다.
‘뭐, 물론 저런 압박을 계속 감행할 수는 없겠지.’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팀들은 전반보다는 후반의 경기력이, 후반보다는 연장의 경기력이 더 나빠진다.
당연한 게, 선수가 지치기 때문이다.
모든 전술은 선수가 수행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법이고. 체력이 떨어지면 그 전술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으니까.
그걸 생각하면, 아마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저쪽의 전방 압박은 느슨해질 거고, PPDA 수치도 떨어질 거다. 특히 한 후반 10분 정도는 급격하게 떨어질 거고.
그렇지만, 그 소리는 다르게 말하자면.
‘전반에는 저 세계 최상위권 수준의 압박을 견뎌내야 한다는 거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르세유의 이 선수들이 로리앙에 비하여 밀릴 거라는 생각따윈 하지 않았다.
지금 보여주는 로리앙의 저 압박은, 어차피 2대 0으로 지고 있으니 이판 사판이라는 심정으로 강하게 달라붙는 느낌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전방 압박을 메인 전술로서 계속 쓰던 팀이 보여주는 깔끔한 압박이 아니라. 체력과 피지컬을 앞세워 일단 방해하고 보는.
‘우당탕탕 압박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질 낮은 압박이지.’
그리고, 그런 류의 잘 정돈되지 못한 압박은. 마르세유의 테크닉이 뛰어난 몇몇 선수들, 혹은 피지컬 부문에서 우위를 가진 몇몇 선수들은 충분히 견대내거나, 오히려 이용해낼 수 있다.
하지만.
‘리, 저 친구한테 있어서는 이 정도의 압박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압박이겠군.’
축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볼을 예쁘게 찬다고 해서 이기는 스포츠가 아니다.
상대방보다 더 빠르고, 격렬하게 움직임으로서.
어떻게든 상대방이 원하는 플레이를 하지 못하게 하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플레이를 투박하게라도 이루어내면서.
DROIT AU BUT(골대를 향해 전진) 하는 스포츠란 말이다.
그리고, 아시아 리그는 그 점에선 아직 많이 부족했다. 물론 리, 저 친구가 온 K리그가 아시아에서 가장 거칠고 격렬한 리그라는 데이터 정도는 봤지만.
‘그래 봤자. 최강팀이 10이 넘어가는 수준이지.’
그리고 그 말은.
-퍼억.
[큭··· 아, 파울! 파울이잖아!]
지금은,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감독님, 저 친구, 베디모로 교체할까요? 압박에 영 힘을 못 쓰는데.”
수석코치의 그 말에, 가르시아는 잠시 고민했지만.
“아니, 두고 보지.”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
“어차피 이 경기는 질 경기도 아냐.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 가면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 그런 만큼 저 친구의 밑바닥을 한번 보고 싶군.”
그렇게 말한 가르시아는, 추가적으로 말을 덧붙였다.
“오늘, 저 친구가 전반전 끝날 때까지 저 모양이라면, 오히려 마음껏 뛰게 해 주게.”
그리고 그 말은, 겉으로 보기엔 정말 달콤한 말이었지만.
“그 말씀은···?”
그 안에 숨어있는 속뜻을 눈치챈 수석코치에게는, 살짝 무서운 느낌이었다.
“그래, 아시아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그 용기가 가상하니 한 경기 정도는 풀 타임으로 뛰어 주게 해야 할 것 아닌가.”
-*-*-*-
-퉁.
‘휴, 좋아, 잡았-’
퍼억!
“억!”
아, 시발. 이 새기, 팔꿈치로 명치 찔렀···
-삐익!
“Faute!”
···휴, 다행이다. 파울이구나. 심판이 봤네.
“Hey, pourquoi?”
이 새끼가, 어디서 뻔뻔하게 왜냐고 물어보고 있어. 이건 명백한 파울이라고.
{리, 괜찮아?}
{···어, 아직 뛸 수 있어.}
‘젠장, 여기 미쳤네.’
1군 훈련 때부터 얼핏 느꼈던 거긴 하지만.
여기는 ‘절대로’ 내가 공을 편하게 잡길 내버려두질 않는다.
‘내가 풀백인데도, 말이지.’
일반적으로 풀백한테까지 압박을 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런 짓을 하다가는 체력이 남아나질 않으니까.
하지만. 이 녀석들은.
‘젠장. 그런 건 생각 안 하겠다는 거냐.’
어떻게든 나에게 달려들고 달려들어서 공을 잡기 불편하게 만들고, 그로 인한 실수를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설령, 그것이 한없이 반칙에 가까운 짓일지라도.
‘젠장. 상위 리그로만 가면 통할 거라고 있던 생각했던 무기조차 거의 다 사라지고 개발 세발이 되어버리는 선수들을 잘 이해 못 했는데, 이렇게 직접 겪어 보니 이해가 확 가네.’
이렇게 갑자기 확 늘어난 압박과 몸싸움 속에서, 자신의 장점을 평소와 같게 발휘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마치, 학생 시절 한 학년 위의 형들과 연습시합을 할 때 같다고 해야 할까.
정말. 절망적이다.
‘하하.’
하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끝내고 싶은 생각따윈 없다.
다시 말하자면, 그래 봤자 고작 한 학년 위니까.
그따위 격차는, 정말 신물이 나도록 겪어 봤다.
‘···그렇다는 건, 방법도 그 때와 같이 풀어나가야 하겠지.’
물론, 그 때의 고등학교 팀원들처럼 발을 오래 맞추진 않았지만···
내 오른쪽에는 올해 리그 앙 도움왕 경쟁하고 있는 선수가 있고, 앞에는 저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베스트 11을 차지했던 선수가 있다.
그렇다면, 그걸 철저하게 이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상송!”
-뻥.
자, 상송이 앞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아마도 주게 되는 곳은···
-뻥.
‘역시, 파예한테 연결이다.’
그렇다면.
“상송! Allez! Allez!”(계속 가!)
파예, 부디 내 의도를 읽어줘요.
내가 가진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내가 봐 온 그 누구보다 눈이 좋으니까. 보이잖아?’
지금 어떻게 하면 최선의 플레이가 나오는지.
‘자, 부디 상송이 앞으로 가고, 내가 지금 이렇게 중앙으로 이동하는 내 의도를 읽어줘.’
-뻥
됐다! 읽었어! 그럼 이제 생각하지 말고. 바로!
-뻐엉-!
“Allez-! 상송-!”
.
.
.
.
.
.
-삑! 삑! 삐이익-!
-la première mi-temps se termine!(전반전 종료입니다!)
***
[mi-temps]
Lorient 0 : 2 Marseille
[Buts]
Lorient : (rien)
Marseille : Rolando(6), Payet(19).
***
“베디모, 몸 풀어라. 후반에 들어간다.”
“Oui.(예)”
그 말에, 수석코치는 언제나 그러던 것처럼, 가르시아 감독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친구, 과락은 면했군요. 몇 점입니까?”
“41점.”
그 짜디 짠 점수에. 수석코치는 살짝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고로 40점이 과락이다.
“너무 짜신 거 아닙니까? 처음으로 접하는 강한 압박 속에서도. 저렇게 단순하고 빠르게 삼각형을 생각하며 위력적인 역습을 펼쳤는데요.”
압박을 풀어나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래도 가장 정석적이고, 이상적인 방법을 꼽으라면.
바로, 저 선수가 보여준, 서로가 서로의 위치를 변경해가며 빠르게 삼각형을 그리는 패스플레이다.
그리고 가르시아가 사용하는 4-3-3이, 바로 그것을 죽도록 요구하고 또 강조하는 포메이션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저 친구가 보여준 탈압박은 꽤 괜찮은 점수를 줄 만했다.
비록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빠르게 단 네 번의 볼 터치로 중앙을 뚫어 버림으로서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어냈으니까.
그런데도 저렇게 짠 점수를 주다니.
“뭐 어시스트는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저 정도면-”
“봉파르. 삼각형을 이용한 압박을 풀어나가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야. 저것도 못 한다면 후보로도 못 써먹어.”
“······”
설득을 포기해야겠군.
‘디종에서부터 같이 일하다 보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참 풀백에 대한 기준이 높으시단 말이지.’
하긴, 에쉴리 콜한테도 만족을 못 하던 감독이 저 친구에게 만족할까.
뭐, 그래도.
“그럼 선수들 상태 체크하러 이만 들어가보죠, 감독님.”
“그래, 그래야겠군.”
말과는 달리 미소짓고 있는 것을 봐서는, 저렇게 말하면서도 나름 만족스러운 플레이긴 한 모양이다.
하긴, 저런 플레이를 할 줄 안다면. 선발로 뛸 만한 최소 조건은 갖추었다는 소리니 말이다.
‘휴- 드디어, 레프트백에 제대로 된 경쟁 구도가 만들어졌군.’
***
<이준혁, 마르세유에서 프랑스 리그앙 데뷔전··· 팀은 4대 1로 승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