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3/167)

début (1)

2017년 03월 01일.

“Quels sont vos loisirs?”

어··· 어··· 그러니까. 저거, 내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는 거 맞지?

“J’amie Musique.”(음악을 좋아합니다.)

휴, 좋아. 이 정도면 대답 완벽했-

“Lequel? Vous aimez écouter ou faire?”

“······”

아 시발.

“항복, 아니 Give up! What is mean?

“Haha. It means just what is your hobby. listening or doing.”

아, 그러니까. 듣는 거랑 하는 거랑 둘 중 어느 게 더 좋냐는 거였어? 하아- 어렵구만.

“Okay, temps est révolu. À plus tard. au revoir!”

어어, 그러니까. 시간에, au revoir면··· 이제 끝났단 소리지?

“à bientôt!.”

“corriger! à demain!”

-뜨릉.

“하아- 끝났네.”

아직은 어학원으로 직접 공부하러 나가는 게 아니라 스카이프로 기초 회화만 배우는 건데도 참 어렵다. 하하.

“휴- 뭐, 그래도 한 달만에 많이 늘었네.”

이 정도면,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 배운 학생들 수준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한 달만에 이 정도면 양반이지.

‘내가 마르세유에 있는 동안 DELF(프랑스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시험)에서 B2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정도. 그 수준까지만 되면 참 좋겠는데···’

우리나라에서 불어불문학과 졸업하는 사람들이 보통 그 정도 자격증을 요구한다고 하니까. 그 정도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할 거다.

솔직히 아무런 베이스도 없던 내가 4년동안 불어 공부한 대학생들만큼 하면 잘 하는 거일 테니.

‘뭐, 욕심을 잔뜩 부리자면 원어민 수준이라는 C단계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반쯤 포기. 2년 만에 내가 프랑스어로 논문 읽을 수 있는 수준의 공부머리가 되면 내가 축구를 왜 했겠냐.

솔직히, 이번 시즌 끝나기 전까지 A2(기초회화만 가능한 수준)만 따내도 대단한 거일 거다.

“하아- 스카이프 수업 끝났으니 이제는 뽀로로 볼 시간이네. 뽀로로가 어디 있더라.”

뽀통령 만세, 뽀로로 만세.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이야말로 정말 외국어 공부하기 최고다.

처음에 구단 쪽에서는 발음이 느릿느릿해서 알아듣기 쉬운 Léo et Popi라는 애니메이션을 추천해줬는데. 몇 번 듣고 나서 바로 그만뒀다. 왜냐고?

시발 놈들아, 자막을 줘.

자막도 없이 무작정 공부하라고 하면 뭐 어떻게 알아들으라는 건데.

그래서 에이전시 쪽에서 구해다 준 게 뽀로로였다. 한국말로 한 번 에피소드 듣고 나서, 이걸로도 한 번 듣고 그러면 뭔 말 하는지 확 이해 되더라.

한 편당 5분 이하로 짧은 편이라 더더욱 좋고.

-Je joue toute la journée♬(노는 게 제일 좋아~)

그렇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뽀로로를 틀려고 하던 참에.

-카톡!

요즘은 잘 안 들려오던 알림음이 들려왔다.

‘음, 저 알림음 오랜만에 듣네. 유럽은 카톡을 안 쓰니···’

유럽은 모바일 메신저가 왓츠앱이나 페이스북 메신저가 대다수라서 그런지, 유럽에 와서는 카톡 사용 빈도가 확 줄어버렸다.

‘뭐, 왓츠앱이나 페이스북 메신저가 아니라 카톡이면 뭐 뻔하지. 에이전트님이 집 찾아오셨나 보구나.’

자, 그럼 이번엔 제발···

-거긴 열쇠 몇 개나 필요해요?

제발, 제발 많이 기대 안 한다. 한 자릿수, 한 자릿수로만 줄여져도···

-10개입니다.

“아오 씨발!”

내가 요즘 프랑스 집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가장 거지같은, 아니아니 인상깊은 점이라면 여기는 무슨 90~00년대 우리나라처럼. 대부분이 비밀번호 도어락을 안 쓰고 열쇠를 쓴다는 거였다.

아니 무슨 돈도 많은 나라면서 왜 그 편리한 비밀번호 도어락을 안 쓴단 말인가. 솔직히 우리나라는 이제 컨테이너 사무소에도 비밀번호 도어락이 달려있는 시대인데.

그래서 하도 답답해서 왜 이러는 거냐고 물어봤더니.

-뭐, 솔직히 이유 대라고 하면 제각각입니다. 자기 집 아닌데 굳이 그런 비싼 걸 설치할 필요가 있느냐는 소리도 있고. 비밀번호 도어락은 위험하다는 사람도 있고.

-···네? 열쇠가 더 안전하다고요?

이건 또 뭔 개소리야. 그럼 보안이 생명인 연구소들이 다 왜 디지털 도어락을 쓰냐.

-본인들은 그렇게 말하더군요.

와. 저 근거 없는 자신감 뭐냐.

-뭐, 원래 유럽 쪽 사람들이 조금 보수적입니다. 아직도 신용카드보단 현금 더 많이 쓰고, 인터넷으로 뉴스보기보단 아직 종이신문을 쓰고, 문서 보낼 때 이메일보단 우편 쓰고 그러는 곳들이 한 트럭이거든요.

···하긴, 나도 내 카드 받을 때 우편으로 받았지? 비밀번호도 또 우편으로 주고.

“에휴- 젠장, 그래놓고 열쇠를 한번 잃어버릴 때마다 최소 200유로는 기본으로 깨진다고 봐야 한다니···.”

만일 좀 강력한 보안장치가 되어있는 현관 문 열쇠면 1000유로 수준까지 올라가고, 공동현관 열쇠 잃어버리면 자물쇠 갈아끼우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열쇠를 몽땅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지? 그래서 되도록이면 열쇠 보험도 가입해야 한다고 했고.

진짜 어메이징 유럽이다. 하하. 아니, 뭐 후진국도 아니고, 우리나라보다 더 부자인 나라가 왜 이따구냐?

“에휴- 그래, 뭐. 열쇠 적은 집 찾는 건 포기해야겠다. 그건 불가능한 거 같으니.”

내가 잃어버리지 않으면 되는 거겠지 뭐. 그러니까.

-어쩔 수 없네요. 열쇠 적은 집 찾는 건 포기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봐 왔던 집들 중에서 훈련장이랑 가까운지, 생활 가구가 쓸 만큼 있는지를 이젠 1순위로 봐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추가적으로 요청하실 사항은 있으신가요?

추가적으로 요청할 사항? 음, 딱히 없는··· 아.

-에어컨 있는 집으로 해주세요, 안 되어있다면 최소한 설치가 가능한 집으로.

그래, 돌아다녀 보니깐 에어컨이 설치 안 되어 있는 집들도 있더라. 겨울에 이런 봄 날씨인데 여름에 에어컨 없이 버티라고? 댁들은 몰라도 난 그런 미래는 감당 못해.

-예, 알겠습니다.

휴우-

“참, 집 나가면 개고생이긴 하구나.”

자취는 해 봐서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외국에서 자취한다는 건 그것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문제였다.

외국어 공부는 어떻게 할 건지. 집은 어떻게 할 건지. 또 이제 집을 구하고 나면 차는 살 건지,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렌트카를 쓸 건지, 그것도 아니면 자전거 하나 사서 타고 다닐 건지.

이런 거 하나하나 할 때마다 나의 힘만으론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보니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야 할 문제가 되어버린다는 게 너무 번거롭고 짜증난다.

“휴우- 세상사 참 힘들다.”

뭐, 그래도 본업이 잘 풀리면 만족하기라도 할 텐데··· 그것도 아니니.

“언제쯤 출전할 수 있을까···”

그래, 어느덧 내가 마르세유에 온 지 벌써 한 달이 지났고. 꽤 많은 경기가 이루어졌지만.

나는 아직 단 1분도 출전해보지 못했다.

‘뭐, 리에주를 버리고 여기에 올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는 했던 사실이긴 하지만, 참 현실로 다가오니 참 짜증나네.’

2군하고 훈련하면서 2군 경기도 한 경기 뛰고, 내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 이후로 그게 어느정도 통했는지 2월 중순. 스타드 렌이랑 홈 경기 할 때 교체 명단에는 한 번 들었지만.

그 이후로는 영 감감 무소식이였다.

‘뭐, 그 이후 경기가 파리 셍제르망이랑 경기였고, 또 오늘 하는 경기가 모나코랑 하는 경기니까 날 굳이 쓰는 모험을 해보지 않겠다··· 는 건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짜증나는 건 짜증나는 거다.

“에라이 몰라. 오늘 모나코한테 확 져 버리라지.”

오늘 Coupe de France(FA컵) 16강전 한다고 했지? 그걸 보기보단, 난 오늘은 그냥 귀여운 뽀로로나 보련다. 이것들아.

응원 안 할거야.

***

[경기 결과]

마르세유 3 : 4 모나코

[골]

마르세유 : Payet(43) Cabella(84, 111)

모나코 : Pelé(19) Mbappé(66) Mendy(104) Lemar(113)

***

“Putain!”

-쾅.

그 말과 함께, 책상을 걷어찬 루디 가르시아는 아파오는 발에 신음을 참으면서도.

“Putain De Merde!”

욕을 계속 내뱉었다.

“하아아- 젠장. 이러면 안 되는데.”

지금 이렇게 되면, 이번 시즌의 마르세유는 무관이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작년 성적이 개박살나서 유럽 대항전은 처음부터 없었고, Coupe de la Ligue(리그컵)도 16강에서 이미 소쇼에게 패배했으니 말이다.

리그? 리그는 뭐, 작년 13위 하던 팀이 어떻게 바로 또 우승에 도전하겠는가. 게다가 자신이 올해 10월에 부임하기 이전에도 선수를 지키는 게 아니라 열심히 선수를 팔아치웠던 팀이 말이다.

그래서 애초에 이번 시즌의 리그에서의 목표는 유럽 대항전 티켓을 얻는 거였고. 가르시아는 구단의 그 요청에 충분히 따라주고 있었다.

리그를 27라운드까지 치룬 지금 마르세유의 순위는 7위로, 1위만 더 올리면 유로파 진출이 가능한 순위였으니.

그렇지만.

“휘유우우··· 리그에서는 파리한테 대패하고, 모나코에게도 연속으로 패배하다니. 이거 오늘은 그냥 여기에 있는 게 안전할지도 모르겠군.”

마르세유가 내심 의식하고 있는 두 팀들에게 2연속 패배는, 조금 아팠다.

사실, 파리한테 지는 것은 그럴 수 있다. 마르세유가 그들을 라이벌로 의식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들이 이 리그앙의 절대적인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팬들이 알고는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파리에게 5대 1로 홈에서 대패하는 것을 팬들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는 없었고.

그리고, 그렇게 패배한 직후에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파리를 앞지르고, 파리에게서 리그 우승컵을 탈환하려고 드는 AS 모나코에게 진다는 건?

···솔직히, 밤길이 살짝 두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후. 로마 친구들 덕분에 저런 훌리건들에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위가 있다니 참···”

그렇게 중얼거리며 오늘은 그냥 사무실에 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가르시아 감독은, 다음 경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Lorient(로리앙) 원정은··· 뭐, 어렵진 않겠지.”

올해 리그 1 승격팀이자, 현재 20위로 꼴찌에 위치한 그들에게 힘들어한다면 솔직히 마르세유 감독직을 그만둬야 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휴, 로리앙에게 승리를 따내는 건 그렇게 어렵진 않겠지만. 선수들이 부상당하지 말아야 할 텐데.”

리그 후반에 4일만에 비행기를 타고 바로 원정경기에 임한다는 것은. 선수들이 부상당할 확률을 꽤나 높이는 짓이니 말이다.

“로테이션을 돌려야겠군, 일단 젊은 친구들 위주로 돌리고···”

-탁, 탁.

-Thauvin.

-Sanson

-Auguissa

그렇게 젊은 선수들을 먼저 넣은 가르시아 감독은,

-Bedimo.

왼쪽 풀백에 이 선수를 채워넣으려다가. 잠시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들었다.

“흠··· 지금 리, 그 선수가 영입 이후 아직도 출전을 못 하고 있었지?”

그건 별로 좋은 일은 아니었다. 비록 그 친구가 살짝 의심스럽긴 해도, 영입해온 선수에게 단 한번의 기회도 안 주는 건 기존의 선수들에게 너무 안도감을 줄 수도 있으니.

당장 자신이 마르세유에 처음 부임했을 때, 경쟁을 하질 않고 안도해버린 탓에 체지방이 12%나 되던 선수들도 있지 않았는가.

“긴장감을 주기에 딱 중요한 타이밍이군, 본래는 첫 기용은 홈 경기에서 시켜줄 생각이었지만.”

-탁.

“지금이 가장 적절하겠어.”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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