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me bizarre (1)
-뻐엉.
“아, 이런, 또 패스를 하질 않는군요.”
“그럴 법 하지. 외국인이지 않나.”
외국인 선수가 겨울 이적시장에 영입되어서 바로 큰 활약을 하려면, 보통은 특출나게 뛰어나야 했다.
생각해 봐라. 이미 6개월 동안 발을 계속 맞춰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별로 좋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미 그 사람에 맞춰서 어떻게든 시스템을 돌아가게 만드는 데 익숙해져 버린다.
이건 비단 축구뿐만이 아니라 다른 스포츠든, 군대든, 일반적인 회사의 일이든 동일하다.
회사로 생각해 보자. 한 적당히 큰 중견기업에 갑자기 외국인 신입이 들어온다?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아, 씨발, 간신히 적응했더니 또 왜 지랄이야. 내가 말도 안 통하는 외국놈하고 드잡이질하면서 일해야 해? 그냥 하던 대로 하지.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아주 ‘정상적’이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말이 통하고, 능력이 기존에 있던 사람보다 조금 더 낫더라도 서로의 스타일을 이해하고 인수인계하느라 당분간은 조금 더 신경쓰면서 귀찮게 일해야 하기에.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
“그럼 데이비드, 앞으로 B팀 감독으로서 저 친구를 잘 부탁하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당분간은 저 친구, 1군과 함께하기보단 B팀과 같이 훈련시키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최소한 이번 시즌은 그게 맞아.”
그래서 마르세유의 감독, 루디 가르시아는 최소한 이번 시즌 동안은 이준혁 저 선수를 B팀에 조금 더 가까운 위치로 출전시킬 생각이었다.
아직 프랑스에 적응이 안 되어 있을 테니. 경기를 뛰며 안정감을 찾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예? 그래도 1군 벤치에는 올려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수비는 지금 보니 탈 2군 수준은 되는데요.”
“그렇겠지, 리에주에서 괜히 영입하려고 들진 않았을 테니.”
“그런데 왜 굳이 B팀에 박아두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다른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물론, 데이비드의 말처럼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저 친구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말이지.”
물론 가르시아는 인종차별자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아랍인들과 흑인들이 넘쳐나는 마르세유의 감독을 맡겠는가.
그저, 조금 안 좋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선수의 나라 한국에.
“ 저 친구랑 같은 나라 선수에게 내가 당했던 기억이 있거든.”
“예? 언제 남한 선수를 영입한 적이 있었습니까?”
“정확히는 시도했지.”
그랬다. 루디 가르시아는 2011-12 시즌 LOSC Lile의 감독이었다.
대한민국의 스트라이커 박주영을 거의 영입 직전까지 왔었지만. 막판에 아스날에게 그 선수를 빼앗겨 버린 그 릴의 감독으로서, 소위 ‘릴통수’를 두 눈 똑똑히 보고 당했던 감독이었단 말이다.
물론 그 행동이 불법은 아니었다. 구두 계약만 완료되었을 뿐 계약서상 아직 공식적으로 이적이 완료된 상태는 아니어서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었으니까.
하지만, 구단 합의 다 끝나고, 개인 합의 다 끝나고 메디컬 테스트까지 통과하고 최종 사인만 남은 상황에서 갑자기 휭 하고 당신들하고 계약 안하겠습니다 하고 통보만 하고 테이블을 엎어 버린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라도, 최소한 도의적 문제가 없다는 소리까지는 절대 못 할 일이다.
그리고 한국인 축구선수에 대한 첫 인상이 그렇게 박혀버리고 그 이후로 이탈리아로 갔던 그는 단 한 번도 다른 한국인 선수를 만날 기회가 없었고.
그렇게 ‘한국인 선수는 협상과정에서 통수를 칠지도 모른다.’ 라는 인식이 자연히 굳어져 버렸다.
그래서, 루디 가르시아는 솔직히 의심의 눈초리를 지울 수가 없었다.
주전 보장이 되는 리에주에서 비슷한, 아니 어찌 보면 더 나은 계약을 제시했었는데도, 부득불 마르세유로 온 이준혁이란 선수를 말이다.
‘···뭐 뒤통수 쳐도 저 친구는 큰 일은 없긴 하겠지만 말이지.’
막 연봉 150만 유로씩 두둑하게 받기에 영입 전 반드시 구단주와 길고 긴 상의가 있어야 하는 선수와 스카우터진의 강력한 주장만으로도 관철될 수 있는 고작 연봉 25만 유로도 안 되는 1군 끝자락, 백업 용도로 영입한 선수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한번 맞은 통수가 조금 덜 세게 맞는다고 안 아픈 건 아니다.
“그러니까, 당분간 2군에서 보면서 저 친구가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지 좀 지켜봐주게.”
“예, 알겠습니다.”
그 말까지 끝낸 가르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
“참, 베디모는 어떤가? 2군으로 내려간 이후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나?”
“···솔직히, 폼이 많이 좋지 않습니다.”
“하아- 그런가.”
원래 이번 2016-17 시즌, 마르세유가 주전 레프트백으로 낙점한 선수는 앙리 베디모(Henri Bedimo)였다.
몽펠리에와 리옹을 거치며 1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거두고, 올해의 팀에도 한 번 들었던 위력적인 레프트백으로서.
자신이 릴의 감독이었을 때, 상대팀의 입장에서 그가 얼마나 위력적인 선수인가를 몸소 느껴봤었던 만큼 그를 영입했을 때는 아주 환영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그는 이번 시즌 마르세유의 완벽한 구멍이 되어 버렸고. 덕분에 루디 가르시아는 온갖 행동을 다 해가며 레프트백 자리를 메꾸어야 했다.
센터백을 세워보는 것은 기본이요, 미드필더로 잘 뛰고 있던 선수를 내려보기도 하는 둥. 정말 애를 써 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건 측면을 중요시하는 루디 가르시아에게 굉장히 치명적이었다.
‘물론 이제는 에브라가 영입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그래도 에브라는, 나이가 나이다. 절대로 ‘완벽하게’ 모든 경기를 계속 선발로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아니, 설령 에브라가 전성기인 26살의 선수라고 해도, 현대 축구는 더 이상 로테이션을 돌리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 축구 협회는 선수들에게 점점 더 가혹한 일정을 원하고 있고. 최근 각광받는 전술들은 하나같이 기본적으로 많이 뛰는 것을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현대 축구에서는.
아무리 체력이 좋은 선수라고 해도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다 뛰고도 제 실력을 발휘하는 일 따윈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 축구에서 가장 전력질주가 많아진 포지션인 풀백이라면 더더욱.
“어떻게든 살려 보게. 안 그러면 최소한 이번 시즌 나는 계속해서 에브라 그 친구가 빠지기라도 하는 순간 반쪽짜리 4-3-3을 쓸 수밖에 단 말일세.”
“예, 노력해보겠습니다.”
그 말까지 끝낸 이후, 데이비드는 추가적인 질문을 던졌다.
“아, 참. 만일 저 친구가 좋은 모습을 보이면 어떻게 합니까?”
“누구 말인가?”
“저기 말입니다. 저 리라는 선수 말입니다.”
그 말에, 가르시아는 코웃음을 쳤다.
“그건 힘들 걸세.”
물론, 저 친구가 좋은 모습을 보이면 자신의 의심과는 별개로, 경기적인 측면에서는 많은 부문이 해결된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말도 안 통하고, 연봉을 보니 그리 큰 기대를 하고 데려온 것도 아닌 외국인이 왔다? 솔직히 이번 남은 시즌 동안 텃세에서 견디고 익숙해지기만 해도 대단한 거였다.
물론 저 친구가 대단한 커리어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저 친구가 그런 친구는 아니란 말이지.’
아시아의 축구 리그가 대기업 취급받을 리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루디 가르시아는 이준혁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진 않았다. 겨울 이적시장에 들어와서 성공하는 선수는 둘 중 하나다.
‘특출나게’ 뛰어난 경력을 가지고 있거나. 그 누가 봐도 저 선수에게 공을 주는 것이, 기회를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되거나.
그런데 저 선수는 연봉을 봐도 그리 큰 기대를 하고 영입한 선수도 아니었고. 실력도 글쎄. 아직 의문부호였다.
‘동료들이 믿음도 안 주고 볼을 주질 않으니 수비도 공격도 평가하기가 힘드니.’
이런 점들이 합쳐져, 가르시아는 이준혁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뭐, 자네의 눈으로 봐서 잘 뛰면 보고 정도는 올려주게. 그럼 나는 이만 다음 경기 전술이나 생각하러 가봐야겠군.”
“예, 살펴가시죠.”
그 말을 끝으로 데이비드는 다시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고.
-뻥.
또 다시 왼쪽으로 공격을 진행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허, 슬슬 저 친구가 공격 좀 하는 모습도 보고 싶은데 말이지.’
스카우터들 중에서, 이런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될 경우 우리는 조금 나이든 상태의 비셴테를 얻을 수도 있음.
맨유에게 연장전에 두 골을 먹히며 우승컵을 빼앗긴. 캄프 누의 비극을 겪고도 기어이 다시 뮌헨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어낸, 뮌헨 황금기의 일원이자.
프랑스를 1998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철의 포백의 일원이었던 비셴테 리사라수(Bixente Lizarazu)
그런 소리를 들은 만큼, 솔직히 궁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저 선수의 뭘 보고 저렇게 판단한 건지.
-삐이익!
“Faute(파울)!”
‘그렇지만, 오늘은 볼 수 없으려나 보군. 저렇게 견제가 심해서야.’
아주 그냥 살인태클만 빼고는 할 수 있는 파울은 다 하고 있지 않은가.
“sois prêt! (준비하고.) Allez!(시작해라!)”
-삐이익!
-*-*-*-
좋아, 이번엔 진짜 공간 나왔다.
“Hé, passe!”
이번엔 패스해라, 이 새끼들아. 완전 노 마크 찬스라고!
그러나. 이번에도 저 중앙 수비수 녀석은.
-뻥.
오른쪽으로 공격을 이어갔다. 덕분에.
“아 씨발. 저 새끼 또 저러네.”
연습 게임 10분만에 나는 기어이 욕을 내뱉었다.
‘이 새끼들이 패스를 달라고 해도 주질 않네. 진짜.’
패스 달라고 하는 소리는 분명히 들었을 거다. 여기는 관둥들이 가득 차 있는 경기장도 아니고, 훈련장이니까.
그리고 전술적으로 보더라도 나한테 주는 게 맞았다. 방금 상황에서 나는 노 마크 상태였고, 앞은 텅텅 비어 있었으니 내 쪽에 공을 주는 순간 아주 단순하고 빠른 역습의 전개가 가능했다.
‘그런데도 또 오른쪽으로 줬다, 이거지 허 참.’
허- 참. 텃세 오지네. 망할 자식들.
-voler la balle!
거 봐, 공 또 빼앗기잖아. 저건 아마도 공 뺏었다는 소리겠지. 이제 곧 또 카운터 역습 당하겠구만.
“Reviens!, Reviens!”
···하, 그래놓고 골대 앞으로 복귀하라는 소리는 아주 잘도 한단 말이지. 개새끼들.
하, 아무래도 못 참겠다.
[좋아! 이제 막··· 뭐야 너! 돌아와!]
이게 경기라면 좀 참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훈련이니까.
내 맘대로 뛴다. 새끼들아.
[왜 중앙으로 가는 건데?] “Reviens!”
뒤로 돌아오라고? 하하. 미안하지만, 어림도 없다 새끼들아.
“Hé! Reviens! Re··· back! Back! Back!”
그리고 확신도 있거든.
이렇게 느린 템포. 이렇게 썩어빠진 2군의 템포 따위는.
K리그 챌린지보다도 훨신 못한 템포다.
그러니. K리그에서 뛰던 나에게 있어서는.
“What- Putain!”
하품이 나오는 템포라는 거다.
‘자, 드디어 공 잡았다. 그럼.’
“Allez! Allez! Go! Move!”
앞으로 자리 쳐 잡아 새끼들아.
최소한 1군은 몰라도. 2군인 니네들한테는 내가 얕보일 대상이 아니란다.
내가 니들한테, 제대로 된 역습이 뭔지를.
1군이 원하는 루디 가르시아식 4-3-3이 뭔지를 보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