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화 (140/167)

Salut! OM! (2)

[자, 다들 주목. 이번에 겨울 이적시장에서 마지막으로 영입된 이준혁이다. 한국 K리그에서 왔지. 앞으로 잘들 지내라고.]

스태프의 이 말에, 그들은 다들 살짝 피곤한 얼굴로 짧게 대답했다.

“Oui.”

음, ‘예’ 한 번 하고 끝이라니. 별로 반응이 안 좋구만.

‘하긴, 어제 연장전까지 경기 뛰고 바로 또 이틀 후 원정경기를 가야 하는 선수들이 날 반기겠어?’

“Let introduce.(자기소개 하세요.)”

“Oui.”

그렇게 살짝 어색함이 흐르는 가운데, 나는 프랑스어로 짧게 대답했다.

“Salut. Je m'appelle Jun hyuk Lee. Je suis coréenne.”

(안녕, 전 이준혁이고, 한국에서 왔어.)

그래도 프랑스에 온 만큼, 다른 건 몰라도 자기소개 정도는 프랑스어로 하는 예의를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달달 외웠다.

“Je suis très heureux de venir ici. Je veux être utile à cette équipe···”

(저는 이 팀에 오게 되어 매우 기쁘고, 이 팀에서 제가 빠르게 쓸모있는 조각이 되길 원합니다.)

물론

“C'est tout.”

(이상입니다.)

길게 끌 생각따윈 없었다.

‘애초에 내가 언어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이런 스피치를 길게 준비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초등학생 때였나. 반에서 반장이나 회장 연설 한 3분 시간 줄 테니 해보라고 하면 다들 안다. 3분을 외워서 연설하기 위해서는 한 3시간은 꼬박 그걸 외우고 연습해야 하는데. 그걸 내가 하리? 그것도 외국어로?

‘당장 감독 전술 머리에 쑤셔박기에도 바빠 죽을 뻔했는데.’

뭐, 그래도.

“J'espère bien avancer.”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 정도는 예의니까. 예의.

최소한 이 나라에 온 외국인으로서의 예의.

그런데. 그 말을 하자마자. 잠깐 정적이 흐르더니.

[푸하하하-!]

다들 웃기 시작했다. 뭐야? 뭔데?

[야, 뭐야. 처음부터 쟤는 프랑스어 쓰네? 사카이보다 낫다!]

[그러게, 아주 맘에 드는데? 아직 존댓말 반말 헷갈리는 것 같긴 한데.]

[난 알아듣기 힘든데, 저거 발음 고쳐줘도 돼?]

[야, 아직 참아. 임마. 계속 배울 의지 있는지부터 물어봐야지.]

그렇게 자기네끼리 떠들더니. 한 선수가 성큼성큼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Hé, tu as tort”

어··· tu가 you라고 알고 있는데, 보아하니 내가 뭐 틀렸다는 뜻인가? 그럼 tort는 틀렸다는 뜻?

“What is tort? It means wrong?”

“Corriger.(맞아.) et···”

그러더니, 옆 통역사 쪽과 뭐라고뭐라고 대화하더니. 그 통역사가 말해줬다.

“He says···”

영어로.

‘···아 진짜 힘드네.’

듣고, 말하는 것 하나하나가 정말이지 신경이 엄청 쓰인다.

통역이 좀 있긴 해야할 거 같다. 정말로.

‘에이전트님하고 구단이 프로방스 한인 교회 쪽에 연락을 드리고는 있다는데, 아직은 잘 안 구해지고 있다고 했지? 빨리 좀 구해졌으면 좋겠네.’

다만.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 프랑스어 배울 거냐고요?}

{예, 그렇게 말했습니다.}

{당연하죠. 이미 구단에 말해 놨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계속 프랑스어를 배울 생각이긴 했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여기 프랑스에 왔으니 프랑스어를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말하자.

[하-! 그게 정말인가요?]

[예, 실제로 구단에 이미 과외 선생을 요청했습니다.]

[아주 마음에 드는 친구군요? 얘들아. 이 친구, 프랑스어 배우고 싶단다!]

그 말과 함께.

[하하, 환영한다. 프랑스어를 배우려는 사람중에 나쁜 사람은 없지. 난 Bafétimbi Gomis야. 임대생이지만 주장이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

[Yohann Pelé다. 나도 환영한다. 풀백이지? 앞으로 내 말 잘 들으라고. 원래 수비진에서 왕은 골키퍼니까.]

[나는···]

지쳐있던 선수들은 하나같이 나한테 달라붙어서 이것저것 떠들기 시작했다.

‘···뭐야.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뭘 했길래 180도 반응이 바뀌어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그냥 프랑스어 몇 마디 했다고 이렇게 반응이 좋다고?

‘여기서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지금 눈치 보니깐 대충 je(나)에다가 이름 말하는 거 봐서는 다들 자기소개 하는 것 같긴 한데. 이럴 땐 뭐라고 해야하지? 뭐라고 해야하는 거지? 반나서 반갑다고 하면 되려나? 만나서 반갑다가···

“En, enchanté?”(바, 반갑습니다?)

[······]

그 순간, 이젠 다들 숫제 실실 웃으면서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아냐! 그건 발음 그렇게 하는 거 아냐! 강세를 넣어야지! 야! 너 어차피 오늘은 그냥 회복훈련밖에 못 해서 일찍 끝나는데. 이따가 나랑 같이 점심 먹으러 갈래? 내가 끝네주는 부이야베스 집을 알아.]

[아니, 쟤 말은 듣지 마. 내가 끝내주는 쿠스쿠스 집을 안다고. 나랑 같이 가자! 발음도 잘 가르쳐줄게!]

[시끄러 이 녀석들아. 외국에서 온 친구가 해산물 잘 먹을 리가 있겠어? 무난하게 스테이크 집으로 가자고.]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나는 도대체 저 친구들이 뭐라고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그저 통역사를 애처롭게 바라볼 뿐이었다.

영어로 해도 저거 절반이나 알아들을까 말까일 텐데. 프랑스어로 저렇게 빠르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듣는단 말인가.

[자, 자, 더 말해 봐! 할 수 있는 프랑스어 다 말해 봐! 발음 고쳐주마!]

그리고 그 순간.

{헤이- 다들 그만하라고, 저 친구 프랑스어 잘 모를 거야. 한국은 프랑스어 공부 안 하거든. 당분간은 영어로 말해주자.}

구원의 동앗줄이 내려왔다.

“안녕. 리, 준, 혀크? 맞지?”

“어, 어, 맞습니다. 한국말 할 줄 아시나요?”

프랑스 국대에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파벌싸움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훈련 거부를 주도하고 징계먹은 기록도 있기에 축구를 좀 아는 사람들 중에선 인성이 그리 좋지 못한 자로 소문났지만.

{하하, 잘은 못해, 그러니까 영어로 말하자고.}

{아, 예. 예.}

그래도, 박지성 선수와의 절친이라는 점 덕분에 한국에서는 아주아주 좋은 이미지를 가진 선수이자. 결국 국가대표팀에 돌아와서 작년까지도 국가대표팀 멤버로서 뛴 선수.

피트리스 에브라였다.

{지의 나라에서 왔구나. 환영한다. 회복 훈련 끝나면 나중에 점심이나 같이 먹을래?}

“Merci.(감사합니다.) 하하.”

그 순간, 나는 이제 자기소개가 끝난 줄 알고 안심했다.

‘휴, 다행이다.’

자기소개 다음엔 신고식 하는 게 국룰인데, 여기는 다행히 그런 거 없구나.

‘에브라, 당신은 구원의 동앗줄을 가지고 온 구세주군요. 빛 그 자체!’

역시 박지성 대선배님의 절친답게 인성이-

{하지만 신고식은 해야지? 자, 빨리 보여줘. 준비했지?}

···아주 나쁜 인간이다.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저 인간 왜 징계로 끝낸 거야. 제명시켜 버렸어야지.

[오! 깜빡할 뻔했네. 그러고 보니 피트리스, 당신도 해요! 입단해 놓고 안 했잖아요!]

[맞아요!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신고식은 해야죠!]

[시끄러. 내 나이에 뭔 신고식이야. 이 친구로 만족해.] “자, 빨리 해.”

아주 친절하게도 빨리 하라는 말은 한국말로 해주시네. 젠장.

그래, 시발.

{그래! 보여줘! 본토의 강남스타일을 보여줘!}

이렇게 된 거, 철저하게 망가지자.

“예, 예, 갑니다.”

싸이 형님, 저에게 기운을 주십쇼.

“오빤 강남스타일!”

[이예에에-!] “나제는 따싸로운-”

-*-*-*-

-아름다↗워, 싸랑스러↗어

{크하하! 수고 많았어! 진짜 웃겼다, 너! 반응도 좋은데?}

“······”

아, 시발. 저게 SNS에 올라갔다고?

‘···괜찮아. 괜찮을 거야. 리그 앙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관심 없잖아. 괜찮을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국물을 한 입 더 퍼넣자.

{자자, 수고했다는 의미로 사 주는 부야베스의 맛은 어때? 맛있지?}

이번엔 다른 곳에서 질문이 들어왔다.

‘맛있냐는 소리 맞지?’

···음, 솔-직히, 말하자면 살짝은 실망했다. 뻘건 국물이라서 매운맛을 기대했는데. 그냥 토마토로 빨갛게 만든 거여서.

‘이런 표현이 적당할지는 모르겠는데 굉장히 비싼 생선 수프 느낌이라고 하면 되려나? ‘

뭐, 그래도.

-후룩.

{예, 맛있네요.} “tres bien!”

내가 생선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국물은 끝내준다. 그럼 된 거지!

{푸하하! 발음이 틀렸어. 다시 한 번 해봐.} très bien!”

“트레 비앙!”

“très bien!”

“트헤 비안!”

{좋아, 조금 나아졌어.}

그런데 밥 먹다가 왜 발음 교정시간이 된 거죠. 젠장.

{아, 다 먹은 거야?}

{어? 어? 아뇨.}

{아, 그럼 포크 그렇게 놓지 마. 그러면 다먹은 줄 알고 접시 가져간다고. 흐흐}

{예? 예. 뭐라고요?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어요?}

게다가 식사 예절까지.

{포크랑 나이프, 나란히 놓으면 밥 다먹은 줄 알아. 다 안 먹었으면 이렇게 해놔. 오케이?}

{아, 이해했습니다.} “Merci.”

{좋아, 그럼 다음은-}

···아, 제발 그만.

-*-*-*-

“흐어어어···”

그렇게 점심 식사시간이 휴식시간이 아니라 무슨 유치원 선생님들한테 말하는 발음 교정받고 예절 배움의 장소처럼 되어버리자.

아직 점심 시간만 지났을 뿐인데도. 새하얗게 불태운 상태가 되어버렸다.

‘하하하하··· 젠장. 축구가 어려운 게 아니네.’

생활이 어렵다. 젠장.

훈련장에 들어오면서 야심차게 생각했던 것처럼 뭔가 축구적인 면에서 어려움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진짜 그냥 말 한마디 한마디에 프랑스어 알아들으려고 애쓰고, 영어 알아들으려고 애쓰고, 영어로 말하느라고 애쓰고···

이러다 보니, 체력이 쫙 빠진다.

머리를 너무 썼더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진짜.

‘왜 한국에선 인싸 기질이 넘치던 선수도 유럽에 나가고 나선 부끄럼을 많이 타는 벙어리 같은 성격이 되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지를 알겠다···’

대화를 할 때마다 두세배는 더 힘든 느낌이야. 괜히 외국어 잘하는 게 유럽 진출에 도움된다고 하는 게 아니구나.

‘괜히 유럽에 진출한 수많은 선배님들이 해외 적응을 강조하신 게 아니었어.’

앞서서 경험한 사람이 하는 말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또 다시 머릿속에 입력해둬야겠다. 진짜.

“하아- 머리 아프네. 진짜.”

물론 이럴 때 즉효약이 있긴 하다. 그냥 머릿 속 비워질 때까지 훈련 뛰면 된다.

문제는 지금 1군 훈련일정은 하나같이 회복에만 중점이 맞춰져 있으니 뭐 제대로 할 수도 없다는 거다.

‘이틀 뒤에 메츠 원정이니까 말이지. 하하.’

남쪽 끝 마르세유에서, 북쪽 끝 메츠 원정이니 620km짜리 원정이다. 고작 3일만에 그런 미친 일정이라는 거다.

“개인 훈련이라도 빡세게 해야 하나···”

그렇게 내가 중얼거리던 도중.

“Lee?”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돌아보니. 깜짝 놀랐다.

“어? 가, 감독님? 아니지.” {감독님? 무슨 일이시죠?}

이 팀의 보스이자 감독. 루디 가르시아였다.

‘갑자기 뭔 일로 날 찾아온 거지?’

내가 듣기로, 내 영입은 스카우터들의 일방적인 픽이여서 감독이 아직 관심을 많이 안 가져도 그려려니 했는데.

{아, 다름이 아니라. 자네, 지금 따로 잡은 훈련 일정이 있나?}

{아, 아뇨, 없습니다.}

갑자기 왠 라커룸까지 찾아와서 일대 일 대화란 말인가. 무슨 생각이지?

{잘 됐군, 그럼 지금 2군 선수들 대상으로 단체 연습게임이 있는데, 한번 같이 뛰어볼 생각-}

{당장 가겠습니다. 어디죠?}

그래, 그게 뭔 상관이냐.

이젠 제발 축구나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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